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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26화 (26/248)

26화

아르투르가 도약하며 여명을 내리쳤다. 프레드릭은 양손의 검을 교차해서 막아냈다. 놈이 곧장 힘을 줘서 아르투르를 밀어내려 했지만, 오히려 아르투르의 힘에 뒤로 밀려났다. 프레드릭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아르투르를 노려봤다. 아르투르는 프레드릭의 발걸음을 유심히 살폈다.

‘발걸음이 훌륭하군. 제대로 된 스승에게 배운 거야.’

성의 안팎으로 투사 병기들이 오고 가고, 성벽을 기어오른 병사들끼리 피 튀기는 백병전을 벌이는 가운데, 두 기사가 서로를 마주 봤다. 프레드릭은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아르투르에게 접근했다. 여명은 일반적인 장검보다 굵고 길었기에 아르투르가 먼저 공격할 기회를 얻었다.

‘좀 더 실력을 볼까.’

그는 프레드릭의 반응 속도를 확인하기 위해 곧장 가로로 베었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바람이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프레드릭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공중으로 뛰어올라 공격을 피한 후, 아르투르의 측면으로 착지했다.

프레드릭은 각각의 손에 들린 검으로 아르투르의 양쪽 겨드랑이를 노렸다. 아르투르는 재빨리 검을 거둬 두 공격을 모두 쳐냈지만, 프레드릭은 그 사이 후방으로 이동하며 다리 갑옷의 이음새를 노렸다.

“이놈이 - !”

아르투르는 재빨리 몸을 돌려 갑옷의 전면부를 돌출했다. 그러자 오히려 칼날이 퉁 - 소리를 내며 튕겨 나갔다. 판금 철판은 몇몇 취약점이 있긴 하지만, 검에 대해서는 거의 완벽한 방어를 제공했다.

“너, 제법이구나!”

프레드릭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검을 거둬들여 새롭게 자세를 잡았다. 그는 낄낄 웃으며 날아드는 아르투르의 검을 피해내고, 반격했다. 아르투르도 똑같이 했다. 그들이 움직임은 워낙 빠르고 검격이 빨라 병사들은 싸움에 휘말리기 싫어 멀찍이 물러났다.

어느새 성벽 위에는 두 사람만이 싸우는 공간이 형성됐다. 여러 차례 공격을 주고받은 두 사람은 상대가 만만치 않다고 느꼈다. 힘에선 아르투르가 프레드릭을 압도했지만, 프레드릭은 아르투르보다 더 재빠르고 날랬다. 무장만 봐도 아르투르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판금으로 감싼 것에 반해, 프레드릭은 흉갑과 팔 보호대만 착용하고 있었다.

“이놈!”

여명이 재차 빛을 내려 위에서 아래로 내리 찍혔다. 프레드릭이 피한 자리에 거친 먼지가 일어나며 벽돌에 금이 갔다. 프레드릭은 검을 내리치며 생긴 빈틈으로, 아르투르의 투구를 타격했다. 좌우에서 검의 옆면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아르투르는 순간 휘청였다. 검의 궤적을 읽고 싶으나 투구의 시야에 가렸던 탓이었다.

아르투르가 휘청이자 프레드릭은 이번엔 투구의 눈 틈을 노리며 매섭게 찔렀다. 아직 아르투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지금이 기회였다. 하지만 아르투르의 몸은 훈련받은 대로 반응했다. 짧은 시간의 단서만으로도 어떤 위협이 다가오는지 느낀 아르투르의 팔은 여명을 들어 올려 방어 자세를 취했고, 잇따른 두 번의 공격을 쳐냈다. 훈련량이 그를 구한 것이다.

“너, 싸울 줄 아는구나.”

뒷걸음질 쳐 다시 거리를 벌린 프레드릭이 실실 웃었다. 아르투르는 이를 악물고, 왼손으로 투구를 벗어 집어 던졌다. 투구 속에 있던 덥고 쾌쾌한 공기가 빠져나가고 시원한 가을바람이 그의 코를 자극했고, 시야도 뚜렷해졌다.

프레드릭은 날아오는 투구를 슬쩍 피한 후, 앞으로 다가서 아르투르의 머리를 노리며 찔러왔다.

“좋은 생각이 아닐걸! 투구가 없었으면 넌 이미 뒈졌어!”

아르투르의 예상보다 빠른 속도였다. 이놈은 괴물이다. 도대체 이런 놈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검의 궤적이 뻔히 보였다. 방어 자세를 파훼하기 위해 넣은 속임수들이 뻔히 보인다. 그래 봐야 결국 노리는 곳은 머리, 겨드랑이, 사타구니, 셋 중 하나였다.

