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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74화 (7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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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는 빠른 걸음으로 도개교를 건너 성 안쪽에서 벌어지는 백병전에 뛰어들었다. 성문을 연 병사들은 소수였던 반면, 그의 서너 배는 될 법한 적군들이 대열을 짜서 공격 중이었다.

“저놈들이 배신자다! 빨리 죽여!”

탑의 병사들은 참주의 근위병답게 장비도, 훈련도 탁월해보였다. 판금 흉갑을 입고, 양손검이나 할버드 같이 고도의 훈련이 필요한 치명적인 무기들을 사용했다. 밀집 대형에 의존해야하는 일반병들과 달리, 무예도 뛰어나 서로 간격을 유지한 채 사각에서 공격을 해왔다. 성문을 열어준 근위병들은 구석에 몰려, 하나 둘 쓰러져갔다.

“백인을 벤 아르투르가 왔다! 모두 덤-벼-라!”

힘이 넘치는 아르투르의 목소리가 단번에 분위기를 바꿔놓았다. 벼락과 같은 소리에 적병들이 주춤했다. 그 찰나의 틈을 타, 아르투르가 검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성검을 휘둘렀다. 한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빛나는 검신이 번득였다. 아르투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검을 휘둘렀고, 그건 마치 소용돌이가 지나간 것 같은 모양새였다.

“루드비코 델 레코레 - !!!!! 네 목을 가지러 왔다!”

빛을 내는 성검의 칼날이, 폭풍이 되어 적군들을 휩쓸었다. 적병들은 이따금 반격 하려했지만 단칼에 무기와 함께 방어구가 잘려나갔고, 피하기엔 너무 빠른 공격이었다. 그럼에도, 참주의 병사들은 결사적인 표정으로 아르투르를 향해 돌격해왔다.

“루드비코 만세! 델 레코레 만세! 두라노를 위하여!”

몰려드는 경비병들의 눈에는 광신적인 충성이 깃들어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경애하는 지도자를 지키기 위해, 물러섬 없이 싸웠다. 이들은 필사적으로 싸웠고, 시간을 벌며 죽어갔다. 아르투르를 막던 첫 번째 무리가 전멸했을 때, 탑 안의 석궁병들은 자리를 차지한 뒤였다.

잘 훈련 받은 정예 석궁수들이 아르투르를 노렸다. 그들은 갑옷이 보호해주지 못하는 안면이나 목을 정확하게 조준한 후, 팽팽하게 당겨진 석궁의 줄을 놓았다. 가공할만한 속도로 쏟아져 나오는 석궁의 탄환을 본 아르투르는 재빨리 몸을 낮춰 날아드는 탄환을 피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탑에서 또 탄환이 쏟아졌다. 이번에는 검을 들어 모조리 쳐냈지만, 또 다른 부대가 조준을 마친 뒤였다. 결국 아르투르는 갑옷 곳곳에 석궁 탄환을 적중당한 채, 건물의 뒤로 엄폐할 수밖에 없었다.

내통한 병사들은 그의 뒤로 따라붙어 방패로 서로를 보호했다.

“저놈들 공격이 끊이질 않는데!”

아르투르는 잘 훈련받은 석궁병들의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근위병들의 싸움 실력은 어디까지나 평민치고 쓸 만한 것이었지만, 저격수들은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불패의 기사들을 쓰러뜨리는 것은, 다른 기사가 아니라 눈 먼 화살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대로 있으면 저격수들이 점점 늘어나서,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게 될 겁니다! 행동해야합니다!”

아르투르는 상황을 보기 위해 벽 너머로 머리를 슬쩍 내밀었다가, 눈앞에 날아온 탄환을 보고 곧 바로 고개를 당겼다. 안면에 볼트가 적중할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문은 닫혀있지만, 아직 잠기지 않았어. 자네들이 달려가서 그 문을 열게.”

“저희가 도착하기도 전에 모두 석궁에 맞아 죽을 겁니다!”

“당연히 자네들만 보낼 리가 있나. 내가 시선을 끌겠네. 부탁하지.”

아르투르는 곧 바로 벽에서 몸을 튕겨나갔다. 땅을 박차고 오른 아르투르는 탑의 입구가 아닌, 우측을 향해 달렸다.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열댓 발이 넘는 석궁 탄환들이 몰려들었다. 아르투르는 처절하게 바닥을 구르며 볼트들을 피해냈다. 또 탄환이 한 가득 날아들었다. 아르투르는 재빨리 몸을 일으켜서 판금 갑옷을 입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속도로 옆을 향해 달려 나갔다. 도중 몇 개는 명중하곤 했지만, 갑옷 때문에 경미한 상해를 입혔을 뿐이었다.

