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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83화 (8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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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날아드는 석궁 탄환을 눈으로 보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아르투르의 예민한 청각은 소리가 들린 장소를 정확히 파악해주었고, 날카롭게 벼려진 전투 감각이 탄환이 날아들 시간과 순서를 무의식적으로 읽어냈다.

아르투르가 허공에 몇 차례 쓱쓱 여명을 휘두르자 탄환들이 뭉텅뭉텅 떨어져 내렸다. 열 발이 넘는 사격이었건만, 단 한 발도 그를 맞추질 못했던 것이다.

“재, 재장전! 서둘러!”

아르투르는 틈을 놓치지 않고 성문을 향해 돌진했다. 두라노의 성문은 닫혀있었지만 지난번에 혁명군이 도시를 접수한 후, 제대로 수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어 있었다. 이음새 몇몇 부분이 녹슬어있는 것을 보아하니 장기간 관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르투르는 오른쪽 팔의 어깨 근육에 힘을 가득 실으며 성문에 몸을 부딪쳤다.

쿵 - !

철로 만들어진 성문이 공성추로 얻어맞은 양 흔들렸다. 성문 너머의 병사들은 웃지 못했다. 저 괴력의 기사가 몇 번 더 부딪치면 정말로 성문을 걸어잠그고 있는 쇳덩이가 나가떨어질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막아! 지지대 가져와!”

흔들리는 성문을 보며 아르투르는 미소 지었다. 성검을 사용해야하나 싶었는데, 그럴 필요는 없는 모양이었다. 적들이 채 정비를 마치기 전에, 아르투르는 뒤로 물러났다가 몸을 부딪치길 몇 차례 반복했다. 빗발치는 석궁 세례는 피하거나, 갑옷을 믿고 그냥 맞아주었다.

쿵 - !

걸어 잠근 성문이 열리며 먼지를 가득 풍겼다. 그 너머에선 땀을 송골송골 흘리는 아루트르가 걸어들어왔고, 병사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공포에 질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나와 싸울테냐?”

아르투르는 살기 어린 시선을 한명, 한명에게 보내며 여명을 고쳐 잡았다. 감히 그의 시선을 마주한 병사들은 몸이 얼어붙은 양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그 때, 성벽 위에서 엔조가 석궁병들을 인솔하며 재차 사격을 가했다.

“뭐해! 당장 죽여라!”

아르투르는 재빠르게 굴러 근방에 쌓여있는 잡동사니 상자들 사이에 몸을 숨겨 일단 쏟아지는 공격을 피했다. 그러자 석궁병들도 사격을 멈추고 조준만 유지했고, 한 무리는 사각지대에서 쏘기 위해 이동했다.

“창병들은 뭘 하나! 가서 끝을 내라!”

엔조가 병사들에게 움직일 것을 촉구했지만, 석궁병들과 달리 근접전을 해야 하는 창병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 망설였다. 그들의 눈빛엔 공포만이 깃들어있었다. 오직 한 용감한 병사만이 아르투르에게 다가와, 창을 찔렀다.

“이야아압!”

아르투르는 상대의 공격이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는 것을 느끼자,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발걸음도 서투르고 기합도 이상한 타이밍에 넣어 힘도 제대로 못 주는 모양이었다. 병사가 내지른 창을 왼손으로 붙잡은 후, 강하게 잡아당겼다. 그러자 상대 병사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고, 아르투르는 배를 걷어차서 놈을 뒤로 날려보냈다.

“크헉!”

아르투르는 입에서 피를 쏟으며 쓰러진 병사를 뒤로 한 채, 왼손으로 든 창을 성벽을 향해 날려 보냈다. 어찌나 힘이 강한 지 창날은 번개 같은 속도로, 성벽 위를 향해 날아갔다. 창은 단숨에 엔조의 가슴을 관통했고, 그는 입에서 피를 쏟으며 발을 헛디뎌 성벽 아래로 쓰러졌다.

쿵 - !

엔조가 쓰러지기 무섭게, 아르투르는 여명을 양손으로 쥐고 달려 나갔다. 석궁이 날아들지만 모조리 튕기거나 피해냈고, 그는 순식간에 적병들에게 다가가 간단히 살해했다. 선혈이 공중에 몇 번 휘날리자, 이미 지휘관의 죽음에 동요해있던 병사들은 줄행랑을 택했다.

“후퇴! 후퇴하라!”

아르투르는 괜히 그들을 쫒지 않고, 시내를 향해 달려 나갔다. 두라노 시내는 아비규환이라는 말 외엔 떠오를 참상이 없었다. 불이 시시각각 번져가며 수백 명이 타죽고, 그와 같은 수의 사람들이 숨을 쉬지 못해 죽어가고 있건만, 누구도 그들에게 신경쓰지 않는, 신경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공화파 놈들 죽여라!”

