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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133화 (13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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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는 힐데군드의 도움을 받아 악마와 맞섰다. 비록 변변찮은 공격도 하지 못한 채 방어하기 바쁜 상태였지만, 다른 이들이 활약할 기회 정도는 만들어 줄 수 있었다.

“이 늑대 대가리야! 이쪽도 좀 봐라!”

레오폴트는 악마의 오른쪽 다리를 찔러서 깊은 상처를 냈다. 하지만 악마는 시선도 주지 않은 채 아르투르에 대한 맹공을 지속했다. 카밀이 뒤따라와 레오폴트가 낸 상처를 재차 검으로 쑤시자 악마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뿐이었다. 지금 악마가 입은 타격은 인간이 바늘에 찔린 듯한 정도 밖에 되지 못했다.

“구세주 발타리아시여! 기도가 이렇게 효험이 없으면 대성당은 못 지어드립니다!”

레오폴트와 카밀의 공격이 귀찮기는 했지만 악마는 일단 내버려두기로 했다. 인간의 조잡한 도구로는 공격당해도 조금 성가실 뿐이지만, 신이 벼려낸 성검은 그에게 치명적일 수 있었다.

- 비밀의 불 앞에 네 힘이 의미가 있을 성 싶으냐? -

악마는 지옥의 겁화를 두른 거대한 검을 내리쳤다. 먼저 화염의 파도가 몰려들었다. 아르투르는 보호막에 의지를 집중해 막아냈지만, 이어 떨어지는 일격에 보호막이 산산조각났다. 아르투르는 온 힘을 다해 맞받아쳤다.

성검은 아르투르의 의지에 반응해 더욱 강렬한 기운을 내뿜었다. 황금빛이 아닌, 순백의 은빛으로 둘러싸인 성검과 지옥의 대검이 부딪쳤다. 두 무기가 부딪치자 사방으로 빛과 화염이 뿜어져나갔다. 이 신화적인 싸움의 한 가운데서, 아르투르는 버티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쳤다.

하지만 악마는 자유롭게 검을 거둬들이며 이번에는 화염 채찍을 휘둘렀다. 아르투르는 죽을 것 같이 숨이 막혔지만 본능적으로 날아오는 채찍의 궤도를 읽고 이번에도 성검으로 쳐냈다. 그 때마다 불꽃이 주변으로 튀면서 불길을 일으켰다.

- 바퀴벌레마냥 끈질기구나! -

악마는 계속 맹공을 가했다. 힐데군드가 끼어들어 공격을 막아준 덕에 아르투르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악마가 강타를 가하자 힐데군드는 방패를 든 채로 허공을 날아가 성벽에 부딪쳤다.

아르투르는 어차피 힐데군드가 그 정도로 쓰러질 리는 없다고 여기며 상황을 냉정히 판단했다. 악마의 몸집은 워낙 거대했기에 급소를 찌르려면 도약하거나, 주변의 지형을 이용해 접근해야만 했다. 게다가 놈의 팔과 무기도 인간의 체구의 서너 배는 되었다. 그 말은 즉슨, 사정거리가 월등히 길다는 뜻이었다.

‘놈을 공격하려면 안쪽으로 치고 들어가는 거야.’

판단을 마친 아르투르는 재빨리 전진했지만 그때마다 악마는 화염검과 채찍을 연달아 휘둘러 다가오는 것을 막았다. 상황이 좋지 않았다. 저 악마는 대단히 오래되고 강력한 존재였다. 신성한 힘과 물리적인 체력 모두 인간들과 비할 수 없게 강인할 터였다.

‘반면 성검의 힘은 한정적이고, 우린 싸우면 금방 지친다고.’

성검의 힘이나,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체력 중 하나만 떨어져도 바로 잘 구워진 통구이가 될 판이었다. 유일한 승산은 속전속결이었건만, 좀처럼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믿어볼 건 동료들이었다.

“으랴!”

그에 호응하듯 토르스탄이 함성을 내지르며 악마의 허벅지에 도끼를 내리꽂았다. 토르스탄의 도끼는 잘 만들어진 강철 무기에 불과했지만 본인의 힘이 워낙 강한지라 악마의 살갗을 뚫고 들어가 상처를 냈다. 토르스탄은 잽싸게 상처에서 도끼를 빼들었는데, 날이 녹아버린 도끼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런 우라질!”

- 네놈들은 다음 차례이니 얌전히 기다려라! -

뱀처럼 휘는 화염 채찍이 토르스탄과 뒤에서 관망하고 있던 베오릭을 동시에 노리고 날아들었다. 토르스탄은 땅바닥으로 몸을 날렸고, 그의 등 위로 아슬아슬하게 화염 채찍이 스쳐지나갔다. 반면 베오릭은 여유롭게 허공으로 한껏 도약했는데, 악마의 화염 채찍이 미세하게 뒤틀려 그의 발목을 휘감았다.

