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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79화 (7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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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라노 자유 형제단의 일원이었던 엔조는 참주들에게 모든 가족을 잃은 중년의 전사다. 오직 복수심만 남은 채 형제단에 들어왔다. 그는 원래부터 군인이었고, 그 일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다.

덕분에 그는 기강이 잡혀있지 않던 금세 형제단을 군사 집단으로 재조직하며 형제단의 간부로 떠올랐다. 레말리트가 조직 전체를 총괄하고 큰 그림을 그린다면, 그걸 실행에 옮긴 것은 대부분 엔조의 몫이었다. 혁명이 성공한 지금, 엔조는 두라노 군의 총 사령관이자 치안 총책임자였다.

다급히 달려온 전령의 보고.

“사령관님! 폭동이 도시 전체로 번지고 있습니다! 수천 명의 군중이 몰려다니며 붉은 깃발을 내걸지 않은 집을 약탈하고 불태우고 있습니다. 지금 군대를 투입하셔야 합니다.”

엔조는 하품을 하며 태평스러운 태도로 말했다.

“시내에서 조금의 소란이 있을 뿐인데 군대가 진입하는 건 공화국의 군대답지 않네. 경비병들이 잘 중재해서 처리하겠지.”

“이미 경비병들이 통제할 수 있는 수준을 넘었을 뿐더러, 오히려 그들이 폭동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시내는 무법 상태입니다!”

절박하게 말하는 전령과 달리 엔조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과장이 심하군, 전령. 정말 군대까지 투입해야 하는 일인가? 시내에 군대를 투입하려면 집정관의 허가가 있어야하네.”

“그렇다면 제가 집정관님께 허락을 받아오겠습니다! 이대로면 치안이 무너질 겁니다!”

그러자 엔조는 짜증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사소한 일로 집정관님을 번거롭게 해서 쓰나. 보고하지 말게. 정 심해지면 내가 직접 알릴테니.”

전령은 납득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엔조는 마지막 가식마저 벗어버리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만 입 닥쳐! 그 정도 눈치를 줬으면 알아들어야지. 가만히 있으라고! 놈들은 당해도 싸!”

전령은 분노로 물든 엔조의 표정을 보고,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는 집정관에게 직접 보고하기 위해 방을 빠져나갔지만, 다른 병사들이 그를 붙잡아 감금해버렸다. 사유는 정확하지 않은 사실로 민심을 흐린다는 죄목이었다.

***

얼마 전까지 축제를 벌이던 두라노의 거리는 폭력과 무질서가 지배하고 있었다. 긴장감이 도시를 뒤덮었다. 다수를 이룬 군중은 붉은 깃발을 내걸지 않은 상점과 집안을 모조리 휩쓸고 다녔고, 끝까지 저항하는 자들은 쓰러질 때까지 폭행을 당했다. 그들 중 일부는 목숨이 위험했지만 그대로 방치되었다.

“경비병들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에렌은 하인들과 함께 집안의 문을 틀어막고 폭도들을 상대로 버티고 있었다. 그는 참주의 처형에 찬성하는 자였음에도 군중들을 진정시키려고 한 게 문제였다.

“시민 여러분! 이런 무법 행위는 두라노 시민답지 않은 일입니다! 모두 법규를 준수하십시오!”

“저놈이 참주파를 감싼다!!”

에렌은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참주의 삼엄한 감시가 지배하던 길거리는, 이제 사람들을 태워 죽일 열기로 가득 차 있었다.

“나오지 않으면 저택채로 태워버리겠다!”

“태워! 태워!”

문 밖에서 군중들의 외침이 들렸다. 아무래도 평소부터 자신을 고깝게 여기던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에렌이 마지못해 문 밖으로 나서려는 무렵, 군중들의 외침이 가득 들리던 집 앞이 조용해졌다.

“다들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중무장을 한 채, 에쿠잘루스에 타고 나타난 아르투르는 존재만으로 군중을 압도하고 있었다. 그가 불쾌감이 담긴 시선으로 사람들을 내려 보면, 그것으로 제압이 끝났다. 누구도 감히 그에게 대항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참주파를… 타도하고 있었습니다.”

아르투르의 시선을 한 눈에 받은 선동가가 고개를 돌렸다.

“에렌은 시민군의 봉기를 주도했던 자고, 그에게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 노예로 팔려갈 뻔 자다. 그런 자가 참주파라고?”

경고를 보내는 아르투르의 차가운 눈빛을 보며 군중들은 슬금슬금 물러났다. 들개가 아무리 많아도 사자의 위엄 앞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 한들, 에렌은 내 친구다. 그에게 위해를 가하고 싶다면 내 검을 먼저 상대해야 할 거다. 그렇게 하겠느냐?”

“하, 하지만 아르투르 공은 저희를 도와 도시를 해방시켜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이 일도…”

아르투르는 격정적인 분노가 담긴 함성을 내뿜었다.

