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왕 아르투르-85화 (8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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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올랐다. 하늘은 인간들의 혼란에 아랑곳하지 않고 할 일을 했다. 날씨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고, 태양은 따스한 햇살을 내보냈다. 아르투르는 피난민들을 구해낸 후 특정 지역에 결집시킨 후, 민병대를 결성하게 해서 스스로를 지키게 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던 중, 시라노가 병사들을 이끌고 도착했다.

“아르투르 공! 무사하셨군요!”

붉은 수염을 기른 젊은 기사가 감격에 찬 표정으로 아르투르의 손을 맞잡았다.

“나는 무사하네. 하지만 레잘리트와 엔조가 쓰러졌지. 레잘리트는 구하고 싶었지만 너무 늦었고, 엔조는 내 손에 죽었네. 자네는 스스로 탈출한 모양이군.”

시라노는 친구의 죽음에 입을 질끈 깨물었지만,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털어내곤 당당한 목소리로 답했다.

“예. 감옥의 경비병들을 설득했지요. 친우들의 죽음은…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요. 애도는 뒤로 미루겠습니다. 보시다시피 두라노는 완전한 내전 상태고, 편을 정할 수 없는 이들이 무참하게 살해당하고 있습니다. 당장 혼란을 진정시켜야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아르투르.

“좋아. 우리 의견이 일치하는군. 자네가 파악한 상황을 말해줄 수 있겠나? 에렌은 무사한가?”

“네. 에렌 의원 역시 자신을 따르는 청년들을 무장시키고 안전 구역을 만들어냈습니다. 오는 길에 살펴보았더니 당분간은 안전하겠더군요. 문제는 군대가 완전히 반으로 갈라져서 싸우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것 같더군. 포로를 심문해본 결과 재미있는 정보를 얻었네. 공화파 군대는 애초부터 피의 숙청을 벌일 생각이었고, 참주파도 정권 전복을 노리고 있었네. 그렇게 군대가 둘로 쪼개진 모양이야. 결국 이 혼란을 진정시키려면 우리도 군대가 필요하네. 지금 적들의 군대는 어떻게 배치되어있고, 우리 가용 전력은 어떤가?”

시라노는 고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두라노 외곽에 주둔하던 군대가 3천의 야전군이었고, 경비병이 1500명 정도 됩니다. 그들이 모두 이번 정변에 참가했다면 최소한 2천의 정예병들을 거느린 게 됩니다. 군중들을 제외하고도 말이죠. 하지만 여전히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이 훨씬 많습니다. 이들을 전부 소집해서 무장시킨 다면 수적으로 양측 파벌을 모두 압도할 수 있습니다.”

눈살을 찌푸리는 아르투르.

“상황이 좋진 않군.”

제대로 훈련 받은 군대만 각각 2천 이상 되는데, 도시의 삼분의 일 씩은 각 파벌에 협력하고 있었다. 자신은 훈련 받은 군대 없이, 시민의 삼분의 일만 데리고 질서를 회복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가장 경험이 많은 군대는 참주파 야전군들이고, 상황을 오래 끌면 자신들이 불리하단 것도 알거야. 그러니 놈들은 도시의 요충지를 장악해 저항의 여지를 없애려 들겠지. 그쪽부터 박살낸다.’

아르투르는 몇 번쯤 보았던 두라노의 지도를 머릿속으로 떠올린 후, 주요한 군사 지점들을 추려냈다. 지금 자신에게 중요한 전략 목표는 세 가지였다. 첫째, 두려움에 떨고 있는 시민들을 도시로 불러내서 자신 아래로 합류시킬 것. 둘째, 그들을 무장시킬 무기고를 탈취할 것. 셋째, 그만한 병력이 모일 집결 장소를 확보할 것.

