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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34화 (34/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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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겠다. 싸울 생각이 없는 자는 성을 떠나라.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다. 떠난 뒤에 무엇을 하건, 그것도 너희의 자유다.”

아르투르는 여명을 높이 치켜들었다. 칼날이 태양 빛을 반사해 밝게 빛났다. 그는 병사 한명 한명과 눈을 마주치며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충성 서약이 깃털처럼 가벼운 자, 이익을 위해서라면 도적과도 손잡을 수 있는 자, 자신의 목숨이 가장 귀한 자는 성을 떠나라. 그런 자들은 오늘 이후로 성내에 발붙일 수 없을 것이다!”

아르투르는 연단 앞을 걸어가며 외쳤다.

“하지만 진정한 남자들이라면 나와 함께 싸우자. 누가 적법한 주군인지 헷갈리는 자, 도적들이 벌인 만행을 벌하고 싶은 자, 신의를 목숨보다 귀히 여기는 자, 다가오는 싸움에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자. 그런 이들은 이곳에 남아라. 내가 너희를 승리로 이끌겠다.”

병사들의 시선이 아르투르의 뒤를 쫓았다. 수백 명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일은 무척이나 짜릿하고 두려운 경험이었다. 아르투르는 용기를 내어, 가슴 속에 담은 말을 활짝 펼쳤다.

“너희를 위하는 지도자를 원하는가? 나는 백인을 벤 아르투르다! 너희를 위해 혼자서 백인의 도적 사이로 뛰어들었던 자다.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는가? 나는 미치광이 프레드릭을 쓰러뜨린 자다. 감히 누구도 홀로 내게 맞서지 못한다. 너희의 눈으로 내가 얼마나 용맹한 기사인지 보았을 것이다!”

수많은 병사들이 뜨거워지는 가슴을 부여잡고 아르투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르투르는 숨을 길게 들이쉰 후, 말을 이었다.

“너희는 오늘의 이야기를 두고두고 자식들에게 전하게 될 것이다. 나와 함께 피를 흘리는 이는 나의 형제가 될지니, 신분이 비천한 자는 높아질 것이고 이미 높은 자는 더 많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농노라면 스스로 농사지을 땅을, 자유농민에게는 금을, 기사에게는 영지를 내리겠다.”

또 한편으로 적지 않은 병사들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아르투르의 연설을 듣고 있었지만, 이 대목에서만큼은 눈빛을 빛냈다. 새로운 영주가 보상을 약속했다. 평생에 다시 올지 알 수 없는 기회였다.

“저곳에는 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냉혹한 살인마들과 신의를 저버린 배신자들이 있다! 그들은 우리를 저버린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겁쟁이처럼 숨어든 자들은 침대에서 자신의 용기를 평생토록 한탄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남자들이여, 나, 아르투르를 너희의 주군으로 따라라! 내가 너희를 승리로 이끌 것이다!”

군중의 감정이 고조됐다. 그때, 카밀이 먼저 환호성을 질렀다.

“도파뉴 백작 아르투르 만세!”

그의 부하들이 눈치를 맞춰 같이 외쳤고, 군중은 얼떨결에 그 외침을 따라 했다. 아르투르 만세라는 외침이 군중 사이에 폭발적으로 번져나갔다. 도파뉴 사람들에게, 여전히 아르투르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도적왕의 학살로부터 자신들을 구해준 불패의 기사, 홀로 백인을 베어 넘겼던 전설 속의 영웅.

그들은 무기를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주군에 대한 충성을 지킨다는 대의명분과 실질적인 보상에 대한 약속이 이뤄지자, 병사들의 마음속엔 공명심과 미래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부풀어 올랐다.

“아르투르, 아르투르, 아트루르! 우리들의 주군 만세!”

아르투르는 연호를 받으며 계단을 타고 성벽을 내려왔다. 케이가 그에게 투구를 건넸다.

“성문을 열어라! 저 비겁자들에게 진정한 남자들의 싸움이 무엇인지 보여주자!”

스르르르르르르륵 -

성문을 고정해둔 쇠사슬이 소리를 내며 성문이 열리고 해자와 성을 잇는 도개교가 내려갔다. 아르투르는 투구의 얼굴 보호대를 들어 올린 후 뛰쳐나갔다. 흥분에 도취한 군대가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앞 다투어 승리의 영광과 더 큰 전리품을 위해 대장의 뒤를 따랐다.

“무패의 기사가 우리를 이끈다!”

크리스티안은 후방에서 소리쳤다.

“아르투르! 아르투르! 아르투르!”

