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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48화 (48/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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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

두 호위 기사가 검을 뽑아들고자 했지만, 아르투르의 팔꿈치가 오른편에 있는 기사의 안면을 후려쳤다. 왼편의 기사는 검을 뽑아들자마자 아르투르가 그의 허리를 잡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평범한 병사들은 겁이 나서 감히 다가오지 못했다.

아르투르는 싸늘한 시선으로 쓰러진 귀족을 바라본다. 앳된 얼굴을 보니 십 대 소년 정도로 보였다. 그는 꺾여버린 오른팔을 부여잡고 살기 어린 눈으로 아르투르를 올려다봤다.

“이름이 뭐냐.”

“위고, 위고 드 란트레서다! 감히 날 건드려? 가만두지 않을 거다. 내 형님들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때가 되면 넌 내 앞에 엎드려서 살려달라고 빌게 될 거다!”

아르투르는 헛웃음을 지었다. 자기 주제 파악도 안 되는 놈 같으니 길게 이야기할 이유가 없었다. 한편, 카밀은 격렬한 증오를 담아 위고를 노려봤다. 눈에 핏줄이 가득 솟아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주먹을 얼마나 세게 쥐었는지 피가 흐를 지경이었다. 발밑에는 그가 애용하는 장미무늬 단검이 떨어져 있었다.

“카밀, 상황을 설명해주게.”

아르투르는 카밀의 눈동자를 마주 봤고, 그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자신을 진정시켰다.

“별것 아닙니다. 망나니 놈이 날뛰는 게 봐줄 수가 없어서 세상 무서운 걸 가르쳐주려 했을 뿐입니다. 저보단 배우들을 신경 써주십시오.”

아르투르는 병사들을 불러 카밀과 쓰러진 난쟁이, 여배우를 데려가게 했다. 다들 심하게 얻어맞아 치료가 필요해 보였다. 여배우에겐 자신이 입던 망토를 벗어주었다. 위고는 란트레서 가문의 기사들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너흰 뭐해! 죽여! 다 죽이란 말이야! 내 팔을 이렇게 만든 놈을 죽이지 않고 뭘 하는 거냐!”

그러나 호위 기사들은 아르투르의 눈치만 살핀 채 나서지 않았다. 그저 쓰러진 위고를 일으켜 세우고, 의사를 불렀을 따름이다. 표정을 보니 그들도 매우 골치 아파하고 있었다. 위고가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들것에 실려 갔다. 그는 떠나는 마지막까지 아르투르를 죽이라고 외쳤지만, 처참히 무시당했다.

“어떻게 된 건지 다들 말해보게.”

아르투르는 두 가문의 병사들을 떼어놓은 후 다양한 이들을 불러 모아 일의 경위를 물었다. 그가 부른 목격자들은 두 가문의 기사들과 극단 직원, 지나가던 행인들이었다. 사건의 정황을 알아보니, 위고가 극단의 여배우에게 추근거린 것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위고가 그녀에게 자신을 만나달라고 요구했지만, 여배우는 정중히 거절했다. 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위고는 그녀의 상의를 찢고 억지로 데려가려고 했지만, 난쟁이 배우가 그의 다리를 붙잡으며 저지했다. 그러자 위고는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기사라는 자들이 그걸 보고만 있었나?”

힐난하는 어투였다. 위고의 호위 기사들은 얼굴을 붉히다, 머뭇거리며 말했다.

“저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란트레서 가문에 충성을 하기로 맹세한 자들입니다. 감히 도련님께서 하시는 일에 어찌 토를 달겠습니까. 그것이 큰 도련님의 뜻이기도 하구요.”

그 발언을 들은 극단 직원들은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지나가던 행인들도 그들에게 야유를 보냈다.

“아무래도 조프루아 형님이 동생 교육을 잘못시켜도 단단히 잘못시키셨군.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도대체 카밀은 왜 데려간 건가?”

호위 기사가 이번엔 얼굴을 당당히 들고 말했다.

“그건 명백히 공의 부하의 잘못입니다. 난쟁이를 때리고 있는데, 갑자기 경의 부하가 격분해서 단검을 들고 도련님에게 달려들더군요. 저희는 그의 무기를 빼앗고 제압했던 겁니다. 단숨에 죽일 수도 있었지만, 위르마넨 가문의 사람이기에 그리하지 않았습니다.”

아르투르의 좌중을 둘러보며 말했다.

“저자들의 말이 사실인가?”

목격자들은 카밀이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달려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럴 친구가 아닌데. 무슨 일이 있던 거지?’

그때, 란트레서 가문의 병사들이 옆으로 물러나며 길이 열렸다. 미친 늑대가 늑대 가죽 망토를 휘날리며 그 사이로 걸어나왔고, 병사들은 경례를 표했다. 그는 아르투르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오셨군요. 형님.”

