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335화 (335/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335화

더군다나 김정환 총서기가 선포하고 육성한(그리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북측 산업의 3대 축 중 두 가지, 정유업, 금융업들은 양쪽 모두 산업 가치에 비해 일자리 창출 규모가 극도로 적은 산업들이었다.

그나마 근대전자로 대표되는 전자 기기 산업과 쌍우 자동차 같은 제조업은 고임금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편이지만, 여전히 산업 면에서 후발주자 한국보다도 더욱 후발주자인 북측에서 전방산업은 오랜 산업 강국들의 그것에 비해 여전히 많이 모자란 감이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는 북의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제조업, 드론 산업은 아직 산업이 성숙기에 이르지 못했으며 규모적으로도 작고, 유니온이나 피오니 홀딩스와 같은 IT, 금융 산업은 소수 고학력 일자리만을 창출해 낸다.

그리고 이러한 2010년대 후반 고실업 시대를 살아가는 북조선 청년들 대다수는 흔히 ‘김정환 인민’, 또는 요즘은 비아냥과 자조를 적지 않게 섞어서 부르는 말로 ‘백(白) 제비’들이 있다.

한국의 ‘88만원 세대’, 또는 ‘5포 세대’에 대응되는 이들은 80년도 후반 – 90년도 초반 출생으로 이제 막 사회에 진출하여 취업, 결혼 문제에 직면한 젊은이들로서 소비성향이 강하고 이전 김일성, 김정일 시대의 공산주의 북조선의 기억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대들인데.

위의 백제비라는 명칭도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추울 때 추운 곳에서 일할 필요가 없는 고임금 사무직을 찾기 위해 하얀(白) 와이셔츠를 입고 이 직장 저 직장에 이력서를 투척하며 기웃거리는 자신들의 신세가 ‘꽃제비’와 비슷하다 하여 자조의 의미로 붙은 명칭이다.

바리에이션에 따라 평양 – 개성 수도권 주택난 때문에 이곳저곳 여러 번 이사를 다니는 ‘살림집 제비’, 월말마다 구멍 난 카드값을 통장에 메우기 위해 뛰어다니는 ‘카드 제비’, 기혼자의 경우 학교와 더 나은 양육환경을 찾기 위해 발품을 파는 ‘보육 제비’까지 나타난다니 남의 일이 아닌 본 연구원 입장에서는 참으로 씁쓸한 사회상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91년 시장 개방 후 시장경제화와 생활수준 개선, 의료환경 개선 등으로 한국의 베이비 붐 세대 못지않게 인구가 폭증해 2020년 현재 북측의 청년 실업 시대에 가장 고통받고 있는 이 세대들이 주로 사이버상에서 현실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며 민족당이나 후예당의 보이지 않는 지지세력이 되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실업 문제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남측, 한국에서도 골머리를 앓고 있는 문제이며 한때는 남북 경제 교류가 심화되고 북한 개발이 진행됨에 따라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게 남측 실업자들을 북에서 흡수, 소화해 줄 거라는 낙관적 관측이 우세했지만, 이러한 예측은 반만 맞았다.

북측의 산업 자동화와 IT화(요즘은 산업 전반에서의 드론 사용으로 인한 무인화까지 겹쳤다)가 모든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빠르게 진행된 탓에 오히려 요즘은 북측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남측에까지 내려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즉, 지금의 취업난과 상술한 극우정당들의 성장세는 어찌 보면 김정환 전 총서기의 산업 설계 구상이 지나치게 잘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심지어 이런 민족당과 같은 북측 정당에 비슷한 사회 문제로 현실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극우 성향 남쪽 청년들이 입당 신청을 하거나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사례까지 속출하고 있다니 우려스럽지 않을 수 없다.

-민주주의 X까, 대통령 X까. 이놈의 헬조선을 고치는 방법은 극약처방밖에는 없어! 무슨 외국인 노동자도 우리 같은 사람이네 같은 위선자 행세나 하는 남쪽 국회의원들보다 북한 애들이 훨씬 직설적이고 좋네!

-민주주의, 아니, 민X주의 탈출은 지능순~~^^ 여성 우대 정책이니 페미니즘이니 헛소리나 처 해대는 남조선보다 아직 남자가 하늘, 남자가 대우받는 북으로 가자 이거야!

-아니, 하는 김에 지금 북으로 가서 민족당 세력을 늘린 다음 통일이 완전히 되면 그때 실시할 상하원 구성 선거에서 민족당이나 후예당에 몰표 주면 되겠네. 그럼 자동으로 남조선도 ‘올바르게’ 되는 거 아님?

