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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131화 (13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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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분명히 대낮이었다. 그렇지만 성채의 주변으론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았으며, 어떤 짐승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 전에, 살아있는 존재라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요새에 들어가서 결코 기분 좋은 일을 겪을 리는 없다는 것을.

힐데군드는 기사단장 울리히가 사용하던 검은 사각 방패와 자신의 검을 앞세운 채, 도개교를 건너갔다. 그녀도 두려움을 느꼈지만, 미지의 존재를 만난다는 긴장감과 호기심이 그것을 덮어버렸다. 그녀는 머뭇거리는 뒤쪽의 사내들을 향해 약 올리듯 말했다.

“이렇게 재밌는 걸 놓치면 평생 후회할 걸? 그래도 못 따라오는 놈들은 그냥 좆 떼고.”

그녀가 도개교를 건너 요새로 들어간 후, 남은 이들은 생각에 빠지거나 서로 눈치만 보았다. 케이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뒤따라갔다.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지만, 마스터를 혼자 보낼 수 없다는 사명감이 그를 이끌었다.

“마스터! 같이 가요!”

케이의 모습을 보며 막시밀리안은 불안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긴 레오폴트를 바라봤다. 설마, 안 가시겠지. 대륙에서 손꼽히는 금수저가 왜 이런 위험천만한 일을 하겠어.

“쓰으으으으읍.”

레오폴트는 한숨을 쉬며 막시밀리안과 근위 기사들을 바라봤다.

“야, 니들 생각은 어떠냐? 악마랑 싸워본 기사와 넓은 영지를 다스린 군주 가운데, 누가 더 위대한 걸까?”

“아하하! 당연히 군주죠! 원래 위험한 일은 그, 뭐냐, 성검을 든 기사에게 맡기고 군주는 뒤에서 지시를 내리는 역할이 아닐까요? 마스터?”

다른 기사들도 종자가 말을 잘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지 않아도 됩니다!

“음.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는 레오폴트.

“아버지도 그렇게 생각하시겠지?”

고드프루아가 황급히 거들었다.

“물론입니다! 페르디난트 대공 각하라면 이런 일에 공연히 목숨을 걸지 않으셨을 겁니다.”

“조언 고맙네. 그러니 난 반대로 해야겠어. 기왕 위대한 군주를 하는 김에, 악마를 무찌른 기사도 겸해야겠군. 막시밀리안, 넌 고드프루아와 여기 남아있어라.”

“마, 마스터! 가지 마세요!”

레오폴트는 홀로 망토를 펄럭이며 도개교를 건너가 버렸다. 막시밀리안은 멍하니 보고 있다가, 결국 레오폴트가 다 건너가자 울먹이며 뒤따라갔다.

‘케이, 이 눈치 없는 강아지야. 이런 건 마스터들만 보내고 알아서 빠졌어야지. 니가 가는데 내가 안 가면 뭐가 되냐고. 이런 우라질.’

토르스탄은 볼을 벅벅 긁으면서 동료 북구인들을 바라봤다.

“음, 여자도 가고, 문명인 놈들도 가는데, 우린 전부 가야겠지?”

일동은 침묵을 지켰다. 토르스탄은 얼굴이 붉어져선 그들에게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런 쓰레기같은 겁쟁이 놈들아! 고추도 떼고, 전사란 소리도 떼라! 이런 썩을 놈들아!”

모욕을 받으면 도끼부터 던지는 게 북구인들의 습성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들도 할 말이 없는지 고개를 내린 채 침묵을 지켰다. 그들은 싸우다 죽어 천국에 가고 싶은 거였지, 악마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싶은 건 아니었다. 결국 토르스탄만 씩씩대면서 성채로 들어갔다.

이렇게 되자 카밀은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을 쉬었다.

“제가 살아있는 한 주군으로 모시겠다고 했지요. 따르겠습니다.”

베오릭은 성채의 불길함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연한 표정으로 일행들을 둘러봤다.

“더 없나?”

나머지 인원들은 감히 인간의 섭리를 벗어난 존재에게 맞선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베오릭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 너희에겐 너무 주제넘은 이야기지.”

