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337화
정환의 이런 제안에 강의실의 모든 학생들은 물론, 뒤에서 조용히 청강하고 있던 사람들까지 서로 귓속말을 나누면서 살짝 논쟁을 벌이는 듯했지만, 그 논쟁은 그렇게 크지도, 길지도 않았다.
심지어 개중에는 ‘이런 것도 질문이냐?’ 하는 태도로 피식피식 웃는 사람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내 강의실 분위기가 어떠한 방향의 확신으로 굳어지자, 강의 초반 정환에게 농담을 던졌던 앤드류라는 학생이 이를 가장 먼저 눈치채고 의자 등받이에 길게 기대면서 여유롭게 입을 열었다.
“음, 교수님.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학점을 거실 만한 질문이 아닌 거 같은데요.”
“앤드류, 왜 그렇게 생각하지?”
“답이 너무 뻔한 문제니까요. 설마 이 강의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A+를 주실 생각은 아니시겠죠?”
“그래, 그 뻔한 답이 뭔지 들려줄 수 있겠나, 앤드류 군?”
“당연히 현 대통령 엘리자베스 워렌의 재선 성공이죠! 아무리 미국인들이 지난 4년간 워렌이 자기 정책 핵심으로 제시한 정치적 올바름과 도덕주의에 피로감이 들기 시작했다고 해도 도널드 트럼프라니. 자기들도 예상외였겠지만 그런 어릿광대를 경선에서 통과시켜 버린 공화당 리더십들은 지금쯤 포토맥 강에 다이빙 하고 싶은 심정일걸요?”
-하하하하하……!!!
익살스러운 앤드류의 너스레에 강의실 전체에 다시 한번 가벼운 웃음의 물결이 지나갔다.
그 물결의 이면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합중국 대통령이라니, 그런 게 말이 되나?’라는 강철 같은 확신이 깔려 있음을 정환은 느낄 수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99%는, 아니, 어쩌면 전부 그런 일은 하늘이 쪼개져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정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끈질기게 다시 한번, 방금 전 사만사에게 일침을 맞은 데다 트럼프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 묘하게 풀이 죽어 있는 브라이언에게 질문을 던졌다.
“브라이언.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나?”
“으…… 교수님. 오해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리는데 저는 절대로 그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지 않…….”
“자네 정치 성향을 물은 게 아니야. 그저 지지층 분포와 이전 선거 데이터에 기반해 분석을 해보라는 말이지. 어떤 대답을 내놓든 내가 자네를 섣불리 판단(Judge)하는 일은 없을 테니 마음 놓고 말해보게.”
“아니, 그게…… 사실 앤드류 말대로 거의 불가능 아닌가요? 여성, 흑인, 동성애자, 히스패닉, 이민자, 심지어 참전용사까지 적으로 돌리는 발언을 거의 매일 하고 있는데…… 선거공학적으로 악수만 반복하고 있어요. 게다가…….”
“게다가?”
“게다가 이 코로나 사태가…… 무슨 중국의 바이러스 무기에 의한 것이라는 둥 사회주의자 워렌 대통령과 그 지지자들이 코로나라는 가짜 바이러스에 놀아나서 미국인들을 집에 가두고 국가 봉쇄를 해서 경제를 죽이고 있다는 둥…… 이런 발언이 날이면 날마다 CNN 같은 채널에서 의학 전문가들을 모셔놓고 철저하게 반박되고 있는데…….”
‘당선되는 건 고사하고 역대급으로 패배하지나 않으면 다행일 텐데요’라는 뒷말은 생략된 게 분명했다.
그만큼 부동산 억만장자 출신 도널드 트럼프는 매 대선 때마다 등장하고는 했던 ‘뉴 페이스’가 아니라 차라리 ‘생태계 교란종’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한 후보였다.
다크 호스가 아니라, 아웃 사이더.
‘넌 해고야(You're Fired)!’라는 단순무식한 유행어를 내세운 TV 쇼 셀럽 출신.
행정 경험 전무, 선출직 경험 전무.
하다못해 공화당 남성 대선후보면 고확률로 하나쯤 있을 법한 군 복무 경력도 전무.
뉴욕에서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아 자수성가했다는 타이틀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검증을 해보니 그것도 영 의심스럽고, 유권자들에게 보내는 캠프의 핵심 메시지 또한 방금 브라이언이 언급한 것처럼 과연 이길 생각이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극단적이었다.
심지어 선거 캠페인 중에 음담패설을 녹음한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지를 않나, 과거 그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는 여성들이 방송을 타질 않나, 현 공화당 대선 캠프는 그야말로 케이블 채널 코리안 소프 오페라를 방불케 할 정도로 날마다 (안 좋은 의미의) 신기원을 이룩하고 있었다.
