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왕 아르투르-59화 (5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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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께서 네 피를 원하신다!”

정면에서 도끼가 회전하며 날아들었다. 아르투르는 날아드는 도끼의 궤적을 읽고 단숨에 검으로 후려쳤다. 빛의 검과 룬문자가 새겨진 도끼, 두 성유물이 충돌하자 푸른 섬광이 일면서 도끼는 뒤로 튕겨 나가 푸후니크의 손으로 돌아갔다. 마법의 힘이 그의 도끼를 손으로 되돌리게 해준 모양이다.

오른손의 도끼는 받아냈는데, 왼손의 것은 어디 있지?

아르투르는 뒤가 서늘해지는 감각을 느끼며, 곧장 등을 돌려 날아드는 도끼를 받아냈다. 재차 푸른 섬광이 일면서, 이번에도 튕겨 나간 도끼는 빙글빙글 회전하며 하늘로 올라갔다.

‘하늘로?’

아르투르가 위를 돌려다보니, 하늘에 달을 등지고 선 푸후니크가 있었다. 인간이라면 도저히 뛸 수 없는 높이였다. 어릴 적 읽던 신화 속의 반신 영웅들이나 할 법한 기예였다.

“시발, 넌 뭐하는 새끼냐? 인간 맞아?”

“말했지 않느냐! 나는 드래곤-신, 안칼라타르의 아들이니라!”

푸후니크는 공중에서 던졌던 도끼들을 낚아채며, 공격할 태세를 취했다. 하늘에서 낙하하는 그는 마치 먹잇감을 찾는 매와 같은 사나움으로, 아르투르를 내리쳤다. 아르투르는 뒤로 몸을 굴러 피했다. 그가 있던 자리에 푸후니크의 도끼가 꽂히자, 바위가 조각나고 땅에 균열이 일었다.

아르투르는 본능적으로 움츠려들며 뒤로 물러났고, 푸후니크는 발걸음으로 땅을 울리며 그를 쫓아왔다.

“오 - 아!”

맹수의 울부짖음과 같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힘줄을 풀리게 하는 외침이었다. 순간 다리가 풀리고 주저앉을 뻔 했지만, 아르투르는 의지를 담아 이겨냈다.

“어딜 도망가느냐! 너희 세상의 첫 종말을 목격하라!”

아르투르는 빛의 검의 손잡이를 꽉 붙잡은 채, 정면으로 놈을 겨누었다. 푸후니크의 도끼에서 일렁이는 푸른 불꽃은 용이 포효하는 것과 같은 형상을 띄면서, 자신을 향해 쇄도해왔다. 대기가 통째로 얼어붙을 법한 추위가 몰려왔다.

“알 - 그레고!”

“황금의 검이여!”

그에 맞서, 빛의 검의 광채도 점차 거세어지면서 황금빛에서 순수한 백색의 빛으로 변해갔다. 하얀 불꽃이 아르투르의 온 몸을 휘감으며 갑옷의 형태를 띄었다. 아르투르가 끌어낼 수 있는 검의 힘을 이미 진즉에 넘은 상태였다. 검이 스스로 자신의 호적수를 만나고, 힘을 빌려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르투르는 자신의 몸을 흐르는 믿기지 않는 성스러운 힘을, 앞으로 내뿜었다. 한기가 서린 푸른 불꽃에 대항해, 뜨거운 은색의 불꽃이 퍼져나갔다.

오래전에 멸종한 동토 생물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입은 야만 전사가 든, 고대의 용들의 축복을 받은 도끼가, 세련된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가 휘두르는 성검과 맞부딪혔다. 일찍이 세계가 잊고 있었던, 잊혀진 힘들의 대결이었다.

극한의 냉기와 한 없이 높은 열 속에서, 그들은 얼음과 불에 둘러싸였고, 두 상이한 힘이 서로를 휘감았다. 거대한 폭발이 뒤따랐고,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산맥 아래의 모든 사람들조차 목격할 수 있는 빛이 내뿜어졌다.

