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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65화 (6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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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기병들이 땅을 울리며 전진했다. 말들은 신호에 맞추어 발걸음 속도를 조절했다. 걷다가, 속보로 뛰었다. 일자 대형을 갖춘 창기병들은 서로 간의 간격을 유지한 채, 세 열로 나뉘었다.

수백 쌍의 말발굽들이 땅을 두드리자 말발굽 소리와 먼지구름이 주변을 뒤덮었다. 아르투르는 마상창을 겨드랑이에 끼운 채 1열의 선봉에서 돌격했다. 은방패 창병들은 기병들의 위압적인 질주에도 자리를 지켰다.

1열의 창병들은 양손으로 장창을 잡고 무릎을 꿇었고, 2열의 창병들이 창을 앞세운다. 3열에선 1,2열을 지원했다. 4열은 예비대로써 쓰러진 전우의 자리를 메울 준비를 한다.

조직된 장창 방진과 완전 무장한 창기병들은 단연코 이 시대의 가장 뛰어난 군사 집단 중 하나였다. 최강의 용병단의 명성을 놓고 두 집단이 충돌했다. 대부분이 실전 경험을 치룬 병사들 인터라, 상대의 기량을 가늠해보고선 침을 삼켰다.

많은 이들은 내일을 보지 못하리라. 모든 병사들은 자신만은 내일을 얻을 수 있기를, 구세주에게 간절히 빌면서 위치를 지켰다. 양 진영이 가까워지자 아르투르는 에쿠잘루스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아르투르에게 호응한 에쿠잘루스는 바람처럼 질주했고, 뒤를 따르는 기병들도 최고 속력으로 창을 앞세우며 돌진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 !

“적들을 쓸어버려라 - !”

천둥벼락 같은 아르투르의 외침이 퍼져나가고, 기병들이 호응해 같이 외쳤다.

“돌격 - ! 말도 없는 거지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

창과 창의 벽이 부딪힌다. 땅에 두 발로 버티고 선 평민 출신의 병사들과 물려받을 것 없는 부유한 출신의 집안 자제들이 부딪힌다. 은방패 병사들은 일반적인 마상창보다 긴 파이크(pike)를 내밀어 자신들을 보호하고 있었지만, 튼튼한 철갑으로 보호받는 1열의 기사들은 아랑곳 않고 장창의 벽으로 나아가 마상창으로 적들을 꿰뚫는다.

속도가 느려진 틈을 타서 할버드를 든 후열의 보병대가 말이나 기수를 떨어뜨렸다. 이따금 중석궁도 날아와 몇몇 기사들이 절명한다. 보호 받지 못하는 부위를 장창에 꿰뚫린 말들이 구슬피 울며 쓰러졌고, 기수들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다.

아르투르는 능숙하게 세 명의 장창병을 꿰뚫은 후 날아드는 석궁을 칼로 쳐낸 뒤 말을 돌렸다. 그의 움직임에 따라 다른 기사들도 말을 돌려 되돌아갔다. 1파의 공격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무장이 가벼운 2파의 창기병들이 돌격해왔다.

앞선 돌격에서 보병들의 대열에 빈틈이 생겨났지만 은방패 부대는 꿋꿋이 전진해 전우들이 쓰러진 자리를 채웠다. 전열은 반드시 사수되어야했다. 최강의 보병대라는 자신들의 자부심을 위한 투쟁이자, 무시무시한 창기병의 파도 앞에서 살아남은 방법은 승리뿐이라는 것을 아는 베테랑들의 선택이었다.

도망치는 것보다는, 싸우는 것이 살 공산이 높다.

마상창과 파이크가 교차해서 싸움을 벌이고, 이번에도 백수십 명의 사람들이 쓰러졌다. 말과 사람이 쓰러지고 비명소리를 내지르는 돌격의 현장은 아비규환이다. 2파도 돌격을 마치고 되돌아갔다. 이번엔 3파가 돌격을 시작했다.

아르투르는 마상창을 도로 받은 후, 전황을 살피고 있었다. 저들은 보기 드문 정예였다. 집단의 승리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고, 전우가 자신을 지켜줄 것을 믿으며 함께 싸웠다. 반복되는 창기병들의 돌격에도 대열이 무너지지 않고 있었다.

물론 돌격이 반복될 때마다 더 많은 자들이 쓰러지는 건 저쪽이었지만, 이쪽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자신의 임무는 본대를 구원하는 것이지 여기서 저 보병들을 상대하는 게 아니었다. 서둘러 돌파해야했다.

‘문제는 말의 체력이다.’

보통의 전투마들은 두 번, 무리해도 세 번의 돌격이 전력을 다할 수 있는 한계다. 그 뒤에는 반드시 말을 갈아타야했다. 하지만 이곳엔 말을 재보급해 줄 본대가 없다.

‘지금이 제대로 일격을 가할 기회다.’

