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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332화 (332/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332화

외전 후일담(後)

아직은 그 감정을 김정환 자신도 정확히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는 몰랐지만, 굳이 그 복잡한 배합식을 헤집어보자면 그 감정의 최소한 절반은 젊은 남성이 또래의 아름다운 여성에게 흔히 가질 법한 사랑, 연모(戀慕)인 것은 부끄럽지만 사실일 것이다.

비록 상대방인 유혜림 쪽에서는 아무리 백두혈통이라지만 이미 예전에 끈이 떨어진 사생아일 뿐인 김정환에게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니 일방적인 짝사랑인 게 문제였지만.

그리고 문제의 나머지 절반의 감정은, 말하자면 일종의 공범자 의식이었다.

‘사실 그 공범자 의식 운운도 결국은 내 일방적인 착각일 가능성이 높지만 말이야!’

하지만 얼마 전 그가 아주 잠시나마 엿본 유혜림의 감정의 편린은 분명히 김정환 자신이 느껴온 그것과 같다고 김정환은 맹세코,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큼은 믿을 수 있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항상 업무적인 부분 외에 꽁꽁 감췄던 그녀의 마음을 어쩌다 엿보게 된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그날은 평상시와 전혀 다를 바 없던 평양의 초봄, 김정환과 어머니가 살던 아빠트에서 김대로 등교하던 어느 날에 벌어진 일이었다.

-아니, 저 차 저거……!! 운전수 골이 어떻게 됐나…….

그날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와 쌩하고 그들을 추월해 신호고 차선이고 다 무시하고 내달리는 차량 한 대를 보고 김정환이 기가 막히다는 듯 혀를 찼지만, 문제의 차량은 여봐란 듯 속력을 올려 저만치 멀어져 갔다.

게다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차선을 침범당한 다른 차량들이 항의는커녕 길을 내주듯 슬그머니 비켜주는 것은 둘째치고 교통 법규를 단속해야 할 보안원마저 그 차를 본체만체하는 광경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어이가 없는 것은 이미 그 광경에 익숙한 듯 무심한 어조로 중얼거리는 유혜림의 말이었다.

-아, 청소년 사업부 소유 차량이네요. 번호판을 보아하니 기것도 최근에 경애하는 주석님의 싸웨(사위)이신 장성택 부장 동지의 심복으로 올라섰다는 아무개 부부장 동지가 타고 있는 거이 같은데 그거야 보안원들도 막을 엄두를 못 내갔지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 동대원 대로 한복판에서 무슨 신호도 죄 무시하고…….

-요즘은 흔한 일입네다. 근래 공화국이 잘살게 되어 차도 많아졌지만 그 차도 독일제, 영국제, 스웨덴제 순서로 당 간부들 서열 따라, 그렇게 차를 받은 간부들 중에서도 당성과 줄기 따라 도로에서 내달리는 기세가 다르니…….

‘지금 알았느냐, 책상물림인 줄은 알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세상 돌아가는 것에 문외한인 줄은 몰랐다’라는 심드렁한 티가 평소의 몇 배는 더 나는 유혜림의 말이었지만, 정작 정환의 주의를 끈 것은 그 직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주 아주 조금, 평상시에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이가 아니라면 절대로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조금이었지만 다음 순간, 그녀가 내뱉은 말의 어조에는 인민들의 락원이어야 할 공화국의 현 지도부 실상에 대한 분명한 조롱과 씁쓸한 한탄이 배어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다 주석님과 장군님의 절세적인 ‘령도력’ 덕택이 아니갔습네까……? 이대로 몇 년만 지나면 이 공화국이 참으로 전 세계 인민의 존경과 부럼을 사는 ‘지상락원’이 될 날도 머지않았습네다.

-유 소좌, 방금…… 정말 그렇게 생각해?

-……!!! ……제가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요. 좀 더 보채도록 할 테니 동지께서 상학(강의) 시간에 늦을 염려는 안 하셔도 될 겁네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아주 잠시나마 김정환에게 자신의 내심을 보였던 유혜림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을 굳게 다물고 평상시와 같은 냉담하고 무심한 가면을 뒤집어 써버렸다.

그리고 아무리 사생아라지만 감히 수령의 앞에서 체제에 대한 미약한 불만이나마 내보인 자신의 경솔함을 자기검열 하듯 두 번 다시는 김정환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김정환은 그날부터 그녀를, 유혜림을 가슴 속에 담게 되었다.

그녀의 미모 때문도, 자기 힘으로는 도무지 벗어날 길 없는 현 상황에서 도피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유혜림 그녀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신과 같은 눈으로 이 사회를, 이 공화국과 세상을 바라보고 있어왔음을 깨닫게 되어서였다.

