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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왕 아르투르-12화 (1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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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센 주먹이 사내의 턱주가리를 강타했다. 몸이 공중에 붕 떠올라 탁자로 쓰러졌고, 사내는 땅에 엎어져서 피와 이빨들을 뱉어냈다. 케이를 때리던 두 사내는 동료가 공중을 난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아르투르를 바라봤다.

그들을 살펴보니 검 한 자루와 가죽 갑옷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일반인이라기엔 무장이 과했다.

한 녀석이 손에 쥐고 있던 몽둥이를 아르투르를 향해 휘둘렀지만, 아르투르는 의자를 휘둘러 공격을 막았다. 공격을 막아낸 아르투르는 곧장 상대를 발로 걷어찼고, 벽에 부딪힌 녀석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마지막 남은 녀석은 그사이 칼을 뽑아들어 아르투르를 겨눴다.

“이런 옘병! 가까이 오지 마!”

다급하게 소리치는 괴한에게 의자가 날아갔다. 괴한은 그대로 쓰러졌다. 아르투르는 쓰러진 괴한 셋을 각자 발로 한 번씩 걷어차 마무리하고, 쓰러진 케이에게 다가가 부축했다.

케이는 이마가 까진 것을 제외하면 큰 부상은 면한 듯이 보였다.

“주인장, 소독할 물과 붕대 부탁하지.”

여관 주인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어 눈을 껌뻑이다가, 아르투르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그리합죠! 나리!”

여관주인이 자신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 붕대를 가지고 나왔다. 아르투르는 물로 상처를 씻어낸 후 케이의 이마에 붕대를 둘러줬다. 케이는 고통으로 얼굴을 찌푸리며 쓰러진 사내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 케이.”

“제가 에쿠잘루스를 보러 가는데, 구석에 있던 녀석들이 제게 나리의 종자가 맞냐며 묻더군요. 그래서 맞다고 하자 저들이 절 공격했어요.”

“알았다. 너는 올라가서 쉬고 있어라. 내가 처리하마.”

그러자 케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저도 일이 어떻게 되나 보고 싶어요. 마스터의 곁에 있을게요.”

“그러도록 해라.”

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사람들은 번거롭고 위험한 일에 얽매이기 싫어 하나둘 여관을 떠났다. 여관주인과 종업원은 울상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아르투르는 습격자들을 밧줄로 묶어 바닥에 끌며 끌고 나갔다. 소란이 일어났다는 소리를 들은 자경대원들이 선술집에 도착했지만, 그들은 아르투르의 체격과 복장을 보고 머뭇거리기만 할 뿐 다가오지 않았다.

아르투르는 그들을 한번 힐끔 보더니 먼저 다가가 말했다.

“저들이 먼저 내 종자를 습격했다. 이들은 이 마을 사람인가?”

그들 중 한 사람이 고개를 저었다. 자경대원들의 무장은 천을 덧대 만든 갑옷과 짧은 칼 정도가 전부였다.

“아닙니다. 경. 외지인들 간의 문제이니 저흰 끼어들 이유가 없습니다.

“다만….”

“…근방에 그들의 패거리가 있습니다. 혹여 그들에게 위해를 가하면 기사 나리나 저희 마을에 위해를 가할까 봐 두렵군요.”

“이놈들이 소속 집단이 있다고? 자세히 설명해 보아라.”

자경대원은 뜸을 들이다가 자세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크리스티안이라는 기사가 자기 무리를 이끌고 마을 근처의 숲에 주둔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저희 마을을 방문해 보호세를 걷어갔지요. 주변의 산적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해준다는 명목이었습니다. 그 뒤로 저희 마을을 보호해줄 병력이라면서 저 녀석들을 남겨놓았고요.”

아르투르는 팔짱을 끼며 그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산적이라면 일찌감치 대왕 시절에 여러 무장 집단들을 해산시킨 적이 있었다. 수도에서 고작 2주 거리밖에 되지 않는 장소에 산적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믿기 힘들었다.

“녀석들의 숫자와 무장 상태에 대해 알고 있나?”

“숫자는 어림잡아 스무 명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무장 상태는 저희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크리스티안이라는 이름의 기사분이 계셨습니다.”

‘문지기가 말하던 자칭 기사가 녀석을 일컫나 보군.’