아르투르는 적의 진형을 살폈다. 악을 지르는 함성과 비명이 울려 퍼지는 치열한 전장 속에서 차분하게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고도의 집중력과 침착성을 요했다. 냉철한 시선으로 적들을 살핀다. 죽어가는 동료들의 비명에 잠시 귀를 닫은 채, 오직 승리의 길만 찾는 것이다.

‘중앙은 두터워. 좌측 대열은 교체가 빠른 것을 보니 노련한 병사들이 많다. 반면 우측은 쓰러진 자리를 메우는 게 느려. 실전 경험이 부족한 녀석들이 많은거야.’

적들의 파악을 끝낸 아르투르는 2파까지 동시에 출전 명령을 내렸다.

“전군, 쐐기 대형으로!”

이번의 일격으로 끝장 낼 생각이었다. 그들은 하나의 쐐기를 이루었다. 가장 날카로운 끝점에는 아르투르가, 뒤로 갈수록 숫자가 많아지는 형태로 진을 짰다. 그들은 마침내 하나의 창이 되어 적들을 꿰뚫을 준비를 마쳤다.

“내 뒤를 따르면 승리를 얻을지니!”

수백기의 기병들이 하나의 의지 아래 은방패 부대의 우측 대열로 돌격했다. 아르투르를 무수한 파이크들이 저지했지만, 마상창을 휘둘러 걷어냈다. 그 틈을 타서 에쿠잘루스는 용감하게 보병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자신에게 힘껏 창을 내지르려던 병사의 얼굴이 말발굽에 걷어차이자, 두개골이 으스러지며 뇌수가 터져나온다. 노련한 병사들은 말을 먼저 노리며, 할버드를 휘둘렀다.

아르투르는 여명을 휘둘러 단숨에 공격들을 쳐냈고, 능숙하게 에쿠잘루스를 몰아 공격을 피해냈다. 적 보병대가 한 번의 기회를 놓치자, 그 뒤는 아르투르의 시간이었다. 검이 한번 휘둘러질 때마다 적들의 목이 날아다녔다.

휘둘러서 베고, 찔러서 꿰뚫는다. 짓밟아부수고 걷어찬다!

창병들의 대열에 난입한 아르투르가 지나갈 때마다 대열에 큰 구멍이 생겼고, 그의 주변으로 피보라가 몰아쳤다. 그 광경을 본 신병들이 지원을 가야할까 망설였다. 그 빈틈을 사이로, 아르투르를 뒤따라온 기병들이 난입해 무기를 휘둘렀다.

댐에 난 작은 물줄기가 댐을 무너뜨리듯, 아르투르가 만들어낸 작은 구멍을 시작으로 은방패 보병대의 전열은 무너졌다. 혼란은 우익에서 시작되어 중앙으로 번져나갔다. 파이크 장벽이 허물어지자 보병들은 기병들과 개별적인 저항을 벌여야했다.

제 아무리 훌륭한 보병대도 돌격을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면 기병대의 사냥감에 불과하다. 중무장하고 날뛰는 금괴 기사들과 사람을 걷어차도록 훈련된 난폭한 군마들 앞에 은방패 부대는 하나씩 괴멸해갔다. 본디 두 용병단은 오랜 경쟁 관계였기에 이번 기회에 본때를 보이려는 자들도 있었다.

“밀어붙여라!”

패색이 흩어지자 일부 은방패 부대는 근방의 언덕으로 올라가 원형진을 짜고 버티기 시작했다. 기병 앞에서 개별적으로 흩어져봐야 죽음 밖에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베테랑 용병들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아르투르는 적들의 대열이 무너진 것을 확인하고, 병력을 재집결시켰다.

“그만! 여기까지! 저들을 가게 내버려둬라! 다시 정렬하라! 우리의 목표는 적 본대다!”

아르투르는 전투의 흥분에 적들을 쫒으려는 기병들을 쫓아다니며 제지했고, 결국 짧은 시간 사이 기병들은 재정비를 하는 데 성공했다.

아르투르는 언덕에서 버티는 잔당들을 내버려둔 채, 능선 너머로 말을 달려갔다. 그러자 본대가 싸우고 있는 평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프레드의 보병대는 두 배가 넘는 적들에 휩싸여 어려운 조건에 처절히 버티고 있었다.

“최고 속도로 돌격 - !”

아르투르는 망설임 없이 적들의 대장기를 향해 돌격했다. 400명의 창기병들이 일제히 언덕에서 쏟아지는 모습은 적들에게는 공포심을, 버티던 아군 보병대에겐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후방! 후방을 방어하라!”

스테판은 숙련병 부대를 차출해 후방으로 보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숙련병들의 숫자도 충분치 않았고, 창기병들을 저지할 마땅한 대응 수단도 없었다. 창기병들의 돌격이 적들의 보병진을 휩쓸었다.