“참주의 개들을 죽여!”

빈민가에 거주하던 참주파는 화재의 혼란을 틈타 친 정부 기관들을 공격했고, 그에 맞서 결성된 자경대가 참주파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죽이고 다녔다. 더욱 가관인 건, 그 기준은 철저히 자의적이었다. 참주 정부에서 행정관을 했던 사람들은 졸지에 참주파로 몰려 죽었고, 신 공화 정부와 계약을 맺었던 상인들은 졸지에 공화파가 되었다.

이 혼란 속에서 중립이나, 나는 그저 살고 싶을 뿐이라는 몸부림은 통하지 않았다. 시내는 완벽한 내전 상태로 돌입하고 있었다.

‘제기랄, 대체 도시에서 무슨 일이 있던 거야? 숨죽이고 살던 참주파 놈들이 이렇게 필사적으로 반격하는 이유가 뭐냐고?’

“루드비코 델 레코레의 복수를! 피의 복수를 받아라!”

들려오는 함성이 아르투르의 궁금증에 답을 해주었다. 아무래도 레말리트가 참주의 처형을 시작으로, 그의 지지자들을 궁지로 몰았고, 옛 참주파들은 도시에 방화하는 것으로 화답한 모양이었다.

아르투르는 냉정히 상황을 파악했다. 이미 도시 전체가 내전에 들어간 상황에서, 개인의 힘만으로는 혼란을 진정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수백 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그들을 부릴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결국은 머리와 담판을 지어야겠군.’

아르투르는 시선을 돌려 도시의 중앙에 우뚝 선 첨탑, 눈의 탑을 바라보았다. 일전에는 루드비코의 참주정을 전복하러 갔건만, 이번에는 레말리트의 공화정을 전복하러 가야만 했다. 발걸음을 옮기던 아르투르는 일순간,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 싸움은 자기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이 사건엔 옳은 자도, 그른 자도 없어. 그저 원한과 이해관계가 소용돌이치며 사람을 죽이고, 또 죽일 뿐. 서로가 서로에게 잔인한 일을 했고, 부당한 억압을 가했지. 그런데 내가 왜, 이 싸움에 끼어야하지?’

아르투르는 여명을 슬쩍 내린 채, 회의감 속에서 도시를 바라봤다. 두라노는 자신의 고향도 아니고, 영지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빚진 것도 없었으며, 미래에 이득이 될 곳도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왜?

내가 왜 서로를 죽이고 싶어 하는 자들을 중재해주기 위해, 목숨까지 걸어야하는가? 결국 이 혼돈은 자업자득이었고, 그들이 불러온 재앙이었다. 그들이 해결할 문제였다.

“약자들을 지키는 것은 기사의 명예요, 명예란 기사에게 모든 것이니.”

언젠가 그의 마스터가 가르쳐주었던 격언을 홀로 읊조린 그는, 눈의 탑을 향해 달려 나갔다. 여명의 손잡이를 꽉 쥐면서 강철의 차가운 감촉이 전해져왔다. 현실이란 이토록 냉정했지만, 자신의 가슴만은 뜨거운 무엇인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너무 일찍 보아버려 넋을 잃은 아이들과 어느 편도 들지 못한 채 힘없이 죽어가는 양민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자신의 등에 기대는 한, 자신은 결코 물러나지도, 도망가지도 않을 것이다. 이 도시의 혼란을 잠재우고 그들을 구해내는 것이 자신의 의무였다.

***

눈의 탑에 도달한 아르투르는 차곡차곡 계단을 걸어올라갔다. 이미 탑 곳곳에서 피비린내가 가득 했고, 무기에 의한 상처를 입은 시체가 곳곳에 널려있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아르투르를 향해 살려 달라 손을 내밀었고, 아르투르는 성검의 힘이 돌아왔을까 싶어 황금의 검을 뽑아보았다. 하지만 그저, 잘 갈린 명검에 불과했다. 치유의 힘도, 철판을 가르는 마법의 힘도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소. 유감이오.”

“그, 그렇다면… 빠르게라도 죽게라도 해주십시오… 쿨럭….”

피를 토하는 사내는 이미 장기가 배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경비병의 제복을 입고 있는 걸 보아하니, 신 정부측인 모양이었다. 레말리트를 마음 깊이 따르던 그의 지지자였을까, 그저 먹고 살길이 없어 입대한 사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제 와선 전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신 앞에선 인간은 오직 자신의 죄를 되돌아보면 될 뿐이다.