어렸을 때부터 주위 동무들이 다가올 수도 자신이 동무들에게 다가갈 수도 없었던 김정환에게, 그날은 새장의 열쇠를 처음으로 발견한 날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봤자 결국은 나 혼자만의 헛물켜는 일일 뿐이지만.”

회상에서 깨어나 다시 어두운 학습당 자료검색실의 구석 자리로 돌아온 정환은 그렇게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백날 그 혼자 연모와 동경의 감정을 품어봐야, 당사자인 유혜림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야 그저 대답 없는 메아리일 뿐 아닌가.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김정환 그는 이름만 백두혈통이지 언제 이복형 김정일 장군의 눈 밖에 나서 잘해도 추방, 운 없으면 암살 내지 처형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처지다.

김정환 본인의 능력이나 의지와 무관하게, 이대로 그에게 기다리는 미래라고 해봐야 아마 김대를 졸업하고 적당히 어디 동유럽 제3국의 영사직 정도나 맡아 죽은 듯이 여생을 보내는 일이다.

어쩌면 이건 애초에 그 혈통 이전에 본인, 이 김정환이라는 놈 그 자체의 문제일지도 몰랐다.

들고 일어나 자기 신세를 엎을 용기도, 사내다운 뼈대도, 하다못해 필부의 만용조차 없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낄 여성이 어디 있겠는가.

심지어 유혜림은 당성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이 공화국 최고의 엘리트라고 할 수 있는 쟁쟁한 로씨야 프룬제 출신 군관들 틈바구니에서 청춘을 보냈을 텐데 말이다.

모르기는 몰라도 그녀가 원하는 이상형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타고난 축복인 동시에 족쇄인 혈통에 묶여 살아가는 자신 같은 무기력한 인간이 아니라, 능력과 배짱을 갖춘 남자.

김정환 자신뿐만 아니라 그녀를 포함한 인민 거의 모두에게 감옥처럼 변해가는 지금의 공화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자 말이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나도 정말로 원하는 건 유 소좌가 아니다. 내가 지금 정말로 절실한 것은…….’

바로 이 공화국, 창살 없는 감옥, 새장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벗어나는 일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실 지금 느끼는 유혜림에 대한 풋사랑의 감정도 같은 자유에 대한 동경과 불만을 공유하는 동지애적인 부분이 크지 않은가.

가능하다면 자신의 유일한 가족이자 어머니인 김명애를 모시고, 어디로든 이 공화국이 아닌 곳으로 떠나고만 싶은 게 현재 김정환의 가장 큰 소망이며 은밀한 꿈이었다.

당장 내일 먹고 입을 것을 걱정하는 처지라도 좋다, 어디로든, 단 한 순간만이라도 자유롭게 말하고, 생각하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곳으로.

하지만 그런 일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역시 김정환이 잘 알고 있는 게 문제지만.

‘나 하나야 그나마 젊고 머리도 제법 잘 돌아가니 어딜 가서라도 내 한 몸 보신한다 쳐도, 이 공화국에서 평생을 보낸 오마니는 어떻게 모신단 말인가?’

그나마 거리도 별로 안 멀고 말도 물도 크게 낯설지 않은 한 핏줄 동포들이 사는 남조선이 잠시 김정환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구 반대편도 아니고 남조선으로 도망가면 죽을 때까지 당과 진노한 아바디의 마수에서 자유롭기도 힘들고, 애초에 현재 1985년의 남조선 역시도 지금 이 공화국만큼은 아니더라도 그가 꿈꾸는 자유로운 국가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남조선의 자세한 국가 사정은 잘 모르고 일부러 관심도 없는 척했지만, 군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군관 출신 대통령이 인민들의 눈과 귀를 틀어막고 철권통치를 펼치는 중이라는데, 그런 나라로 도망가서 살아봐야 지금 이 공화국과 별로 다른 게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이쯤 되니 정말 옛날 리조 시대 설화처럼 벼락이라도 쳐서 눈 떠보니 다른 사람 육신에라도 들어갔으면 좋갔구나.”

그러니 다시 나오는 건 한숨뿐인 것이다.

결국 이전에 수백 번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자신의 운명에 한탄하는 것을 그만둔 김정환은 눈앞의 ‘최신 문물’의 화면에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현재의 이 공화국에서는 아마 잘해봐야 수십 대 정도 존재할 16비트 ‘컴퓨터’, 그것도 내부 인트라넷 한정이기는 해도 통신망이 연결된 콤퓨타였다.

