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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망치는 간발의 차이로 빗나가 땅바닥을 내리쳤고, 아르투르를 양손으로 쥔 할버드에 강력한 힘을 실어, 우측 하단에서 좌측 상단으로, 하인리히를 향해 휘둘렀다.
하인리히가 인지하기도 전에, 할버드의 도끼날이 그의 목 보호대를 뚫고 들어가 단번에 목뼈를 부쉈다. 거대한 체구의 기사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뒤로 쓰러졌고, 경기장 바닥의 먼지가 피어올랐다.
아르투르는 재빨리 할버드에서 손을 떼고는, 여명을 뽑아들어 미친 늑대의 도끼를 받아냈다. 로드리고가 날린 창날은, 알론소 경이 개입해서 방패로 쳐냈다. 아그라베인의 칼날이 자신의 등 뒤를 꿰뚫기 직전, 레오폴트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와 아그라베인의 몸에 부딪혔고, 두 사람은 사이좋게 바닥을 나뒹굴었다.
장이 휘두른 도끼는 미친 늑대보다 한 박자 늦었고, 아르투르는 몸을 빼내 공격을 피했다. 이번엔 요제프의 할버드였다. 생각할 틈 따위는 없다. 그저 전투 감각에 몸을 맡긴 채, 반사적으로 피했다. 몸이 움직이게 내버려 두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여명이 요제프의 공격을 받아냈다.
이 모든 공격과 방어가,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번 싸움이 생중에 겪은 싸움 중 가장 위험하고 무모한 싸움이란 것이 직감되었다. 미친 늑대, 장, 요제프, 세 사람이 쉬지 않고 공격을 가해왔다.
한 명의 공격을 피하면 다른 한 명이 이어갔고, 그것도 쳐내면 또 다른 한명이 공격해왔다. 그들은 자신의 측면과 후방을 잡으려들면서, 끊임없이 공격해왔다.
아르투르로선 막고 피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관중들은 놀라움 속에서 그 모습을 바라봤다. 어서 아르투르의 목이 날아가길 바라는 자들도 있었지만, 유명한 기사들과 동시에 칼을 맞대는 그의 모습에는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평민들은 위태롭게 버텨내고 있는 아르투르를 보며 가슴을 졸였고, 구세주 발타리아가 아르투르를 구해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한편, 알론소는 일방적으로 로드리고에게 공격받고 있었다. 젊고 날랜 로드리고는 현란한 발걸음과 속임수를 섞어 연격을 가했다. 알론소의 몸 곳곳이 창에 꿰뚫렸고, 알론소는 비명을 지르며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로드리고는 김빠진 듯한 목소리로 혀를 차며 그를 바라봤다.
“노인장, 승부는 이미 났소. 시간은 그만 끌고 항복하시오. 같은 서부인이니, 목숨은 살려드리리다.”
하지만 노익장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장렬히 외쳤다.
“동료를 돕지는 못할망정, 짐이 될 수는 없네!”
알론소 경은 남은 힘을 쥐어짜내, 격렬히 검을 휘둘렀다. 로드리고는 우측으로 도약해 간단히 피해낸 후, 단숨에 알론소 경의 목울대에 창을 꽂아 넣었다.
“으헉!”
알론소의 입과 코에서 피가 역류했고, 몸이 부르르 떨렸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며 꺽꺽대는 그를 보던 로드리고는, 곧장 창을 빼내서 단숨에 알론소의 심장을 꿰뚫었다. 그는 손에 검을 쥔 채로, 뒤로 쓰러졌다.
로드리고는 착잡한 표정으로, 노인에게 다가가 핏대를 올리고 있는 그의 눈을 감겨주었다.
“알론소 키하노 경. 그대는 기사답게 죽었소. 결투가 끝나면 직접 고향으로 모셔다 드리지.”
레오폴트와 아그라베인은 여전히 땅바닥에 엎어진 채, 격투를 벌이고 있었다. 온 몸을 철판으로 두른 그들은 서로 뒤엉킨 채 서로를 노려봤다.
‘검술로는 상대하기 어렵겠지만, 나이가 젊은 만큼 육탄전은 내가 유리하다!’