게다가 시국이 시국인지라 자연스럽게 이번 대선의 승패를 결정할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른 코로나 사태 대처에 관해서는 이 정체불명의 후보에 대해 초반에 살짝 긴장했던 민주당 지도부에서조차 ‘공화당 친구들 이번 선거는 내다 버린 모양이구만!’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로 터무니없었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미국 내에서 하루에 수천 명의 확진자와 수십여 명의 사망자를 내다가 근래에 간신히 진정세에 들어간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지지자 모임과 여러 매체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코로나는 민주당과 워렌 등 기성 정치인들이 만들어 낸 개수작! 가정용 소독약 정도로도 나을 수 있는 병인데 워렌 현 대통령이 재선에 써먹으려고 사망자 수, 확진자 수 모두 엄청나게 크게 부풀려서 대중들의 공포심을 선동하고 있음!
-최근 들어 확진자 수가 줄어들었고 이게 다 자기 업적이라고 워렌 행정부가 선전하는데 역시 전부 선거를 의식한 프로파간다. 마스크나 사회적 거리 두기 따위 전혀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잠잠해질 병임.
-그리고 이런 사기의 배후에 있는 것은 현재의 의료 보험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코로나 백신이라는 이름의 가짜 약을 고가에 팔아먹을 욕심에 가득 찬 거대 제약회사들과 월 스트리트! 워렌은 이제까지 제약회사와 월스트리트 양쪽 모두를 쭉 적대했는데 뭐하러 그들이 워렌 선거운동을 도와주냐고? 자세한 사정은 내가 대통령이 되어봐야 알겠음.
-그것도 아니면 지난 연변 내전에서 우리가 노쓰 코리아 편을 들어준 것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이 퍼트린 인공 바이러스! 이 역시 자세한 근거는 제시할 수 없지만 아님 말고.
-특히 사회적 거리 두기나 마스크 착용으로 제1파 진압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민주당 수뇌부들과 그들을 후원하는 억만장자들이 미국 국민들의 자유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억압할 수 있나 미리 시험해 보는 것. 앞으로도 계속 마스크를 쓰거나 경제활동을 중단시키는 것은 공산주의, 파시즘으로 가는 지름길.
-내가 대통령이 되면 워렌과 민주당 의원들을 위의 국가반역죄 행위로 고발하여 감옥에 보낼 것임. 사업가 출신의 나를 뽑아야 경제 문외한인 워렌과 민주당 패거리가 이 미국을 사회주의 국가로 만드는 것을 막을 수 있음.
“……이렇게 그가 지껄인 모든 비호감에 비과학적인 소리들은 제쳐놓고서라도, 원래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전시에는 현직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는 법이에요, 김 교수님. 그리고 지금은 사실상 전시고요.”
‘일 더하기 일은 이’라고 말하는 사람처럼 모든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말하자 정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건 동의의 표시가 아니었다.
“나쁘지 않은 근거제시로군. 그럼 내 생각에 이번 과제…… 아니, 내기는 여러분 전부와 나 하나, 이렇게 판이 짜일 것 같은데.”
“……네? 교수님. 잠시만요. 그 말씀은 그러니까 교수님이…….”
“나는 이번 선거 결과로 도널드 트럼프가 다음 대 미합중국 대통령이 될 거라고 믿는다는 이야기지. 혹시 나 말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학생 있으면 지금 손들게. 가산점 줄 테니까.”
“…….”
잠시 강의실에는 방금 정환이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믿을 수 없다는 듯 무덤 같은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학생들에게서는 어처구니없다는 듯한 헛웃음이, 청강자들에게서는 조금 작은 속닥거림으로 강의실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왔다.
“아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터무니없군. 저 김이라는 친구는 아직 이 나라의 정치지형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야?”
“……아니면 트럼프 지지자일지도 모르지.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저 양반 전력을 생각해 보면 그러니까…… 왜, 끼리끼리라는 말이 있지 않나? 파시스트는 파시스트끼리, 독재자는 독재자끼리 어울리는 거지.”
“진심이세요, 김 교수님? 이 강의 나중에 사이버 강좌로도 송출되는데…….”
개중에는 정환의 전력까지 거론해 가며 혀를 차는 사람도 있었고, 이번에는 정환의 귀에도 충분히 그런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정환은 그런 반응이 전혀 의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의 미국에서는, 정확히는 미국의 모든 선거 컨설턴트들과 주류 언론에서는 ‘트럼프가 절대로 대통령이 될 수 없는 99가지 이유’ 같은 기사가 매일 같이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 그 명망 높은 조지 타운대 교수라는 사람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그의 승리를 점쳤으니 학생들이 자기 귀를 의심하는 게 당연했다.
이미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트럼프를 농담거리로 취급했고 미국의 일반적인 대중들 사이에서조차 누구든 트럼프의 승리를 예견하는 사람은 정상적인 판단력이 결여된 사람 취급받는 게 현실이었으나, 정환은 한 가지 사실에 대해서는 확신했다.