-인정. 요즘 미국에도 그 트럼프인가 뭐시기인가 하는 양반이 ‘미국은 미국인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어쩌고 하면서 속 시원한 사이다 발언하던데 우리도 그래야지. 미국도 새 대통령 취임하고 이상해지던데 우리도 어째 요즘 분위기가 안 좋음. PC(Poltical Correctness : 정치적 올바름)충들은 답이 없으니 조기 소각해 버려야…….

4. 앞으로의 전망과 대안.

본 연구원이 해당 보고서에서 이러한 극우주의 세력의 준동을 북측 현영숙 총서기장과 연대하여 조기에 막아야 한다고 간곡히 제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몇 년 전 통일 논의 초기, ‘한국 여야의 분열을 잘 이용해서 김정환이가 조선로동당 후보로 대통령 출마한 후, 북한 주민들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통일 한국 대통령 되면 어쩌냐’라는 일각의 악몽 같은(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한국 국민들 입장에서) 구상이, 그것도 몇 배는 더 최악의 형태로 실현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물론 해당 주장, 이른바 ‘신(新) 적화통일론’은 극소수 통일 회의론자들에게서, 그리고 논의 초반에 ‘상당 기간 과도기를 두고 그때까지 선거는 따로 치른다’라는 점을 조기에 북측이 못 박아 둔 덕에 사라졌지만.

실제로 전(前) 총서기 정환은 퇴임 후에도 구 북측에서는 여전히 절대적 지지를, 그리고 현재로써는 의외라면 의외로, 또 의외가 아니라면 아니게도 남측에도 김정환 지지자가 제법 있는 형국이라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이미 김정환이라는 이름은 남북 어디를 막론하고 새로운 개발독재자의 신화,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스스로 그 휘광을 포기함으로써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들까지도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진 다음과 같은 은밀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경구나 다름없어졌으니까 말이다.

-자기 이익만 챙기고 한 치 앞도 못 보는 정치인 모리배들은 이제 지겹다. 제발 정치판에 신경 좀 끄게 해주는 철인 지도자가 나타나 모든 문제를 다 알아서 해결하고 마음 편히 국가의 미래와 나의 안락을 보장해 준다면…….

따라서 김정환의 뒤를 따른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그가 재임 당시 극히 기피했던 배타적 민족주의, 자민족 우월주의와 같은 남북한 양쪽에서 공통으로 휘발성 높은 이념을 내걸고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자들은 민족당과 후예당 이후로도 계속해서 출현할 것이다.

당장 한국에서도 죽은 독재자들의 그림자를 지워내는데 얼마나 오랜 세월이 걸렸는지, 그리고 그들이 하나의 상징이 되고 이념의 표상이 되어 그 그림자에 기생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치적 에너지를 소모시켰는지를 기억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김정환은 은퇴 이후에도 그 이전보다 더욱 강한 영향력을 발휘 중인 것이다.

그러나 본 연구원의 이러한 우려에 대하여 정보원은 의외로 낙관적인 관측을 내비쳤다.

-그런 우려도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그 양반들은 죽었지만 나는 살아 있다는 거지. 당사자가 멀쩡히 살아 있는데 어떻게 시체 팔이를 하나? 정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으면 본인이 직접 공화국에 돌아가서 ‘난 그런 놈들 모르고 저런 교시 같은 건 내린 적 없다’ 한 번 해주면 그만이지. 뭐 난 현영숙 동지와……. 다른 한 친구를 믿으니까 웬만해서는 그런 일이 없겠지만 말이야.

(정보원과의 인터뷰에서 발췌)

실제로, 북측과 신임 현영숙 총서기는 진작부터 이섭기 후예당 당수를 비롯한 극우세력 준동에 관하여 음과 양 모두에서 조치에 들어갔으며, 여러 정보원을 통하여 그 단기적 조치들의 실효성이 확인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현 총서기장은 연변을 확실히 북측의 품으로 끌어안고 앞서 말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연길시를 통일 후 2대 특별시 - 9대 광역시 체제에 포함시켜 남북 양쪽 모두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끌어내는 등 장기적인 대책에도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단기적 조치들과 그 책임자에 대한 본 연구원의 개인적인 감상을 덧붙이자면, 과거 학총련 시위를 조직적으로 분쇄하던 김 전 총서기의 수법을 대단히 인상 깊게 보고 벤치마킹한 리경수 수사국 국장이 주도적 역할을 했음이 틀림없다고 평하겠다.