베오릭의 도발적인 말에도 남은 기사들과 북구인들은 부끄러움으로 얼굴을 붉힌 채, 침묵을 지켰다. 베오릭은 그들을 한번 비웃어주곤 아르투르를 뒤따라갔고, 나머지 일행은 근방 마을로 물러나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

그리하여, 성 안에 들어온 사람은 총 여덟이었다. 아르투르와 힐데군드가 선두에 서고, 레오폴트와 토르스탄이 그들을 뒷받침 해주었다. 카밀과 두 종자가 중앙을 지키고, 가장 위험할 수 있는 위치인 후방은 베오릭이 홀로 지켰다.

요새 안에서 느껴지는 불길한 기운의 정도는 피부에 와 닿을 정도였다. 온 몸의 신경이 바짝 곤두선 예민한 상태로 그들은 전진했다. 성문을 지나자, 연병장으로 추정되는 커다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연병장에는 핏자국과 살점이 조각나서 사방에 흩뿌려져 있었다. 무기와 갑옷, 의복들도 토막 나서 떨어져있었다. 카밀은 고개를 숙이고 흔적을 살폈다.

“이곳에 있던 병사들은 습격을 받았고, 단숨에 괴멸했습니다. 유해는… 습격자가 먹어치운 것 같군요.”

“그게 뭘까요?”

카밀은 대답하지 않고 장궁을 뽑아 활시위를 매긴 채 아르투르를 뒤따랐다. 아르투르는 성검의 빛에 의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나마 일행이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건 황금의 빛이 가져다주는 위안 덕분이었다. 일행은 저 빛이 건재한 한, 자신들에게도 승산이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성검의 빛을 등대로 삼아 어둠의 바다를 나아갔다. 사방은 제대로 보이지 않았고,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불길한 적막만이 가득했다. 그들은 공터를 지나 예배당으로 향하는 골목에 도달했다.

“느껴지는 게 있나?”

아르투르의 물음에 카밀이 답했다.

“아뇨. 없습니다. 하지만 신뢰하진 마십시오. 이곳에선 감각이 무뎌집니다.”

그 때, 강풍이 불어와 그들을 휘감고 지나갔다.

휘이이이잉 - !

일행들을 자리에 멈추어서 각자의 힘으로 버텨냈다. 하지만 바람은 그들을 지나쳐가서 성문에 이르렀고, 열려있던 성문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닫혔다. 도개교도 올라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퇴로가 막힌 것이었다.

“우릴 위해 공들여 준비한 함정인가본데.”

“빨리 가보자. 뭐가 있나 궁금하다고.”

힐데군드는 나들이를 나온 것 마냥 사뿐하게 걸어 나갔다. 골목의 건너편에는 예배당으로 향하는 굳게 잠긴 문이 보였다. 그 너머에, 이 모든 불길한 기운의 근원이 있는 것을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일행이 골목을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조심해!”

골목 위편에서 검은 형체의 네 발 짐승이 막시밀리안을 향해 도약해왔다. 레오폴트는 잽싸게 몸을 날려 짐승과 함께 바닥에서 뒹굴었다. 짐승은 사납게 레오폴트를 할퀴었지만 그의 갑옷에 무용지물이 되었고, 레오폴트의 장검이 짐승의 심장을 꿰뚫어버렸다.

“뭐야, 이놈은?”

레오폴트 앞에 쓰러져있는 짐승은 대단히 덩치가 큰 사냥개였다. 그런데 가죽은 불에 익은 것처럼 벌겋게 달아올라있었고, 상처 부위에선 녹색 피가 흘렀다. 그 뒤로 연기가 새어나왔다. 눈알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고, 송곳니와 발톱은 굉장히 치명적으로 자라있었다.

“마스터!”

막시밀리안이 레오폴트를 일으켜 세우려고 다가갈 때, 새로운 사냥개가 어둠 속에서 나타나 그의 등을 노렸다.

핑 - !

카밀이 빠르게 쏘아낸 화살이 사냥개의 목젖을 꿰뚫었고, 짐승은 기괴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하지만 놈은 화살에 아랑곳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으르렁거렸다.

“목젖 정도는 꿰뚫려도 소용없다는 거지?”