“?!”

- 너희부터 벌해주마! -

악마는 화염 채찍을 잡아당겨 베오릭을 바닥에 내동댕이치면서, 자신을 향해 힘껏 끌어왔다. 그 때, 순백의 성검이 채찍의 중간 지점을 잘랐고, 베오릭은 땅을 짚으며 풀쩍 뛰어올라 단숨에 자세를 바로 잡았다. 베오릭은 공격당했다는 분노로 눈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난 아직 낄 생각은 없었다만, 공격당한 이상 응대해줘야겠지.”

지금껏 방관하던 태도를 취하던 베오릭은 단숨에 투척 도끼를 꺼내 악마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두 자루의 투척 도끼는 악마의 뺨을 길게 베고, 베오릭의 손아귀로 돌아왔다.

- 날파리 같은 놈! -

악마가 격한 분노를 드러내며 베오릭에게 잇달아 검과 채찍을 내리쳤다. 그 때마다 불길이 일고 건물이 조각나 흩어졌지만, 베오릭은 모든 일격을 민첩하게 피해냈다. 한편, 악마가 분노를 뿜어내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둘러싼 연기가 더욱 짙어졌으며 유황 냄새는 더욱 지독해졌다.

후끈하던 열기는 살을 익혀버릴 듯이 뜨거워졌고, 악마를 둘러싼 검은 기운이 가져다주는 공포도 커졌다. 하지만 아르투르는 그런 공포를 억누른 채 앞으로 달려 나갔다.

‘지금이 기회야. 양 손을 모두 사용한데다가, 방해물도 없군.’

아르투르가 도약해서 놈의 가슴을 찌를 수 있는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 악마는 고개를 돌려 아르투르를 응시했다. 너무나도 강렬한 악의가 담긴 시선에 아르투르의 몸은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을 멈추어버렸다. 아르투르는 석고상처럼 멈추어버렸다. 그 잠깐의 사이, 악마는 화염 채찍을 거두어들이며 아르투르에게 휘날렸다.

“정신 안 차려?!”

돌아온 힐데군드가 아르투르를 밀치면서 검은 방패로 채찍을 막아냈지만, 이번에는 화염검이 날아왔다. 힐데군드는 이를 악물고 버티어 선채 잇달아 막았지만, 방패에는 점차 금이 가고 있었다. 그녀는 다급히 외쳤다.

“오래 못 버텨!”

아르투르는 몸에 힘을 가득 주어 악마의 주박에서 물러난 후, 옆으로 빠져나와 적의 공격을 유도했다. 악마는 화염 채찍으론 힐데군드를 견제했지만, 화염검은 자신에게 날렸다. 아르투르는 상대의 공격이 굉장히 빠르고 강력하지만 공격하는 방식은 똑같았다는 걸 눈치 채고, 이전의 일격을 참고삼아 몸을 움직여 피해버렸다.

- 그깟 잔재주로 뭘 할 수 있겠느냐! -

하지만 악마는 비웃음을 지으며, 이번에는 입에서 아르투르에게 불길을 내뿜었다.

“?!”

아르투르는 재빨리 땅에 성검을 꽂고 보호막을 형성해 버티고 섰다.

- 발타리아가 세운 거짓된 세상을 불로 모조리 정화하겠다! 너희는 그 시작이 될 것이다! -

악마의 외침에 호응하듯 예배당 안의 불기둥은 욕조에서 물이 넘치듯 사방으로 흘러나와 성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눈에 닿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불의 파도였다.

- 너희의 몸도 영혼도, 기억도 모조리 불탈 것이다! -

불길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일행은 살아남기 위해 다급히 움직였다. 카밀과 막시밀리안은 잽싸게 무너진 건물을 엄폐물로 삼아 몸을 던졌고, 토르스탄은 부서진 문을 가져다가 방패로 삼았다. 케이는 광경에 압도되어 어디로 피해야할지 넋을 놓고 있었다.

“뭐해! 멍청아!”

“케이! 힐데군드의 뒤로 숨어라!”

케이는 아르투르의 목소리에 정신이 바짝 들었는지 힐데군드의 뒤로 몸을 던졌고, 쏟아지는 불길에서 연명할 수 있었다.

- 남을 걱정할 여유도 있단 말이냐? -

악마는 비웃음을 내보이며 화염검에서 더욱 강렬한 불길을 내뿜었다. 불의 파도가 지나간 뒤에도, 악마가 직접 쏘아내는 화염은 멈추지 않았다. 아르투르는 보호막을 거두었다간 곧장 불타버릴 판이기에 단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때였다.