“이렇게 하지. 자네는 에렌을 찾아가서 해방자 아르투르의 이름으로 시민들을 소집하라고 전하게. 에렌이 인망이 있는 편이니 잘 해낼 거야. 그 뒤에, 자네는 소집된 시민들을 이끌고 무기고를 탈취하는 임무를 맡기겠네. 나는 광장으로 가지.”

“할 수는 있겠습니다만, 지금 저희는 병력이 몇 없습니다. 광장으로 지원군 없이 가셔도 되겠습니까?”

아르투르는 씩 웃었다.

“한동안 시간 벌이는 할 수 있을 거야. 자네가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고 원군을 보내주리라 믿겠네.”

아르투르는 곧장 에쿠잘루스에 올라타 시내를 질주했다. 장애물이 많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많아 말을 달리기 적합지 않았음에도 인마일체가 된 사람은 전혀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거리 구석구석마다, 아르투르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두라노의 시민들이여! 다시 참주의 노예가 되길 바라는가? 아니면 공포 정치의 숙청 대상이 되고 싶은가? 모든 남자들은 집을 걸어 잠그고 나와 무기고로 향해라! 그대들의 해방자, 그대들의 도시가 용기 있는 자들을 부르노라!”

많은 두라노 인들은 현재의 내전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구심점이 없던 터라 바들바들 집에서 떨고만 있던 상황이었다. 두라노의 해방자가 나타나 무기를 들 것을 외치자 그들은 마침내 원하던 기회가 왔음을 깨달았다.

“두라노의 해방자께서 우리를 부른다! 질서를 수복하라!”

아르투르의 호소에 응한 시민들은 가정집에 있는 무기들을 들고 무기고로 몰려갔다. 복수를 원하는 자들 이상으로, 평화를 원하는 자들이 더욱 많았다. 길거리로 가득 몰려나온 이들은 시라노의 지휘 아래 무기고를 향해 전진했다.

한편, 아르투르가 도착한 광장에선 참주파와 공화파가 치열한 열전을 벌이고 있었다. 광장을 점거하는 자는 도시 전역으로 통하는 교통로를 확보하는 것이었기에 양측 지휘관들은 가장 중요한 정예 병력을 쏟아 붓고 있었다.

“참주의 개들, 공화국의 반역자들을 죽여라!”

“위대한 루드비코의 복수를!”

백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벌이는 치열한 전장 한 가운데로, 아르투르가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그들은 난데없이 등장한 거구의 기사의 움직임에 깜짝 놀랐다.

“뭐, 뭐냐!”

“이랴!”

사람마다 기질이 다르듯 말도 각기 성격이 다른데, 에쿠잘루스는 너무 사납고 난폭해서 누구도 길들일 수 없던 말이었다. 그의 천성은 주인에게 억눌려져있을 뿐, 아주 거칠고 난폭한 말이었다.

에쿠잘루스는 스스로를 말들의 우두머리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질주를 가로막는 이들에겐 격렬한 분노를 느꼈다. 주인과의 유대를 통해서 그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지금, 에쿠잘루스는 자신이 한껏 성질을 내도 될 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히히히히히히힝!”

에쿠잘루스는 자신에게 겨눠진 창도 아랑곳 않았다. 가로 막는 자들은 부딪쳐서 날려버렸고, 짓밟았으며, 울퉁불퉁한 말 근육으로 걷어 차버렸다. 고삐 풀린 에쿠잘루스는 맹수처럼 날뛰며 사람들의 머리통을 부숴댔다.

“뭐, 뭐냐 저 말은!”

“진정해라! 멈추면 한낱 말에 지나지 않아!”

질주해온 에쿠잘루스의 속도가 줄어들자, 병사들은 반격에 나서려고 했다. 이제는 아르투르의 검이 활약할 시간이었다. 양 손에 머금은 두 자루의 검이 쉬지 않고 휘둘러지며 적병의 머리를 추수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아르투르는 끓어오르는 전투의 열기와 경험으로 얻은 전투 감각에 몸을 맡겼다. 무아지경의 상태에 들어간 그는 에쿠잘루스와 인마일체가 되어 적들을 닥치는 대로 베었다. 자신의 파트너에게 몸을 맡긴 채 적들을 제거하는 일! 이미 수없이 반복해본 것이었다!