“아르투르가 여기 있다! 날 맞출 자신이 있는 놈은 쏘아보거라! 루드비코의 목을 가지러 왔다!”

“감히 참주님을!”

“저놈, 저놈이 노예시장에서 우리 전우들을 죽인 놈이다! 죽여!”

아르투르의 도발에 모든 저격수들이 흥분해서 탄환을 쏟아냈고, 아르투르는 곡예에 가까운 움직임을 선보였다. 벽을 타고 올라가다가 박차고 한 번에 내려오거나, 몸을 뒤틀면서 피탄 면적을 줄여 공격을 피해내고, 동시에 날아드는 탄환은 궤적을 읽고 검으로 쳐내곤 했다.

한편, 그렇게 공격이 집중된 틈을 타서 동료 병사들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은 채, 탑의 문으로 뛰어들었다. 한창 도르래를 잡아당겨 문을 닫던 적병을 쓰러뜨린 그들은 문을 지탱하고 서서 아르투르에게 손짓했다.

“서두르십시오! 오래 못 버팁니다!”

옆으로 비켜나있던 아르투르는 재차 집중 사격을 당하면서도 탑으로 끊이지 않고 달려, 몸을 내던져 탑 안으로 들어갔다. 아르투르가 들어오자마자, 힘이 다한 병사가 도르래를 손에서 놓쳤고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닫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아르투르는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갑옷은 고슴도치의 피부처럼 수십 발의 볼트가 박힌 모습이었다. 아르투르는 박혀있는 볼트들을 한 손으로 쓸어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좋아. 바로 가지. 놈이 도망치기 전에 끝장내야한다!”

아르투르는 지체 없이 계단을 타고 올라가며, 자신을 가로막는 적병들을 단숨에 쓰러뜨렸다. 싸움이 넓은 공터에서 기껏해야 사람 네다섯 명이 지날법한 계단으로 바뀌자, 무엇도 그의 앞을 가로 막지 못했다. 볼트를 맞은 상처 곳곳에서 피가 흘러나왔고, 전투를 거듭할 때마다 상처가 늘어만 갔지만 그는 지치지도 않은 채 돌격했다. 병사들은 그의 모습을 보고 경외심을 느끼며, 자연스레 이끌려갔다.

아르투르의 습격에 반응해, 탑 곳곳에선 혼란이 일어났다. 수용되어있던 죄수들은 소란을 일으켰고, 병사들은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해방! 해방자가 왔다!”

“죄수놈들을 다시 가둬넣어라! 말을 듣지 않는 자들은 죽여!”

그사이, 아르투르는 수십 명의 병사들을 가을바람이 낙엽을 휩쓸 듯이 쓸어버린 후 탑의 상층에 있는, 참주의 거처에 도착했다.

참주의 거처로 들어가는 철문은 크고, 넓었다. 그 너머에선 고요한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다른 병사들이 그 고요함에 압도되어 있을 때, 아르투르는 단숨에 문 앞으로 도달해, 철문에 성검을 내리쳤다. 성검이 빛을 발하며 철문을 산산이 조각나서 흩뿌려졌다.

그 때, 문 안쪽에서 지글지글 타오르는 소리가 들리며 삽시간에 불길이 아르투르를 덮쳤고, 그 불길 속으로 위력적인 투창들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연기가 걷히고 난 뒤에도, 아르투르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은은한 빛이 그를 감싸고 있었다.

“저, 저놈 뭐야.”

참주의 거처 안에 있던 근위병들은 넋을 잃고 바라봤다. 불꽃을 내뿜는 함정에 이어, 투창까지 던졌는데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다. 아르투르가 검을 휘두르자 연기가 걷혀져나갔고, 그는 거침없이 문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거처 안쪽은 공간이 꽤 넓었는데, 여덟 개의 아치가 천장을 붙들고 있는 가운데 1층과 2층으로 나뉘어있었다. 1층에는 완전무장한 근위병들이 눈을 부릅뜬 채 창을 앞세우고 있었으며, 2층에는 즐비하게 저격수들이 늘어서 아르투르를 겨냥하고 있었다. 황금실을 엮어 만든 비단 옷을 입은 사내가 2층의 권좌에 앉아 오만한 눈빛으로, 아르투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님을 환영하는 것치고는 아주 거창한데.”

아르투르는 빈정대며 시선을 위로 올렸다. 권좌에 앉은 사내, 루드비코는 기이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눈매는 깊게 파인채로 다크서클이 짙었고 얼굴은 홀쭉해서 누가 보아도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방문객이 예를 갖추고 오지 않았으니까. 너는 자신을 소개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하마. 내가 두라노의 국부, 루드비코 델 레코레다.”

