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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30화 (3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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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살벌한 말에 긴장감과 침묵이 감돈다. 만프레드는 소리내어 웃었다.

“재밌는 농담이군! 아르투르. 자자, 진지하게 협상해보자고. 이대로면 우리 싸움에 휘말려 수천 명이 죽을 거야. 말로 해결하는 편이 좋지 않겠나?”

“방법은 간단해. 빌헬름과 네 용병단이 이 땅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면 된다. 지금 물러가면 차후에 어떤 죄도 묻지 않겠다.”

만프레드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그런 식으로 할 순 없어. 내가 책임지고 있는 식솔만 3천이 넘어. 딸린 식구들까지 포함하면 1만은 될 거야. 듣자하니, 너는 백성들을 보호하는 기사라고 하던데 말야. 전쟁이 벌어지면 가장 고통을 받게 되는 건 약자들 아닌가? 타협하면 수천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어.”

아르투르는 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너희 제안은 무엇이냐?”

빌헬름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딱딱했다.

“소피 부인과 아델라이데가 안전히 영지를 떠날 것을 보장하겠다. 다른 봉신들에게도 죄를 묻지 않겠다. 또한 네가 내게 충성을 바친다면 자작의 작위를, 영지를 떠나겠다면 금화 4천 닢을 하사하마. 그 정도면 프레드릭을 토벌한 것에 대한 만족할 만한 보상이라고 본다만.”

아르투르는 빌헬름을 흘겨봤다.

“프레드릭이 영지를 휩쓸게 한 건 당신이잖나. 그래놓고 당신이 이 땅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

“그건 작은 실수였다. 의도치 않은 일이었어. 유감이지. 하지만 자격이 있느냐고?”

빌헬름이 부리부리하게 눈을 치켜뜨고 아르투르를 바라봤다.

“그럼, 그렇고말고. 나는 열두 살짜리 소녀보다는 훨씬 뛰어난 영주가 될 수 있어. 애초에 영지의 절반은 내 몫이었다고! 빌어먹을 형님이 내 몫까지 가지고 날 쫓아내지 않았더라면 나도 조카를 보호해줬을 거다. 자업자득이지. 아비의 업보를 딸이 물려받는 게 뭐가 그리 이상하단 말이냐. 내가 백작이 되는 게 가문을 위해서 최선의 길이야. 외부인은 더 이상 엮이지 말고 빠져라.”

아르투르는 기가 막혀 눈을 감고 웃었다. 분명하게 눈을 뜬 그는, 경멸이 가득한 눈빛으로 빌헬름을 노려봤다.

“당신은 역시 안 되겠어. 이 땅을 다스릴 자격이 없어. 작은 실수라고? 그 작은 실수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 받았는지 안다면 그따위로 말하진 못했을 거다. 당신이 프레드릭을 지원하지 않았다면, 이번 일엔 끼어들지 않았을 거다. 그건 당신 말대로 위르마넨 가문의 일이니까.”

아르투르의 표정은 점차 험악해졌다. 그가 작은 실수라고 말한 것이 아르투르의 심기를 건드렸다. 프레드릭이 벌인 잔인한 만행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젠 내 명예를 건 싸움이 됐다. 나는 영주 대리로서 영지를 정돈해야 할 의무가 있어. 너 같은 놈이 영주가 되면 여태까지 네가 해온 개짓거리만 계속하면서 사람들을 괴롭히겠지. 네가 그런 일을 저지르게 내버려두지 않겠다.”

빌헬름도 냉소적인 표정을 지으며 지지 않고 아르투르를 노려봤다.

“위선자 같으니! 영웅 놀이는 집어치워라. 결국 너도 백작이 되고 싶을 뿐 아니냐. 어린 신부와 백작령이 탐난다고 말해라. 거짓말쟁이 같으니! 무지몽매한 백성들이나 속을 법한 이야기다. 제 주제를 모르고 날뛰니, 곧 그 대가를 치를 거다.”

빌헬름은 곧장 말을 돌려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만프레드는 돌아가지 않고 호기심에 물든 표정이었다.

“이봐. 아까 말한 것 말이야. 우리 의뢰주님이 프레드릭을 지원하지만 않았더라면 백작위를 넘겼을 거라는 것, 사실이냐?”

“물론이다. 도파뉴 백작령은 위르마넨 가문의 영지야. 내 공에 대해 적합한 보상만 받았다면 그들 간의 계승 분쟁에 뛰어들 이유는 없었지.”

“재밌네. 너는 지금 수천 명의 사람을 전쟁터로 몰아넣고 있어. 차라리 의뢰주에게 권력을 넘기고 돈이나 두둑이 챙겨서 떠나는 게 영지를 위해선 최선의 방법 아닐까?”

“저런 비열한 악당이 조카를 몰아내고 영주가 되는 일을 용납할 생각은 없다. 그건 옳지 않아.”