이 거대한 평양 인민대학습당 자료검색실에나 몇 대 들여놓은 이러한 최신 문물을, 그것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공화국과 모든 인민의 어버이’ 김일성 주석의 사생아로서 김정환이 누릴 수 있는 나름의 특권이라면 특권이었다.

사실 이 정도를 제외하면 그의 무서운 이복형님, 김정일 장군이 무서워 숨도 조심해서 쉬는 김정환과 김명애, 두 모자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자유와 미래를 포함해 아무것도 없다시피 했지만.

지금처럼 김정환이 얼마 전부터 시간을 내어 ‘신문물을 공부한다’라는 핑계로 이 인민대학습당에 밤늦게까지 남아 아무도 읽지 못하고 보여줄 생각도 없는 비망록을 매일 콤퓨타 화면에 썼다 지우는 것도 이런 처지의 그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저항 비스무리한 일이었다.

외부 세계와 연결되지 않은, 사이버 공간의 하얀 화면은 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필적 감정이 가능한 비밀 일기장이나 녹음기 따위보다 어떤 의미에서 훨씬 익명성이 보장되는 기록 매체니까.

타자기가 달린 TV처럼 생긴, 콤퓨타라는 생전 처음 보는 물건이 신기해서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체제 불만을 종이에 적었다가는 처분을 잘못해서 보위부 사냥개들이 다 태우지 못한 종잇조각이라도 맞춰보는 날에, 그나마 지금 김정환과 김명애가 누리는 겉치레뿐인 평온함마저 끝장날 테고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띵--!

“이, 이게 무슨……?”

언제나처럼 이제 슬슬 화면에 적어놓은 혼자만의 세계 안 메아리를 지워 없애야겠다고 김정환이 생각하던 찰나,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목소리를 떨었다.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던 현상이 지금 그의 눈앞에 벌어졌던 것이다.

그 일이란 무엇이냐 하면 바로 콤퓨타 화면 안, 인트라넷 안 타 터미널 간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항목에 신규 메시지가 하나 당도했다는 표시였다.

즉 이메일이었다.

“누, 누가 이 시간에 이 학습당으로……? 호, 호, 호, 혹시 보, 보, 보위부?”

앞으로 10년 정도만 지나도 이메일의 도착 정도야 아무리 독재국가라 할지라도 별 대수로운 일이 아니지만, 지금은 1985년, 그것도 폐쇄적이기 그지없는 북한에서 메일 도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북조선 인트라넷 안 콤퓨타망이라고 해봐야 백 대 안팎인데, 지금 시간에 그 중 대체 누가 자신에게, 정확히는 이 학습당 콤퓨타 주소로 메일을 보냈단 말인가?

김정환은 해상도 640x350짜리 미제 IBM 콤퓨타 모니터 화면의 ‘수신인’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메일을 받는 사람으로 지목된 수신인란에는 분명 자신의 이름 석 자, ‘김정환’이 적혀 있었다.

게다가 더더욱 수상쩍은 건 다음과 같은 메일의 제목이었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에 의거, 민주 대한민국의 태생적인 시민께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로부터의 초청을 전합니다.

“……!”

조금만 머리가 돌아가는 인간이었다면 누구라도 이 수상쩍은 냄새 풀풀 나는 ‘스팸 메일’을 보위부, 혹은 자신의 존재가 불편해 꼬투리를 잡아 제거하려는 정적이 설계한 최신형 함정으로 판단한 후 열어보지도 않고 지워 버렸을 것이다.

개인이 이메일 주소를 소유한 경우 자체가 거의 없는 이 시대에 김정환이라는 특정인을 지목해서, 게다가 친절하게도 자신이 콤퓨타를 쓰는 시간과 장소까지 파악해서 이런 내용을 써 보내다니, 이건 함정이라고 광고하는 격 아닌가.

그리고 김정환 역시도 평상시라면 이런 반공화국, 반당 분자를 솎아내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수작에 바로 넘어갈 정도로 얼빤이는 아니지만, 다음 순간 그는 그 자신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충동에 의하여 홀린 듯이 마우스를 움직였다.

타개할 길 없는 현실에 대한 절망감과 자신의 처지.

그리고 이런 처지로 자신을 던져놓은 공화국과 아바디, 이복형에 대한 분노.

어차피 더 살아봐야 인생이 잿빛일 건 뻔하니 차라리 죽이든 잡아가든 맘대로 해보라는 자포자기 심정 등등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순간 그 짧은 문장이 김정환의 마음을 뒤흔들어 놨기 때문이기도 했다.