오른편에서 날아드는 공격은 칼날로 튕겨냈고, 좌측의 공격은 왼손을 들어 올려 건틀렛으로 막아냈다. 프레드릭은 재빨리 칼날을 거두어 방어 자세를 취하지만, 이번엔 아르투르가 먼저 정면에서 공격해 들어갔다.

‘단 한 번, 단 한 번의 공격만 성공시키면 이긴다.’

프레드릭은 아르투르의 검을 흘려냈다. 두 사람은 다시 성벽에서 무기를 악기로 삼아 합창했다. 부딪히는 쇳소리들이 쉬지 않고 들린다. 한눈에 보기에 그것은 힘과 속도의 대결이었다. 프레드릭은 쉬지 않고 난폭하게 공격해오고, 아르투르는 방어에 치중하다 한 번의 정확한 일격을 가했다. 프레드릭은 그때마다 널찍이 치고 빠지며 아르투르를 교란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미친 짐승처럼 괴성을 지르는 프레드릭은 더 강렬히 아르투르를 공격했다. 이젠 아주 요란하게 검을 흔들었다. 아르투르조차 궤적을 따라 읽기 힘들었다. 무수히 가해지는 공격은 여명으로 쳐내거나, 피하고, 갑옷으로 튕겨냈다. 놈은 쌍검을 사용하는 이상 공세에 유리했다.

아르투르는 짧은 시간 사이, 자신이 배웠던 내용을 되새긴다.

‘마스터, 쌍검술은 언제 가르쳐주시나요?’

‘달인들이나 할 법한 검술을 종자인 네가 익혀서 무엇 하겠느냐. 지금 하는 양손 사용에나 충실하거라. 그게 기본이다.’

‘하지만 무기 하나보다는 무기 두 개가 더 유리하잖아요.’

‘그렇지 않아 전투 중에 오른손과 왼손의 무기를 헷갈리면 끝장이다. 타고난 양손잡이라도 오른손과 왼손의 사용 강도는 다르다. 결국 어느 한쪽에 힘이 더 들어가게 되어있어. 덜 들어가거나.’

아르투르의 마스터, 바야르 경의 말이 기억 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타고난 양손잡이도 오른손과 왼손의 사용빈도가 다르다. 그러니 근력이 다르지. 그런 공격을 계속하다 보면 헷갈리는 건 금방이다. 그렇게 되면, 약점이 생기지.’

아르투르를 향해 프레드릭의 맹공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어찌나 프레드릭이 열심히 칼을 내리쳤는지, 여명과 수십 차례 부딪힌 칼날에 금이 갈 정도였다. 그동안 아르투르는 프레드릭의 공격을 살펴봤다.

오른손이 더 빨랐다. 미세하긴 했지만, 분명히 왼손이 오른손에 비해 느렸다. 약점을 포착한 아르투르는 두 발자국 물러난 후, 곧장 우측에서 좌측으로 내려벴다. 프레드릭은 오른손의 검으로 받아낼 준비를 했고, 이어지는 2격을 왼손의 검으로 받아낼 준비를 했다.

첫 일격은 성공적으로 쳐내고, 재차 가해진 검격을 쳐내려했지만 찰나의 순간, 여명이 먼저 프레드릭의 왼 손목을 갈랐다. 팔 보호대와 뼈가 동강 나며 프레드릭의 왼손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으아아아아악!”

프레드릭이 고통에 절규하는 사이, 아르투르는 다시 여명을 들어 내리쳤다. 도적들의 왕은 오른손의 검을 들어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양손으로 내리누르는 힘을 오른손만으로 이길 순 없었다. 프레드릭의 팔목이 점차 내려갔고, 마침내 힘을 잃은 프레드릭의 오른손이 검을 놓쳤다.

“아… 안돼! 너흴 다 죽여야 한단 말이야! 너희 모두…!”

번득이는 은빛 칼날이 머리를 쪼갰다. 뼛조각과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잠시 쓰러진 프레드릭을 바라보던 아르투르는 이윽고 두 토막 난 프레드릭의 머리를 들어 성 내에 내보였다. 도적들은 절망에 빠졌고, 토벌군은 열광하기 시작했다. 전장의 분위기가 넘어오는 사건이었다.

때에 맞춰, 충차의 공격으로 성문이 깨어졌다. 성벽 너머에 대기하던 중무장한 기사들이 뛰어 들어와 수비대를 쓰러뜨렸고, 그 뒤로 수백의 병사들이 물밀 듯이 밀고 들어왔다.

아르투르는 도적단의 깃발을 꺾어 성벽 밖으로 내던지고, 포효하는 곰이 그려진 위르마넨 가문의 깃발을 꽂았다.

