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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25화 (25/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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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군사 작전이 개시되자, 전쟁에 잔뼈가 굵은 귀족들은 신속히 움직였다. 아르투르의 기병대가 활동하자, 도적들은 모두 거점에 틀어박혔다. 그러면 알튼 남작이 포위 공격을 가했다. 귀족들이 이끄는 전문 군인들이 합류하니 도적들은 상대가 되지 못했다. 차근차근 토벌이 진행되던 중, 카밀이 아르투르에게 제안했다.

“사면령을 내리시지요. 지금이라도 도적단에서 이탈하는 자들에겐 죄를 묻지 않겠다고요.”

“드디어 승세를 잡았는데 그게 무슨 소린가?”

“승세를 잡았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수입니다. 놈들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때 안전히 이탈할 기회가 생긴다면 기회를 잡으려는 자들이 많을 겁니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적들을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썩 내키지는 않는다만.”

아르투르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알고 있습니다. 사면령을 내리시되, 지키지 않으시면 됩니다. 도적들을 상대로 사면령을 어겼다고 경의 평판에 누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적의 수가 줄어드는 만큼, 더 많은 아군을 살리시는 겁니다. 적들을 분열시키시죠.”

아르투르는 턱 밑을 쓰다듬으며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건 어떤가? 프레드릭이 죽기 전까지 영지 밖으로 도주하는 자들은 추격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반면, 끝까지 저항하는 자들은 모두 죽게 될 것이라고 말일세.”

“그것도 좋군요. 어차피 중요한 것은 결전을 앞두고 적들의 수를 줄이는 일입니다. 사후처리야 아무래도 좋은 일이죠.”

아르투르는 크리스티안과 카밀에게 작전을 위임했다. 크리스티안은 훌륭한 솜씨로 영지 내의 도적들에게 소문을 퍼뜨렸다. 아르투르는 그가 싸움 실력은 평범하지만, 계략과 조직 운영에선 탁월한 솜씨를 보인다고 평가했다.

아르투르의 위협이 전해지자 많은 도적들은 자신들의 살길을 찾아 영지 밖으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점차 거점을 잃어가던 도적들에게 사면령은 결정타였다. 외부에서 찾아와 한 몫 잡아보려던 뜨내기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 멀리 도망칠 궁리를 하게 된 것이다.

아르투르가 차근차근 전략적 행보를 걷는 동안, 프레드릭은 마을을 불태우고 다녔다. 그의 광기는 갈수록 심해져, 그의 부하들마저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됐다. 어느새 그의 곁에는 가장 악하고 지독한 자들만 남게 됐다. 오직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표인 도적들도 도망갈 길을 찾기 시작했다.

아르투르가 새롭게 발표한 사면령은 그 심리를 정확히 노린 것이었다.

‘우두머리의 목을 가지고 투항하는 자는, 과거의 죄를 사면하겠다.’

영주들은 대체로 이 사면령에 동의했다. 이 기회에 본보기를 보이고 싶은 이들도 있었지만, 서둘러 난을 끝내고 일상으로 복귀하고 싶은 자들이 더 많았다. 도적들의 준동이 오래될수록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들이니까. 불타버린 농토는 그들의 것이고 학살당한 마을 사람들은 그 농토를 대신 개간해줄 노동력이었으니.

“이놈만 죽이면 우리가 모두 살 수 있다!”

도적들이 하극상을 벌이기 시작했다.

“내가 네놈들에게 얼마나 많은 걸 가져다줬는데!”

우두머리들은 배신감에 분노했다. 잔존한 도적단 곳곳에서 분란이 발생했다. 무리가 두 패로 갈라져 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우두머리를 죽이고 통째로 항복해오는 일도 있었다. 이제 도적들은 그들의 왕 프레드릭보다 아르투르를 두려워했다. 공포는 복종에 좋은 도구지만, 결국 강자에게 하는 것이었다.

프레드릭은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리고 도적단을 불러 모았다.

“왜 이 새끼들이 안와?”

그에게 몰려든 자들은 지은 죄가 너무 커서 사면의 가능성이 없는 자, 순수하게 살육과 약탈을 즐기고 싶은 자, 이미 자포자기하여 인생을 포기한 자들 정도였다. 한때 수천에 달하던 무리는 고작 수백여 명의 규모로 삽시간에 줄어들었다. 그들은 탈출로를 모색했지만, 아르투르가 보낸 분견대가 미리 산맥을 넘는 길을 봉쇄했다.