아르투르가 그 싸움의 한 가운데서 할 수 있는 것은, 온 힘을 다해 검의 손잡이를 붙잡아 무기를 놓치지 않는 것이었다. 이 싸움은 진즉에, 자신이 알던 무예의 범주를 벗어나있었다. 그저 검과, 본능적인 감각이 이끄는 대로 싸우며 끝에 승리가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런 자가 세상에 풀려나갔다간,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될 터였다.

두 사람을 둘러싸던 빛이 걷히면서, 아르투르는 푸후니크가 저 멀리 나가 떨어져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자신의 도끼와 함께였다.

아르투르는 그를 끝장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달렸다. 온 몸이 무너질듯한 고통이 다가왔지만, 망설일 수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득 찼다.

“허억, 허억, 허억.”

그의 앞에 다가가서 보니, 푸후니크의 전신은 불타있었고 신체 일부분은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가죽 갑옷도 헤지고, 불타서 형상을 알아보기 어려웠다. 놈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명이 멎은 것 같았다.

아르투르는 승리를 확실히 하기 위해, 성검을 들어올려 놈의 목을 향해 내리쳤다.

그 때였다.

뿔 투구 속에서 푸른빛이 번득이더니, 놈이 도로 눈을 떴다. 시커멓게 불탄 팔이 도끼자루를 순식간에 쥐었고, 그의 입이 기이하게 움직이며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사스라-아크탄-나하드!”

놈은 다시 힘을 얻은 듯, 번개 같이 몸을 일으켜 뒤로 폴짝 뛰어 물러났고, 아르투르는 불타버린 대지 위를 달려가 재차 검을 휘둘렀지만, 푸후니크는 날렵한 몸놀림으로 이리저리 공격을 피했다.

목을 향해 칼날이 날아들면 고개를 젖히고, 심장을 노리고 베면 뒤로 물러났으며, 심장을 찌르려들면 좌우로 움직여 교란 시켰다. 도중에 무너진 성의 잔해 사이로 오가며 시야를 교란하는 감각도 뛰어났다.

아르투르는 놈이, 상상할 수 없는 역량을 가진 전사라는 점을 실감했다. 이미 인간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넘은, 그야말로 신화에 한 발자국 걸치고 있는 자.

그것이 자신이 상대하고 있는 적이었다.

빛의 검의 날이 번득일 때마다 돌로 된 성의 잔해들이 뭉텅뭉텅 잘려나갔다. 푸후니크가 공격을 피하면서 시간을 벌 자, 징그럽게 불탔던 피부들이 점차 제 모습을 찾아갔다. 마치 시체가 도로 생명을 되찾는 것 같았다.

“이런 징그러운 새끼. 불타 죽어놓고 살아났다고?”

푸후니크 역시 큰 웃음소리를 냈다.

“용의 피로 목욕한 자는, 불사의 육신을 얻게 된다는 전승을 아느냐? 하물며 용의 피를 훔친 자가 그러할 텐데, 용의 아들쯤 되면 어떻겠느냐? 이 필멸의 불신자야. 감히 네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신성한 육신을 파괴할 수 있겠느냐? 네 검이 아니었다면, 너는 진즉에 죽었을 것이다.”

황금의 검이 그의 말에 반응하듯, 더 강렬한 빛을 내뿜으며 예기를 흘렸다.

“너도 단 한방만, 제대로 맞으면 끝날 것 같은데.”

“오만하긴, 나는 반인반신이다! 세상에 종말을 선고할, 검은 재앙의 대리인이며, 문명을 만드는 불신자들의 세상에 파멸을 내릴 것 이니라!”

하지만 푸후니크의 거창한 말과 달리, 아르투르는 점차 우세를 점하며 그를 궁지로 몰고 있었다. 처음에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것 같은 몸놀림이었지만, 몇 차례 무기를 부딪히다보니 놈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점차 푸후니크의 몸에 생겨나는 잔 상처가 많아졌고, 열세에 몰린 걸 아는 그는 다시 풀쩍 뛰어 근방의 바위 위로 올라갔다.

