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왕 아르투르-88화 (88/248)

88

생명이 꽃피는 계절, 봄이 왔다. 농부들은 파종을 위해 들판으로 나가고, 여행자와 상인들이 눈 녹은 도로를 따라 행선지로 퍼져나갔다. 은밀한 계략이 담긴 서신을 동봉한 전령들이 분주히 말을 달렸다.

두라노 시민들도 마침내 봄이 온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아르투르의 통치 아래 질서는 빠르게 회복되었고, 옛 번영을 복원할 수 있는 청사진이 제시되었다. 혼란만을 거듭하던 두라노에 새로운 정부가 생겨나자 주변 국가들도 잇따라 사신을 보내 외교적인 문제를 매듭짓고자 했다. 각 국가의 사절들이 잇달아 눈의 탑을 방문하며 여러 정치적 협상이 맺어졌다. 주로 참주정 시절의 조약을 갱신할 의지가 있는 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지금 아르투르가 대면하는 귀족 사내도, 그런 사절 중의 한 명이었다. 그는 현지 억양이 가득 섞인 레무스 어로 말해왔다.

“도파뉴에서는 백인을 베었으며, 하이에버에서 토너먼트를 우승하고, 두라노를 해방한 위대한 기사인 아르투르 경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가장 아름다운 공화국 피오렌치아와 황금 백조 은행을 대표해서 온 굴리엘모 델 피오레라고 합니다. 저는 장엄한 피오레 가문의 후계자이자 황금백조 은행의 이사장이며 피오렌치아 참사회의 의장이며….”

굴리엘모는 그 뒤로도 자신이 속한 가문, 지위, 부, 역량 등에 대해 장황한 수사를 늘어놓았다. 하지만 아르투르가 관심을 둔 건 그의 말이 아닌 행색이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굴리엘모에 대한 아르투르의 인상은 아주 나빴다.

얼굴은 제법 반반히 생겨 여자들에게 인기 좀 끌 것 같았지만, 뛰어난 남성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강건한 신체가 없었다. 안 그래도 마른 체격인데 수행을 하지 않아서 근육도 보이질 않았다. 악수를 해보니 손은 물렁하고 굳은 살 하나 없었다.

‘칼이라곤 써보지도 못한 녀석이군.’

귀부인마냥 치렁치렁한 장신구를 잔뜩 차고 있었고, 심지어 분까지 칠하고 있었다. 아르투르는 문화적인 충격을 받았다. 아니, 레무리아 청년들은 남색을 즐긴다는 풍문이 있던데 사실이던 것인가?

때문에 아르투르는 많은 편견을 가지고, 심드렁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아르투르를 변호하자면 데네토르의 기사치고는 많은 인내심을 발휘하고 있는 일이었다. 그의 사촌이나 스승이었다면 대놓고 비웃거나 핀잔을 주는 반응을 내보였을 것이다. 아르투르는 장광설을 그래도 들어준다는 점에서 나은 편이었다.

한편, 상대방에게 실망한 건 굴리엘모도 마찬가지였다. 하도 명성이 자자한 기사이자 왕족이기에 대단한 줄 알았는데, 자신이 생각하던 품위 있고 세련된 기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수염도 덥수룩하고, 전혀 꾸민 티가 나질 않았다.

‘옷은 저게 뭐야? 우리 집 하인도 저거보단 나은 옷을 입겠군. 게다가 흉터를 가리지도 않고 대놓고 보이고 있다니, 부끄러운 줄 모르는 건가?’

아르투르 입장에서 흉터는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것이었다. 전문 싸움꾼으로서의 이력서 같은 것이었고, 용맹의 상징이었으니까. 자신이 살던 궁정에선 모든 귀족들이 조금의 흉터도 커보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굴리엘모가 자랑하는 것은 동방의 화려한 비단 옷, 왕들도 쉽게 구하지 못할 보석 박힌 장신구와 장인이 한 땀 한 땀 엮어 만든 최고급 신발 등의 사치품이었으나, 아르투르는 그것에 전혀 가치를 두지 않았다.

‘투박하기 그지없는 놈. 얼마나 무역을 모르면 내 옷에 감탄하지 않는 거냐. 게다가 왜 이렇게 말똥 냄새를 풍긴단 말이냐? 귀족이 갖춰야 할 품위가 없군. 체격만 거대해서는 실속이 없군.’

두 사내는 서로를 만나자마자 실망했지만, 그렇다고 이 협상의 중요성과 상대의 지위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양측이 모두 중요한 안건을 가지고 와 있었다. 협상이 시작되기 전, 에렌은 아르투르에게 사전 지식을 알려주었다.