“프레드릭만큼은 절대로 살려 보내선 안 된다! 그놈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결국 프레드릭은 자신이 점거한 머튼 남작령의 성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됐어, 됐어! 아르투르 경! 그들이 막다른 곳으로 도망치고 있소. 우리가 이긴 거요!”

알튼 남작이 환호성을 지르며 보병대의 진군을 명했다. 그러나 남작령으로 이동한 병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이 가는 곳마다 오직 잿더미와 꼬챙이에 꿰인 시체들만 가득했다. 토벌군이 자신들의 목을 죄어오는 것을 알고, 잔혹 행위에 충실했던 것이다.

일생을 전쟁터에서 지내온 알튼 남작마저 시선을 돌릴 정도니, 평범한 병사들이 극심한 공포를 느끼며 나아가길 거부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백마를 탄 아르투르가 군대의 전면으로 나서 소리쳤다.

“도파뉴의 남자들이여, 이들의 악행이 두려워서 도망갈 셈이냐? 내가 너희와 함께한다! 나와 함께 저 악마를 심판하고자 하는 용감한 이들은 나를 따르라! 승리가 우리를 기다린다!”

아르투르는 어느새 도파뉴 영지의 대중적인 영웅이자 승리의 상징이 되어있었다. 병사들은 공포를 잊고 환호성을 내지르며 영웅의 뒤를 따른다. 그들은 시신들을 집단 매장하고 진군을 계속했다.

“발타리아시여, 이 가엾은 이들을 당신 품으로 거두소서.”

종군 사제들이 수습된 시체들을 향해 기도문을 외웠다. 아르투르는 신앙심이 깊은 편은 아니었고, 사실 레무스 교의 교리에도 많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레무스 교의 모든 교리가 사실이길 바랐다. 그래야만 프레드릭 일당에게 걸맞은 지옥이 존재할 테니까.

마침내 토벌군은 마침내 머튼 남작가의 성채에 도착했다. 성채는 언덕에 있었고, 네 개의 감시탑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아르투르는 지휘관들과 함께 성채 주변을 거닐며 수비 상태를 살폈다.

“적들도 제대로 수성 준비를 한 건 아니군.”

아르투르가 말했다.

“그래 보이오. 성문은 급조한 목책과 바리케이트로 막았고, 끓는 기름을 부을 항아리도 보이지 않는군.”

알튼 남작이 덧붙였다.

“정찰 기병들의 보고에 따르면, 숫자는 300명 남짓이라고 합니다. 그중 절반이 성벽 위에 배치되어있군요.”

“2교대 근무로는 피로가 쌓일 텐데. 제일 중요한 건 식량이지. 머튼 남작의 성에 얼마나 많은 식량이 저장되어있는지 알만한 자가 있는가?”

아르투르의 말에 크리스티안이 대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도주한 집사를 찾아내 물어보니, 성이 함락되고 놈들이 지른 불이 식량 창고에 옮겨 붙었다는군. 식량 창고가 전부 불타진 않았더라도, 오래 버티진 못할 걸세.”

“하지만 한두 달 내로 겨울이 온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마냥 성을 포위하고 있을 순 없어. 그 전에 끝내야 해.”

아르투르는 새롭게 작전을 계획했다. 우선 나무를 베어 공성 장비들을 준비했고, 성벽의 수비병들은 긴장 상태를 갖췄다. 그 뒤로는, 궁수들을 보내 짧은 교전을 지속적으로 벌였다. 그런 상태가 일주일 넘게 지속되자, 도적단의 보초병들은 피로가 쌓였다.

“이제 우리가 갈 시간이다.”

입에 단검을 문 카밀이 말했다. 그는 별동대를 이끌고 야밤에 성벽에 올라 보초병을 제압했다. 성문은 지키는 병력이 너무 많았기에, 식량 창고만을 급습해 남은 식량을 불태우고 후퇴했다.

카밀은 다음날 새벽 돌아와서는 작전의 성공을 보고했다.

“이제 적들에게 남은 식량은 없습니다. 굶어 죽기만을 기다리시면 됩니다.”

“해냈군! 아밋서텐!”

