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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프루아는 단숨에 달려들어, 아르투르의 허리를 붙잡았다. 그는 단숨에 아르투르를 내치려 했지만, 아르투르는 하반신 근육을 활용해 단단히 버티고 섰다. 오히려 조프루아의 어깨를 잡고 잡아 매치려 하면서, 두 사람의 힘 싸움이 벌어졌다. 온몸의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흡사 두 마리의 맹수가 얽혀 싸우는 듯한 모습이었다.
조프루아가 아르투르의 손을 떼며 뒤로 물러났고, 아르투르도 한 발자국 물러났다. 두 사람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덩칫값은 하는군. 어느 집안 도련님인지 궁금해지는걸.”
“당신도 나잇값은 하는구려. 그나저나, 이대로라면 결판이 나지 않겠는데, 실전처럼 싸워보는 게 어떻겠소?”
조프루아는 소리 내 웃었다. 지금 그들의 경기는 여흥에 불과해 직접 때리는 일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의 말은 격투술도 활용한 진짜 싸움을 해보자는 이야기였다.
“너, 그러다가 불구가 되어도 난 모른다.”
“노친네는 뼈가 부러지면 붙지도 않으니 항복하시오.”
두 사람은 호탕하게 웃으며 상대를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들은 규칙에 얽매여 있던 마음을 풀고, 야성을 드러냈다. 아르투르의 매서운 주먹이 안면을 향해 날아들었다. 조프루아는 양손을 들어 방어했다.
아르투르의 주먹이 세 차례나 꽂혔지만, 조프루아의 단단한 팔목이 견뎌냈다. 방어하는 사이 그는 아르투르의 배를 걷어찼다.
“흐억 - !”
아르투르의 다리가 휘청이며 뒤로 밀려났다. 공수가 바뀔 타이밍이었다. 아르투르의 앞까지 뛰어든 조프루아는 가슴에 주먹을 내질렀다. 두터운 가슴 근육이 아니었다면 절명했을지도 모르는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불의의 일격을 당한 아르투르는 뒤로 넘어가 버렸고, 조프루아는 틈을 놓치지 않고 발길질을 가해 끝장내려고 했다.
아르투르는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손목을 교차시켜 발을 막았고, 오른쪽 발로 상대의 발을 휘감아 넘어뜨렸다. 사이좋게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은 기어 다니며 서로의 몸을 붙잡고 뒹굴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주먹질이 오갔다. 한번은 아르투르가 조프루아의 오른 무릎을 꺾었고, 조프루아는 아르투르의 왼팔을 꺾었다. 두 사내가 모두 비명을 질렀다.
이토록 치열한 격투가 몇 분이나 지속하자, 두 사람은 산소가 부족해 눈앞이 어지러워지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머리도 잘 돌지 않아 판단력이 느려지고 시야도 흐릿해졌다.
두 사람은 비틀거리며 서로를 마주 보며, 어설픈 공격들을 가했다. 아르투르의 헛 발길질을 피한 조프루아가 주먹을 날렸지만, 엉뚱한 곳을 때리는 것이 전부였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고, 이마와 이마가 강렬히 마주쳤다. 맹렬한 박치기였다.
-꽝 !
돌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은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몸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헤롱거렸다. 이윽고 조프루아가 먼저 뒤로 넘어가 쓰러졌다. 신이 난 술집 주인은 곧바로 아르투르의 승리를 선언했다.
“승자는 금발의 기사분입니다!”
승리 선언이 있던 직후, 아르투르도 양팔을 벌린 채 바닥에 뻗어버렸다. 숨죽이며 두 사람의 싸움을 지켜보던 기사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아르투르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고, 오른팔을 높이 들어 올렸다.
“내가 - 미친 늑대를 꺾었다!”
조프루아는 호탕하게 웃더니, 종자의 도움을 받아 상반신만 일으켜 악수를 청했다. 아르투르가 그의 손을 맞잡았다.
“내가 졌군. 귀 공은 어느 가문 사람이오?”
조프루아의 말투는 크게 누그러졌고, 오히려 호의를 담은 목소리였다.
“내 이름은 아르투르라고 합니다. 페르넬의 사생아고, 지금은 도파뉴 백작의 섭정을 맡고 있소.”