‘피오레 가문은 레무리아 반도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입니다. 랑트리뷔아체 공화국이나 교황 성하 정도나 그에 비길 수 있겠지요. 피오레 가문은 강력한 도시 국가인 피오렌치아를 세웠으며 황금 백조 은행의 주인입니다. 단언컨대 서부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자들이며, 예술과 학문의 후원자이고 교회의 동맹자지요. 루드비코가 그들에게 막대한 빚을 지고 졌었는데, 그 점을 논의하려고 오는 것일 겁니다.’

아르투르는 에렌의 조언을 떠올리며 상대의 말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너무 지루한 터라 성의 없이 답했다.

“잘 들었소. 대단한 피오레 가문의 위대한 굴리엘모여! 그래서 무슨 일로 오셨소?”

아르투르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과장되어서 누구나 가식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반면 굴리엘모는 겉보기에는 진심으로 감격한 것으로 보이는, 능글맞은 미소를 지었다.

“저를 그렇게 여겨주신다니 실로 감격스럽군요! 방문 사유는 차차 말씀드리겠습니다. 레무리아에선 본론을 꺼내기 전에 긴 자기 소개를 거친 후, 사담부터 주고받는 답니다. 그러다가 대화의 주제가 떨어지면, 그 뒤에야 협상에 들어가죠. 서로에 대해 충분히 알고 친분을 쌓은 뒤에 이야길 하게 되면 협상이 훨씬 부드러워 지거든요.”

계집애처럼 웃는 굴리엘모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아르투르는 애써 미소지으며 장단에 맞춰주었다.

“아, 그렇소? 내가 데네토르 출신이라 잘 몰랐소. 그럼 서로의 가문에 대한 자랑은 끝났으니 이젠 사담을 이야기해봅시다.”

아르투르의 표정은 따분함, 지루함, 짜증남 그 자체였지만 굴리엘모는 가식적인 미소를 유지하며 사담을 이어갔다. 아르투르는 이 상인 귀족들의 행태가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아 대충 받아넘겼다. 누가 봐도 알 수 있는 태도로.

굴리엘모는 그런 아르투르를 보다가 헛기침을 하더니, 새로운 화제를 꺼내들었다.

“그러고 보니, 제 약혼녀와 만나신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녀가 전하길 아르투르 공께선 대왕의 아들다운 풍모를 지니신 분이라고 극찬하더군요. 그런데 직접 뵙고 보니 그녀의 말이 사실보다 과장되지 않았음을 실감하며 깊은 감동을 느낍니다.”

아르투르는 자꾸 꼬아말하는 놈의 버릇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그렇습니까? 약혼녀 분의 성함이?‘

“샤를로트 델 라이랜더입니다. 제 오랜 소꿉친구이자 사촌누이이기도 하죠. 아름다운 갈색 눈동자를 한 아름다운 여인입니다. 상행을 다니는 여인은 많지 않으니 쉽게 기억하실 수 있을 텐데요.”

아, 샤를로트의 약혼자였나. 아르투르는 당연히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이에버의 토너먼트 당시 연회를 열고 돈이 조금 모자랐었고, 그녀가 호의를 베풀었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여러 정치적 안건을 다루고 친구 사이가 되었었다. 친구 사이였지만 재미도 꽤 봤었고. 둘 다 약혼자가 있던 터라 진지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꽤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문제는 약혼자를 만나버렸다는 거지만. 아르투르는 속으로 조금 후회했다. 아, 만약 관계를 추궁해오면 변명해야 되지? 아니, 들키진 않았을 테니 태연한 척 하자고.

“아! 그녀를 기억하오! 참 지혜로운 친구였지. 나는 그녀를 통해 많은 걸 배웠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금세 가까워졌고 우정을 가질 수 있었소.”

굴리엘모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우정뿐이었을까요? 공에 대한 그녀의 예찬을 듣다보니 좀 더 특별한 관계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말이죠.”

아르투르는 한 대 맞은 듯이 말을 멈추었다. 약혼자를 두고 다른 여인과 정을 통하는 일은 불명예라고 하기 까진 부족했지만, 자랑스러운 일은 절대 아니었으니까. 아르투르는 그 약혼자가 눈앞에서 그 이야길 꺼낼 때 태연히 받아낼 정도로 뻔뻔하진 못했다.

‘이 이야기는 안 꺼내는 게 낫겠군. 제대로 이야길 하면 샤를로트에게 피해를 줄 거고, 그렇다고 기사로서 거짓을 말할 수도 없겠고.’

