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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72화 (7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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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르는 몰려드는 적들의 속도와 간극을 살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제 각각 달려오고 있을 뿐, 일사 분란한 태도는 아니었다. 약점을 파악한 아르투르는 즉각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먼저 검을 맞댄 상대는 경비대장이었다. 그는 아르투르의 참격을 방패를 들어 막아냈지만, 단숨에 방패에는 금이 갔고 팔은 후들거렸다. 간신히 철퇴를 들어 반격해보려는 찰 나, 칼날이 그의 목을 지나쳐갔고, 잘려나간 머리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뒤이어 달려오는 경비병들은 거칠게 아르투르를 공격해왔다. 하지만, 아르투르의 공격이 더욱 빨랐다. 일격에 심장을 꿰뚫고 곧장 빼내어 다른 적의 목을 날려버렸다. 한 놈을 죽이면, 곧 바로 검을 비틀어 다른 녀석을 베었고, 몸을 격렬하게 흔들어가면서 적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군더더기가 없는 아르투르의 검술은 치명적이고 신속했으며, 빠르고 힘차게 날아드는 칼날의 행적은 종잡을 수 없었다. 눈 하나 뻐끔거릴 시간에 적들이 한명씩 쓰러졌다. 그의 공격은 예외 없이 급소를 찔렀고, 막기에는 너무 위력적이었으며 피하기엔 너무 빨랐다.

아르투르는 쉬지 않고 발걸음을 움직이며 눈에 보이는 적들을 닥치는 대로 베었다. 번득이는 황금의 검이 쉬지 않고 움직였고, 선혈이 낭자했다. 그가 춤을 추듯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주변에는 적들의 목이 나뒹굴었다. 그는 핏빛 물감을 쓰는 화가처럼, 한 편의 그림을 만들어냈다. 순식간에 열, 스물에 달하는 적들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괴, 괴물이다.”

아르투르에게 기세 좋게 달려들던 경비병들은 넋을 잃은 채, 걸음을 멈춰 세웠다. 장정의 두 배는 되는 체격과 달인의 경지에 이른 검술, 전신의 철판 갑옷까지. 그는 저지할 수 없는 폭풍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너희가 오지 않으면, 내가 가겠다.”

아르투르는 포효하는 사자처럼, 적들의 한복판으로 다시금 뛰어들려던 차, 고참병들이 앞으로 다가와 촘촘하게 엮인 그물을 아르투르에게 내던져 그를 휘감았다.

“놈을 묶어! 움직임만 봉쇄하면 괜찮다!”

담력이 큰 정예병들을 위주로, 그들은 연달아 밧줄을 꺼내 아르투르를 휘감기 시작했다. 아르투르가 그에 대응하기 위해 허우적거리는 사이, 용감한 병사들이 할버드를 가져와 내리쳤다. 잘 갈린 날이 갑옷을 뚫고 들어와 아르투르의 몸에 상처를 입혔다.

그러자, 아르투르는 검을 손에서 놓고는 그물을 양손으로 힘껏 붙잡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힘을 주자, 그물은 종이가 찢겨나가듯 힘없이 떨어져나갔고, 자신을 휘감은 밧줄은 오히려 자신이 힘을 주자 적병들이 내동댕이쳐졌다. 단 한사람의 힘에, 건장한 장정 여럿이 휘감았던 밧줄이 손쉽게 풀려버렸다.

“이, 인간이 아니야.”

그물에서 빠져나온, 상처 입은 아르투르는 가득 살기를 담아 적병들을 노려봤다. 병사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야수의 화를 자극해놓고 끝장내지 못했으니, 이젠 자신들이 죽을 차례라는 걸 직감했다.

“도, 도망쳐!”

패배감이 경비병들을 엄습했다. 아르투르는 심리적으로 무력화된 병사들 사이로 뛰어들어, 적들을 마구 격살했다. 건틀렛을 낀 주먹을 날려 머리를 부수고, 발길질로 적병의 갈비뼈를 부숴버렸다. 손에 잡히는 건 뭐든지 내던졌고, 그에 맞는 적들은 줄줄이 머리가 깨져 죽었다.

“누가 내게 맞서겠느냐!”

아르투르가 전투의 흥분 속에서 이성을 되찾았을 때, 그는 수십 구의 시체로 만들어진 붉은 산 위에 있었고, 살아남은 적병들은 등을 보인 채 달아나고 있었다. 여전히 아르투르의 야성은 더 많은 피를 원하고 있었지만, 냉철하게 갈고 닦은 전투 감각은, 지금이 물러날 때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이제 놈들은 수십이 아니라, 수백이 되어 몰려들테지.’

때마침, 에렌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투르 공. 떠나야합니다!”

