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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142화 (14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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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는 차가운 공기바람 덕분에 깨어났다. 막사 틈새로 겨울 공기가 들어오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힐데군드는 개의치 않고 곤히 잠들어있었다.

‘고향에서의 추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가보군.’

아르투르는 그녀의 백금발 머리카락을 매만지다가 입 맞춘 후, 차려입고 막사 바깥으로 나왔다. 달이 거의 저물어가고, 해가 떠오르기 직전의 시간이었다. 아르투르는 일과를 조금 일찍 시작하기로 했다.

먼저, 야영지의 주변을 힘껏 달렸다. 그러자 몸에 열이 오르며 추위가 가셨고, 땀이 흐르며 몸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하, 기분 좋네.”

아르투르는 땀을 닦으며 자신의 머리보다 큰 돌멩이를 반복해서 머리 위로 들어올렸다, 내렸다하는 행동을 반복했다. 근육에 자극이 오기는 했지만, 미미할 뿐이었다. 근육을 기를 때 드는 고통이 전혀 들지 않았다.

‘자극이 안 와. 자극이.’

결국 아르투르는 허리에 돌멩이를 올려놓고 팔굽혀펴기를 반복했다. 잘못했다간 반신불수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단련법이었지만, 이미 인간의 극한에 준하게 단련된 그의 몸은 어렵지 않게 견뎌냈다. 그런 일을 몇 차례 반복하여 땀을 가득 흘린 아르투르는 말짱한 정신으로 검술 연습에 들어갔다.

휭 - !

여명이 허공을 휘젓는 소리가 잇달아 들렸다. 홀로 단련할 수 있는 건 기본 자세였다. 대륙 검술의 가장 기본적인 자세들을 반복했다. 내려치기, 올려베기, 받아넘기기, 흘려내기, 십자막이를 이용해 방어하기 등, 수만 번은 질리도록 반복해본 동작들이었지만 아르투르에겐 매 순간순간이 즐거웠다.

격렬한 몸짓으로 땀을 흘릴 때면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졌고, 갈수록 완벽해지는 자신의 동작 하나하나가 너무 감미로웠다. 그에게 모든 종류의 무술은 살아남기 위한 자기 계발이기 이전에, 열정을 가지고 대할 수 있는 사랑하는 취미였다. 그는 종자가 된 후 하루도 이 일정을 거르지 않았고, 기본자세를 연습하며 오직 단 한 가지 생각에만 집중했다.

‘어떻게 하면 보다 완벽한 검술을 구현할 수 있을까?’

아르투르가 물 흐르듯 각 검술 동작들을 이어나가고 있을 때, 다른 이의 검이 자신의 검과 맞부딪쳤다.

챙 - !

아르투르는 손잡이를 쥔 손에 가득 힘을 주며 순식간에 검을 거두어들여, 머리 부근에 위치시켰다. 상대를 바라보니 등에 장검을 짊어진 카밀이 있었다. 아르투르는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자네 장기는 활 인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검도 빠르군,”

카밀은 어깨를 으쓱였다.

“저야 용병으로 굴러먹던 놈이니 몸 지킬 정도론 하지요. 하지만 주군은 그 사이 실력이 더 느셨군요. 이젠 소드마스터들에게 도전하셔도 무방하시겠습니다.”

“낯부끄러운 이야기일세. 아직 거장들에게 비하면 모자라.”

고개를 갸웃하는 카밀.

“흐음. 글쎄요. 거장들이라고 해봐야 늙은이들, 힘과 체력, 반사 신경 모두 전성기만 못할 겁니다. 하지만 주군께서는 아직 스물 중반도 되지 않으셨으니 훨씬 유리하지 않겠습니까?”