루드비코의 앞에는 큼지막한 철 방패를 든 네 명의 장신의 호위병이 각기 다른 방향을 바라본 채 서 있었다. 편집증에 가까운 철저한 호위였다.

“무기를 거두고 항복해라. 사생아 왕자. 네게 몸값을 치를 사람이 많으니 나로선 아주 이득이 될 거다. 너는 포위되었고, 갈 곳이 없다. 데리고 온 병력은 배신자 세 명과, 명검 한 자루뿐이구나.”

아르투르는 피식 웃으며 루드비코를 노려봤다.

“나도 제안하나 하지. 네 추종자들과 해외로 망명할 기회를 주겠다. 단, 즉시 도시를 떠나는 전제다.”

루드비코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따.

“도시의 절반을 죽이고서야 얻을 수 있는 걸, 고작 기사 한명이 와서 주장하니 어이가 없구나.”

잇달아, 루드비코는 격정적인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는 루드비코 델 레코레! 두라노의 국부다! 국부는 도시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시민들의 아버지요, 두라노 그 자체다. 두라노가 곧 나이고, 내가 곧 두라노. 내가 없는 두라노는 존재할 수 없으며 존재할 가치도 없다. 너는 두라노를 파괴하기 전까지는, 나를 죽일 수 없을 것이다.”

아르투르는 헛웃음을 지으며 황금의 검을 들어올렸다.

“정말로 시민들이 네 말에 동의할 거라고 생각하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루드비코는 눈을 빛내며, 광기에 찌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만들면 될 뿐이지.”

아르투르는 쓴웃음을 지었다.

“한때는 너도 꿈꾸는 바가 있는 사람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가 없군. 무엇이 널 그렇게 만들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아르투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광기에 물든 참주는 오른손을 휙 저었다. 그의 신호를 본 아르투르는 먼저 앞으로 달려나가며 날아드는 석궁 탄환들을 회피하고, 발로 땅을 벅차고 올랐다. 단숨에 수 미터를 뛴 아르투르는 1층을 지키고 선 창병들을 지나쳤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타올랐다.

여러 병사들이 그를 가로 막았지만, 부질 없는 일이었다. 격정적인 분노와 전투의 열정에 휩싸인 아르투르가 휘두르는 성검은 폭주하는 자연 재해였다.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맞상대할 수 없는 분노의 폭풍!

한창 분노를 이끌어내는 아르투르의 감정에 호응하듯, 성검이 더욱 거세게 빛났다. 잇달아 날아드는 탄환은 성검이 이따금 만들어내는 보호막에 부딪혀 튕겨나갈 뿐이었고, 근접 무기와 종이는 빛의 칼날 앞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언제까지 부하들만 보낼 셈이냐! 이리 나와 맞서 싸우자!”

루드비코는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켰다. 자리를 피하지도 맞서 싸우러 나오지도 않았다. 그저, 말을 했을 뿐.

“두라노가 저 기사의 목을 원하노라.”

루드비코의 목소리에는 사람을 끄는 힘이 있었고, 광기가 묻어나오는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의 말에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부나방처럼 던지며 아르투르를 죽이기 위해 몰려들었다.

“두라노에 영광 있으라아아아아아 -!”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가 지속되었다. 창병이 몰려들어 아르투르를 죽이려들면, 성검을 휘둘러 창대를 모조리 잘라버렸다. 석궁 탄환이 날아들면 보호막이 그를 보호했다. 아르투르는 끊임없이 적을 베고 찌르고 조각냈지만, 그때마다 적병들은 자리를 지키러 들어왔을 뿐 공포에 질려 달아나지 않았다.

다시금, 피와 강철의 노래가 참주의 거처에 울려 퍼졌다. 두라노 공화국이 전복되었던 그 장소에서, 다시금 두라노 참주국의 운명이 결정되고 있었다. 아르투르가 손을 한번 움직일 때마다 여럿의 생명이 목숨을 잃었다. 아르투르의 성검은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는 죽음의 선고였다.

전투가 끝이 났을 때, 아르투르는 온 몸에 상처를 입은 피 흘리는 야수가 되어, 병사들의 시체 더미 위에 있는 루드비코를 짓밟고 서 있었다.

“잡았다. 개자식.”

아르투르의 말에, 루드비코는 악의가 가득 담긴 증오의 표정을 지어보였다.

“지금 날 죽이지 않으면 후회할거다. 사생아 왕자.”

“아니. 너를 편히 죽일 리가 있나.”

아르투르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노려봤다.

“루드비코 델 레코레. 두라노 시민들에 대한 학살과, 폭정에 대한 대가를 물어 체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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