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340화
그 후 정은 일가는 도쿄로 이사 간 후 기부금 살포로 학교 당국 측을 어르고 달래 ‘가네야마’라는 이름으로 신상세탁까지 하고 비교적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사립중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래도 김정은 개인에게 있어서 사정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던 것이, 일단 한번 매스컴을 타고 이름과 얼굴이 노출되자 그다음부터는 걷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돈의 힘으로 보안이 철저하게 보장되는 사립중학교는 외부인, 기자들의 습격으로부터는 어느 정도 안전했지만, 그곳조차도 (세상 여느 학교가 다 그렇듯이) 내부인인 급우들 사이의 호기심 어린 시선, 악의 없지만 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질문 세례까지 막아주지는 못했다.
-가네야마 군. 가네야마 군은 왜 일본인도 아니면서 일본 이름을 쓰는 거야? 조국에는 언제 돌아가는 거야?
-키타조센은 왜 니폰과 다르게 독재 국가야? 그리고 가네야마 군 나라는 왜 그렇게 니폰을 싫어해? 니폰이 뭐 그렇게 심한 짓이라도 했어?
처음에는 어느 정도 일본인 행세를 하는 게 가능했지만 그런 종류의 비밀이 영원히 지켜질 리는 만무했다.
어느 날 학부형 중 하나가 조선말을 쓰는 운전기사 하나가 하교 중인 김정은을 에스코트하는 광경을 보고 만 것이다.
안 그래도 배타성 강한 작은 사회인 사립중학교 내에서, ‘일본인 아닌 외부인’이 처음부터 자기 이름이 아니라 가네야마라는 가명으로 입학했다가 들킨 것은 사춘기 중학생들 사이 이지메의 좋은 핑곗거리였다.
학부형들끼리 공유된 소문이 곧 자녀들, 정은의 학우들에게도 퍼져나가 보이지 않는 따돌림, 은근한 괴롭힘이 시작된 것이다.
정은은 수업 후 휴식시간에도, 급식시간을 거쳐 하교 시간에 이르기까지 항상 혼자 지내야 했다.
차라리 혼자 내버려 뒀으면 외롭기만 했을지언정 괴롭지는 않았을 테지만, 수학여행에서는 아무도 그와 조를 이루려 하지 않았고 체육 시간에는 정은만 노려서 공이 날아왔다.
이런 일이 계속 이어지다가 마침내 중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쯤, 정은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자기 나이 또래들이 막다른 길에 몰렸을 때 시도하는 최후의 저항을 행했다.
등교를 거부한 것이다.
-정은아, 오마니 말 좀 들으라우. 일단 학교에 가서 동무들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하다 보면은…….
-듣기 싫어! 그놈의 조선말도 이제는 듣기 싫단 말이야! 학교에서 친구들이 다 너 언제 삼촌한테 암살당하는 거 아니냐고 놀린다고! 이게 뭐야! 대체 왜 나는 일본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거야? 그것도 아니면 차라리 조선에 돌아가게 해주던가!!!
어느 날 아침 자신을 어떻게든 달래려는 어머니 고용희에게 그렇게 울며불며 떼를 쓴 정은은 그대로 방으로 올라가서 아무도 자신을 괴롭히거나 거부하지 않는 세상,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던) 2D의 세계와 사이버 공간에 파묻혀 몇 날 며칠이고 나오지 않게 되었다.
지금 그에게 존재하는 모든 안 좋은 습관들, 커뮤니티 중독, 키보드 워리어질, 악플 달기, 자기 악플에 달린 반박에 밤새도록 새로고침 버튼 눌러가며 다시 재반박 댓글 달기 등등은 전부 이 시기에 형성된 것이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 역시 이런 일을, 그것도 외국에서 해결해 줄 만큼 강단과 수완이 있거나 아들을 강제로 방에서 끌어낼 만큼 모진 어머니가 못 되었고 말이다.
처지가 처지인지라 아동 심리 상담사를 찾아가거나 북조선 외무성 담당자들에게 하소연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다.
고용희가 최대한 조용히 죽은 듯 살려던 계획조차 포기하고 공화국의 정환에게 진정서를 올려 유럽이나 미국으로 이주하게 허가해 달라고 하소연해 볼까 하는 생각마저 할 때쯤, 다행히 그녀는 아들을 이지메에서 구해낼 해결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바로 그들의 삼촌이자 경애하는 총서기의 은혜로 그들이 모자람 없이 가지고 있는 자원, 돈이었다.
-어? 가네야마 군. 그거 이번에 에어 조던 농구화 신상품 아니야? 한정판이라 우리 집에서도 못 구했는데…….
-나 이런 거 집에 몇 개나 있어. 부럽지?
-저, 정말?
-그래, 이번 수학여행 때 나랑 같은 조 해주면 이거 너 줄게.