레오폴트가 그렇게 생각하며 아그라베인의 면상에 주먹을 날리려는 순간, 아그라베인의 거센 발길질이 레오폴트의 배를 걷어차서, 떨궈냈다. 레오폴트는 재빨리 일어나려했지만, 어느새 아그라베인은 자신의 배 위에 올라타서 얼굴을 향해 사정없이 주먹을 날렸고, 레오폴트는 방어하기 바빴다.
영주들은 하녀들이 따라주는 포도주를 마시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하인리히가 단숨에 죽으며 가슴이 철렁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결투의 결과는 변하지 않으리라. 세 명의 기사가 협공하니, 아르투르도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아르투르도 자신이 지고 있다는 점을 실감하고, 승부수를 던졌다. 우선 날아드는 미친 늑대의 도끼는 쳐냈다. 맞으면 끝이니 다른 방도가 없었다. 요제프의 할버드가 날아들었는데, 아르투르는 비어있는 왼손으로 할버드의 막대 부분을 붙잡아 더는 내리쳐지지 못하게 했다.
그 사이 장이 휘두른 도끼가 흉갑과 천 갑옷을 뚫고 가슴에 박힌 후, 빠져나갔다. 기절할 듯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쓰러지면 안돼.’
정신력을 쥐어짜내서 버틴 아르투르는, 자신의 선혈이 경기장의 바닥을 적시는 것을 아랑곳 하지 않고 요제프를 향해 굴렀고, 오른쪽 겨드랑이를 향해 여명을 내찔렀다. 칼이 근육을 가르고, 뼈를 부수는 느낌이 들었다.
“아아아아아악!”
요제프는 비명을 지르며 오른손을 축 늘어뜨렸고, 할버드를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곧장 몸을 일으킨 아르투르는 요제프의 얼굴을 여명의 손잡이로 후려쳤고, 요제프는 코뼈가 부러지며 경기장 바닥에 쓰러졌다.
미친 늑대와 장은 무방비가 된 아르투르를 향해 오른쪽과 왼쪽에서 동시에 공격을 가했으나, 아르투르는 아버지가 물려준 예장용 검을 왼손으로 꺼내 각각 공격을 쳐냈다.
깡 - !
쇳소리가 가득 들렸다. 운이 좋게도, 황금의 검은 내구성 하나만큼은 튼튼한 모양이었다. 낡은 검이라 전투 도끼에 맞고 깨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잘 버텨주었다.
‘좋아. 예장용 검치곤 훌륭했어.’
공격을 방어해낸 아르투르는 장을 향해 여명을 휘둘렀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여명이 장의 머리를 노렸지만, 장의 뒤에 있던 망나니 위고가 방패를 내밀어 공격을 쳐냈다.
시간을 번 것으로 충분했다. 아르투르는 뒤로 쭉 물러나 황금검을 도로 검집에 집어넣고, 양손으로 여명을 쥐었다.
늑대 삼형제는 곧장 달려들지 않고 견고한 방어 자세를 취했다. 아르투르의 상처에서 피가 쏟아지고 있었고, 방금 알론소가 쓰러졌으니 로드리고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었다.
그 때, 위고는 아르투르에게 당했던 모욕과 수모가 생각났다.
‘저 개자식, 한방 먹여주고 말테야.’
때마침 놈은 상처 입고, 지치지 않았는가. 오늘 결투는 위고와 아르투르의 것이었다. 그러니, 모두가 보는 눈앞에서 아르투르를 쓰러뜨리는 그림만큼 멋있는 것도 없겠지!
판단을 마친 위고는 신이 나서 검을 들고 달려나갔다.
‘오늘 네 놈의 목을 베고야 말테다!’
“뒈져라! 이 잡종 새끼야!”
아르투르는 다가오는 놈을 살폈다. 자세는 빈틈투성이에, 행동은 굼떴고, 공격은 어정쩡했다.
무예의 기초를 닦아야 할 시기에 백성이나 괴롭히고 다녔으니, 당연한 일이리라.
그를 죽이는 건 너무 간단한 일이었다.
아르투르가 여명을 한 바퀴 휘둘러 내리치려는 시늉을 취하자, 위고는 허둥지둥 방패를 위로 들어올렸다. 그 순간 아르투르는 검을 급격히 틀어 놈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위고는 죽음이 다가왔음을 직감하며,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아- 안돼!”