만프레드는 소리를 내어 크게 웃었다.

“재밌네. 재밌어. 넌 네 명예를 위해 수 천의 사람들을 전장으로 내몰겠다는 거군. 제정신이 아니야.”

아르투르는 미묘하게 웃는다.

“부정하진 않지. 하지만 황금보단 가치 있는 것이다. 기사에게 명예란 모든 것이다. 명예 없는 기사는 도적과 다를 바 없어. 용병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사실 용병, 도적, 기사 모두 같은 족속이란 걸 인정하자고. 추구하는 게 다를 뿐. 우린 같은 사람들이야.”

아르투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와 너는 다르다.”

만프레드는 씩 웃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자신만만하군. 사람들은 네가 혼자 백 명을 베었다고 하던데, 소문이 사실인지 기대하마.”

회합이 끝난 네 기사들은 각자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만프레드는 곧장 기병대장들을 소집했다.

“적들의 후방을 들이쳐라! 너희가 적의 기병을 무너뜨리면 보병대가 진격해 적의 숨통을 끊을 것이다. 이번 작전에 성공하면 기사에겐 금화 열 닢, 무장 기병들에겐 금화 세 닢씩 내리겠다. 출전!”

“금괴를 위하여!”

금괴 기사들은 황금에 고무되어 기병들을 이끌고 진영을 나섰다. 정규 기사단들과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는 강력한 군대였다. 아르투르도 기병대를 이끌고 요격에 나섰다. 그는 은빛 갑옷에 거대한 백마를 타, 모두가 쉽게 존재를 알아차렸다. 그 모습을 본 만프레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놈이 도발에 응했으니 이겼습니다. 놈의 기병대 숫자는 절반, 기사의 숫자는 삼분지 일도 안 됩니다. 정면으로 부딪치면 끝장나는 거죠. 제 놈이 잘나 봐야 무용이 뛰어난 기사들은 이쪽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자, 빌헬름 공. 백작령을 되찾는 모습을 보시죠.”

빌헬름이 말했다.

“기사들은 가급적 죽이지 말게. 내게 충성을 바칠 자들이야.”

“저희로서도 기사들은 사로잡는 게 좋습니다. 시체를 위해 몸값을 지불할 사람은 없으니까요. 결국 저 군대는 아르투르의 카리스마에 의존하고 있으니, 놈이 무너지면 끝장날 겁니다. 참, 바이스부르크를 점령하면 조카 분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유감이지만, 가문 하나에 수장이 둘일 필요는 없지.”

만프레드는 껄껄 웃었다.

“제 알 바는 아니죠. 백작이 되시면 용병료를 세 배로 지불하시겠다고 한 약속만 지키시면 됩니다.”

“누가 자넬 상대로 용병료를 떼어먹겠나? 얼른 전투나 끝내주게. 서둘러 바이스부르크를 되찾고 싶군.”

“여부가 있겠습니까. 오늘이 가기 전에 영지를 손에 쥐여드리죠. 백작 각하!”

***

도합 천 명에 이르는 기병들이 출전하자 말발굽 소리로 땅이 울렸다. 마상창을 앞세운 채 언덕을 뛰어 내려가는 기병들의 모습은 역동적인 파도와 같아,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을 울렸다.

아르투르는 명령을 내려 쐐기 대형을 취하도록 했다. 아르투르가 선봉에 서고, 그 뒤를 따라 300명에 달하는 기병들이 길게 늘어서 하나의 쐐기를 이뤘다. 반면 금괴기사단은 전면을 두텁게 만들고 좌우에 기병을 넓게 펼쳐 양옆에서 아르투르의 기병대를 감싸고자 했다.

결국 수적 우세에 있는 금괴 기사들이 아르투르의 기병대를 먼저 포위 섬멸시키느냐, 아르투르의 기병대가 금괴 기사단의 정면을 돌파하는가의 문제였다. 전세는 무엇으로 봐도 아르투르에게 불리했다.

두 기병 무리가 가까워지자 아르투르는 마상창을 겨드랑이에 걸고 허벅지를 움직여 에쿠잘루스를 재촉해 돌격했다. 에쿠잘루스는 투레질을 하며 최고 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적의 선두는 미처 피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지끈 -

콰지지직 -

마상창이 부러지며 목 보호대를 부수고 맨살을 꿰뚫었다. 그것을 시작으로, 모든 방면에서 기병 무리가 충돌해 혼잡하기 그지없는 전투의 현장이 펼쳐졌다. 말들이 서로 부딪혀 바닥을 나뒹굴고, 낙마한 기사들이 무기를 뽑아들고 서로를 노렸다. 속력을 잃은 기병들은 서로의 휘장을 보고 피아를 분별했고, 치열한 기마 전투를 벌였다.

아르투르는 튼튼한 메이스를 휘두르며 적병들을 쓰러뜨렸다. 그의 악력은 남달랐기에 메이스에 한번 두들겨 맞으면 판금 갑옷이 우그러지며 치명상을 입혔다.