어른 못지않게 물질주의적이 되어가고 있는 아이들 사회에서 돈은 확실히 쉽고 빠르게 ‘친구’를 늘릴 수 있는 수단인지라 다행히 가네야마, 아니, 정은은 급우들의 괴롭힘에서 일시적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물론 학창 시절 내내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기는 했지만 애초에 그들 모자를 감시 관리하는 주일 북조선 대사관, 그리고 본국인 북조선에서는 고용희가 사정을 설명하자 두말하지 않고 ‘유자녀 연금’ 액수를 늘려주었다.
정은과 정철의 삼촌이자 지엄하신 총서기, 그리고 따지고 보면 이 모든 일의 원인인 정환이 병 주고 약 주고 식으로 ‘내 형수와 조카들이 지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금전적으로 가능한 건 가급적 들어주도록 하라’라는 교시를 내린 덕이었다.
하여간 그렇게 정은은 이지메를 극복하고 겉으로나마 아무 문제 없이 중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도쿄의 대학에 입학, 여자친구까지 사귀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돈으로만 맺어진 관계는 유통기한이 그리 길지 않은 법이다.
-유리코 짱. 그 가네야마라는 녀석은 왜 만나는 거야? 목소리도 크고 제멋대로에 쓸데없이 승부욕은 강하고 항상 농구나 게임, 아니메 이야기만 하는 오타쿠 같은 녀석 아니야? 정말 일본인인지도 의심스러운데.
-흥. 나도 지긋지긋해. 하지만 그게 아니면 나 같은 대학 1학년생이 긴자의 호스티스들이나 타고 다니는 포르셰를 타고 다닐 수 있겠어? 오지상(おじさん:아저씨)들에게 아양 떠서 우려낼 돈 봉 하나로 줄여서 받아낼 수 있으니 다행으로 생각해야지. 다음번에는 버킨 백, 그다음에는 티파니를 사달라고 할 거지롱.
-우엑~~ 최악이다, 너~~
우연히 엿듣게 된 ‘여자친구’의 대화는 그전부터 정은이 보고 싶지 않았던, 스스로도 애써 외면해 왔던 가혹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자신은 예전 중학생이었을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이 일본에서 이방인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의 고향인 키타조센에서조차, 삼촌인 정환이 죽기 전까지는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누구나 꺼려하는 존재라는 것을.
“……진짜 방 밖으로, 아니, 일본 밖으로 나가야 되는 건가? 괜히 그 지하철이나 하수도 정비나 제대로 되어 있을지 의심스러운 미개한 키타조센에 간다고 약속했나? 지, 지금이라도 안 가겠다고 말하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회상을 마치고 다시 어두운 자신의 방 안으로 돌아온 정은은 조금 전 어머니에게 홧김에 내지른 귀향 약속을 벌써부터 후회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정은으로서는 무려 15년간 안전한 낙원이었던 이 세타가야 자택의 자기 방을 나서는 것이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엄청난, 가히 평생 마을 밖으로 나가본 적 없던 사람이 세계 일주를 결심하는 정도의 모험이었던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대학생 시절 좋아했던 만큼 고통스러운 배신을 당한 후 정은은 그대로 학교를 자퇴하고 방 안에 틀어박혀 쭉 이런 상태였다.
배신을 당했고, 세상이 무섭고 인간이 싫어졌다.
그리고 모니터 안의 가상세계 안에서라면 자신은 그 무엇도 할 수 있었고 그 무엇에도 상처받지 않았으니까.
아침 11시에 기상하면 우선 애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 최다 추천 게시물을 확인, 인스턴트로 대충 아침 겸 점심을 때우고 오후에는 다시 인터넷 삼매경, 방에서 어머니 고용희가 가져다주는 저녁을 먹은 후 다시 새벽 4시까지 가혹한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애니를 분기별로 섭렵해서 마르고 닳도록 감상 후 새벽에나 취침.
가끔 피규어 같은 애니메이션 용품을 사기 위해 아키하바라로 출근하는 것을 제외하면 방 밖으로 나가는 일도 전무한, 훌륭한 히키코모리, 사회 부적응자가 바로 지난 15년 가까이 정은의 일상생활 요약이었다.
다른 무직 백수들 같으면 부모가 은퇴할 때쯤 먹고살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반강제적으로나마 사회로 나오게 되는데, 정은의 경우에는 공화국에서 보장해 주는 풍족한 생활이 오히려 독이 되어버린 셈이었다.
움직이지 않고 방에만 틀어박혀 낮 밤이 바뀐 생활을 하다 보니 금방 불어난 몸무게는 덤이었고.
게다가 사람은 자기 내면에 있는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남에게 투영한다는 심리학 속설을 그대로 증명하듯 인터넷 공간에서의 정은은 그 누구보다 ‘애국심 넘치는 보통 일본인’ 그대로였다.
좌익 언론, 야당, 외국인 노동자, 한류, 젊은 여성, 연예인, 중국계 일본인, 한국계 일본인, 무엇보다 북조선에서 건너온 모든 것을 비난하는 인터넷 애국자.
그게 바로 현재 자신의 상태였다.