쳐내고, 베고, 찌르고, 꿰뚫고, 부순다!

홀로 적진을 휘젓고 다니며 피바다를 만들어가는 아르투르를 보며 양 측의 지휘관들은 기겁했다. 시체의 산은 쌓여만 갔다. 그들은 홀로 백인을 베었다는 아르투르의 무용에 대한 소문을 듣고도 반신반의했는데, 눈앞에서 보게 되니 부정할 수도 없었다.

“덤벼라 -!!! 누가 내게 맞서겠느냐!”

분노에 몸을 맡긴 채 눈에 보이는 모든 적병들을 도륙하는 아르투르의 모습은 분노한 악마를 연상케 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공포가 전염되었고, 대열은 무너졌다. 지휘관들의 목이 잇달아 날아갔고, 병사들은 가을바람에 낙엽이 휩쓸리듯 도망쳤다.

“후퇴! 후퇴하라!!!”

결국 양측의 장교들은 광장의 점거를 포기하고 퇴각했다. 방금 직전까지만 해도 서로 죽이던 사이였건만, 이제는 같은 경로로 도망치고 있었다. 그 때, 그들의 퇴로에서 다른 함성이 들려왔다.

“질서를 수복하라!”

무장한 시민병들이 몰려들며, 그들의 퇴로를 차단한 것이다. 그들은 진퇴양난에 처했다. 뒤에는 아르투르, 앞에는 사기 높은 시민병 무리가 있었다.

“지금 항복한다면 죽이지 않겠다!”

아르투르는 에쿠잘루스를 몰고 그들에게 다가오며 큰 소리로 외쳤고, 너나 할 것 없이 먼저 무기를 던지며 양손을 들어올렸다.

“항복입니다!”

그 뒤로도 양측 군대는 계속 광장을 점거하기 위해 반격해왔지만, 아르투르는 말에서 내려 시민군의 선봉에 서서 싸웠다. 방패와 방패를 앞세운 보병 대열이 부딪칠 때, 아르투르는 순식간에 방패를 타넘고 건너편으로 넘어가 적진 한복판으로 들어가서 적병을 휩쓸었다. 그 때마다 시민군의 사기는 높아지고, 적군들은 공포에 질리며 순식간에 달아나기 바빴다.

결국, 광장을 점거하려는 모든 시도는 격퇴되었고 마침내 시민군의 완전한 통제 속에 들어갔다.

“나를 따르라! 돌격!”

광장을 점거한 아르투르는 시내에 분산되어있는 적들을 차례로 무너뜨렸다. 그들은 도시 밖으로 달아나거나, 포위된 후 어쩔 수 없이 항복해왔다. 도시 전체가 시가전의 현장에 있었건만, 순식간에 끝이 난 것이다.

“항복? 항복이라고! 웃기지 마!”

전투 중에 친지를 잃은 일부 시민군이 포로들을 죽이려 할 때, 아르투르는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 포로들의 무장을 해제하고 눈의 탑으로 보내라. 이건 명령이다.”

아르투르가 보이는 무용과 해방자의 명성은 그에게 압도적인 권위를 주었기에, 그는 군대를 통제하는데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결국, 그 날이 끝나기 전에 시가전은 끝이 나고 두라노는 완전히 질서를 되찾았다. 그렇지만, 수천 명이 목숨을 잃고 수만 명이 거처를 잃은 뒤에야 얻어낸, 뼈아픈 승리였다.

아르투르와 시라노의 군사적 승리가 굳어지자, 에렌은 즉각 도시 명사들을 소집해 대책을 논의했다. 여러 번 언급되었듯 도시 내에서 입지가 제법 있었고, 이번 시가전 중에 톡톡히 역할을 했기에 더욱 위상이 높아졌다.