아르투르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진짜 최고들을 자네가 못 보았기에 하는 이야기야. 아버지의 무용에 견줄 수 있을 위대한 기사들이 아직 살아있네. 몸은 느려졌겠지만 경험은 훨씬 많겠지. 그들에게 맞서려면 더 정진해야 돼. 훨씬 더 많은 대련을 해야 할 거고, 목숨을 건 싸움도 거쳐야겠지.”

카밀은 상쾌하게 웃었다. 그는 냉소 외에는 미소가 거의 없는 사내였지만, 지금만큼은 순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집념은 대단하시군요. 칼밥 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그런 면은 존경하게 됩니다. 말이 나온 김에 저한테도 한 수 가르쳐주십시오. 같이 다니시는 분들도, 주군께서 꿈꾸시는 것도 커지셨으니 저도 척후병 노릇만 해서는 밥을 축내게 되겠지요.”

“걱정 말게. 자넨 지금도 잘해주고 있거든. 검술 실력도 평기사들 정도는 상대할 법하고.”

평소의 비틀린 미소를 다시 짓는 카밀.

“ 홀로 적진 한복판에서 기사만 수십 명씩 쓰러뜨리는 분이 그래서야 우스운 비유로 들릴 뿐이죠. 자, 제가 먼저 가겠습니다.”

두 사람은 모두 거침없이 날이 갈린 검을 상대에게 겨누었다. 다소 위험할 수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검술 숙련도를 알고 있었기에 거침이 없었다. 대련에 진검을 사용하는 건 프로 칼잡이들에겐 상식이었다. 대련은 결국 실전을 위한 연습이며, 그렇다면 전장과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전출해야했다. 전장에서 사용할 무기를 써서 긴장감을 조성하는 건 당연한 선택이다.

깡 - !

첫 접전은 이번에도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밀은 두 무기가 부딪친 후, 몸뚱이가 뒤로 밀려났고 검을 쥔 손은 붕 떴다. 아르투르는 기세를 놓치지 않고 곧장 목을 노렸지만, 카밀은 잽싸게 뒤로 공중제비를 돌아서 피했다. 아르투르의 일격이 뒤따라들었고, 이번에도 카밀은 간신히 받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르투르가 워낙 체격과 힘에서 압도했던지라 카밀은 계속 밀려다니며 패배를 피하기 바빴다. 아르투르는 일부러 모든 힘을 쓰지 않은 채, 상대가 간신히 피할 수 있을 정도로만 연달아 공격을 가했다. 결국 궁지에 몰린 카밀은 상황을 파악하고 무기를 손에서 떨어뜨렸다.

“항복, 항복입니다. 진즉에 끝내시지 그랬습니까.”

투덜대는 카밀의 말에 여유로운 목소리로 답해주는 아르투르.

“그렇게 하면 자네 실력이 늘진 않잖나. 오늘 내게 당한 지점들을 잘 되새겨보자. 뭔가 깨달을 것이 있을 거야.”

카밀은 아르투르의 말에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고, 피식 웃으며 답했다.

“제가 깨달은 것은 주군과 근접전으로 싸워선 가망이 없단 겁니다. 이젠 그야말로 완벽하시군요.”

그렇게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있던 도중, 이번에는 졸음에 잠긴 케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스터, 벌써 일어나셨군요. 좀 더 주무시지 그랬습니까.”

케이는 무장을 마친 채로 눈을 부비며 나오고 있었다.

“공기가 조금 차가워서 먼저 일어났지. 일어난 김에 몸이나 좀 먼저 녹였고.”

카밀과 검술 동작들을 반복하던 아르투르는 케이를 힐끗 바라왔다. 소년이던 그는 완연한 청년이 되어가는 모습이었다. 아직 키도, 근육도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장정이 되어가는 모습만큼은 분명했다.

“케이, 검을 잡아라. 그동안 얼마나 늘었나보자꾸나. 책을 자주 읽는 것만큼 무예도 소홀히 하지 않았나 보자꾸나.”

아르투르의 엄격한 목소리에 케이는 기세 좋은 목소리로 답했다.