위고는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때 누군가 자신을 낚아채고 같이 바닥에서 굴렀다. 눈을 떠보니 형인 장이었다. 그는 흥분한 목소리로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공격에 나서지 말라고 했잖느냐! 네가 상대할 수 있는 자가 아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자리에서 일어난 장은, 재빨리 전투 자세를 취하려고 했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여명의 칼날이었다. 아르투르는 검의 앞부분을 손으로 쥐어서, 여명을 마치 창처럼 잡고 장의 투구 틈새 사이를 찔렀다.
여명의 날이 빠져나오자, 장의 뇌수와 혈흔, 터져버린 눈동자가 같이 투구 사이로 흘러나왔다. 장은 앞으로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터져나오는 늑대 형제들의 비명.
“형님!!”
“장!!”
동생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한 미친 늑대, 조프루아는 완전히 눈이 돌아갔다. 그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도끼를 연달아 내리찍었고, 아르투르는 그의 공격을 간신히 막고 피했다. 통증이 밀려들고 있어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조프루아는 맹공을 계속했다. 마침, 알론소를 쓰러뜨린 로드리고가 합류하러 왔지만, 조프루아가 앞뒤 구분 없이 휘두르는 바람에 근처에 갈 수가 없었다.
“멍청한 늑대놈! 그렇게 휘두르면 나도 위험하단 말이다!”
그러나 미친 늑대는 이미 평정심을 잃은 뒤였고, 눈앞의 원수를 죽이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처음의 기세만 피해내자, 아르투르는 조프루아의 공격에 빈틈이 가득한 것을 포착했다. 그는 앞뒤 재지 않고, 오직 힘과 속도에만 의존한 공격, 공격만을 계속했다.
그의 공격을 교묘히 피해낸 아르투르는, 미친 늑대의 품으로 파고들었고, 재빨리 단검을 뽑아 미친 늑대의 턱밑을 꿰뚫었다.
“이렇게 되어 유감이오. 형님.”
미친 늑대는 광기와 고통으로 일그러진 표정을 짓다가, 웃었다.
“자네가 이겼군.”
미친 늑대의 상처 부위에서 피가 분수처럼 치솟아 나왔고, 그는 입을 벌리고 눈을 뜬 채 숨이 멎었다. 그 광경을 본 란트레서 가문의 늙은 영주가, 끔찍한 괴성을 질렀다.
“내 아들! 내 아들들이 죽고 있어! 나의 기사들은 뭘 하고 있느냐! 저 미친 살인마를 막으란 말이다! 저놈이 내 아들들을 도살하고 있어!”
그러나 기사들은 침묵을 지키며 결투를 지켜볼 따름이었다. 결투는, 기사 간의 명예를 건 싸움일뿐만 아니라, 신이 내리는 판결이라는 것이 그들의 믿음이었다. 신께서 재판 중이신데, 어찌하여 인간이 끼어들 수 있겠는가?
등 뒤에서 극심한 위협을 느낀 아르투르는 재빨리 몸을 움직였다. 옆구리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로드리고의 창날이 장이 부숴놓은 흉갑의 틈새 사이로 들어와 옆구리를 꿰뚫은 것이다. 조금만 대응이 늦었거나 근육이 튼튼하지 않았다면 장기가 꿰뚫려 죽었을 것이다.
로드리고는 재빨리 창을 빼 들어 공중에서 한 바퀴 돌렸다.
“고통 없이 일격에 보내드리겠소. 앞서 말한대로, 경의 항복은 받을 수 없소.”
로드리고는 현란히 창을 돌려 눈을 교란하다가, 일격을 가했다. 아르투르는 시야에서 순간 창의 궤적을 놓쳤다. 어디지? 목인가? 가슴인가? 아니면 허벅지?
- 찾았다.
아르투르는 흐릿하게 움직이는 창날을 포착하고 손을 내밀어 잡았다. 묵직한 창대였다. 강하게 힘을 주자 그 자리에서 창대가 부러져버렸다. 로드리고의 얼굴이 일순간 당혹감으로 물들었지만, 노련한 기사인 그는 재빨리 검을 뽑았다.
상체에서 피를 쏟으며 달려드는 아르투르.
로드리고는 그 투지에 놀랐으나, 냉정히 상대를 평가했다.
‘부상이 심해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군. 행동도 느려. 충분히 이길 수 있겠어.’
