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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67화 (67/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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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아르투르 일행이 여관에서 나와 대로로 접어들었을 때, 그들은 모두 마음이 상쾌했다. 다들 배를 든든하게 채웠고, 푹 쉰 덕에 몸의 피로도 가셨던 덕이다. 배가 부르고 마음이 편하니 길을 따라 걸으며 경치를 구경하며, 여행의 낭만이란 것도 느껴볼 수 있었다.

풀숲에서 무장한 병사들이 뛰쳐나와 창을 들이대기 전까지는 말이다.

“금발의 기사 분은 말을 멈추시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판금 갑옷을 입은 사내가 아르투르에게 소리쳤다. 아르투르는 검의 손잡이에 손만 올린 채, 잠자코 그를 쳐다봤다.

“네놈들은 뭐하는 놈들이냐?”

사내는 자신의 휘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곳에는 탑이 그려진 문양이 있었다.

“우리는 두라노의 주인, 국부 루드비코의 병사들이오. 죄인을 인솔하러 왔소. 그대의 곁에 있는 저 상인을 내어주시오. 그리 한다면 나머지 분들은 여정을 계속할 수 있을 거요.”

사내의 창끝은 에렌을 향하고 있었고, 그들의 휘장을 본 에렌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목소리를 떨며 항변했다.

“- 비밀경찰 나리들, 대체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러시는 겁니까? 참주께 진 빚은, 지금 갚으러 가는 중입니다.”

대장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젯밤, 네가 선술집에서 국부 루드비코님의 통치를 음해하고, 불충한 언행을 한 것을 알고 있다. 가족까지 연루되고 싶지 않다면 순순히 따라오는 것이 좋을 터이다.”

사색이 된 에렌을 대신해, 아르투르가 항변했다.

“세상에, 저잣거리에선 왕도 욕할 수 있는 법이오. 뭐 그런 걸 잘못이라고 잡아가겠다는 거요? 공연히 힘쓰지 말고 돌아가는 게 낫겠소.”

대장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럴 순 없소. 루드비코님의 신민이라면 언제, 어디서나 그분에 대한 마땅한 존경심을 드러내야하는 것이 두라노인다운 행위요. 그의 행동은 충성심의 결여이니 크게 처벌해 마땅하오. 자, 비키시오. 이곳은 두라노 땅이고, 그는 두라노 인이니, 두라노의 법에 따라 체포하겠소.”

아르투르는 한숨을 내쉬었다.

“금화를 좀 줄테니 눈 감아 주는 것은 어떻소?”

“그건 두라노에서 허용되지 않소. 자, 비키시오.”

공연히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건만, 도무지 말이 안 통하는 녀석이었다. 아르투르는 한숨을 내쉬며 황금의 검을 뽑아들었다. 신성한 힘이 없이도, 황금의 검은 최고의 검의 반열에 오를 명검이었다.

“내가 법이라면 아주 잘 알지. 결투로 정합시다.”

검을 뽑으면서 생겨나는 마찰음에, 병사들의 창끝이 아르투르에게 향했다. 그들은 굳이 아르투르와 싸우고 싶지 않은 눈치였지만, 대장이 두려운 모양이었다.

“법의 집행에 있어서 결투란 것은 없소! 법의 집행을 방해하는 것은 가장 큰 죄요. 계속 우리의 앞을 막아선다면, 그대는 죽게 될 것이오.”

아르투르는 차분히 적의 숫자를 살폈다. 당장 보이는 건 열 둘 정도. 훈련은 잘 받은 편이고, 싸울 의지는 있지만 목숨이 위험하면 도망갈 눈빛이었다. 몇 놈 해치우면 알아서 해결될 문제였다.

“돌격! 기사를 해치우고 나머지 놈들은 잡아와라! 모두 체포해서 끌고 간다!”

전투가 시작되자,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아르투르는 일행들의 맨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아들었고, 병사들은 창을 앞세우며 용감히 달려들었다. 에렌은 허둥대면서 호신용 검을 꺼내들었고, 베르타 남매는 땅바닥에 엎드리고 두 손을 들며 비명을 질렀다.