“물론이죠!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걸요?”

케이는 지체 없이 허리춤에 찬 장검을 뽑아들었다. 막사 안으로 들어가 연습용 검을 꺼내오려던 아르투르는 의아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난 전투가 끝나고도 진검을 차고 다니는걸 허락해준 적이 없는데.”

능글맞은 표정으로 답하는 케이.

“따로 계실 때 레오폴트 왕자님께 허락 받았습니다. 이제야 물어보시다니 섭섭한데요. 막시밀리안 덕분에 실력이 많이 늘었습니다. 마스터, 종자가 못 미더우시다니 좀 더 관심을 보여주세요.”

기사들에게 검술 대련이란 방어구 없이 진검을 통해 우위를 겨루는 것이었다. 종자들에게도 그건 마찬가지였지만, 진검을 들 수 있게 허락해준다는 건 검을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즉, 케이는 스스로 이제 검을 능숙하게 다룰 줄 안다고 자신의 입으로, 마스터의 앞에서 말한 것이었다. 아르투르는 그의 당돌함이 마음에 드는 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여명을 겨누었다.

“좋아. 어디 한번 보자꾸나. 자세를 갖추어라.”

두 사람은 거리를 벌린 후, 서로를 마주보았다. 두 남자는 검의 손잡이를 귀쯤에 둔 채, 칼끝으로 상대를 겨냥했다. 아르투르는 케이의 자세를 면밀히 살폈다.

‘기본자세는 좋군. 호흡도 안정적이고, 손목 각도도 정확해.’

아르투르는 앞으로 성큼 걸어가서 내리 베었다. 실린 힘도 뺐고, 기교도 섞지 않은 정직한 공격이었다. 케이는 예상대로 검의 궤적을 예상한 뒤, 자세를 비틀어 아르투르의 검을 쳐냄과 동시에 찔러 들어왔고, 아르투르는 가볍게 검을 거두면서 공격을 저지해냈다.

“많이 늘었구나. 더 보여다오.”

“물론입니다!”

케이는 기세를 타고 올라, 적극적인 공격을 해왔다. 아르투르는 모든 공격을 수월하게 받아치면서, 다양한 각도에서 공격했다. 상단에서 내려베기, 정면 찌르기, 하단에서 올려베기, 정면찌르기, 가장 기초적인 공격들이었다. 케이는 처음에는 아르투르의 정석적인 파상 공세를 따라가는 걸 버거워했지만, 교과서에 가까운 공격이었기에 차근차근 막아내었다.

“연습은 게을리 하지 않은 게 보여서 좋구나.”

“제가 그래도 소드마스터로 인정받는 분의 종자인데, 기초도 못해서야 쓰겠어요?”

표정을 굳히는 아르투르.

“하지만 잘한다는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네 나이 대에는 그 정도는 다 한다. 긴장하지 않으면 다칠 수도 있다.”

아르투르는 여전히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손목 힘만으로도 검의 궤도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다. 다시 파상 공세가 가해졌다. 케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내보였다. 아르투르는 정석적인 자세로 좌 상단에서 내리 베었다. 그것을 받아내려고 검을 내지르려할 때, 케이는 공기의 흐름으로 좌 하단에서 올라오는 일격을 느꼈다.

‘속임수다!’

케이는 황급히 검을 끌어당겨 일격을 쳐냈다. 하지만 그의 몸의 균형이 흔들렸고, 이번에는 우 하단에서 날아들었다. 그는 힘껏 발바닥에 힘을 주며 좌측으로 발놀림을 옮기며 재차 쳐내려했다. 하지만 아르투르의 일격은 우 상단을 통해 날아왔고, 어느 사이 목에 여명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아… 패배를 인정합니다.”

케이는 손에서 무기를 떨어뜨리며 패배를 인정했다. 아르투르는 검을 거두어 칼집에 꽂았지만, 처음의 대견한 모습보다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케이가 허리를 굽혀 검을 주워들 때, 아르투르의 말이 귀에 날아들었다.