그는 왼발을 뒤로 빼고 오른손의 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리고 아르투르가 달려든 순간을 정확히 노려, 그의 목을 향해 굽은 칼날을 휘둘렀다. 그러나 아르투르는 그것도 포착해서 건틀렛을 낀 오른손으로 잡아내더니, 속도를 줄이지 않고 몸으로 로드리고를 들이받은 뒤, 박치기를 했다.
깡 -!
육중한 무장에 가속력, 아르투르의 괴력이 더해지자 로드리고의 머리엔 막강한 충격이 가해졌다. 로드리고가 균형을 잃고 휘청거렸고, 두 사람의 머리가 한 차례 다시 부딪혔다. 로드리고는 완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죽어!!!”
등 뒤에서, 위고가 비수를 찔렀고 그것은 갑옷 틈새를 뚫고 등에 깊이 박혔다. 하지만 아르투르는 그저 고개를 돌려서 비릿하게 웃어보였다.
“단번에 급소를 찔러서 끝냈어야지.”
아르투르는 단검을 빼내려는 위고의 오른손을 붙잡은 후, 그대로 꺾어버렸다. 위고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아르투르는 입가에서 피를 토해내고 있음에도, 그를 비웃었다.
“고작 이거냐? 이걸 믿고 그렇게 까불었단 말이냐? 형들이 없으니 너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위고는 간절히, 다급함을 담아 소리쳤다.
“아그라베인경! 도와주시오!!!”
마침 레오폴트를 제압한 아그라베인 경은, 장검을 뽑아들고 아르투르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려고 했다. 그 때, 무언가 그의 발을 붙잡았다.
레오폴트의 손이었다.
“못 가. 못 보내. 못 간다고. 네 상대는 나야.”
아그라베인은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레오폴트를 걷어찼지만 그는 진드기 같이 아그라베인의 철 장화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위고는 절망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뭘 하는 거냐! 그냥 죽여! 단칼에 죽일 수 있잖아!”
소리치는 위고에게 다가온 아르투르는, 건틀렛을 낀 손으로 위고의 목을 잡아들어 올렸다.
“순진한 놈. 레오폴트는 나 같은 사생아와는 다르지. 정통 왕족이란 말이다.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왕가를 보호하겠노라 맹세한 왕실 기사가 레오폴트를 죽일 거라고 생각했느냐?”
아르투르의 손에 붙들린 위고는 공중에서 허우적대며, 아르투르를 발로 찼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관중석에 앉은 귀족들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고, 란트레서 가문의 가주는 울먹이고 있었다. 그가 다급히 외쳤다.
.
“자비, 자비를 베푸시오! 그는 내 마지막 남은 아들이란 말이오! 우리 가문의 대를 끊을 셈이오?!”
아르투르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볼 뿐이다.
“하필이면 가장 죽이고 싶은 놈이 살아버렸군. 유감이오.”
“자비, 자비를…”
“으헉 - !”
아르투르가 거세게 힘을 주자, 위고는 목뼈가 부러졌고, 곧 숨통이 끊겼다. 아르투르는 차가운 표정으로 란트레서 영주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놈이 공작이 돼서, 당신 가문의 이름에 똥칠을 하는 것보단 대가 끊기는 것이 나을 것이오. 빠른 죽음을 놈에게 준 것을 다행으로 여기시오. 부모의 앞이 아니었다면 훨씬 가혹했을 것이오.”
목이 꺾인 위고를 내던진 아르투르는 땅에 여명을 짚고 숨을 몰아쉬었다. 이기긴 했지만,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이대로 아그라베인과 싸운다면, 분명히 질 것이다.
‘여기까진가.’
그 때,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바라보던 란트레서 영주가 소리쳤다. 그의 눈에선 피눈물이 흘렀고, 목소리엔 절망과 분노가 가득했다.
“저 북구인 사생아 놈을 죽여라! 놈을 죽여! 끔찍하게 찢어 죽여라! 놈의 목을 가져오는 자에게 내 딸을 주겠다! 내 딸이, 란트레서 가문의 마지막 혈육인 것을 명심해라! 공작이 되고 싶다면 놈의 목을 가져와!”
란트레서 공작의 선언에, 야심 있는 기사들의 눈빛이 번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