-정은아, 제발 문이라도 좀 열고 나와서 오마니랑 대화해볼 생각은 없니? 정철이도 정남이 형도 모두 걱정하고 있디 않갔니.
-듣기 싫어! 내가 이렇게 된 것도 다 오마니랑 삼촌 때문 아니야!
물론 옆에서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던 고용희는 몇 번이나 이런 정은을 바꿔보려고, 최소한 방 밖으로 나오게 만들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김정은도 그러한 어머니의 염려와 마음고생은 잘 알고 있었고, 자신도 스스로의 지금 자기 모습, 인터넷 애국자 행세나 하는 신세에 내심 억울하고 화가 안 나는 건 아니었지만, 사람이 자기 처지를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으면 애초에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2년 전 삼촌 정환이 퇴임하면서 정은을 비롯한 김씨 일가의 고향에 대한 입국 제한을 풀어준 후에도, 그의 어머니 고용희, 다른 형제자매와는 다르게 정작 정은은 어머니의 눈물 어린 설득에도 불구하고 귀향에 시큰둥해했다.
어머니는 대사관으로부터 이제 ‘자유롭게 공화국에 드나들어도 좋다’라는 언질을 받자마자 총서기의 은덕에 눈물을 흘리며 고향인 공화국에 몇 번이고 다녀와 그를 설득했지만 정은은 요지부동이었다.
4살 때 떠나온 고향이라 별로 그리울 추억도 없고, 그 무서운 삼촌은 물러났다고 해도 그 밑에서 30년이나 섬겨온 수하들이 여전히 눈 부릅뜨고 있을 텐데 혹시 뭔가 함정은 아닐까 불안하기도 하고, (직접 가본 적은 없지만, 하여튼 인터넷상으로는) 후진 민도(民度), 후진 인프라를 가진 키타조센 같은 불편한 곳에 굳이 가고 싶지도 않고…….
……그리고 무엇보다 원하는 건 뭐든지 가질 수 있고 힘든 일도, 상처받을 일도 없는 진정한 ‘지상 락원’ 자기 방 문지방 밖으로 나가는 게 너무나 무섭기도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좀 달랐다.
김정은은 참으로 오랜만에 그에게서 예전에 실종된 줄 알았던 감정, 용기를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끌어올렸던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것은 용기라기보다 어떤 대상에 대한 강렬한 분노였다.
그에게는 지금 코로나로부터 대피해 일본을 떠나는 것 말고도, 반드시 단 한 번이라도 북조선에 가서 해결해야 할 원한이 있었던 것이다.
“그, 그래……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개판이겠다…… 도, 도피 여행 간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또 무엇보다 반드시 받아내야 할 빚이 있으니까 말이야. 원하는 걸 얻어내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직행해서 니폰행 비행기를 타면 되겠지.”
그날, 그 순간을 다시 떠올리자 살 속에 파묻힌 정은의 흐리멍덩한 눈이 분노와 원망에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가슴 속에서 솟아오르는 울화에 아직도 눈에 핏발이 서고 뱃속에서는 천불이 올라왔다.
때로 분노는 두려움을 이기는 법이라, 정은은 다 집어치우고 도쿄 자택에서 신작 비디오 게임이나 하려던 계획을 접고 고향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가기로 힘들게 결심했다.
그의 무거운 몸뚱이를 방 밖으로 끌어낸 가열 찬 분노의 대상이 누구일지는 지금으로써는 하늘만이 알 일이지만, 하여간에 이런 사정 끝에 김정은 인생에 있어서 무려 30여 년 만의 귀향이 결정되었다.
집과 아키하바라를 제외한 다른 장소에 발걸음을 옮기는 걸로만 따지면 무려 10여 년 만의 외출이었다.
* * *
“정은아, 정말 놀랍지 않디?. 이거이 정말로 피양이다? 너 어렸을 때와는 참 많이 달라졌디? 이 오마니도 처음에는 참말 놀라서 뒤로 넘어가는 줄 알았디 않간.”
“음…… 그래, 뭐 이 정도면 도시의 격은 나쁘지 않군. 도쿄에 비하면 조금, 아주 조금 못 미치지만…….”
3주쯤 후, 용강 국제공항 평양에 당도하여 다행히 음성이 나온 코로나 바이러스 검진과 지루한 방역 절차를 끝낸 후 당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평양 시내를 달리던 김정은은 창밖으로 바라보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어린 시절 가물가물한 기억 속에서 알고 있던 낙후하고 어둠침침한 도시, 평양과 너무나 달라진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내심 평양에 대해서 (인터넷으로만) 알고 있었던 김정은도 설마 이 정도로 발전해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는지 애써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들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응? 아니…… 저기 저 차선에서는 왜 운전자들이 손을 놓고 멍하게 앉아만 있는 거야? 이 대낮에 술 먹고 운전이라도 하는 건가? www 오이오이, 이래서 조센징 민도는…….”
“자율주행차 시범 운전 차선이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