아르투르는 패배감에 젖어 도망치는 적병들을 바라보다가, 조그마한 골목길로 달아나고 있는 에렌의 뒤를 따랐다. 도시에는 적의 습격을 알리는 종소리가 가득 울리고 있었다. 기병과 궁병, 보병들이 가득 광장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늦기 전에 떠나야 했다.

때마침 해가 저물며, 아르투르 일행의 종적을 어둠으로 감춰주었다. 뒤늦게 도착한 참주의 근위 기병들은 광장에 가득 쌓인 시체를 목격한 뒤, 적이 분명히 한 명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적들에게 호응하고 있는 배신자가 있는 것도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광경을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

밤이 찾아온 도시는 분명 어둠 속에서 고요해야하건만, 오늘 밤의 두라노는 유난히 떠들썩했다. 도시는 병사들의 군홧발 소리와 함성으로 가득 했고. 시민들은 두려움으로 밤을 지새웠다. 횃불을 든 병사들이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길거리의 모든 모퉁이를 뒤졌으며, 평소에 평소 반정부 성향으로 의심되던 사람들의 집의 문을 부수고 들이닥쳤다.

“아직 놈들은 도시를 빠져나가지 못했다! 반드시 붙잡아야한다!”

“놈들을 어디 숨겼는지 말하지 못하겠나!”

병사들은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의심자들을 매질했다.

“아악! 그만 하십시오! 저희 집은 저희 집은 이번 소란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거리 곳곳에서 고문당하는 시민들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부유한 저택에 기거하는 자들은 그저 남의 일인 양 커튼 너머로 비추는 길거리를 슬쩍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아르투르 역시 그런 자들 중 한명이었다.

“빌어먹을 놈들. 무장도 하지 않은 민간인들을 고문하다니. 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마.”

이를 아득바득 가는 아르투르.

“왕자님께서는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이런 일이 벌어지실 줄은 예상하지 못하셨나보네요. 그보다, 창가에선 물러나시는 게 좋겠어요. 혹시 모르니까요.”

등 뒤로 젊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의 목소리는 사람을 홀릴 것 같은 미성이었다. 아르투르는 창가에서 몸을 돌렸다. 눈앞에 보이는 건, 호리호리하고 날씬한 체형의 부서질 것 같은 가냘픈 여자였다. 어깨를 드러낸, 비단 재질의 잠옷을 입고 있어 노출이 많은 편이었다.

“당연히 이렇게까지 잔혹한 놈일 줄은 몰랐다. 그저 내 눈으로 직접 상황을 보고, 전복을 도울지 판단하고 싶었을 뿐인데 일이 꼬여버렸군.”

“역시, 귀하게 자라신 분들은 다르군요. 이렇게 말씀드리는 건 무례한 일인 줄 알지만, 순진하다고 해야 할 지,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르투르는 구태여 그녀의 말을 반박하지 않았다. 그럴 심적인 여유도 없었다. 서둘러 참주를 끌어내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참주의 품에서 누구보다 편히 살아온 당신이 그렇게 말할 자격은 없잖소. 루크레치아.”

그 때, 아래층에서 올라온 에렌이 여자를 향해 말했고, 아르투르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가족들은 무사한가?”

“예. 모두 잠들었습니다.”

아르투르는 고개를 끄덕였고, 루크레치아의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두 사람도 뒤 따라앉아, 서로를 마주 보았다.

“마스터 에렌. 제가 당신보다 편히 살아온 건 부정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저 역시, 저 나름대로의 고충을 가지고 살았답니다. 두라노의 장미로 사는 것이 꼭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랍니다.”

에렌은 경멸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헛소리하지 마시오. 당신은 십년 전 쿠데타가 벌어지던 그 날, 루드비코의 군대가 도시로 진입할 때, 저항하지 말아야하지 않다고 선동해서 그를 도왔잖소. 시민군 소집만 제때 이뤄졌어도, 도시의 전복은 막을 수 있었을거요.”

“저도 그 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제 의견을 표시했을 뿐이에요.”

에렌의 목청이 높아졌다.

“웃기지 마시오! 당신은 레무리아 반도 최고의 여자로서! 배우이자 가수로서, 젊은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소. 당신을 한번 안아보려는 남자들이 가득 했고, 당신은 그들을 이용해서 루드비코의 집권을 도운 거잖소. 다음에는 그의 정부가 되어서 온갖 더러운 권력을 함께 누렸고!”

핏대를 세우는 에렌의 비난에도 루크레치아의 표정은 조금 슬퍼졌을 뿐, 큰 변화가 없었다.

“마스터 에렌, 지금 중요한건 제가 저항군을 돕고 있다는 거에요. 한 배를 타고 있다고요. 저는 우리들 중 누구보다 참주에게 가까이 있는 사람이고, 치명적일 수 있는 정보를 전부 알고 있죠. 그리고 지금 당신 가족은 제 지하실에서 곤히 자고 있고요.”

