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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147화 (14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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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는 쓱 눈으로 훑어 경비병들의 행색을 살펴보니, 그들의 어디를 보아도 가문이나 도시의 상징이 그려진 정식 휘장이 없었다. 어깨에 찬 흰 완장이 전부였다.

‘아무래도 피곤한 놈들이겠군.’

아르투르 일행이 그들에게 다가서자 우두머리 경비병이 앞으로 나섰는데,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판금 갑옷으로 보호받고 있었다.

“외부인들은 행렬을 멈추고 목적을 밝히라! 이곳은 예언자께서 머무르시는 성도다. 그분의 허가를 받지 않은 자는 들어갈 수 없다!”

아르투르는 황당해서 말을 멈추었다. 아무리 자유 도시라고 해도, 한 눈에 보아도 기사 계급인 사람에게 반말로 호통부터 치는 건 상식에 굉장히 어긋나는 일이었다. 서부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아버지의 왕실 기사들이나 교황청의 근위대도 기사들에겐 적당한 예를 갖추는 게 관례였다.

“아무래도 이 친구들, 상식과는 거리가 먼 것 같은데.”

아르투르가 작게 속삭이자 카밀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눈빛을 보십시오. 무언가에 홀려도 단단히 홀린 눈빛입니다. 즉, 미친 놈 들이겠죠. 상식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힐데군드를 제외한 다른 일행들도 황당한 표정이긴 마찬가지였다. 케이가 머쓱한 지 머리 뒤를 긁었다.

“아하하… 이거 참, 마스터랑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이런 대접은 또 처음이네요. 제가 말을 잘 해볼게요. 굳이 서로 기분 상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쵸?”

아르투르가 고개를 끄덕이자 케이가 앞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다.

“이분께서는 정복자 페르넬의 아들, 백인을 벤 아르투르 공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도시로 들어가 수도사 아타나시우스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 이제 우리들의 앞길을 가로 막는 그대들의 신분을 밝히십시오.”

케이의 의젓한 태도에 아르투르는 남몰래 미소를 지었다. 이제 그의 종자는 점차 기사답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의 반응은 이번에도 예상 외였다. 케이의 말을 들은 상대편의 우두머리는 비웃음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아, 네가 요즘 유명한 사생아 왕자로군. 그렇다면 더더욱 들어갈 수 없다. 이곳은 예언자께서 다스리시는 성도로, 신에게 봉헌된 신성한 도시다. 북구인 잡종 따위가 어딜 어슬렁거리느냐? 화형대로 끌고 가기 전에 당장 꺼져라!”

그의 대담한 말에 다른 병사들도 동의하는지, 열렬한 목소리로 함께 외쳤다.

“화형대! 화형대! 화형대!”

케이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싸움을 가급적 피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면 마스터의 성격 상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아니, 세상 어떤 귀족도 이런 모욕을 참아 넘기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런 모욕을 참는다면 그것이 불명예가 될 것이었다. 다른 일행들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지 지시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며 무기에 손을 얹었다.

“이것 참, 답답한 친구들이군. 비켜서라. 케이. 직접 이야기해보마.”

하지만 아르투르는 그저 난처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설 따름이었다. 힐데군드는 이 병신 새끼가 검부터 뽑지 않고 뭘 하냐는 경멸스런 시선을 보냈지만, 아르투르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병사들이여, 무언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자네들이 예언자로 여기는 아타나시우스 수도승 역시 같은 발타리아를 섬기는 정교도가 아닌가? 나는 정교도들의 모든 영적인 아버지이신 교황 성하의 뜻을 받들어서 왔네. 그분께서는 피오렌치아의 혼란이 조속히 종료되길 바라시고, 나는 그것을 시행하러 온 거지. 부디 교회의 일을 끝낼 수 있게 그에게 안내해주게.”

아르투르의 침착한 태도에도, 경비대 무리는 오히려 비웃음을 머금었다.

“교-오-황? 하! 그깟 거짓 선지자 따위를 우리가 신경 쓸 것 같으냐? 돌아가서 전해라! 너희 거짓 종교, 거짓 교회는 우리의 성도에 감히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야! 진정한 예언자는 단 한분, 아타나시우스님뿐이시다!”

말을 마친 경비대장이 땅에 퉤-하고 침을 뱉었지만, 아르투르는 모욕적이란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너무 어이가 없던 까닭이었다.