“좋아. 그렇다면 내가 이놈들을 데려가서 크리스티안이란 녀석과 날 습격한 일에 대해 담판을 짓겠다. 문제 있나?”

자경대원은 고개를 저었다.

“없습니다. 나리.”

“케이, 너는 여기 남아 있어라. 나는 놈들을 데리고 크리스티안이란 놈을 만나고 오마.”

“네?! 마스터, 상대는 스무 명이 넘는다고요.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정 가셔야 된다면 저라도 데리고 가시죠!”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어서 널 안 데려가는 거다. 혼자서 스물 정도는 자신 있지만, 널 데리고는 힘들어.”

아르투르는 자신의 허리춤에 걸린 여명을 느슨하게 풀어둔 후, 자경대원들을 시켜 물을 길어오게 했다. 그는 차가운 물을 불한당들에게 흠뻑 뿌리며 말했다.

“자식들아, 일어나라. 너희 두 발로 걸을 시간이다.”

***

아르투르는 무장을 마치고 홀로 크리스티안의 일당이 있다는 숲으로 향했다. 엄밀히 말해 혼자는 아니었다. 포승줄에 묶인 세 명의 불한당들이 허겁지겁 발걸음을 내디디고 있었으니까. 아르투르가 워낙 거세게 잡아끄는 탓에 발걸음을 늦추면 바닥에 쓰러지는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었다.

“빨리빨리 움직여라! 자식들아!”

아르투르의 일갈에 불한당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발걸음을 재촉할 따름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도착하기만 하면 이 건방진 기사에게 한 방 먹여주리라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먼저 시비를 건 것은 이 자식이었다. 여관주인을 시켜 우리 짐말들을 내쫓아? 그런 신세를 당하고 우리가 가만히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

그렇게 외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그랬다간 당장 목이 떨어질 것을 알고 있던 터라 그들은 조용히 분노를 삭였다. 아르투르가 한 개울물을 지나 언덕길로 향할 즈음, 그는 갑자기 멈춰 서서 오른손에 쥔 할버드를 한 바퀴 돌리며 건너편에 우거진 덤불을 바라봤다.

“거기, 숨어 있는 놈.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 적으로 간주하겠다.”

침묵이 이어졌다. 아르투르가 자세를 낮추며 도약자세를 취할 때, 수풀에서 풀썩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러 사람이 개울 너머에서 나타났다.

“당장 멈추시오. 고슴도치가 되고 싶지 않으면.”

남성의 중후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투르가 목소리의 방향을 바라보자 나무 위에 장궁수 한명이 자신을 겨냥하고 있었고, 개울 너머에선 석궁과 단궁을 든 네 명의 인원들이 자신을 겨냥하는 중이었다.

“당신은 누구요? 왜 우리 동지들을 붙잡아 오고 있는 거지?”

장궁수를 본 불한당 한 명이 얼굴에 미소를 띠며 소리쳤다.

“아밋서텐! 이놈이 마을에서 우리에게 시비를 걸고 가진 것을 모조리 뺏어갔소! 당장 쏴버리시오!”

아밋서텐은 병사들의 대변인을 뜻했다. 즉, 이 조직은 병사들의 우두머리와 주인이 따로 있다는 말이었다.

저 사내는 오른쪽 어깨와 팔이 비대하게 발달하여있어 숙련된 장궁수라는 걸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다른 부위들도 잘 단련되어 있고 눈빛은 살벌하여 전쟁을 깨나 치러본 숙련병다운 풍모를 내보였다.

그는 날카로운 눈으로 아르투르만 바라볼 뿐, 붙잡혀온 이들을 바라보진 않았다.

“싸우러 온 거라면 포로들을 산 채로 데려오진 않았을 테지. 당신이 누군지 말해보시오. 우리도 불필요한 싸움은 피하고 싶으니.”

아르투르는 어느 놈부터 죽일까 고민하며 지형을 살피고 있다가, 장궁수의 말에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이야기할 생각이라면 무기부터 내리지.”

아르투르의 말에 아밋서텐이 궁수들에게 손짓하자 다른 병사들은 겨냥하던 활을 아래로 내렸다. 아르투르도 그에 호응해 할버드를 들어 어깨에 걸치는 것으로 적대 의사를 거두었다.

“너희 대장, 크리스티안에게 보상을 받아내러 왔다.”