아르투르는 검을 뽑을 때 쓰는 힘을 이용해서, 선봉에서 달려드는 병사의 허리를 향해 힘껏 휘둘렀다. 선혈이 흩뿌려졌고, 그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지 못한 채, 앞으로 고꾸라졌다. 숨이 멎기 직전, 심장에서 흘려보낸 마지막 혈류가 뇌에 도달할 때 그는 자신의 상반신이 분리된 것을 알게 되었다.

아르투르의 공세는 그곳에서 멈추지 않고, 잽싸게 칼을 빼내어 우측의 병사를 향해 내찔렀다. 촘촘하게 엮인 사슬 갑옷을 뚫고 들어간 칼날이 놈의 심장을 꿰뚫었고, 아르투르는 왼손으로 병사의 몸을 밀쳐내며 칼을 거칠게 뽑아들었다. 아르투르는 자신의 후방으로 들어온 병사의 공격을 흘려냄과 동시에, 적의 무기를 타고 흘러가 내리 베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명이 쓰러졌을 때, 나머지 병사들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며 한 발 물러섰다. 아르투르는 자세를 고쳐 잡으며 그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 때, 아르투르는 풀숲에서 번득이는 것을 발견했다. 자신을 겨누고 있는 석궁 촉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을 낸 것이다. 어림잡아도 대여섯 개는 되어보였다. 자신을 향한 공격은 방어한다 쳐도, 몇몇은 에렌을 겨누고 있었다.

“에렌! 몸을 낮춰!”

엉거주춤 서 있던 에렌은 아르투르의 말에 잽싸게 바닥에 엎드렸고, 그의 머리 위를 석궁 탄환이 스쳐지나갔다. 아르투르는 자신의 급소를 노리는 탄환들을 쳐냈다. 나머지 것들은 갑옷을 뚫지 못한 채 박히거나, 떨어져나갔다.

‘석궁수들을 매복시켜 놨을 줄이야. 까다로운 싸움이 되겠는데.’

황금의 검의 힘을 빌릴 수 없는 이상, 자신도 급소를 공격당하면 죽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다. 눈 먼 화살에 쓰러진 무패의 기사는 셀 수도 없이 많았다.

그 때, 자신의 뒤편에서 큰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신호에 맞추어, 투사체들이 바람을 가르는 날렵한 소리가 들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에서의 공격 이었다!

‘이대로면 꼼짝 없이 당할 판이군!’

아르투르는 그것을 쳐낼 준비를 하며 뒤돌았지만, 예상과 달리 화살의 궤적은 그를 지나쳐 근처에서 얼쩡대는 병사들에게 향했다. 날아든 화살들은 정확히 병사들의 급소를 꿰뚫었다. 목울대, 사타구니, 겨드랑이, 눈.

두 번째 휘파람 소리가 들리자, 재차 사격이 날아들었다. 그렇게 두 번의 일제 사격이 끝나고 가자, 자신 앞에 서 있는 적은 몇 되지 않았다.

융통성 없던 대장은, 가장 먼저 달려들어 아르투르의 칼에 절명한 판이었다. 더 이상 거리낄 것은 없었다. 남은 적들은 무기를 버리고 목숨을 애걸했고, 아르투르는 검집에 칼을 집어넣었다.

***

전투가 끝나자, 아르투르의 뒤편에 있던 숲에서 가죽 갑옷을 입은 궁수들이 나타났다. 궁수들은 전신을 녹색 의상과 문신으로 위장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아르투르도, 적들도 발견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르투르는 포로들의 무기를 치워놓고, 거리를 유지한 채 궁수들을 바라봤다.

“도와줘서 고맙소. 나는 지나가던 방랑 기사인데, 당신들은 누구시오?”

궁수들은 아르투르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잠자코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적대적인 행동은 없었지만, 우호적인 반응도 없었다. 그들의 복장에는 신원이나 소속을 특정할만한 어떤 단서도 없었다.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걸 보니, 신원을 드러내면 곤란한 비밀 결사인 모양이었다.

오랜 시간 그들이 답이 없자, 아르투르가 재차 물었다.

“그대들이 어떤 자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당신들을 적대할 의사가 없소. 만약, 뜻이 맞는다면 서로 도울 수도 있겠지.”

아르투르는 차분히 궁수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기다림이 길어지자,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마침내, 그들 중 인상적인 갈색 눈동자를 가진 사내가 대답했다.

“그대는 두라노 시민들의 자유를 지지하는 자요?”