아르투르가 택한 건 침묵이었다.

“….”

굴리엘모는 아르투르의 반응을 통해 금세 사실을 알아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내기는커녕, 그저 쾌활히 웃어보였다.

“하하하, 걱정 마십시오. 공이 살던 곳에선 문제였을지 모르나, 레무리아에선 아무 문제가 되지 않을 일이니까요. 결혼하기 전에 여러 사람을 만나볼 수도 있고, 정을 통할 수도 있지요. 우리는 낭만의 가치를 높게 여기는 사람들이랍니다. 진지한 관계는 결혼 이후부터 시작되죠.”

“….”

아르투르는 그냥 침묵만 지켰다. 그 뒤로 굴리엘모는 신이 나서 대화를 주도했다. 아르투르는 그에 대해 미안한 감도 있고,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굴리엘모는 여러 가지 산만한 이야기로 그의 정신을 빼놓았고, 아르투르는 어느새 그가 하는 이야기에 맞장구만 치고 있었다.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한 굴리엘모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화제를 던졌다.

“두라노 공화국은 두라노 참주국의 영토와 권리를 계승한 국가가 맞겠지요?”

아르투르는 별 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긴 하지. 두라노의 영토를 물려받았으니 그 국경선이 지켜지기만을 바랄 뿐이오”

“그렇군요. 방금 두라노 공화국이 두라노 참주국을 계승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법에 의거하면 권리와 부채가 같이 상속되는 점도 알고 계시겠지요.”

단순한 사담을 꺼내는 것이 아닌 것을 깨달은 아르투르는 급속히 정신을 되찾았다.

“공식적인 외교 사안으로 들어가면 복잡해지지. 단순하게 말할 문제가 아니오.”

굴리엘모는 갸웃하는 표정을 짓는다.

“이미 두라노 공화국이 참주국의 부채를 계승했다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번복하시는 겁니까?”

아르투르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난 그런 적 없네. 그런 내용에 서명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굴리엘모는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이제 와서 부인하셔도 소용없습니다. 교회에 소속된 서기가 이 대화록을 기록하고 있었거든요. 두라노 공화국은 참주국의 권리와 영토를 계승하셨다고 말씀하셨으니, 부채도 계승한 게 맞습니다.”

굴리엘모의 옆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모든 발언을 기록하고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는 아르투르.

“난 우리 대화 내용을 글로 남겨도 된다고 허락한 적이 없네만.”

“교회법에 따르면 교회는 군주들 간의 계약을 중재하고 보증해줄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르투르 공께서 동의하시건 아니건, 저 기록은 법적인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시간 부로, 공화국은 참주국의 부채를 계승한 것으로 간주, 이자가 다시 계산 될 것입니다.”

아르투르는 상대가 진지한 것을 깨닫고 눈살을 찌푸렸다.

“본론에 앞서 사담을 나누는 게 이곳의 전통이라고 하지 않았나? 레무리아에선 사담도 공식적인 조약의 효력을 가지는가?”

실실 웃는 굴리엘모.

“순진하시군요. 도시의 대표 간의 대화가 어딜 보아서 사담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거 완전 순 사기꾼이군.”

아르투르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짜증이 힘껏 쏟아져나왔다. 놈은 일부러 현지 관습이라고 자신을 속인 후, 의도적으로 샤를로트와의 불륜 이야기를 꺼내 자신을 수세에 몰아넣은 후, 꼬투리를 잡은 것이었다.

“사기꾼이라니요. 국가간 회담에서 수장 자격으로 발언하신 공식 발언입니다. 교회의 기록에도 있지요. 부정하시면 교황 성하께서 언짢아하실 겁니다.”

아르투르는 노기를 담아 말했다.

“이곳 관습이 어떤지는 모르겠는데, 날 두고 장난치지 마시오. 피오레 가문은 부끄러움도 없소? 친분을 쌓자는 명목으로 접근해서 사담을 나누다가 꼬투리를 잡는 게 어딜 봐서 법적인 근거고 공식 발언이오?”

“뭐, 이 동네에선 그게 통용된답니다. 레무리아에선 레무리아의 법을 따르셔야죠. 법을 몰라서 손해 보신 건 본인이 책임지실 문제고요. 아무튼, 이제 공화국이 루드비코의 부채를 계승했으니 즉각 상환을 시작해주십시오. 집권 전에 쿠데타를 준비한다고 금화 50만 잎과 은화 100만 잎을 빌려갔군요. 오년 전에 또 같은 금액을 전쟁한다고 빌려갔고요. 원금과 이자, 모두 즉각 상환을 바랍니다.”