‘이건 그냥 정신병자들이 아닌가?’

아르투르가 말문이 막 힐데군드가 도끼를 뽑아 들고자하는 그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악! 저는 마녀가 아니에요! 잡아가지마세요! 도와주세요! 도, 도와주세요!”

성벽 너머, 도시 안쪽에서 여인의 비명이 들려왔다. 아르투르는 곧장 태도를 바꾸어 험악한 눈빛으로 경비병들을 노려보았다.

“저건 무슨 소리냐?”

“성도에서 벌어지는 일은 네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사생아 놈아!”

“비켜서라. 무슨 일이 있는 지 확인해야겠다. 내가 셋을 셀 동안 비키거라. 하나, 둘….”

그러자 경비대장은 곧장 검을 뽑아들려고 했지만, 아르투르가 훨씬 빨랐다. 상대가 검을 뽑기도 전, 여명이 번개같이 내리치며 놈의 머리를 투구 째로 쪼개버렸다.

“셋!”

한때 경비대장이었던 육편 조각이 나뒹굴고 있을 때, 다른 일행들도 삽시간에 공격을 가했다. 카밀은 성벽 위에 대기 중이던 석궁수들을 쏘아버렸고, 힐데군드는 하마하며 날래게 적진으로 날듯이 뛰어가 몸을 부딪쳤다. 시라노도 머뭇거리던 적의 목을 쳐버렸다.

“이놈들이!”

경비대장의 뒤편에 있던 네 병사가 아르투르에게 달려들어 창을 내찔렀다. 하지만 공격을 기다리던 에쿠잘루스는 오히려 용감히 앞으로 내달렸으며, 아르투르는 적병들의 창대를 통째로 베어버린 후 그들을 들이받았다. 첫 번째 적병이 군마에 받쳐서 저 멀리 날아갔다. 두 번째, 세 번째 병사는 대처할 새도 없이 목이 잘려나갔다. 마지막 남은 병사는 뒤돌아섰지만 여명이 가슴을 꿰뚫고 나온다.

“적습, 적습이다! 거짓 선지자의 무리가 우리를 침략하러 왔다!”

“침략이라니, 토벌이지. 이 쓰레기 이단자들아!”

적병들이 소집나팔을 울려 도시의 온갖 경비대가 몰려듬과 동시에, 도개교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러나서 재정비를 하는 게 상식적이겠지만, 아르투르는 들려온 비명을 떠올리며 단숨에 에쿠잘루스를 재촉해 도개교 위로 뛰어올랐다.

“모두 비켜라!”

“마, 마스터! 혼자 가시면 안됩니다!”

하지만 일행들은 눈앞의 적병을 상대하느라 바쁘거나, 충분히 재빠르지 못해 뒤따라오지 못했다. 아르투르는 닫혀가는 성문도 통과했다. 성문 너머에는 갓 소집된 경비병들이 창과 방패를 내세우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투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오합지졸들아! 저리 꺼져라!”

아르투르가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목이 뭉텅뭉텅 잘려나갔다. 적병들은 사기는 높았으나 병사로서의 자질은 부족했기에 침착히 대응하지 못하고, 무리한 반격만을 고집하다가 각개격파 당했다. 순식간에 적병들을 쓸어버린 아르투르가 비명이 들린 시내로 달려가려는 참에, 뒤편에서 일행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오세요! 마스터! 혼자 가시면 위험합니다!”

“주군, 가더라도 같이 가십시오!”

다급하게 외치는 두 사람은 간신히 도개교를 올라섰지만, 성문이 닫히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힐데군드는 단숨에 미끄러지듯 닫히기 직전의 성문 틈으로 흘러들어왔다.

“야, 이런 재밌는 걸 너 혼자하려고?”

진심어린 짜증이 담긴 힐데군드의 말에 아르투르는 피식 웃고는 그녀의 오른팔을 붙잡아 자기 뒷자리에 앉힌 후, 곧장 말을 달렸다.

“저 하얀 말이다! 정확히 노려서 쏴라!”

아르투르를 향해 갖가지 투사체가 날아들었다. 화살, 석궁 탄환, 투창 등이 연달아 날아들었지만 아르투르와 에쿠잘루스는 인마일체의 묘기를 보이며 모조리 피해내고, 속도도 줄이지 않은 채 피오렌치아의 대로를 달려 나갔다.