보상이라는 말에 아밋서텐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놈들이 내 종자를 두드려 팼거든. 그에 대한 보상이랑, 이 녀석들 몸값까지 말이야.”

“먼저 시비를 건 건 저 자야! 두말할 것 없이 쏴버려! 아밋서텐!”

“너흰 입 다물어라. 세 명이서 한 명에게 무방비로 당한 모양인데, 그런 한심한 놈들 이야기 따위 듣고 싶지도 않다.”

아밋서텐은 불한당들을 향해 일갈하곤 아르투르에게 시선을 옮겼다.

“대장을 데려오겠소. 하지만 말은 조금 더 공손한 편이 좋을 것이오. 나으리. 우리는 오갈 데 없고 잃을 것 없는 인생들이라 예법 따윈 모른다오.”

“퍽이나. 내가 할 소리다. 목숨이 아까우면 기사를 공경하는 법을 배워야 할걸.”

아밋서텐은 불필요한 싸움을 피하고자 나무에서 내려와 개울물을 건너갔다. 그사이 다른 병사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아르투르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는 나무에 기대앉아 태평히 개울물 건너편을 바라봤다.

***

얼마 후, 개울물의 언덕 위에서 판금 갑옷을 입은 장신의 사내 한 명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 뒤로는 갑옷을 입은 창병 여럿이 뒤따르고 있었다. 아르투르는 그들을 느긋하게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장신의 사내를 바라봤다.

그는 여타 젊은 남성이었는데, 기사들과 같이 잘 단련된 몸을 가지고 있었고 주 무기로 장검과 방패를 사용하는 듯했다. 그는 개울물을 건너오지 않고 그 건너에 서서 말했다.

“나는 랜돌프의 아들, 크리스티안이다.”

“아헨의 아르투르.”

두 기사는 개울 너머에 선 서로를 노려보며 시선을 교환했다. 마치 맹수들의 첫 만남에서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온 힘을 쏟듯, 두 사람은 눈빛을 통해 서로에 대한 우위를 누리고자 했다. 그러나 양측 모두 한 풀도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누군가 먼저 말을 걸었다.

“좋아. 아르투르 경. 배짱이 대단하군. 홀로 무장한 병사들의 소굴을 찾아올 정도로 말이야. 그 용기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지.”

크리스티안이 먼저 웃으며 아르투르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입바른 말은 됐다. 네 부하들 몸값을 제시해라. 배상금도.”

그러나 아르투르의 말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 크리스티안의 표정이 일순간 구겨졌지만, 곧 다시 미소를 띠었다.

“그래. 지불해야 할 몫이 있다면 마땅히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 전에 내 병사들에게 전후 사정을 좀 듣고 싶은데 말이야. 그쪽으로 건너가도 될까?”

“그러든지.”

크리스티안은 자기 병사들을 데리고 개울물을 건너왔다. 그들은 아르투르가 먼저 공격해오진 않을까 은근히 긴장했지만, 아르투르는 태연한 표정으로 포로들을 걷어차 앞으로 나가게 했다.

크리스티안은 고개를 숙여 포로들의 말에 귀 기울였고, 포로들은 마치 어머니에게 고자질하는 어린아이들처럼 하나하나 자세한 정황을 고해바쳤다. 수 분에 걸쳐 참을성 있게 이야기를 모두 들은 크리스티안은, 장검을 뽑아들었다. 검이 칼집을 빠져나오는 소리가 서늘하게 들렸다.

그 모습에 아르투르가 곧장 할버드를 집어 들며 방어 자세를 취했지만, 공격이 가해진 곳은 예상과 다른 곳이었다. 아르투르에게 장검을 겨누었던 녀석의 목을 칼날이 뚫고 나온 것이다.

칼날이 거칠게 뽑혀 나오며 흐억- 하는 비명이 들렸고, 놈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크리스티안은 검의 손잡이로 나머지 둘을 후려쳐 기절시키곤, 아르투르를 바라봤다.

“아르투르 경. 내 정중히 부하들의 무례를 사죄하지. 지휘관인 내 책임이 크군.”

그 말에 아르투르는 경계심을 풀면서, 할버드의 날을 바닥으로 향하게 했다.

“이야기가 좀 통하겠군. 사과를 받아들이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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