“그래. 전후 사정은 오는 길에 들었네. 아우님이 상황을 정리했다며? 고맙네.”

아르투르는 미친 늑대와 충돌할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그의 전향적인 태도에 일이 쉽게 풀릴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에도 우리 망나니 동생이 개같은 짓거리를 했다고 들었네. 늑대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하는 짓은 개랑 다를 게 없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군. 하지만 그건 그거고.”

조프루아가 눈을 크게 치켜뜨고 아르투르를 바라봤다.

“내 동생을 죽이려 했단 놈을 봐야겠어. 아무리 그래도 늑대의 후예를 죽이려 들다니,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야.”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걱정하지 말게. 나도 이런 일로 자네와 충돌하고 싶진 않아. 그저 따끔한 훈계를 해줄 생각일세. 마음에 들면 술 한 잔 하면서 풀 생각도 있고.”

아르투르의 걱정하는 표정을 본 조프루아는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말게. 나도 내 동생을 이번에 따끔히 혼낼 생각이야! 이런 일로 일을 크게 만들어봐야 우리 가문의 위신만 떨어질 뿐이야. 우리 둘 다 일이 커져서 좋을 게 없으니, 조용히 덮고 넘어가자고. 극단 측에는 내가 직접 사과를 전하도록 하지.”

아르투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그게 최선인 것 같군요.”

“역시! 아우님이랑은 말이 통해서 좋아! 자, 내 동생을 죽이려던 카밀이란 친구를 어서 데려와 주게. 늑대의 자손을 죽이려고 한 배짱 좋은 친구가 어떻게 생긴 지 알고 싶거든.”

아르투르는 사람을 보내 카밀을 데려오게 했다. 그런데, 카밀이 현장으로 돌아오자 분위기가 급변했다. 미친 늑대의 표정은 분노로 완전히 일그러졌고, 카밀도 입가에 비웃음을 머금은 채 조소하고 있었다. 미친 늑대는 곧 바로 고개를 돌려 외쳤다.

“내 도끼 가져와!”

“무슨 일이십니까? 형님?”

미친 늑대는 이맛살을 크게 찌푸리며 아르투르를 마주 봤다.

“자네, 저놈이랑 언제 만났나?”

“만난지는 네 달 정도 되었죠.”

“좋아. 잘 듣게. 저놈 이름은 카밀이 아냐, 카리오스지. 내가 일전에 말했지? 내 원수 중에 우리 집 막내를 죽이고 달아난 농노가 있다고. 그놈이야. 확실하니까 두 번 묻지 말게. 난 배신자의 얼굴을 절대 잊지 않아. 아우님, 내가 이성이 남아있을 때 저놈을 어서 내게 넘기게.”

미친 늑대의 표정은 그야말로 광기에 가득 차 있었고, 언제고 분화할 수 있는 활화산처럼 펄펄 끓고 있었다. 뒤편에서 그의 호위 기사가 날에 푸른색 룬 문자가 새겨진 거대한 양날 도끼를 가져다주었다. 아르투르도 긴장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케이가 재빨리 들고 있던 할버드를 건네주었다. 그 광경을 본 양측의 기사들도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지금 뭐하자는 건가! 당장 저놈을 넘겨!”

“잠깐, 잠깐. 진정하시오. 둘 사이에 원한이 있다는 건 알겠지만 지금은 내 깃발 아래 있는 사람이오. 형님. 이야기도 들어보지 않고 내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도끼 내려두시고, 차분히 이야기해봅시다.”

“차분히는 무슨 개뿔이! 저 새끼가 우리 막내를 처참하게 죽였다고! 그 원한을 잊을 줄 알았나! 네 사지를 뜯어다가 돼지들에게 먹일 거다!”

미친 늑대가 허공에 전투 도끼를 휘두르자 붕 -하고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 비키지 않으면 토막 내버리겠다!”

아르투르는 도발에 대응하지 않고 차분히 주변을 살폈다. 지금 형세는 마치 불씨를 들고 기름통 위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누군가 단 하나의 행동만 잘못하더라도, 양 측의 기사들은 무기를 뽑아들고 싸움에 나설 것이고 일은 돌이키기 어려워질 것이었다. 아르투르는 미친 늑대의 곁에 있는 그의 또 다른 동생, 장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을 좀 진정시켜보시오. 말로 해결할 수 있는 걸 굳이 싸울 필요는 없잖소.”

장도 그 취지에 공감하는 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형님. 잠시만 무기를 무릅시다. 아르투르 공께서 전후 사정이 파악이 안 되시는 모양이니 말이오.”

미친 늑대는 숨을 몰아쉬었고, 땅바닥에 전투 도끼를 쾅 - 하고 찍었다.

“좋아. 좋아. 시간을 주지. 사생아 놈. 명심해라. 대화가 끝나고도 날 가로막으면 네 머리를 쪼개다가 술잔으로 쓸 거다.”