조프루아는 다시 크게 웃음 지었다.
“하하하! 그랬군, 그렇더라면 이 미친 늑대가 진 것이 부끄럽지 않지. 이거, 대단한 분을 몰라뵀구려. 떠오르는 젊은 별이 오셨군. 요즘 당신의 명성이 높아져 가던 참이오. 뜨내기들이 만든 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이었나 보군.”
“몸이 회복되면 무기로도 겨뤄봅시다. 격투술로 날 이렇게까지 밀어붙인 건 경이 처음이오. 미친 늑대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아!”
“아주 좋아. 아주 좋아! 오래간만에 괜찮은 젊은이를 만났군. 내가 졌으니 오늘 밤은 내가 책임지겠소. 주인장! 술과 고기를 모두 내와라! 먹고 마시길 원하는 기사라면 누구나 참가해도 좋다고 알려라!”
그렇지 않아도 웃음을 짓고 있던 술집 주인의 미소가 입에 걸렸다.
“역시 란트레서 가문 나리들께서 통이 크십니다요! 애들아! 빨리 움직여라! 나리들께서 잔치를 벌이신다잖냐!!”
구경꾼들은 공짜 술과 안주라는 이야기에 기쁨의 탄성을 내지르며 그의 이름을 연호한다.
“미친 늑대! 미친 늑대! 미친 늑대!”
아르투르는 레슬링의 피로에서 벗어나 조프루아와 한 테이블에 앉았다. 양, 닭, 칠면조 같은 푸짐한 고기들이 식탁에 올라왔고, 시원한 맥주 통도 있었다. 두 사람은 군침을 흘리며 고기들을 입에 쓸어 넣었다. 그들은 고기가 채 구워지기 전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고기를 마구 뜯어 먹었다. 어느 정도 배가 채워지자, 두 사람은 대화를 시작했다.
“선왕의 사생아가 선왕을 빼닮았다는 이야긴 들었소. 하지만 이 정도일 줄 몰랐군. 올해로 몇 세나 되셨소?”
“스물이오. 바야르 경 밑에서 종자 생활을 지냈고.”
조프루아가 손뼉을 쳤다.
“아하! 그랬었군. 바야르 경의 종자로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당연히 이 미친 늑대와도 겨뤄볼 만하지. 인제 와서 말이지만, 나는 귀공의 부친 밑에서 종자로 지냈다오. 어린 시절부터 전장에 따라다니는 게 일이었지.”
조프루아는 맥주 통을 들어 벌컥벌컥 들이켰다. 통이 주르륵 흐르며 회색 수염이 적셔졌다. 아르투르도 지지 않고 그가 내려놓은 것을 받아 들이켰다.
“그 이야기 좀 해주시오. 아버지는 전장에 있던 시절 이야긴 거의 안 해주셨거든.”
두 사람은 술통을 비워가며 소재가 떨어지지 않는 이야기를 나눴다. 아르투르는 조프루아가 종자 시절 아버지와 북구인 약탈자들에 맞서던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서로 취향이 잘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호탕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조프루아 역시 아르투르를 굉장히 높게 평가했기에 아낌없이 자신의 경험을 전해주었다. 이따금 조언도 덧붙여서 말이다. 그들은 술을 마신 지 단 세 시간 만에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와하하하! 형님, 더 드시오! 더!”
“아우님이 주시는 잔인데, 당연히 더 받아야지!”
두 사람은 만취해서 얼굴이 완전히 붉어졌다. 아르투르가 손뼉을 치며 그를 바라봤다.
“자, 형님. 이제 우리 사이에 비밀은 없는 거요. 그러니 묻겠소. 왜 별명이 미친 늑대요? 형님은 아주 시원시원한 분이시건만!”
“낄낄낄. 아우님이 직접 보면 알 거다. 난 내 사람이 공격을 당하면 미쳐버리거든. 내 가족, 내 친구, 내 부하들 말이야! 그게 누구건 내 사람을 건드리면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보복하지.
내 여동생을 납치했던 북부 놈들은 부족을 몰살시켰고, 내 병사들을 해친 마을은 통째로 태워버렸거든. 그래서 나한텐 적이 없다네. 아우님. 원한을 가질 자도 남겨두지 않거든. 그래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지. 여태까지 단 한 놈만 빼고 내 복수를 피해 간 자가 없지.”