“그것 봐라. 아직 교만을 부릴 때가 아닌데, 그래서야 쓰겠느냐? 나조차도 항상 검을 다루면서는 겸손해진단 말이다. 나는 너와 같은 나이인 열 넷부터 마상시합에 출전했지만 항상 겸손했단 말이다.”

케이는 풀이 죽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르투르는 그런 모습이 측은했지만, 종자는 엄하게 가르쳐야한다는 게 그가 배운 교육이었다. 때문에 일부러 엄격한 태도를 취했다.

“너는 더 정진해야하니 검을 가볍게 여기지 마라. 성실했던 모습은 보기 좋았다. 이전에 비해 크게 늘어난 것도 사실이야. 하지만 지금에 만족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야.”

아르투르의 진지한 꾸지람에 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마스터.”

케이가 후회하는 표정을 짓자 아르투르는 마음이 흡족해졌다. 암. 그래야지.

“에쿠잘루스가 일어났으니 녀석과도 산책을 좀 다녀오겠다. 돌아와서 좀 더 봐주도록 하마. 아침 식사를 준비 해놓아라.”

“네!”

아르투르가 백마에 올라타 사라지자, 케이는 참고 있던 웃음을 터뜨렸다.

“야, 뭐가 그렇게 웃기냐?”

기지개를 하며 나오는 힐데군드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평소에 잔소리 안하시는 분이 오늘따라 무게감 잡으시는 게 그냥 웃겨서요. 무엇보다, 자길 겸손한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딱 봐도 훈계하려고 없던 일 지어내는 게 재밌어서요. 그랬을리가 없거든요! 면전에서 웃어서 혼날까봐 엄청 조마조마했네요. 서임만 받고 봐라. 나도 앞에서 투덜대야지.”

케이의 장난기 어린 표정을 보며 힐데군드도 피식 웃었다.

“전반적으로 다 괜찮긴 한데, 가끔 너무 진지해지는 게 재미없는 녀석이지. 그런데 저 녀석 말 너무 심각하게 듣지 마. 어차피 넌 전사로서 소질이 없어. 대부분의 문명인들처럼.”

케이는 태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일단 되는 데까진 해보고 싶어요. 최선을 다해서.”

“흐응. 그-으-래? 자존심은 있네. 없는 것보단 낫지. 근데,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겠어? 네가 아무리 열심히 해봐야 타고난 전사들은 절대 못 이길 텐데.”

힐데군드의 약 올리는 표정에 케이는 당당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뭐, 양치기 아들이 위대한 전사들의 후손을 어떻게 이기겠어요? 그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죠. 심지어 저는 다른 종자들보다 배운 시기도 늦었는데요. 하지만 마스터가 기대하신다는 이유만으로도 한번 해볼 만하죠. 혹시 알아요? 십년 뒤에는 누나랑도 싸워만 하게 될 지도요.”

힐데군드는 케이의 도전적인 태도가 마음에 드는 지 깔깔 웃었다.

“마음가짐은 전사답네. 저 녀석은 요새 바쁜 것 같으니까, 시간될 때마다 내가 조금씩 봐주지, 자, 바로 시작하자.”

힐데군드가 검을 뽑아들자, 케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누나 말은 정말 고마운데… 마스터가 아침 식사 준비를 해놓으라고 하셔서 지금은 좀…”

“아,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알아서 해 먹으라 그래. 바로 간다!”

“자, 잠깐만요!”

힐데군드가 당황한 케이와 거칠게 대련하는 소리는 일행을 모두 잠에서 깨웠다. 케이는 아침부터 정상급 실력자 두 명에게 지도 대련을 받는 행운 아닌 행운을 누리며, 바닥을 구르고 또 굴렀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카밀은 피식 웃었다.

“운 좋은 놈 같으니, 빠르게 늘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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