“여러분, 당장 내전은 끝났지만 전임 집정관인 레말리트와 그의 측근들은 죽거나 달아났지요. 정부를 새롭게 구성해야합니다.”

상인 조합장, 라델로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마스터 에렌, 지금 상황을 아시겠지요? 이제 우리 두라노 인들은 서로를 증오하고, 누구도 전부를 이끌 수 있는 권위가 없습니다. 우리 중 누가 집권을 하건 소용없을 겁니다.”

라델로의 말에 에렌도 난감한 표정이었다.

“맞는 말이오. 이미 도시는 세 파벌로 나뉘었고, 피를 잔뜩 보았지. 그러니 우리 중 누군가가 정권을 잡더라도 반발이 크고, 도시는 언제고 내전 상태로 빠져들 수 있게 될 거요. 좋은 방법이 있겠소?”

라델로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마스터 에렌. 내게 좋은 방법이 있소. 마침 우리 도시가 황금백조 은행을 운영하는 피오레 가문에게 큰 빚을 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들에게 대출을 탕감해주는 조건으로 통치를 위탁합시다. 내전을 막으려면 외부의 권위를 빌려오는 게 유일한 방법입니다.”

라델로의 말에 여러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두라노 인들은 자신에게 통치를 맡겨본 일이 없을뿐더러, 피오레 가문의 평판도 썩 좋은 편은 아니었던 까닭이다.

“우리의 주권을 다른 도시의 대 귀족에게 내주자니? 그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오?”

에렌은 힐난하는 목소리로 라델로를 다그쳤지만, 라델로는 태연히 답했다.

“그럼 방법이 있습니까? 내전은 끝났지만 언제고 다시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허약해진 도시인데, 지금 외국이 침공이라도 해오면 끝장입니다. 그 전에 강력하고 믿을만한 사람의 보호를 받아 위기에서 벗어나는 것이지요.”

에렌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라델로! 당신은 오랫동안 피오레 가문에게 도시의 기술을 팔아먹고 있었다는 걸 잘 아오! 이제는 도시마저 그들에게 팔아버릴 생각이오?”

“그럼 어떤 대안이 있소? 마스터 에렌. 방안을 말해보시오.”

“차라리 우리 중에 독재관을 임명하고 그 사람에게 권력을 몰아주면 되는 거요. 그 방법이 훨씬 낫겠군.”

“현실성이 없는 말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소? 금방 암살당하고 다시 내전이 벌어지겠지.”

두 사람은 그 뒤로도 각자의 주장을 전혀 굽히지 않았다. 의회의 의견도 양분되어갔고, 처음에는 근거를 든 토론이었지만, 서로에 대한 비방과 욕설로 변하는 데는 잠시면 충분했다. 두라노의 현 상황을 드러내는 듯 했다.

“매국노!”

“현실적인 대안이 없잖소!”

그 때, 잠자코 나이 든 의원들의 갑론을박을 듣고 있던 한 젊은이가 손을 들었다. 그는 조레스라는 자였는데, 도시의 자영농들과 평범한 수공업자들을 대표하는 입장이었다.

“잘 들어보니 두 분의 의견을 절충하면 될 것 같습니다만.”

의외의 제안에 조레스에게 시선이 끌렸다.

“아르투르 공께 저희의 독재관이 되어달라고 청합시다. 그분은 외부인이니 우리의 원한에 얽매이지도 않고, 명예로운 분이니 도시를 위해 사심 없이 일해주실 겁니다. 애초에 아르투르 공을 두고 왜 이런 바보 같은 논쟁을 하는 지 이해할 수 없군요.”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조레스의 말이 가진 의미는 많은 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자유 도시에서 외부의 귀족에게 도시의 전권을 주겠다는 말은, 다시 말해 두라노가 군주국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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