놈은 양손에 있는 도끼를 다시 던질 태세를 취했고, 아르투르는 자리에 멈춰서 놈을 응시하며, 공격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그런데 놈은, 일전에 말했던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혼자 큰 소리로 되뇌이는 것이 아닌가.

“알 - 그레고! 디르자 - 하 - 키즈탄!”

그의 말이 하나하나 맺어질 때마다, 그것에 호응해 주변의 공기가 떨렸고 불길한 기운이 몰려들었다. 힘을 가진 언령이 모두 외워지자, 푸후니크는 오른발을 들어 거세게 땅을 내리쳤다. 그의 오른발에서 시작된 충격파의 물결이 모든 장애물을 휩쓸면서 아르투르를 향해 날아왔다.

급히 멈춰선 아르투르는 땅에 검을 꽂았고, 빛의 보호막을 형성해 몸을 보호했다. 보호막 곳곳에 금이 갔지만, 버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아르투르가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니, 푸후니크는 고개를 뒤로 빼면서, 깊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주변의 공기가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빛의 검은 강렬한 빛을 내며, 위협을 경고했다.

아르투르는 자신의 정신력을 쥐어짜내, 검의 빛을 다시금 발현시키며 보호막에 난 구멍들을 메꾸었다. 하지만 미쳐 틈이 매워지기 전, 푸후니크의 입에서 맹렬한 불길이 쏟아져 나왔다. 화염의 불길은 보호막을 뚫지 못한 채 위아래로 흩어져 사라졌지만, 깨어진 틈새로 불길이 새어 들어오며 아르투르의 피부를 익히기 시작했다.

검의 빛이 강렬히 빛나며, 아르투르의 화상을 지속적으로 치료해줬다. 그렇지 않다면, 아르투르는 그대로 익어버렸을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검이 가진 치유의 힘도, 산 채로 타오르는 고통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아르투르는 온몸이 불꽃 속에서 익어가는 가공할 만한 고통 속에서 빛의 검을 꽉 붙잡은 채 간신히 버티고 섰다. 얼굴 피부가 녹아내리다가, 검의 힘이 치료해주었다. 치료가 끝나면 다시 익어 내리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겟다 싶은 고통이 반복된다.

“아아아아아악!”

아르투르는 온 몸의 힘을 팔에 집중 시킨 채, 그저 버티었을 뿐이다. 힘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면서 눈앞이 어지러워졌고, 몸이 휘청거렸다. 순간 검에서 손을 놓칠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다. 검을 놓쳤다간 보호막이 깨질 것이고, 불길에 휩싸여 최후를 맞이하겠지.

아르투르는, 그저 버티고 서서 이 고통스러운 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 푸후니크도 입을 벌리며 사력을 다해 불길을 쏟아 부었다. 푸후니크 역시 온 몸의 힘을 몰아 쓰는 중이었다. 그의 신성한 혈통은 용의 불꽃을 빌릴 수 있게 해주었으나, 몸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두 사람은 버티고 서서 온 힘을 다했다. 검이 가진 치유와 보호의 힘이 희미해질수록, 불길의 세기도 약해져갔다. 기력을 다 한 푸후니크가 뒤로 넘어갈 때, 아르투르도 바닥에 검을 꽂아 넣은 모습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두 사람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탈진 상태에서, 숨을 가다듬으며 무기를 꽉 쥐었다. 성검의 힘이 아르투르에게 원기를 도로 가져다줄 때, 푸후니크의 몸에 흐르는 용의 피가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었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몸을 일으켜, 서로에게 무기를 겨누었다. 두 전사는 몸을 비틀거렸지만, 방금 죽기 전까지 몰렸던 흔적들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푸후니크는 퉤 - 하고 바닥에 침을 뱉었다.