타타탓 -

성벽 위에서, 악마의 뒤편에서 질주해오는 레오폴트가 보였다. 그는 단숨에 악마의 뒤편으로 도약해서 머리 위에 올라섰고 악마가 대처하기 전에 오른쪽 눈동자를 서슬 퍼런 장검으로 찔러버렸다.

-키햐아아아아아악! -

“악마 놈아, 날 잊지 말았어야지!”

악마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몸을 뒤틀면서 레오폴트를 향해 마구잡이로 채찍을 휘둘렀다. 레오폴트는 왼쪽 눈동자도 찌르려다가 균형을 잃고 미끄러져서 바닥에 떨어진 뒤, 이어지는 공격을 꼴 보기 사납게 굴러서 피해냈다.

“별 싸움을 다 해보네.”

그 사이, 아르투르를 향해 내뿜어지던 불길도 멈추어버렸다. 아르투르는 곧장 보호막을 풀고 달려들어, 단숨에 악마의 무릎을 타고 올라 연한 아랫배를 찔렀다. 악마는 비명을 내지르더니, 곧장 불경스러운 힘이 담긴 말을 내뱉었다.

- 아르그, 벨그르, 아그릿타. -

듣는 것만으로도 몸이 굳어드는 불경한 언령에 응하듯, 악마의 손아귀에서 검붉은 불길이 치솟아나와 아르투르를 덮쳤다. 하지만 성검은 더욱 강렬한 빛을 내었고, 아르투르는 몰려오는 언령의 힘을 몸으로 받아내며, 온 힘을 다해, 모든 정신력을 쥐어짜내서 악마의 가슴을 향해 성검을 내질렀다.

- 키, 키하아악… -

악마의 가슴을 관통하고 등 뒤로 성검이 빠져나왔다. 모두가 악마가 치명상을 입었다는 걸 직감했다. 악마는 힘을 잃으며 뒤로 자빠졌고, 악마의 가슴에 매달려있던 아르투르는 힘을 잃고 옆으로 나뒹굴었다.

아르투르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 악마를 바라보았다. 악마의 거체는 들썩거릴 뿐, 움직이지 못했고 그의 몸을 둘러싼 화염도 점차 꺼져가고 있었다. 아르투르는 미소를 지으며 간신히 붙잡아두었던 의식을 놓아버렸다.

‘이겼어. 이겼다고.’

***

악마와 아르투르가 함께 쓰러진 후, 일행은 아르투르를 향해 모여들었다. 케이는 처음에 아르투르가 부상을 심하게 입었고, 숨을 쉬지 않는다면서 걱정했지만 의외로 다들 반응이 시큰둥했다.

“야, 호들갑 그만 떨어. 그 녀석, 하이에버에선 아예 죽었다가 살아났어. 숨 좀 안 쉴 수도 있지.”

“그렇지만 진짜 죽은 거면 어떡하게요?”

힐데군드는 하품을 했다.

“그럼 죽은 거지. 싸우다가 죽은 거에 뭐 그리 호들갑이람.”

카밀도 이 정도로 주군이 죽었을 리 없다며 케이를 달랬다. 그 사이, 베오릭은 악마의 앞으로 걸어갔다. 악마는 다가오는 베오릭에게 시선을 보내며 검에 다시 불꽃을 일으키려 했지만, 검은 연기만 뿜어져 나올 뿐이었다.

“그만 쉬거라. 펜하르키렐.”

-안 돼, 안 돼. 이럴 순 없어. 부활이… 부활이 눈 앞에 있었는데… -

베오릭은 우울한 눈으로 악마를 내려다보았다.

“알지 않느냐. 한번이라도 육신을 잃은 용은 다시는 몸을 되찾을 수 없다는 걸. 너처럼 망령으로 남아 인간들에게 개입하는 게 고작이지. 이제 네 죽음을 받아들일 때가 되었다. 발타리아에게 육신이 파괴되었을 때, 운명은 결정 된 거야.”

-네놈 같은 인간이 뭘 안단 말이냐! 나는 너희들에게 불을 주고, 지혜를 주었던 신이었단 말이다. 하지만 너희는 섭리를 거스르며 우리의 존재를 위협했지. 진즉에 멸했어야 했다. -

베오릭은 침묵을 지킨 채 자리를 지켰다. 결국 악마의 거체는 잿더미만 남긴 채, 연기가 되어 하늘로 흩어져버렸다. 그러자 성채를 둘러싼 어둠은 걷혔지만 마른하늘에 몇 차례 벼락이 쳤다.

모두가 이 기이한 광경을 올려다보는 가운데, 순식간에 폭우가 쏟아졌다. 악마가 남기고 간 불꽃은 삽시간에 꺼졌고, 빗물이 강을 이루어선 악마를 숭배하던 흔적들마저 남김없이 휩쓸어가 버렸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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