카밀이 단숨에 두 번째 화살을 장전해서 눈알을 겨냥하고 쏘았을 때, 사방에서 사냥개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수십 마리의 사냥개들이 일행을 노리고 덮쳐왔다. 도망갈 곳은 없었다.

“서로 등을 보호할 수 있도록 원형으로 모여라! 자리를 지켜라!”

아르투르의 다급한 외침에 일행은 일제히 몰려들었다. 이제부터는 개인의 기량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아르투르는 두 종자가 걱정되었지만 그들을 챙겨줄 수는 없었다. 바로 눈앞에서 사냥개가 이빨을 드러낸 채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아르투르가 달려드는 놈을 베기 위해 검을 앞으로 내밀자, 놈은 맹렬히 달려오던 발걸음을 틀어 변칙적인 움직임을 선보였다. 어디로 공격해올지 짐작가지 않는 가운데, 놈이 땅을 박차고 도약했다.

“컹 -!”

“거기냐!”

아르투르는 정면으로 성검을 내질렀고, 놈의 아가리에 정확히 성검을 박아 넣었다. 아르투르가 성검을 빼자마자, 사냥개는 배를 드러낸 채 바닥에 쓰러져 울부짖다가 잿더미가 되었다.

“!”

그런데 놈의 뒤에 한 마리가 더 있었다! 이번에 달려든 놈은 육중한 체구를 이용해 아르투르를 덮쳐서 같이 넘어졌다. 아르투르는 순간적으로 검을 놓쳤지만 반사적으로 양손으로 각각 놈의 아래턱과 입천장을 붙잡았다. 특수 금속으로 만든 건틀렛이라 쉽사리 꿰뚫리지 않았다.

“컹! 컹! 컹!”

사냥개는 입을 다물어 아르투르의 손을 씹어버리고자 했지만, 아르투르가 악력에 집중하자 놈은 입을 닫을 수 없었다.

“으랴아아아아!”

아르투르가 힘을 가득 주자 사냥개의 이빨이 흔들리고 두개골에 금이 갔다. 기세를 탄 아르투르는 한층 힘을 주었고, 놈의 머리가 위 아래로 분리되어버렸다. 아르투르는 곧 바로 땅에 떨어진 성검을 주운 후, 이번에는 측면에서 달려들던 사냥개를 휙 베었다. 성검에 베인 사냥개는 마찬가지로 잿더미로 변했다.

비교적 여유를 되찾은 아르투르는 급한 아군을 찾았다. 토르스탄이 사냥개 무리에게 둘러싸인 채 공격받고 있었다. 사냥개들이 그의 몸을 타오르며 몸 곳곳을 물어뜯고 있었다. 그는 반격을 하고자 했지만, 몸 곳곳에 놈들이 달라붙어있어 쉽지 않았다. 갑옷과 그의 두터운 근육이 이중으로 내장을 보호해주지 않았더라면 이미 조각이 났을 상황이었다.

아르투르는 단숨에 달려들어 토르스탄의 발목을 물고 늘어진 사냥개를 거칠게 때어낸 후, 바닥에 나뒹구는 놈의 심장을 꿰뚫었다.

“깨겡!”

한 발이 자유로워진 토르스탄은 다른 발을 무는 사냥개를 걷어찼고, 놈은 목뼈가 부러져서 바닥에 나뒹굴었다.

“하, 좋아! 고맙군!”

통증에 시달리던 토르스탄은 고함을 내지르더니, 자신의 오른쪽 어깨를 붙들고 늘어져있던 사냥개를 붙잡고는, 그것으로 반대편의 사냥개를 후려쳤다. 두 사냥개가 서로 부딪쳐서 바닥에 포개진 사이, 그는 육중한 양손도끼를 꺼내서 내리쳤다.

“크아아아아!”

두 사냥개는 피하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발이 엉켜있어 대처가 느렸다. 토르스탄이 휘두른 괴력의 도끼가 두 사냥개를 두 동강 내어버렸다.

“젠장. 이제 좀 살 것 같군. 이놈들 발톱이 곰보다 날카로운데.”

“척 봐도 평범한 야수는 아니잖나.”