굴리엘모가 딱 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이번에는 하인이 양피지 두루마리를 아르투르에게 가져다주었다. 아르투르는 불쾌감을 억누르고 두루마리를 펼쳐보았다. 회계 장부였다.

장부를 보니 흐름이 보였다. 루드비코는 자신이 두라노의 권좌에 앉기 위해 황금 백조 은행에 엄청난 금액을 빌린 것이었고, 참주가 된 뒤에도 원금을 상환하지 못한 채 이자만 지불하는 것으로도 숨이 차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건 루드비코 시절의 이야기였다.

“허튼 소리요. 루드비코가 황금 백조 은행에 빚진 돈을 두라노 시민들이 지불할 이유가 하등 없소. 그 돈은 쿠데타를 일으키고 시민들을 학살하는데 쓰였으니까! 대출금을 상환 받고 싶다면 장소가 틀렸소! 델 레코레 가문을 찾아가보시오. 두라노의 수장이 아니라!”

아르투르는 매서운 눈길로 굴리엘모를 쏘아보았지만, 그는 능글맞은 미소를 조금도 바꾸지 않은 채 오히려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 돈이 어떻게 사용 되었는지는 우리 은행의 소관이 아닙니다. 루드비코의 권력을 계승하셨으니, 빚도 계승하여주십시오.”

아르투르는 이 어이없는 요구에 기가 차기 시작했다. 적어도 그의 상식과 법에선 말이 되지 않는 억지였다. 설령 정당한 요구라고 할지라도, 이자가 붙은 대출 금액은 상상을 초월하는 거금이 되어 있었다. 두라노 영토를 모두 팔아도 상환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돈이 없으실 테지요. 압니다. 그러니 저희가 한 가지 제안을 하죠. 저희 가문에서 회계사들을 보내 대신 세금을 수취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세금을 미납한 자들은 노예로 팔게 허가해주십시오.”

순간, 아르투르는 루드비코가 자신에 반대하던 정적들을 노예로 팔아넘기던 모습이 떠올랐다. 어째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그 정도까지 가혹한 통치를 했는지 궁금했었는데, 방금 의문이 풀린 것이다.

“이런 쓰레기 같은 자들이 다 있나!”

아르투르의 분노는 한계점을 넘어섰고, 그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호통을 쳤다.

“저주받을 쓰레기들 같으니! 이제 루드비코의 배후에 누가 있었는지 알겠군!”

굴리엘모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걸 이제야 아시겠소? 누가 진짜 두라노의 주인이었는지. 루드비코는 우리 하인이었을 뿐이오. 그 자가 쿠데타에 마련한 용병, 빈민들을 구휼할 수 있던 돈, 전쟁 자금이 모두 우리에게 나왔지. 이젠 당신이 우리 대신 이곳을 관리해줄 차례요. 아니면 떠나던가.”

아르투르는 피식 웃었다.

“너희 요구는 모조리 거절한다. 더불어서, 너희는 단 한 푼의 동전도, 한 뼘의 땅도 두라노 시민들에게서 빼앗지 못하리라. 두라노 인들은 아무것도 너희에게 빚진 것이 없음을 선언한다!”

굴리엘모는 차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금 발언도 기록되셨고, 교황청에서 주관할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될 겁니다. 교황청의 법정에서 뵙시다. 아, 말했던가요? 추기경의 절반은 우리 가문 사람이고, 나머지 절반은 우리에게 빚을 잔 자들입니다. 누구 편을 들 지는 뻔한 일이죠.”

아르투르는 굴리엘모의 말을 듣고 소리내어 웃었다. 워낙 어이가 없어하는 지라, 굴리엘모는 불쾌한 표정으로 아르투르를 노려봤다.

“교회법의 무서움을 모르나 보군. 종교 재판소가 이번 안건을 관할할 것이다!”

박장대소를 멈춘 아르투르는 위압적인 태도로 굴리엘모를 내려다보았다.

“이봐. 샤를로트의 약혼자. 너만 법을 잘 아는 게 아니야.”

비웃음을 짓는 굴리엘모.

“어디 들어보기나 하지. 그 년이 말하는 대로 네가 그렇게 똑똑한지 궁금한데.”

“양 측의 주장이 도무지 맞지 않으면 택할 수 있는 재판은 하나뿐이지.”

아르투르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결투에 의한 재판을 하자꾸나. 신께서 누가 옳은 지 가려주실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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