“빌어먹을 성검 같으니. 그 증오스러울 정도의 힘은 여전하군. 이봐, 무기를 내려놓고 맨 몸으로 싸워 볼 생각 없나?”

“반신 나리. 그건 당신에게만 유리한 싸움이지.”

“뭐, 상관없다. 네 머리를 따주마!”

푸후니크가 달려들 때, 아르투르는 비어있는 왼손에 여명을 뽑아들었다. 굉장한 명검이었지만, 마법 도끼를 상대로는 얼마나 버틸지 장담할 순 없었다. 그저, 해보는 수밖에.

두 전사는 양손에 각각 검과 도끼를 든 채 격돌했다. 그들은 검무를 추는 한 쌍의 파트너가 되어 유려한 무기의 궤적을 그려냈다. 모든 공격이 군더더기 없이 이뤄지는 군무였다. 그들의 싸움은 강철의 춤이오, 이따금씩 내뱉는 비명은 피의 노래였다.

서로가 입은 상처는 순식간에 치유되었고, 두 축복받은 전사는 사랑에 빠진 연인들처럼, 격렬한 감정을 담아 서로를 노려봤다. 적의와 투지, 경쟁심이 불타올랐다. 투쟁심이 그들의 싸우을 이끌었다.

두 사람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자를, 절대로 살려 보내서는 안된다. 우리 문명에, 우리 일족의 최대의 적이 되리라.’

동시에, 다른 생각도 들었다.

‘언제, 전력을 다해 맞서 싸울 수 있는 상대를 다시 만날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은 비틀린 미소를 지으며 격돌했다. 눈폭풍이 다가와 그들을 휩쓸었지만, 살을 에는 추위조차 전투의 열기를 뒤덮지 못했다. 그들은 전투에서의 이점을 얻고자, 높은 곳을 향해 한 발자국 씩 움직이며 무기를 부딪쳤다.

싸움이 계속 될수록, 그들은 성의 중앙에 있는 탑을 올라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은 아르투르가 고지를 점해 우위를 점하나 싶더니, 다음 순간에는 푸후니크가 앞서서 공세를 가하고 있었다.

산맥의 정상에서,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버려진 옛 성에서 두 전사가 불꽃을 일으키며 싸운다. 성 밖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는 에렌은, 자신이 현실에서 유리되어 전설 속에 내버려진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느새, 두 사람은 고성의 꼭대기에 이르렀고,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은 채 혈전을 벌였다. 눈과 폭풍 속에서 부르는 강철의 노래! 피가 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강렬한 전투의 함성이, 눈보라를 뚫고 외쳐진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알-! 그레고오오오오오오오!”

“명예가 나를 이끈다!”

챙 -! 챙 -! 챙 - !

무기의 굉음과 전투 함성은 두 남자의 이중창이고, 마법의 무기가 부딪치며 일으키는 푸른 불꽃은 조명이었으니, 버려진 고성과 눈보라는 이보다 훌륭할 수 없는 무대였다. 두 배우가 공방을 바꾸며 영원할 듯한 싸움을 벌이니, 한 편의 서사시가 완성되었도다.

그들은 서로를 꺾겠다는 일념만으로, 전력을 다했다.

달이 저물고, 먹구름 너머에서 아침 햇살이 모습을 드러낸다. 눈보라가 걷혀가며, 쨍쨍한 태양빛이 그들을 비추었을 때, 그들은 하나의 무기만 가진 채 서로를 노려봤다. 빛의 검과 잇달아 충돌한 도끼 한 자루와, 여명은 부러져있었다.

그들은 각각 부러진 무기를 던져버리고, 서로를 향해 성큼성큼 나아갔다. 그들은 지쳐있었고, 성검의 힘과 용의 힘도 모두 소진되어, 어떤 상처도 더 이상 치유되지 않았다. 둘은, 동시에 무기를 들어올렸다.

둘은 직감했다.

이 일격이, 마지막이다.

번득이는 날붙이가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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