아르투르는 자세를 다잡은 채 성검을 자유자제로 휘둘러 달려드는 적들을 절단했다. 토르스탄의 일격은 보다 신중했지만, 단 한 번에 적의 명줄을 끊을 수 있었다. 아르투르는 다시 전장 상황을 살펴봤다.

베오릭은 던지면 돌아오는 두 자루의 투척 도끼를 들고, 그것을 던져 사냥개들을 잡아내고 있었다. 정체는 몰라도 사냥개를 일격에 잡는 것으로 보아 저것도 마법 무기로 보였다.

힐데군드는 날렵하게 움직이며 사냥개들과 일 대 일 구도를 만들어내서 하나씩 잡아냈다. 레오폴트는 갑옷에 의존해서 침착하게 사냥개들을 잡아냈다. 걱정하던 두 종자는 카밀과 협동을 해서 1인분은 하고 있었다.

두 종자가 검과 방패를 들고 버티는 사이, 카밀이 화살을 쏘는 식의 협동이었다. 아르투르는 용감하게 검을 휘두르는 케이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다들 생각보다 잘 버텨주는군.’

사냥개들은 더욱 끈질기고 맹렬히 공격해왔다. 마법 무기가 아니고서야 단칼에 죽이기가 힘들어 까다로운 상대였지만, 아르투르의 성검에 급소를 맞으면 그냥 잿더미로 변했다. 가장 위협적인 상대가 아르투르 임을 깨달은 사냥개들은 그를 집중 공격해왔다. 포위한 후, 달려든다.

하지만 아르투르의 눈과 움직임이 훨씬 빨랐다. 그의 전투 감각은 사냥개들의 움직임을 포착한 후 예상 경로를 머릿속에 그려냈다. 그 뒤는 간단했다. 예상 경로에 성검을 휘두르자, 사냥개들은 자진해서 죽을 자리에 오는 것처럼 잿더미로 변해버렸다.

“날 봐라!”

아르투르는 큰 소리로 적을 도발했고, 호응해 더욱 많은 사냥개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을 베고 또 베던 도중, 가장 영리하고 재빠른 두 놈이 각각 허벅지와 어깨를 물어뜯었다. 기괴하게 자란 송곳니가 철판을 뚫고 살에 박혔다.

“어딜 감히!”

아르투르는 허벅지를 문 놈은 반대편 발로 짓밟아 움직임을 봉쇄한 뒤에 찔렀고, 어깨를 물어뜯는 놈에겐 턱주가리에 주먹을 날려 나자빠뜨린 후 목을 베어 죽였다.

"컹컹컹컹 - !"

최초로 습격한 사냥개들이 모두 쓰러지자, 더 많은 사냥개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이전의 사냥개들보다 더 사납고 영리했다.

하지만 상대가 좋지 않았다. 아르투르와 그의 동료들은 모두 대단히 영리한 자들이었고, 첫 번째 습격에서 사냥개들의 성향과 공격 방식을 모두 간파했다. 거기에 기습의 이점조차 사라지자 상대가 되질 못했다. 아르투르 일행은 손쉽게 사냥개들을 처치했다.

한때 사냥개였던 잿더미들만 남게 되자, 아르투르는 겨누던 검을 아래로 내렸다. 그걸 신호로 일행들도 무기를 내리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세상에 별 꼴을 다 보는군. 다들 괜찮나?”

보아하니 크게 다친 자는 없었고 토르스탄과 레오폴트가 조금 피를 흘리고 있었다. 물론 자신도 말이다.

“좋아. 계속 가지.”

아르투르는 내색하진 않았지만 두 종자들이 잘 버티고 있어준 것이 고마웠다. 저 나이에 이런 기량과 용기를 갖추는 건 분명 드문 일이었다. 일전의 전투는 오히려 아르투르 일행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악령이고 뭐고, 결국 베면 죽었고, 자신들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는 판단이 들었다.

아르투르 일행은 마침내 이 불길한 기원의 근원지인 예배당의 문 앞에 이르렀다. 아르투르는 성검을 들어 내리쳤고, 굳게 잠겨있던 문은 두 조각이 나서 양 옆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은 평생토록 기억날 기괴한 광경을 보았다.

“염병할. 이거 뭔데,”

레오폴트는 자연스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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