소위 전문가들이라는 존재는 가끔은 아주 문외한보다도 더 현실에서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진심이지만, 표현은 좀 수정해야 할 필요가 있겠군. 내가 왜 도널드 트럼프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느냐 하면, 트럼프가 더 대통령이 되기에 적합한 자질을 가지고 있어서라기보다는…… 워렌 대통령의 현 선거 전략에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맞겠구나.”
“문제점이라 하시면 어떤……?”
“게임의 규칙이 바뀐 걸 모르고 있달까? 지금처럼 트위터에 BLM(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시위지지 게시물이나 올리고, 시위대 일부가 폭력 사태에 연루되어 있을 수 있다고 보고하는 공화당 주지사를 일방적으로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고, 이제까지 그녀와 민주당이 내세웠던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에 미국 유권자들은 점점 지쳐가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른 체한다면 다음 백악관의 주인은 트럼프가 될 거야. ……이 미국에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맙소사.”
이제 강의실 안은 숫제 살얼음판이 되었다.
일부 학생들과 청중들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몰래 사진을 찍어 이 경악의 현장을 SNS에 올리고 있었고, 그렇지 않은 학생들도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지금 저 교수가 이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 정치 성향을 가진 집단 중의 하나, 아이비리그 대학 캠퍼스 한복판에서 ‘정치적 올바름은 틀렸다’라고 공개적으로 발언한 것이란 말인가?
더군다나 지금은 서너 달 전 한창 바이러스가 미국을 휩쓸 때 조지 플로이드라는 이름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한 명이 자신을 위조지폐 사용혐의로 체포하려던 경찰의 다리에 짓눌려 질식사한 것에 반발하는 시위가 대대적으로 일어나는 와중이다.
눈앞에 다가온 대선 때문에 잠깐 소강상태에 접어든 감은 있지만, 이 워싱턴과 조지 타운 대학 캠퍼스 내에서도 학생들이 주동한 대규모 동조 시위가 몇 달 전에도 일어났는데 말이다.
저 김정환 교수가 지금 당장 자신의 실언을 취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아마 오늘 해가 떨어지기 전 조지 타운대 인사부와 학내 온라인 게시판, SNS는 문자 그대로 불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곧 펼쳐질 헬게이트의 예고편처럼, 누군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잠깐만요, 김 교수님! 방금 전 그 말씀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겠어요!”
“말해보게, 사만사 양. 교수의 견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는 수동적인 학생은 나도 별로 안 좋아하니까.”
“지, 지금 교수님은 워렌 대통령이 틀렸고…… 그 역겨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대체 무슨 근거로…… 아니, 만에 하나라도 설령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이 나라가 얼마나 끔찍해질지 생각은 해보신 거예요?”
아까 전 브라이언에게 그랬던 것처럼 거센 목소리로 항의하는 학생, 사만사 질리브랜드의 얼굴은 빨개지고 목소리는 떨려오고 있었다.
눈에는 희미한 눈물까지 살짝 맺혀 있는 것이 마치 자신이 모욕을 당한 듯했다.
하지만 정작 정환은 그녀 같은 사람을 수백 번 만나봤다는 듯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
“우선 첫 번째로, 사만사 양. 나는 한 번도 워렌 대통령이 ‘틀리고’, 트럼프가 ‘옳다’라고 말한 적이 없네. 개인적으로는 나도 트럼프가 무례한 장사치에 끔찍한 이기주의자고 대통령 자리에 앉는 날에는 이 미합중국을 엄청나게 퇴보시킬 인물이라는 의견에 동의하거든.”
“그럼 어째서…….”
“정치는 선악이 아니니까. 나와 반대편을 반드시 패배해야 하고, 패배하게 될 악으로 단정 짓는 행위는 정치에서 가장 피해야 할 위험 행위일세. 그리고 트럼프가 이기적이고 거만한 인간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여태까지의 모든 미국 대통령들도 도덕적 인간이라 당선된 건 아니지 않나? 표를 많이 모아서 당선된 거지.”
여기까지 말한 정환은 아직도 납득할 수 없다는 사만사와 강의실 대다수의 학생들에게 반드시 기억해 두라는 듯 힘주어 다시 한번 말했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신봉하고 있는, 특히 이 미국에서는 거의 신성시되고 있는 민주주의적 선거 제도는 엄밀히 말하면 지도자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고르는 제도가 아닐세. 사실은 선거를 가장 잘 치르는 사람을 고르는 제도지. 그 두 가지는 큰 차이가 있고 말이야.”
“…….”
“그리고 두 번째로, 나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 자체는 기본적으로 매우 훌륭하고 고결한 가치관이라고 생각하네. 일단 나부터 이 미국에서는 소수인종인데 당연하지 않나? 단지 그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개념을 무기화해서 휘두르는 자들이 틀렸다고 말하는 걸세. 예수의 가르침은 분명히 그 자체로는 고결하지만, 그 예수의 가르침을 섬기는 자들이 모두 고결한 자는 아닌 것과 같은 이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