-좋소. 동무들. 우리 조선로동당에 동무들을 받아들이고 정치국 내 상무위원 의석 일부를 달라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하지만 그 전에 남측과의 정치체제 단일화 협상에서 장차 소선거구제를 지지할 것인지 비례대표제를 지지할 것인지 입장을 분명히 해주었으면 좋겠소. 어차피 정치국에 들어오면 상무위원으로서 남측과 매듭지어야 할 문제니.

연변 지역 기반 정당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후예당과 구(舊) 조선족, 신 북한 인민들을 여전히 뙤놈들 사촌, 2등 인민쯤으로 취급하는 민족당의 약점을 이용한 리경수 국장의 이이제이 전략은 얼마 전부터 암중으로 소문이 돌던 민족당 – 후예당 간 합당을 무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군소 지역 정당인 후예당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제의였던 소선거구제 도입에서 이견을 보이기 시작한 후예당 – 민족당 간 대(對) 로동당 연대 전선이 상술한 뿌리 깊은 ‘연변 뙤놈’, ‘만주 항일투사 동포를 대우할 줄 야박한 평양놈’간 감정싸움으로 비화한 결과였다.

게다가 이섭기 후예당 대표는 남측에 있을 때부터 비타협적이고 순혈주의적이기로 유명한 NL 계열을 이끌어 왔던 사람이고, 민족당 주류 당원들 역시도 극단적이고 전투적이라면 누구 못지않은 구 조선인민군 군관, 장령 출신들인 만큼 이러한 파국은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몰랐다.

얼마 전 이 당 대표와 민족당 대의원들이 주최한 토론회 자리에서는 이견이 불거지다 못해 물컵이 날아다니고 주먹다짐이 오가는 등 폭력사태까지 벌어져서 민심의 실망과 지탄을 사고 있는 것이 현 상황이니 어쩌면, 정말 어쩌면 상술한 본 연구원의 우려는 한낱 기우로 끝날지도 모르겠다.

5. 후기와 인용 출처

본 요약 보고서를 마치기 전 마지막 사족으로, 정보원의 동의를 얻어 해당 정보원의 신상을 여기에 공개하도록 한다.

본 보고서가 여기까지 작성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노동당 최고위 간부들의 속내와 의향에 관하여 가장 중요한 정보원이라고 할 수 있는 전 조선로동당 총서기이자 현 동북아균형안보 재단 김정환 이사장과의 인터뷰와 협조를 성사시킨 것이 주효했다.

이제까지 언론의 접근이나 자서전 대필, 인터뷰 요청 등 공사 관계를 가리지 않고 미디어의 접촉을 대부분 거절했던 김정환 이사장과의 인터뷰가 성공했던 것은, 또 그로부터 예기치 못했던 여러 증언들을 기대 이상으로 많이 끌어낼 수 있었음은 본 연구원으로서도 지금까지 얼떨떨한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진지한 학술 연구와 보고에 연구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경험을 피력하는 것은 대단히 지양해야 하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 연구원 이사회에서도 ‘왜 김 전 총서기가 굳이 김 선임 연구원(본인)의 인터뷰에만 응했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라고 호기심을 표한 바,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사족의 차원에서 김 전 총서기와 본 연구원과 독대했던 일지를 일부 서술한다.

여타 세계 유수의 미디어와 연구기관으로부터의 인터뷰 등을 전부 거절한 김 이사장은, 본 연구원이 그를 만난 자리에서 가장 먼저 인터뷰 수락 이유를 조심스레 묻자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나를 만난 기억이 없는 게 당연하겠지만, 나로서는 왠지 당신이 친숙하게 느껴진다고나 할까요? 내 인터뷰 가져가면 연구원 윗분들이 김 연구원을 그 지긋지긋한 야근이 그나마 적은 관리직으로 옮겨줄지도 몰라서 수락한 것도 있습니다만.

-네?

-아, 뭐 놀란 표정인 건 당연한데 그렇게 고개를 갸우뚱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 그럼 거기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지 말고 앉아서 녹음기 켜시죠. 들려 드리고 싶은 말이 너무나 많으니까요. 그런데 식사는 하셨나? 혹시 아직도 제육볶음 좋아하는지 궁금한데.

(이후 전문은 별첨 녹취록 참조)

2020년 7월 28일. 한국 개발 연구원(KDI) 선임 연구원 김경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