“두라노의 사정은 내가 잘 아는 바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군. 다만, 방금 두라노의 참주와 원한이 생긴 것 같소. 그 점에선 우리가 서로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소만.”

갈색 눈동자의 사내가 답한다.

“그렇다면 우리와 동행해주시오. 심문해서, 우리 형제단에게 거리낄 것이 없다면 손 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보내드리지. 단, 무기는 압수될 것이고 안대를 착용해주셔야하오.”

“잠깐, 그건 경우가 아니지. 난 당신들의 포로가 아니고, 죄인은 더더욱 아니오. 나와 내 일행을 신뢰할 수 없다면 그저 우리가 길을 가게 내버려두시오. 우릴 도와준 일에 대해 보상이 필요하다면, 금화로 지급하리라.”

“우리 형제단을 목격한 이상, 그냥 보내드릴 수는 없소. 적어도 기밀을 누설하지 않을 자라는 걸 증명할 수 있어야지.”

아르투르는 헛웃음을 지었다.

“나 원 참. 날 도와주길래 아군인 줄 알았더니, 까다로운 친구들이었군.”

“당신을 도와준 게 아니라, 참주의 개들을 죽인 것이오. 열둘을 죽이는 것 보단 하나를 죽이는 게 쉬우니까.”

그 뒤로도 두 사람은 한창을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서로의 주장은 평행선을 달렸다. 아르투르는 신뢰를 보일 거면 제대로 보이라는 입장이었고, 상대는 아직 당신을 믿을 수 없으니 우리의 말에 따라달라는 말만 계속 했다. 말싸움이 이어지다보니, 분위기는 금세 험악해졌고 몇몇 궁수들은 활시위에 몰래 화살을 걸어놓았다. 그 모습에 분개한 아르투르는 고함을 지르며, 가슴을 탕탕 쳤다.

“나는 페르넬의 아들, 아르투르다! 내 말은 금보다 가치 있고, 철보다 두텁다. 일평생 맹세한 것을 모두 지켜왔건만, 어째서 이름도 모르는 수상한 단체의 뜻에 따라야한다는 것이냐?!”

말을 마친 아르투르는 자신을 노리는 자들이 많다는 만프레드의 충고가 떠올랐다. 실수였다. 상대가 워낙 답답하게 나오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본심이 나와 버린 것이다. 아르투르는 혀를 차면서 검의 손잡이를 엄지와 검지 사이로 잡았다.

“- 방금, 페르넬의 아들 아르투르라고 하셨소?”

이야기를 들은 갈색 눈의 사내는 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제길, 싸움은 피할 수 없겠지. 이기지 못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문제는 일행들이었다. 에렌은 싸울 줄 알지만 1인분 이상은 기대하기 어려웠고, 나머지 두 명은 힘없는 처녀와 소년이었다. 저들과 싸워 이길 수는 있겠지만, 일행의 안전을 보장하기 어려웠다.

“그렇다만.”

상대는 재차 되물어왔다.

“도파뉴 백작령을 구하고, 하이에버에서 농노를 위해 결투 재판을 벌였던, 왕의 아들이 맞소?”

아르투르는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언제고 날아들 화살을 피하고, 쳐낼 각오를 하면서.

“모두 활을 내려라! 이분은 진정한 기사이시니, 약속한 바를 지키실 것이다!”

궁수들은 그의 지시에 따라 활을 내렸고, 갈색 눈의 사내는 복면을 벗더니, 다가와서 아르투르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결례를 저질러서 죄송합니다. 정의로운 아르투르 공! 저희가 위대한 분을 몰라 뵙고 저지른 실수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저는 자유 도시들의 해방을 위해 싸우는 자유 형제단의 지도자, 시라크 드 보틈입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르투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속임수가 아닌가 싶어 시라크의 동료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자신에게 보내던 경계의 눈빛은 어느 사이 선망의 눈빛으로 변해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시선을 의식하고 다 같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가장 낮은 자를 위해 싸워주시는 아르투르 공! 저희의 무례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십시오!”

아르투르는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당연히 내 목을 노리고 달려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최 날 이렇게 극진히 대접해주는 이유가 뭔가?”

“그야,”

시라크가 고개를 들면서, 아르투르를 올려다보았다.

“이들은 오랫동안, 기다려왔으니까요. 불의한 권력 앞에 물러서지 않는 진정한 기사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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