“내가 너희들이 하란대로 하는 꼭두각시인줄 아느냐? 당장 꺼져! 아니면 다 베어죽이겠다!”

아르투르는 지체 없이 여명을 뽑아들었다. 칼이 뽑혀 나오는 소리에 군중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아, 아르투르가 우리를 죽이려 든다! 도망쳐!”

두라노 시민들 사이에서 아르투르는 존경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절대적인 폭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군대라면 모를까, 자신 같은 비무장 민간인들이 어떻게 해볼 상대는 아니란 것을 누구나 알았다. 아르투르는 에쿠잘루스를 타고 신속하게 시내를 돌아다녔다. 곳곳이 엉망이었다. 상점은 약탈당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이 끌려나와 마구잡이 폭행을 당하고, 불타는 집도 있었다. 혼란을 틈탄 무법자들은 언제, 어디서고 나타나기 마련이었고 말이다.

“저희도 아르투르 공을 따르겠습니다!”

모든 시민이 폭동에 참여했던 것은 아니었다. 의기가 넘치는 청년들은 막대기를 들고 자경대 를 결성해 아르투르를 따랐다. 아르투르는 단호하게 혼란을 수습했다. 먼저 흥분한 군중부터 진정시켰다. 군중 사이로 군마를 타고 파고든 아르투르는 그들을 내려다보며 고압적인 태도로 말했다.

“모두 귀가해라. 당장!”

여전히 참주파에 대한 분노로 들끓는 대중은 소리친다.

“아, 아르투르 공? 하, 하지만 이건 국내 문제입니다! 경비대도 개입하지 않으니 공께선 관심 지니실 일이 아닙니다.”

- 카릉.

“불의한 일에 기사가 개입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 골라라. 나와 결투를 할 테냐. 조용히 집에 갈 테냐.”

그러면 군중들은 투덜거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압도적인 폭력의 위협 앞에 대부분의 분노는 조절되었다. 간혹 감정 통제를 못해서 발작하는 녀석들이 있었는데, 한두 대 두들겨 패주면 알아서 기었다.

경비대가 혼란을 진정시키러 온 것은 모든 일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놀랍게도 그들은 아르투르를 먼저 찾아왔다. 사령관 엔조가 중무장한 보병들을 이끌고 와, 그를 둘러싼 것이다.

“지금 뭐하자는 것이냐? 다 죽고 싶다고?”

아르투르는 그들을 보며 비웃음을 지었다. 참주의 근위대에 비하면 형편없는 놈들이었다. 숫자도 스물 가량,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쓸어버릴 수 있는 놈들이 자길 위압하려는 것만큼 우스운 게 없었다.

“용서하십시오. 공께서 시내에서 무기를 뽑고 시민들을 위협했다는 신고가 여러 건 들어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공에게 얻어맞은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토로하고 있습니다.”

“내가 죽일 의도였으면 그 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도 없었을 거다. 단번에 골통이 부숴 졌을 테니까. 그래서 느려터진 경비병들은 지금이라도 배치가 끝났나?”

“예. 그러니 무기를 이리 주십시오. 한번 무기를 뽑으신 이상, 시내에서 무기를 소지하는 건 허가할 수 없….”

엔조를 말을 마치지 못했다. 아르투르가 단숨에 다가가 그의 목을 부여잡고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호위병들은 그를 막으려들었지만 어깨가 한번 부딪히자 저 멀리 나가 떨어져버렸다.

“사사건건 내게 반항하는 것도 모자라, 이젠 날 모욕하려 드는군. 한번만 더 개소리를 하면 더 이상 참지 않겠다. 지속된 모욕에는 결투만이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지. 네놈, 내 칼을 몇 합이나 받아낼 수 있겠느냐?”

아르투르는 분노를 담은 채 엔조를 바라봤다. 그러나 엔조의 눈빛은 전혀 위축되는 바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이 상대에게 달렸음을 알고 있음에도.

“아르투르 공. 놓으십시오. 두라노에선 두라노의 법을 따르셔야죠. 지금 하시고 있는 건 엄연한 불법 행위입니다. 사적 결투도 두라노에서는 허용되지 않고요.”

퍽 -!

아르투르는 들어 올린 엔조의 뺨을 후려쳤다. 그의 손바닥은 둔기나 다름없기에 부서진 이빨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고, 얼굴이 피로 물들었다. 엔조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두 번째 타격이 날아들었다. 뺨을 몇 번 더 후려치자, 엔조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축 늘어져버렸다. 아르투르는 엔조를 대충 던져놓고 화를 가라 앉혔다. 주변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장님으로 보이나? 네놈이 일부러 폭동을 방치한 걸 모를 줄 아느냐? 내가 사망자 한명 없이 진압해주었건만, 그 따위 소리나 해? 이곳이 두라노가 아니었다면 넌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려웠을 거다. 이 모든 일은 레말리트에게 알리겠다. 처벌을 받아야겠지.”