아르투르는 그의 거친 모욕적인 말에 얼굴을 찌푸렸지만, 대응하지 않았다. 지금은 가슴보다 머리를 앞세울 때였다.

“미친 늑대. 감히 내 사촌에게 그따위로 말할 수 있는 놈은 없다.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네 혓바닥을 찢어다가 개들에게 던져줄 거다.”

어느새 완전 무장을 하고 나타난 레오폴트 백작이 위협적인 시선을 보내며 도발에 응수했다. 조프루아는 피식 웃었다.

“애송이 새끼들이 눈에 뵈는 게 없군. 오늘은 왕족들 대가리를 깨보겠어.”

까아앙 - !

강철이 부딪히는 굉음이 났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었다. 같은 시기에 날아든 미친 늑대의 전투 도끼와 레오폴트의 대검이 부딪혔다. 아르투르는 이미 반사적으로 레오폴트를 보호하기 위해 할버드를 휘둘렀고, 장 역시 전투 도끼를 휘둘러 아르투르의 공격을 쳐냈다. 그것을 신호로, 양 진영의 기사들이 칼부림을 시작했다.

“뭐하는 짓이냐! 레오폴트, 당장 멈춰!”

아르투르가 먼저 외쳤고, 장도 무기를 맞댄채 말했다.

“형님, 멈추시오! 지금 우린 아르길락 가문의 손님으로 와 있단 말이오!”

그러나 자존심 강한 두 기사는 이야기를 듣지 않고, 오히려 접전의 강도를 높여갔다.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가득 울려 퍼진다.

“하! 기생오라비가 제법이구나! 그 대가리가 쪼개지면 여자들이 슬퍼하겠군.”

“왕족을 모욕했으니 너희 가문은 몰살이다. 일단 너부터 토막 쳐서 죽여주마.”

두 사람이 재차 공격을 주고받기 직전, 성에서 뿔나팔 소리가 들리며 수백 명의 기병들이 말을 달려 나왔다. 선봉에서 아르길락 가문의 후계자인 요제프가 깃발을 휘날리며 달려 나왔다. 두 집단은 순식간에 포위되었고, 요제프는 조프루아와 레오폴트의 사이로 나타나 준엄하게 외쳤다.

“하이에버의 주인으로서 명하니, 당장 이 미친 짓을 멈추시오! 다음번에 공격을 시작하는 자는 손님이 아니라 적으로 간주하겠소!”

그 말에는 서로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던 두 성질 급한 영주도 무기를 거두고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미친 늑대는 괴성을 지르며 땅바닥에 도끼를 내동댕이쳤고, 레오폴트도 몸을 떨었다.

아르투르는 장과 함께 둘을 떼어놓았다. 요제프는 호위 기사들과 함께 말에서 성큼성큼 다가왔다. 요제프가 손을 들어 올리자, 기병들은 포위를 풀어 당사자들이 지나갈 수 있게 했다.

“다들 무기를 넣고 해산해주시오. 아르투르 경과 장 경만 남으시오.”

아르투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외쳤다.

“레오폴트. 내 명예를 위해 싸워줘서 고맙다. 하지만 우린 그 전에 손님으로 이 자리에 와 있는 거야. 접대의 관습을 어길 순 없지 않겠나? 부하들을 데리고 물러나 다오.”

레오폴트는 이를 갈았다.

“…좋아. 사촌. 지금은 네가 나보다 더 어른스러워졌군. 네 말에 따르겠다. 일동, 모두 무기 집어넣어. 철수한다.”

장도 마찬가지로 했고, 미친 늑대는 더 이상 꼴을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광분하며 빠져나갔다. 요제프는 무장한 병사들이 빠져나가자, 침착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봤다.

“두 가문 모두 이 소란에 책임이 있고, 죽은 자가 없으니 따로 책임을 묻지는 않겠소. 하지만.”

“하지만?”

“- 소란의 장본인인 두 사람은 나의 명령 아래 구금되었소. 철저한 조사와 공정한 재판을 걸쳐 유죄와 무죄를 가릴 것이오. 위고 드 란트레서는 강간 미수 및 폭행 혐의로 고소되었소.”

아르투르와 장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

“평민 좀 때렸거니와 구금을 하는 것이 어디 있소?! 아르길락 가문은 손님을 이렇게 대하는 것인가!”

“검은달 극단 역시 우리 가문의 손님으로 초청된 건 매한가지요. 손님이라면 주인집의 규칙을 지켰어야지, 선처를 바란다면 모쪼록 협조해주시오. 그리고 아르투르 경.”

“듣고 있으니 말씀하시오.”

“- 경의 부하인 카리오스는 귀족 살해 및 반역죄로 기소될 거요. 찾아보니 왕실의 현상수배 명단에 올라와 있더군. 재판을 치를 필요도 없이 사형 확정이오. 일이 이렇게 되어 유감이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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