“아, 좀 과하시구만. 자제하실 필요가 있겠소. 그런데, 형님의 복수를 피했다는 그자는 누구요?”
아르투르의 말에 조프루아를 실소를 지었다.
“카리오스라는 농노가 내 막내 동생을 죽이고 도망간 적이 있어. 그게 7년 전인데, 아직도 놈을 못 찾고 있어. 놈을 잡으면 아주 고통스럽게 죽여 버릴 거야. 제발 죽여달라는 말이 나오게끔 할 걸세! 혹시라도 놈의 목을 가져오면 말해주게. 남작령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아르투르는 일견 조프루아가 이해갔다. 영민이 영주 일가를 해치는 일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부디, 그가 잡힌다면 빠른 죽음을 맞이하게 되길 바랄 뿐이었다.
“아우님이 질문하셨으니, 이번엔 나도 물어보겠어. 이봐, 아우님.”
“말씀하시오. 형님.”
“- 나는 아우님을 왕으로 밀고 싶은데, 아우님은 생각이 어떠신가?”
아르투르는 술이 확 깨왔다.
“뭬요?”
혀 꼬부라진 소리에 조프루아는 담대히 이야기를 꺼냈다.
“이미 페르디난트 대공께서 여러 유력 가문과 접촉하신 것으로 아네. 대부분 동의했고. 우리 가문은 판단을 유보했지. 아우님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거든. 내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말이야!”
아르투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 나오는 이야기는 루이스 대왕에 대한 명백한 반역모의였다. 주변을 둘러봤지만 참석자들은 모두 술에 곯아떨어져 있었다.
“직접 만나보니 내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걸 알게 됐지. 아우님은 아우님의 친형제들보다 더 아버지를 닮았어. 이 조프루아의 충성을 받을 자격이 있는 자라고! 당신이 내 주군이라면 앞으로도 믿고 따를 수 있겠어. 어떤가? 공짜는 아니겠지만, 우리 가문은 아우님을 왕으로 추대할 의사가 있어.”
아르투르는 텅 빈 술잔을 흔들어 마지막 남은 술 한 방울로 입을 적셨다.
“숙부님의 거미줄이 벌써 란트레서 가문까지 쳐 진거요? 무서울 정도인데.”
조프루아는 껄껄 웃었다.
“페르디난트 대공이야 이런 분야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괴물이지. 서부 대륙에서 일어나는 음모 중 절반은 그분이 꾸민 것일 거고, 나머지 절반은 그분이 알고도 내버려두는 것이란 말이 있잖소? 아마 사실일거요. 지금 우리 대화도 알게 되실 걸?”
조프루아는 자신의 술병을 들어 아르투르의 잔에 따라줬다. 그는 술이 넘쳐흐르고 나서야 술병을 거두었다.
“반응이 영 시원치 않군. 우리 란트레서 가문이 충성 서약을 하겠다는데 기쁘지 않은 건가? 표정이 왜 그래?”
“- 나는 아직 왕이 되겠다고 결정하지 않았소. 그 말은 내가 저주받을 친족살해자의 길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요. 더군다나 나는 사생아라서 계승권도 없는 몸이오.”
“하! 사생아, 사생아라. 그게 뭐가 중요한가? 위대한 군주들 가운데 형제들과 사이가 좋던 이들이 있는가? 결국 권력은 칼자루에서 나오는 게요. 아우님이 힘이 있고 능력이 돼서 왕좌를 차지하겠다는데 누가 감히 맞서겠단 말이오? 걱정 마시오. 나의 푸른 천둥이 그들의 머리통을 쪼갤 거요.”
아르투르는 쯧, 하더니 술잔을 내려놨다.
“술맛이 떨어지니 이 이야기는 미룹시다.”
조프루아는 김이 새는 표정을 짓더니, 알았다는 듯 고개만 끄덕였다. 두 사람은 그 뒤로도 화제를 바꿔 한참을 이야기했다. 무예와 전쟁, 삶과 죽음, 가족과 여자에 관한 이야기였다. 모든 기사가, 모든 남자가 가슴에 담고 사는 이야기리라. 그들은 다음 날 동이 트는 것을 보며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