그나마 저항해보려던 부대는 마상창에 꿰뚫려 순식간에 궤멸되었고 나머지 병사들은 이제 공포 속에서 도망치기 바빴다. 남은 아군의 숫자가 얼마나 되건 그건 중요치 않았다. 자기가 죽을 싸움이면 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은방패 용병단의 대열이 갈라졌다. 사방에서 병사들이 말발굽에 치이고 창에 꿰이며 검으로 베였다. 아르투르는 그 선봉에서 닥치는대로 적들을 베면서 대장기를 향해 돌격했다. 달려오는 아르투르를 본 스테판은 쓴 표정으로 호위병의 장창을 뺏었다.

“은방패 부대가 패배했으니, 우리는 진 것이다.”

스테판은 눈을 부릅뜨고 질주해오는 에쿠잘루스를 마주봤다.

‘좋아. 네놈을 과소평가했다는 건 인정하지. 하지만 적어도 네놈만은 저승길 동무로 데려가주마.’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스테판은 온 신경을 아르투르에게 집중시켰다. 아르투르도 그런 스테판을 보며 속도를 더욱 올리며 걸리적거리는 모든 것을 휩쓸어버렸다. 스테판이 침을 꿀꺽 삼켰다.

‘단숨에 말의 목을 꿰어 낙마시킨 후, 육박전으로 끝장낸다.’

두두두두두두 - !

땅이 울린다!

“죽어라!”

스테판은 앞으로 창을 내질렀다. 정확히 에쿠잘루스의 목을 노린 일격이었다. 하지만 성난 에쿠잘루스는 똑똑히 들어오는 공격을 보고 있다가 급격히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큭 -?!”

백마가 질풍 같이 자신의 오른편으로 지나갔다. 그는 목에서 통증을 느끼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스테판의 마지막 의식은 자신의 눈으로 목이 잘려나간 자신의 몸을 보는 것이었다.

“적장, 물리쳤다!”

아르투르는 스테판의 호위병을 죽이고 그 깃발을 뺏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것을 부수어버렸다. 그 행동으로, 전투는 반전의 여지없이 끝나버렸다. 남은 것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

피비린내와 시체 썩은내, 오물 냄새가 뒤섞인 전장의 냄새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아르투르는 능선에 앉아, 자신의 갑옷에 엉겨 붙은 피를 닦아내며 전장은 내려다봤다.

군대를 따라다니는 매춘부와 고아들이 시체를 돌아다니며 약탈물을 챙겼다. 그들은 아군 부상자를 실어가는 한편, 적군 부상자들은 숨통을 끊었다. 살아남은 포로들은 옜 전우들을 화장할 장작더미를 쌓았다. 쓴 웃음을 짓는 아르투르의 등 뒤로, 만프레드가 아르투르의 어깨를 치며 나타났다.

“휘유, 정말 대단한 날이야. 잘했어, 아르투르! 은방패 창병들을 정면에서 격파할 줄이야. 내 기대 이상을 해주었는데.”

아르투르는 만프레드의 들뜬 목소리에서, 부풀어 오른 기대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콘도티에레로서, 만프레드는 막대한 전리품과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 - 잔존한 은방패 부대는 어떻게 됐지?”

“아, 새롭게 우리 부대로 편입되는 조건으로 투항을 받았어. 새롭게 정예 병력들을 얻은 건 큰 이득이야.”

“방금 전까지 같이 칼을 맞대던 사이 아니냐. 동료가 된다고 등 뒤를 맡길 수 있겠어?”

가볍게 웃어보이는 만프레드.

“역시 왕자님 아니랄까봐 별 일을 다 걱정하는군. 우리 용병들은 그런 것 걱정 안해. 의리? 그걸 저놈들 가운데 몇 놈이나 지킬 것 같나. 우린 먹고 살고, 출세하자고 모인 놈들이야. 그건 금괴 기사나 은방패 보병이나 똑같지. 그들은 결국, 두둑한 보수를 받아오는 승리하는 지휘관을 따를 거다. 내기해도 좋아.”

아르투르는 문득, 만프레드가 그토록 많은 돈을 모아서 어디에 쓰려는 지 궁금해졌다. 또, 용병들은 그렇게 모인 돈으로 무엇을 할까? 차곡차곡 모아, 고향으로 돌아가 신세를 바꾸는 자들의 수는 얼마나 될 것인가?

“너희 용병단, 금괴 기사들 말이다. 정식 기사단들 못지않게 용감히 싸우더군. 출신도, 성향도 다른 이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 있던 비결이 뭐냐?”

만프레드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았다.

“당연히, 죽음을 감수하는 것에 대한 합당한 대가지.”

“금괴 기사들 정도면, 이미 돈을 벌만큼 번 자들이 대부분일텐데, 아직도 금을 찾아 전장을 헤매는거냐?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삶을.”

껄껄 웃는 만프레드.

“우리가 보기엔 네놈이 별종이야. 우린 황금이라도 얻지, 넌 싸움을 통해 뭘 얻는데? 명예? 명성? 그래서 그게 네게 뭘 가져다주는데?”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아르투르를 보며, 만프레드는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어쨌든, 함께 해주었으니 우린 전우 아니겠나?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데. 이 손을 잡아라. 네게도 손해가 될 건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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