아르투르는 곁눈질로 피오렌치아 시내를 보았는데, 분위기가 굉장히 스산했다. 마땅히 대도시라면 있어야 할 활발한 움직임도 없었고, 간혹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도 아주 음산하고 우울한 표정이었다. 반면, 시내 중심부에서는 비명과 열광적인 함성이 섞인 반복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저기다! 쫓아라!”

이번엔 수십 명의 기병들이 아르투르를 뒤쫓아 왔다. 아르투르는 가소롭다는 웃음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에쿠잘루스, 네 실력을 보여줘라.”

옆구리를 걷어차자 에쿠잘루스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피오렌치아의 도로가 폭이 넓고 잘 닦여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추격자들도 속도를 높였지만 대부분의 기병들은 쫓아오지 못했다. 여전히 남은 놈들이 있자 이번에는 기가 찬다는 듯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하, 도시에서 곱게 자란 놈들이 나와 승마술을 겨뤄보겠다?”

아르투르는 급격히 말의 방향을 틀어 대로에서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갔고, 뒤따라오던 추격자들은 급격한 방향 전환을 하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거나, 무리하다가 말과 함께 바닥에 나자빠져버렸다. 이젠 오직 소수의 인원만이 골목길로 따라붙었다.

골목길로 접어든 아르투르는 속도를 줄이고 이전보다 신중히 말을 달리게 했다. 언덕의 높낮이, 어느 시내 골목에나 있는 다양한 잡동사니들이 말을 달리게 하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 그러나 똑똑한 에쿠잘루스와 숙련된 기수인 아르투르는 마치 곡예를 하듯이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었고, 커브 길도 평원마냥 손쉽게 달렸다. 결국 마지막 남은 인원들도 장애물에 걸려 사나운 꼴을 당했다. 낙마로 인해 죽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것이 보통이었다.

골목길 반대편으로 나오자 다시 대로가 시작되었다.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힐데군드가 깔깔 웃었다.

“오, 너 말은 진짜 잘 모는구나?”

“이제 알았냐? 너 가르쳐준 게 나잖아.”

“에이, 짜식. 이 정도일 줄은 몰랐지. 항해하는 법은 아냐? 이 누님이 꽤 잘하는데.”

“뭐, 시간 날 때 둘 다 해보자고! 자! 양 옆에 적이다. 왼쪽 맡아.”

어느새 양 옆에서 나타난 순찰기병 두 기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하지만 오른편의 기병은 여명에 꿰뚫려 쓰러졌고, 왼편은 도끼에 맞아 나뒹굴었다.

“이거 존나 재밌는데?”

“그러게 말이다.”

두 사람은 아무런 긴장감도 없이 호쾌하게 웃어댔고, 이제 어떤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시내를 달려 나갔다. 곧 그들은 시내의 중심부로 접어들었고, 어렵지 않게 사람들이 모여든 광장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전보다 한층 더 뚜렷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 남색을 저지르고, 예술을 빙자한 외설적인 육욕을 찬양해 미풍양속을 더럽힌 죄, 사형! -

“아니, 저는 그저 작가일뿐이란 말입니다!”

- 사악한 종교를 믿고 이교의 신들을 찬양한 죄, 사형! -

“나는 서부 대륙 사람이 아니란 말이오!”

- 네가 저주를 한 모습을 열두 명이 증언했다. 마술 사용! 법정기만! 사형! -

“자, 잠깐만요! 모두 왜 절 외면하시는 거예요? 아저씨! 저희 옆집 이웃이잖아요!”

- 죽여라! 죽여라! 전부 죽여라!-

이야기만 들어도 심상치 않았다. 아르투르는 인적이 드문 곳에서 에쿠잘루스에서 내린 후, 힐데군드와 함께 도시의 광장으로 진입했다. 아르투르는 눈앞의 광경을 보며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곳에는 피오렌치아의 명성에 걸맞은 엄청나게 거대한 광장이 있었고, 그곳은 사람으로 발 디딜 틈도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수만 명의 인파가 한 곳에 모여들어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건 이전에도 본 적 있지만,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풍경이었다.

“신도들이여! 죄인들에 대한 최종 판결을 내리겠다!”

목소리가 들리는 곳은 광장에 위치한 큰 탑이었다. 순백의 사제복을 차려 입은 중년의 수도승이 눈을 부라리며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모든 군중이 마치 진짜로 계시를 기다리는 양 엄숙한 모습으로 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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