푸슉 -

여명이 사내의 심장을 꿰뚫었고, 그는 고통으로 표정을 일그러뜨렸지만 이내 숨을 거두었다. 아르투르는 시신을 뒤로 하고 계단을 올라가 집정관 집무실을 열어 재꼈다. 격렬한 전투의 흔적이 가득했다.

“오…오셨군요. 쿨럭, 쿨럭.”

레말리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주저앉아있었다. 몸 곳곳에 베인 상처가 가득했고, 창이 그의 배를 꿰뚫고 있었다. 그의 옆에 쓰러진 괴한을 보아하니, 레말리트에게 창을 찌르고 그의 칼에 죽은 모양이었다.

아르투르는 레말리트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혼란의 책임을 묻고, 담판을 지으러왔건만 이제 신에게 심판을 받으러 떠나고 있었다. 그는 새어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저는 실패했습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야 또렷하게 보이는군요. 제가… 제가 제 2의 루드비코가 되는 길을 택했었다는 것을요. 제가 아니면 누구도 두라노를 구해낼 수 없을 것만 같았습니다. 오직 저만이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게… 그게 아니었어요.”

레말리트는 허망한 미소를 지었고, 직후에 검붉은 덩이가 가득한 피를 토해냈다. 그는 마지막 힘을 쥐어 짜내서, 품 안에 있는 열쇠고리를 내밀었다. 아르투르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부여잡았다.

“시라노와 마스터 에렌… 그리고 추종하던 사람들을 지하 감옥에 감금해두었습니다. 공께서 공화국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절 속였지만, 실상은 그저 제가 권력을 뺏길까 두려웠던 것뿐이었죠. 그들을 풀어주고…. 부디 이 두라노를 구해주십시오. 쿨럭, 쿨럭.”

아르투르는 열쇠고리를 받은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지고 싶은 것도, 화내고 싶은 일도 많았지만 이제 와선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제가 저지른 죄는,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분명히, 분명히 고결한 대의를 내걸며 일을 시작했는데… 두라노는… 구원 받을 수 있을까요?”

레말리트의 목소리는 꺼져가고 있었다. 아르투르는 뒤로 돌아서서 그를 바라봤다.

“전혀 모르겠네. 죄를 누가 사할 수 있는 지 인간 중 누가 답할 수 있겠나. 곧 구원자를 뵙고 그분에게 여쭤보게. 허나, 한 가지는 답해줄 수 있겠군. 나는 최선을 다해 두라노가 파멸로 치닫지 않도록 막겠네. 적어도 선량한 이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게끔 최선을 다할걸세.”

“그렇다면… 뒤를 부탁해드리겠습니다.”

레말리트는 환히 미소를 지어보였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아르투르는 한번 성호를 그어보이곤 집정관의 집무실에서 걸어 나왔다. 레말리트는 자유 도시를 위한 해방 지도자였을까, 아니면 루드비코와 똑같은 참주의 길을 걸으려던 반역자였을 것일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지만, 그건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그건 이 모든 일이 끝난 후, 두라노 인들이 판단할 문제 일테지.’

아르투르는 여전히 칼부림소리가 들리는 아래층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 밤은 깊었고 그가 해야 할 일은 잔뜩 남아있었다. 오늘도 여명이 얼마나 많은 피를 머금고 나서야 혼란이 끝나게 될지 두려울 뿐이었다.

자신은 명예를 위해, 옳다고 믿는 바를 위해 나아갈 뿐이었다. 결과는 운명에게 달린 일이리니. 생각을 마치기 무섭게, 무장한 한 무리의 사내들이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르투르는 양손으로 여명을 붙잡은 채, 그들을 노려보았다.

‘숫자는 열 둘 정도. 상대도 만만치 않아보이지만, 공간이 작으니 충분히 상대할 수 있어.’

“거기서 멈춰라. 죽고 싶지 않다면.”

아르투르의 고압적인 목소리에 상대는 일단 발걸음을 멈추었지만, 위축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선다.

“당신은 누구를 섬기는 자인가?”

아르투르는 그들의 장비에 새겨진 문양을 통해 참주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이전에 항복을 받아둔 자들일지도 모른다.

“내 이름은 백인을 벤 아르투르이며, 오직 나의 명예만을 섬긴다. 나는 내 동지들을 구하고, 이 혼란을 종식시켜 평화를 가져올 것이다. 대답해라. 너희는 나의 길을 막을 셈이냐?”

“- 바로 당신이었군. 참주님이 죽게 만든 원흉이 눈앞에 있다! 죽여!”

사내는 험악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서 할버드를 내리쳤다. 아르투르는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가며 여명을 휘둘렀다. 단칼에 할버드의 장대가 잘려나가며 놈의 목이 떨어졌다.

“덤벼라. 너희가 누구건 날 막을 순 없을테니.”

아르투르는 적들 사이로 파고들어 강철의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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