아르투르는 말에 오르지 않고, 병사들과 함께 두 발로 걸어 나갔다. 성문을 나오자 한창 공성 병기를 조립하고 있는 적들이 보였다. 생각 외로 방어가 느슨했다. 아르투르 군이 공격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듯했다. 아르투르는 적진을 살펴 약한 고리를 찾아봤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카른 남작가의 깃발이었다. 그곳에는 배신자 귀족들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은혜도 모르는 쓰레기 놈들, 보답은 못 할망정 뒤통수를 쳐? 본때를 보여주마.’

아르투르는 여명을 쥐고 달려 나갔다. 마치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와 같은 맹렬함이었다. 힘이 넘쳐흘렀다. 오늘따라 상태가 유난히 좋았던 데다가, 끓어오르는 분노가 그를 이끌고 있었다.

은빛의 기사가 성난 파도처럼 몰려오는 무장 병력과 함께 돌진해오자, 경계를 서던 농민병들은 공포에 질렸다.

“아르투르 경이다! 도망쳐!”

농민들은 아르투르가 얼마나 대단한 기사인지 잘 알고 있었다. 아군일 때는 누구보다 듬직했지만, 적이 되니 그보다 두려운 자가 없으리라. 집에 두고 온 처자식과 어머니가 생각나자, 그들은 잽싸게 뒤로 돌아 도망쳤다.

“쓰레기들아! 자리를 지켜! 도망가지 말란 말이다!”

귀족들이 탈영병을 베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가로막는 이들을 밀치며 도망갔다. 아르투르와 싸우는 것보단 차라리 자신의 주군들과 싸우는 게 나았다. 카른 남작은 결국 농민병들의 탈주를 막는 걸 포기하고, 정예병과 기사들을 중심으로 뭉치게 했다.

“창병 앞으로! 버텨라! 본대에서 지원이 올 것이다!”

창과 방패를 든 전문 군인들이 앞에 나서 창벽을 형성했다. 홀로 창벽에 뛰어든 아르투르는 여명을 마구 휘둘러 창끝을 갈대처럼 베어버렸다. 석궁 탄환들이 이따금 갑옷에 박혔지만,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다.

“나를 막으면 죽음을, 나를 따르면 승리를 얻을 것이다!”

아르투르는 고함을 지르며 창병들의 틈새로 뛰어들었다. 원형으로 칼날을 크게 베자, 눈 깜짝할 사이에 네 명의 적이 쓰러졌다. 주변의 다른 창병들이 단검을 들고 아르투르의 몸이 부딪혀왔다. 꼴에 전문 군인이라고 기사를 제압해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아르투르의 몸은 그들이 부딪쳐와도 꿈쩍도 않았다. 오히려 힘을 줘서 그들을 내팽개친 후, 강철 장화로 머리를 짓밟아 죽였다. 근방의 다른 병사들은 당황해서 보조 무장인 검을 뽑기도 전에 쓰러졌다. 아르투르가 혼자 전열에 구멍을 내자, 그 사이로 알튼 남작이 하마 기사들을 이끌고 진입했다.

“배신자 놈들아! 우리가 왔다!”

아르투르의 뒤를 노리러 가던 적병들은 속절없이 기사들에게 공격당했다. 창병진에 거대한 구멍이 나자, 더 이상 창벽은 기능하지 못했다. 백병전 무기를 든 아르투르 군이 달려들어 배신한 귀족들의 군대를 도륙하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버텨! 원병이 온다!”

카른 남작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적병을 베어 넘기며 용맹히 싸웠다. 그때 피칠갑을 한 은빛 갑옷의 기사가 그에게 다가왔다. 그의 두 호위기사가 앞으로 나섰지만, 아르투르는 능숙하게 공격을 피한 후 검의 손잡이로 잇달아 호위 기사들의 머리를 후려쳤다. 그들은 곧장 쓰러졌다.

“우리 정산할 빚이 있었지. 카른 남작.”

터벅터벅 걸어오는 아르투르를 보며 카른 남작은 뒷걸음질하다, 시체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그는 손에서 검을 떨어뜨리고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 항복이오! 무기가 없는 자를 죽이는 건 기사도에 어긋나오!”

아르투르는 여명을 창처럼 붙잡고 바로 남작의 투구 틈새로 칼날을 찔러 넣었다.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

“그냥 뒈져. 형세에 따라 주군을 바꿔타는 놈이 무슨 기사라고.”

아르투르는 곧장 카른 남작의 목을 베어 깃대에 걸었다. 그가 보여준 용맹에 아군 병력은 재차 고함을 지르며 화답했다.