떠나가는 아르투르를 보며 엔조는 입가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목표는 참주를 따르던 자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 버리는 것이었고, 그에 가장 큰 장애물은 아르투르의 인망이었다. 하지만 오늘 녀석은 도시의 여론을 스스로 적으로 돌리지 않았는가.

‘멍청한 놈. 가만히만 있었어도 제 녀석이 우리 형제단보다 훨씬 큰 인망을 가지고 계속 도시의 실권자로 남았을 것을. 이 도시에선 여론이 곧 왕이거늘, 그걸 전혀 모르는군.’

엔조는 터져나오는 피를 닦으며 킥킥 웃어댔다.

***

“그게 무슨 개 같은 소리야!”

아르투르의 격정적인 분노가 실린 목소리가 집정관의 관저에 울려퍼졌다. 레말리트와 에렌만이 그 앞에 침착할 수 있었고, 나머지는 두려움에 떨었다.

“진정하십시오. 아르투르 공. 분노하신 건 이해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뭐?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나? 레말리트! 자네가 임명한 총사령관이란 놈이 한 짓을 보게. 내게 한 무례한 일은 그렇다 치자고, 그런데 지금 놈이 무얼 한 건지 아는 건가? 치안을 유지해야 할 임무를 저버리고, 사적인 복수를 위해 의무를 방기한 거야! 도시를 혼돈의 소용돌이로 몰아갈 바보짓 말이다!”

“알아요. 압니다. 모두 제 잘못이지요, 엔조가 설마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군중들이 이렇게까지 흥분할 줄도 몰랐고요. 다 제 실책입니다.”

“무고한 사람이 스무 명도 넘게 죽었고 약탈당한 집은 샐 수도 없어! 엔조는 이 죽음에 책임이 있네. 그걸 물어야지.”

아르투르는 책상을 두 팔을 얹은 채 레말리트를 내려보았고, 에렌도 흥분해서 거들었다.

“집정관 각하! 지금 민심이 어떤지 아십니까? 신정부에 대한 두려움이 들끓고 있습니다. 사실상 신정부가 이번 폭동을 조장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고요! 유일한 방법은 엔조를 엄벌에 처하는 겁니다!”

레말리트는 음울한 표정이었다. 그는 엔조에게 많은 것을 위임해왔고, 믿을만한 자라고 생각했기에 군권 전체를 맡긴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을 뒤통수 칠 줄은, 두라노를 배신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동시에 여전히 레말리트는 권력 기반을 형제단 출신의 동지들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엔조는 그들을 대표했고, 그래서라도 버릴 수 없었다. 레말리트는 명석한 사람답게, 자기합리화도 빨랐다.

‘어쩔 수 없어. 한 번의 일탈쯤은 봐주어야 해. 두라노를 해방시킨 건 형제단이고, 그런 만큼 약간의 특권은 눈감아줄 수밖에. 엔조가 실수한 것일 테니, 잘 이야기해서 타이르면 될 거야. 하기야, 참주 밑에서 등 따습게 살던 자들이 우리 형제단의 심정을 어떻게 알겠나?’

생각을 마친 레말리트가 답했다.

“두 분의 말씀이 전부 맞습니다. 하지만 정치적 상황이 좋지 않아요.”

“정치? 무슨 정치 말인가?! 이대로 기껏 세운 공화국이 무너지게 둘 건가?”

“지금 도시 내에는 참주파에 대한 강경한 보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어왔습니다. 엔조가 그런 여론을 대표하고 있었고요. 지금 그를 처벌한다면 그들이 정부에 대한 지지를 거둘 겁니다. 그들은 신정부에 대한 지지를 거둘 텐데, 그러면 지금의 정부는 핵심 세력을 잃는 겁니다. 그런 정부는 머지않아 붕괴할거에요.”

에렌이 다시 소리를 높였다.

“강경파만 여론의 전부가 아닙니다! 집정관! 우린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 가야해요! 아니, 오히려 그런 목소리가 더 많습니다. 강경파가 집정관을 지지하지 않게 되더라도 내가 그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겠습니다. 그러면 정부는 운영될 수 있어요.”

레말리트는 음울한 목소리였다.

“원래라면 그런 방법도 가능했겠죠. 하지만 이제 그건 불가능합니다. 아르투르 공의 이미지가 악화되는 바람에 의원님의 평판도 같이 나빠졌거든요.”

아르투르는 기가 차서 말했다.

“이제는 엔조에 이어 자네까지 개소리를 하는 건가?”

“말 그대로입니다. 군중들에게 칼을 들이미신 것, 엔조를 폭행하신 것 모두 여론에 안 좋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건 공화국의 해방자가 할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왕이나 할 법한 행동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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