아르투르가 환호성을 내질렀다.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겨울이 오기 전에 그들은 성문을 열고 나와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들을 소탕하는 일은 아주 쉬워지리라! 아르투르는 사기를 알리기 높이기 위해 병사들에게도 이 소식을 전파하고, 밤낮으로 성문 앞으로 가서 소리쳤다.

“너희는 포위됐고, 퇴로는 없다. 이대로면 너흰 모두 굶어 죽을 것이다. 성문이 열리기 전에 프레드릭을 죽이고 투항하는 자는 사면해주겠다. 선착순 열 명이다!”

그러나 성내에 남은 병력들에게 동요는 없었고, 오히려 성벽에 올라서 있던 프레드릭은 기괴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을 까딱했다. 그러자 그의 부하들이 고기를 가득 담은 수레를 밀고 올라왔다. 프레드릭도 한입 베어 물며 자신이 건재함을 내보였다.

“짐승들을 잡아서 며칠이나 버틸 것 같나! 내 제안을 잘 들어라! 프레드릭을 죽여라! 선착순 열 명이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도, 프레드릭은 똑같이 고기를 들고 나와 배급했고 배신의 낌새를 보이던 부하들을 처형해서 성벽에 내걸었다. 상황을 의아하게 여긴 아르투르는 카밀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도록 했다. 이번에도 카밀은 밤중에 성벽을 타고 올라가 내부를 살펴보고 왔다.

다음 날 아침, 그는 지휘관들 앞에서 담담히 보고했다.

“식량의 출처는 포로입니다.”

좌중에 침묵이 흘렀다. 아르투르는 책상을 박차고 일어나 뛰쳐나갔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일제히 검을 뽑아들며 챙강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주 명확했다.

“케이! 에쿠잘루스를 데려와라!”

아르투르는 곧장 등자를 밟고 에쿠잘루스에 올라타, 진영을 한 바퀴 돌아 병사들에게 집합을 명령했다. 공성전 없이 전투가 끝나리라 믿던 병사들은 두려운 얼굴로 모여들었다.

“일어나라 형제들이여! 저 악마들이 우리의 동포를 잡아먹고 있다! 사람으로서 검을 들고 일어나라. 신을 대신하여 저들에게 징벌을 내리자!”

아르투르의 연설은 프레드릭에 대한 그들의 공포를 분노로 바꿔놓았다. 전투 대형을 갖춘 토벌군은 충차와 사다리를 앞세워 진격한다. 선두에는 거대한 원형 방패를 든 아르투르가 있었다. 성벽 위에서 종소리가 들리고, 프레드릭의 병력이 성벽 위에 도열했다. 화살 비가 빗발치며 토벌군이 하나씩 쓰러져가지만, 그들은 기어이 충차를 성문에 붙이고 사다리를 올렸다.

쿵 -

성문이 흔들리는 가운데, 첫 번째 사다리가 올라갔다. 아르투르는 가장 먼저 그것을 차고 빠르게 올라갔다. 화살이 빗발치지만 단 한 발의 화살도 방패를 넘지 못했다. 돌덩이를 던져도 간단히 방패로 쳐낼 뿐이었다. 그가 성벽에 오르자마자, 학살이 시작됐다.

“- 너희는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그는 방패로 쳐서 병사를 성벽 너머로 날려 보내고, 여명을 뽑아들었다. 일반적인 도적들보다 무장과 무예가 모두 뛰어난 자들이었지만, 성난 여명 앞에선 똑같이 일격에 쓰러질 뿐이었다. 그의 주변으로 시체가 쌓였다. 누구도 감히 그의 앞을 가로막지 못했다.

단 한 명만 빼고.

프레드릭, 기괴한 미소를 짓는 도적왕이 아르투르에게 다가왔다. 그의 양손에는 장검이 들려있었다.

“드디어 일대일로 만났네. 널 정말 보고 싶었어.”

프레드릭은 피가 가득 묻은 자신의 장검을 혀로 핣았다. 아르투르는 이글거리는 녹색 눈으로 그를 주시했다.

“처음으로 우리 의견이 맞는군.”

아르투르는 방패를 내던지고, 여명을 양손으로 쥔 후, 곧장 도약했다. 프레드릭은 오른발을 앞으로 내디디고, 왼손의 검을 앞세워 내리치는 아르투르의 공격을 막아낼 준비를 했다.

“왕족의 심장은 무슨 맛일지 궁금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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