아르투르가 덧붙였다.

“게다가 우리에게 결코 들키지 않을 은신처를 제공했지. 불만이 많은 건 알겠네만, 지금은 그녀의 도움이 중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네. 에렌.”

에렌은 아르투르의 말을 듣고도 진정이 되지 않는 지, 손을 부르르 떨면서 그녀를 노려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저도 긴 세월을 침묵해왔죠. 저희 가족만 무사하면 된다며, 겁쟁이처럼 살아왔죠. 미안합니다. 루크레치아. 당신의 도움은 잊지 않을 겁니다.”

루크레치아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말은 믿을 수 있죠. 마스터 에렌. 항상 정직하기로 유명하신 분이었으니까요. 당신의 비난도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하지만 제게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고, 그건 때가 되면 해명하고 싶어요. 단, 지금은 당면한 문제부터 해결하고 싶어요.”

아르투르가 보기에 이 루크레치아라는 가수는 상황판단이 아주 빨랐다. 대중을 상대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지, 미움에는 익숙해보였고 사람 심리를 읽는 데는 능할 공산이 높았다.

“그녀의 말대로군. 과거의 일은, 루드비코의 목을 날린 뒤에 생각하자고. 지금은 어떻게 저항군과 접선한 후, 도시를 해방시킬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하네.”

루크레치아가 슬픔이 담긴 미소를 입가에 지었다.

“그것도 이미 준비되어 있답니다. 레말리트에게 왕자님이 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미 모든 준비를 끝마쳐놨어요. 실행만 하면 되는 문제랍니다.”

레말리트는 일이 이렇게 될 줄 훤히 알고 있던 모양이었다. 아르투르는 적어도 그의 판단력이 영민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계획을 말해주게. 어떻게 하면 시내에 수천 명의 군대를 주둔시켜두고, 난공불락의 첨탑에 살고 있는 독재자를 무너뜨릴 수 있겠나? 나도 백 명, 무리하면 이백 명까지는 어떻게든 해보겠다만, 그 이상은 힘들어. 레잘리트가 시내에 군대라도 진입시키지 않는 이상, 방법이 없어. 경비병들은 수사망을 계속 좁혀올거고, 그러다보면 이곳이 들킬지도 모르지.”

루크레치아는 눈웃음을 지었다. 그건 특별한 호의라기보다는, 직업으로 인해 생긴 습관적인 미소였는데 아르투르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이백 명까지는 괜찮다고 하셨죠. 삼백 명 정도는 어떠신가요? 레잘리트의 요원들이 곳곳에 숨어있으니, 그들이 도움을 등에 업으면, 어떻게든 가능하시지 않나요?”

“그 도움이 쓸 만하다면, 해볼 만하겠지. 하지만 지금 상황은 삼백 정도가 문제가 아니라니까.”

루크레치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아뇨. 그것만 가능하면, 루드비코를 제거할 수 있어요. 그는 자신의 신변에 극도로 예민해서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자들만 첨탑에 들이거든요. 즉, 눈의 탑에 있는 근위병들의 숫자는 삼백에 불과하다는 거예요.”

아르투르가 무슨 소리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루크레치아가 말을 이었다.

“루드비코가 비상 시에 쓰기 위해 만들어둔 비밀 통로가 있어요. 그곳을 통하면 첨탑 앞으로 곧 바로 이동할 수 있어요. 그 뒤에는, 자유 형제단 소속의 사람이 비밀리에 첨탑의 문을 열어 줄 거예요. 그러면 들어가서, 놈은 제거하시면 된답니다. 원래는 암살자를 보내 잠입시키려던 계획인데, 왕자님이 오셨으니 그에 맞게 바꿔야겠죠.”

아르투르의 표정에 흥미가 돋았다. 건물 내에서의 싸움은 다수를 상대하기 좀 더 유리했다. 체력 안배만 잘한다면 해볼 만한 싸움일지도 모른다. 물론 루드비코의 정예 기사들이 생각보다 강하다면 꼼짝 없이 죽는 건 자신이 되겠지만.

어차피 항상 목숨을 내놓고 싸워왔던 처지였다. 아르투르는 서임 당시의 맹세를 되뇌었다.

‘용감하게 적을 마주하라. 신과 정의 앞에 진실하라. 명예를 목숨보다 귀히 여겨라.’

지금은 용감하게 적을 마주할 시간이었다. 결단을 내린 아르투르는, 루크레치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하겠네. 루드비코를 암살하러 가지.”

에렌이 조금 갸우뚱한 표정을 지었다.

“정문으로 쳐들어가는 것이 암살입니까?”

씩, 웃어 보이는 아르투르.

“생각을 바꿔보게. 에렌.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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