“아르투르! 아르투르! 아르투르!”

병사들은 잊고 있던 그의 모습을 되새겼다. 가는 곳마다 피바람을 일으키는 자, 단칼에 적들을 베어 넘기는 자, 항상 우리를 승리로 이끄는 자. 자연스레 그에 대한 경외심이 되살아났다.

“공성 장비를 파괴해라!”

카밀은 궁수들을 이끌어 공성 탑에 기름을 끼얹은 뒤, 불을 질러 태웠다. 알튼 남작의 기사들은 공병용 망치를 휘둘러 투석기의 주요 부위를 파괴했다.

아르투르는 백병전의 열기에서 벗어나 차분한 태도로 전황을 살폈다. 군대는 승리의 흥분에 빠진 중일지라도, 지휘관은 항상 냉정해야 한다.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금괴 기사단의 기병대가 도열을 마치고 돌격할 태세를 취했고, 만프레드는 쉬고 있던 보병대를 재정열하고 있었다. 아르투르는 곧장 케이에게 장궁을 받아 기병대 지휘관의 말을 쏘아 맞췄다.

군마가 구슬피 울면서 쓰러지자, 기병들이 동요했다. 낙마한 지휘관은 다리를 절며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차마 돌격을 지시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지금의 아르투르 군은 마치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가 싸우는 것 같았다. 전투의 흥분과 보상에 대한 약속, 지휘관에 대한 경외심이 합쳐진 군대는 하나의 몸처럼 움직였다.

“우리의 승리다! 철수한다!”

만프레드가 공성 장비들을 지키러 달려왔을 때는 이미 아르투르 군은 바이스부르크로 입성하고 있었다. 기병대는 그것을 따라잡았지만, 보병들의 지원 없이는 싸움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저무는 석양을 등진 은빛의 기사는 어깨에 할버드를 걸친 채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격렬한 전투의 부산물들이 가득 엉켜있는 그의 모습은 피에 굶주린 악마를 떠오르게 했다. 금괴 기사들이 그에게 압도되어 주춤하는 사이, 아르투르 군은 신속하게 바이스부르크로 입성했다. 도개교가 다시 올라가고, 성문이 닫힌다.

만프레드는 여유롭게 뒤돌아 걸어가는 아르투르를 보며 식은땀을 흘렸다.

“혼자 전세를 바꿔버리는군. 역시 저놈은 악마야. 적으로 돌려서 좋을 거 없는 놈이라고.”

넋 놓은 만프레드의 곁으로 아밋서텐이 다가왔다.

“저희 단원들의 피해는 거의 없습니다. 공성 병기들이 불탔지만요. 바로 복구를 지시할까요?”

만프레드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집어치워. 이번 의뢰는 포기다. 저런 악마가 사는 성으로 우리 애들을 몰아넣을 순 없어.”

“콘도티에레. 그러면 단 한 번도 의뢰에 실패한 적이 없다는 저희 명성에 금이 갈 겁니다.”

“병력 절반을 잃는 것보단 명성을 잃는 게 나아. 저런 놈이 있는 줄 알았으면 애초에 계약하지도 않았다. 분명히 빌헬름이 말한 건 도적 토벌과 반항하는 소영주들에 관한 거였어. 혼자서 백 명을 죽이는 악마는 없었어! 이건 합당한 계약 파기 사유라고.”

만프레드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놈에게 사자를 보내. 내가 성문 앞으로 갈 테니 협상 좀 하자고. 출정 비용은 건져서 돌아가야지.”

***

이번 돌격의 성공은 성 내의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도망칠 궁리만 하던 병사들은 이제 자신감에 넘쳐 그들의 주군을 칭송했고 전쟁이 끝나고 받을 보상에 마음이 들떴다. 부관들도 새롭게 용기를 얻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엿봤다.

하지만 아르투르는 가슴을 졸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위험천만한 습격이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그대로 적에게 전멸했을 거야.”

아르투르는 투구를 벗어 케이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도 정말 대단한데요. 마스터. 적들이 방심한 틈을 타서 공격한 거잖아요. 즉흥적인 분위기를 타서 공격하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즉흥적인 게 아니다. 처음부터 돌격할 생각이었어. 그 전에 사기를 좀 끌어 올리려고 한 거지. 예상외로 병사들이 잘 따라줘서 일이 손쉽게 끝났다만.”

아르투르는 부서진 공성탑의 잔해를 보며 크게 웃었다.

“이걸로 시간은 충분히 벌었어. 이제 지키기만 하면 이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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