“저놈만 쓰러뜨리면 우리의 승리다!”

그가 대장임을 알아챈 대담한 기사 네 명이 동시에 아르투르를 노렸다. 아르투르는 그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전에 자신이 먼저 돌격해, 전면에 있던 기사에게 메이스를 휘둘렀다. 투구와 함께 두개골이 깨져 즉사했다. 두 번째로 오던 기사가 마상창을 조준해 찔렀지만 아르투르는 가볍게 피한 후 옆구리를 후려쳤다. 그는 허리뼈가 부러지며 낙마했다.

세 번째 기사 역시 아르투르에게 마상창을 내질렀는데, 그는 왼손의 방패를 들어 창을 막았다. 막대한 충격력이 가해지며 방패가 산산이 조각났지만, 억센 아르투르의 팔은 조금도 다치지 않았고 자세는 흔들리지 않았다. 아르투르는 곧장 메이스를 휘둘러 놈의 머리통도 깨버렸다.

네 번째 기사는 정면에서 다가와 전투도끼를 내리쳤는데, 메이스로 맞받아치자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도끼가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가 당황한 사이 아르투르의 두 번째 공격이 몸통에 날아들었고, 그는 말에서 튕겨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죽어어어!”

등 뒤에서 고함 소리가 들리자 에쿠잘루스는 자연스럽게 옆으로 빠졌고 아르투르는 상반신만 돌려 자신에게 내리쳐지는 공격을 느끼고 몸을 비틀었다. 메이스가 아르투르의 옆구리를 후려쳤지만, 스쳤을 뿐이라 갑옷이 조금 일그러지는 것으로 끝났다.

아르투르는 말안장에서 투척 도끼를 꺼내 지나쳐가던 기사의 머리를 향해 날렸다. 투구 깊숙이 박히며 놈은 뒤로 쓰러진다.

“더 없느냐!”

아르투르는 기사들을 잡병 쓸듯이 쓰러뜨렸고, 어느 사이 그의 손에 쓰러진 기사만 열댓 명에 달했다. 수백 명의 인마가 어울려 버리고 있는 장대한 기병전의 현장으로 아르투르가 뛰어들자, 그의 모습을 본 아군 기사들이 함성을 질렀다.

“엘베르의 영웅이 왔다! 아르투르 경께서 오셨다!”

여전히 자신만만하던 금괴 기사들은 아르투르를 쓰러뜨리는 영광을 얻기 위해 차례로 달려들었다.

“네놈이 그리 힘이 세다던데, 한번 보여 봐라!”

아르투르와 비슷한 체격을 지닌 덩치가 전투 도끼를 들고 아르투르를 향해 돌격해왔다. 그러나 그는 몸을 살짝 움직여 공격을 피한 후 머리에다 메이스를 후려쳤다. 용감한 기사는 자리에서 머리가 깨져 죽었다.

“그렇게 느려 터져서 뭘 하겠느냐?”

산전수전 다 겪은 금괴 기사들로서도, 이런 상황은 겪어보지 못했다. 힘과 재빠름, 기교에서 자신들 중 누구도 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혼자 덤비면 개죽음이었고, 여럿이서 덤비면 그저 살 시간이 조금 늘어날 뿐이었다.

그때 금괴 기사들을 지원하기 위해 보병대가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패주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알튼 남작과 크리스티안도 보병대를 이끌고 도착했기에 전 전선에 걸쳐 치열한 힘 싸움이 벌어졌다. 훈련도와 장비에선 분명히 금괴 기사단이 우세에 있었지만, 전투의 분위기는 이미 백작 군에게 넘어가 있었다.

아르투르는 혼자 전선을 넘나들며 아군을 도왔다. 스무 명의 기사들과 오십 명이 넘는 병사들이 그의 손에 쓰러졌다. 결국 만프레드는 후퇴 나팔을 불었고, 부상을 당해 쓰러진 동료들을 내버려두고 언덕 위로 도망갔다.

“이리 와라! 끝장을 내주마!”

아르투르는 곧장 에쿠잘루스를 이끌고 돌격했지만, 어느새 주변에는 어느 아군도 없이 자신만 혼자 남았다. 동료 기사들이 모두 낙마하거나 힘에 부쳐 그를 따라오지 못한 것이다. 만프레드는 예비대로 남겨두었던 기사들을 이끌고 아르투르를 저지하러 달려 나왔고, 아르투르는 아쉬움을 느끼며 본진으로 되돌아갔다.

“쫓아서 죽일까요?”

“정지, 정지. 그냥 보내. 저런 괴물은 이렇게 잡는 거 아니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유에 가득 차 있던 만프레드는 놀란 표정으로 아르투르의 추격을 금지했다. 정신줄을 놓고 달아나는 금괴 기사들의 풍경은 그로서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씨발, 저 새끼는 악마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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