“우리가 승리했다!”

토벌군은 분노에 가득 차 격렬히 싸웠다. 악만 남은 도적들도 저승길 동무를 늘리고자 표독스럽게 싸웠다. 잡히면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 뻔했으니까. 그럴 바에야 한 놈이라도 저승길로 데려가겠다는 독종들이었다. 그들의 저항은 영주의 관저에서 농성하던 최후의 무리를 아르투르가 쓸어버리면서 끝이 났다.

아르투르는 도적들의 머리를 묶어 영지 곳곳으로 보내 모범을 보이기로 했다. 프레드릭의 부하 중 살아남은 자들은 스무 명 정도에 불과했다. 그들은 심문을 위해 살려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운명을 맞으리라.

아르투르가 뒷수습을 마치고 나자 해가 지고 있었다. 그는 곧장 씻고는, 자신의 막사로 돌아와 곯아떨어졌다. 수개월 간 쉴 틈 없이 싸워온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 까닭이었다. 나머지 수습은 현지를 잘 아는 알튼 남작에게 위임했다.

다음날 정오, 아르투르가 잠에서 깨어나자 옆에서 갑옷을 닦고 있던 케이가 말했다.

“마스터, 일어나셨군요. 기다리는 손님들이 계십니다.”

“손님들? 그게 누군데?”

“백작가의 기사들이 왔어요. 주군을 성으로 모시고 가겠다는데요?’

아르투르는 곧장 옷과 검만 챙겨 입고 막사 밖으로 향했다. 열댓 명의 완전무장한 기사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전에 그에게 토벌대장의 임명장을 내린 토비야스 경이 대표였다.

“백인을 벤 아르투르 경에게 경의를! 엘베르의 영웅 아르투르 만세!”

토비야스가 검을 뽑아들며 외치자, 다른 기사들도 똑같이 했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아르투르의 시선은 좋지 않았다. 영지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백작께선 뭘 하시다가, 일이 끝나고서야 기사들을 보내는 것인가.

그런 눈초리에 기사들은 저절로 움츠려들었고, 아르투르의 눈치를 살피며 시선을 피해 다녔다.

“그래. 백작이 날 보자고 한다고?”

“예. 경의 공적을 치하하고 보상을 논의하고 싶다고 하십니다.”

아르투르는 잠시 토비야스를 내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크리스티안, 그리고 아밋서텐. 심문은 자네들에게 맡기겠네. 싸워봐서 알겠지만 이들은 단순 도적이 아니야. 분명히 배후의 지원 세력이 있어. 그걸 밝혀내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알겠네.”

“크레이스 공, 그대는 잔존한 도적들을 소탕해주시오. 이제부터 사면은 없소. 최후의 한 놈까지 발본색원하시오.”

알튼 남작은 흥겨운 목소리로 답했다.

“기꺼이 그렇게 하지!”

아르투르가 지시를 내리는 사이, 케이가 에쿠잘루스와 조랑말을 데려왔다. 두 사람은 곧장 말에 올라타, 기사들과 함께 백작의 성으로 향했다.

그들은 머튼 남작령을 지나며 비참한 광경들을 목격했다. 길거리에 널린 채 썩어가는 시체들, 길을 잃고 헤매며 풀뿌리를 캐 먹는 피난민들, 이 기회를 틈타 한몫 잡으려는 불한당들까지. 이보다 정도는 덜하겠지만, 도파뉴 백작령 전체가 이와 비슷한 모습이리라.

“케이, 잘 봐둬라. 이게 책임을 지닌 이들이 스스로의 일을 하지 못할 때 벌어지는 일이다.”

케이는 음울한 눈으로 이러한 풍경들을 바라보며 말을 몰았다. 자신이 결코 쉽게 살아왔다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런 종류의 풍경은 소년에게 깊은 슬픔을 느끼게 했다.

“이들이 일상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케이가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길 바라야지. 우리의 역할은 평화를 되찾아주는 것 까지다. 그 뒤는 백작과 영주들이 해나갈 일이지. 나는 지금 방랑기사일 뿐이야.”

잠자코 침묵하고 있던 토비야스가 말했다.

“아마도 경께서 이들을 보살피시게 될 겁니다.”

아르투르는 의아한 눈빛으로 토비야스를 바라봤다.

“나는 기사된 도리로써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일세. 내 의무는 여기 까질세. 나는 보상을 받고 떠날 걸세.”

토비야스는 머뭇거리다가, 아르투르를 보며 말했다.

“그 보상이 이 땅의 통치권이라면, 어떠하시겠습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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