다른 시간,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지금 이 순간의 김정환에게는, 민주, 자유, 정의라는 그 짧고 상투적인 문구들이 이 세상 그 어떤 금전이나 지위보다도 유혹적이었기 때문에.

딸칵

파앗……!!!!!

그리고 다음 순간, 모니터에서 쏟아져 나온 강렬한 섬광에 정환은 그대로 의식을 잃어버렸다.

* * *

“어이……!!! 어어어---이! 정환아아! 일어나세요, 용사여?”

“…….”

“……야! 일어나 봐라! 좀. 조금만 있으면 팀장이랑 선임들 출근할 텐데 이렇게 컴퓨터 켜놓고 처자고 있으면 네 연차에 정신 못 차린다고 꼽 준다? 너 근데 야근 체크는 찍고 잤냐? 일단 공공기관이라고 쥐꼬리만 한 수당이라도 나라에서 주는데 세금 낸 만큼 악착같이 돌려받아야지?”

“……으음?”

정환은 눈을 찌르는 창밖 아침 햇살과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누군가의 손길에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자신이 의식을 잃었던 인민대학습당과는 전혀 다른, 생전 처음 보는 주변의 풍경과 무엇보다 옆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는 낯선 또래 젊은 동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긴 대체 어디지?

“어이, 이정환 연구원님. 혈관 내 카페인 함유량이 많이 떨어지셨나 보네요? 그게 아니면, 대학 때는 며칠 밤새워도 끄떡없었는데 벌써 늙었어?”

“……그쪽 동무는 뉘시오?”

“……?”

정환은 흔들어 깨운 사람, 김경수는 멍한 눈으로 정환이 이렇게 묻자 ‘이건 또 무슨 컨셉인가’ 하는 황망한 표정으로 잠시 말없이 친구를 바라보았다.

잠이 덜 깼나?

아니, 어제 점심에 제육볶음 먹으면서 자신이 한 말실수에 아직도 꽁해있는 건가?

그래, 그게 틀림없어.

“야, 어제 그 점심에 내가 한 이야기는…… 미안하다. 거기서 괜히 아버지 이야기는 왜 꺼내 가지고…… 내가 실수했으니까 다시 사과할게. 그러니까 그만 마음 풀고 이상한 컨셉 잡지 마라. 소름 돋는다.”

“……내 아바디라니? 지금 공화국의 태양, 김일성 주석님을 말한 것이오? 게다가, 아무런 존칭도 없이? 동무, 지금 여기가 어딘지는 몰라도, 여기에 우리 둘 말고는 없지만 그래도 입조심을 하는 게…….”

“…….”

아, 이거 아무래도 아직도 꽁해 있나, 아니면 말로만 퉁 치고 물질적인 뭔가가 없어서?

그래, 역시 그렇겠지?

여기까지 판단을 내린 김경수는 간만에 큰맘 먹었다는 투로 선언하듯 말했다.

“오케이, 알았어. 소고기! 주말에 소고기 사줄게, 물론 한우로! 원장님이 외부 손님 모시고 가는 데로 내가 알아둔 데 있어. 이 정도면 됐냐? 아, 이거 재정적으로 타격이 큰데 내가 큰맘 먹었다. 어차피 이번 생에 서울에 있는 집 사기는 그른 거 같으니 먹고 죽어야지. 왜, 이밥에 고깃국이 아니라 실망하셨소, 리정환 경애하는 수령 동무? 큭큭.”

“……!?!?!”

“이제 기분 좀 풀렸으면 일하자. 알지 모르겠는데 정부에서 그놈의 집값 잡아보겠다고 또 새 부동산 대책 발표했거든? 그린 벨트 푼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벌써 시장이랑 온라인 부동산 카페랑 다 난리 났어. 그거 수정치 반영해야 하니까 얼른 움직이자. 아침에 출근하면서 보니까 임대사업자들은 벌써 머리띠 매고 시위하러 나온다더라. 쯧.”

“……시, 시위라니, 다 죽으려고 작정했소? 어디요? 대체 평양 어디서 그런 무모한…….”

이 친구 그동안 하도 격무에 시달리다 이 나이에 벌써 뇌세포가 손상되기 시작한 건가?

시큰둥하게 맞장구쳐주면서도 슬슬 진짜로 친구가 걱정되기 시작한 김경수는 이쯤에서 오늘 반차 내고 병원 가보라고 조언해줄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전에 일단 (평소에도 애용하는) 두통약에 가스 활명수라도 먹여야겠다고 판단한 그는 약들을 넣어두는 서랍장으로 걸어가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마디 했다.

하지만 그 심드렁한 한마디는 아직까지도 전생(前生)의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정환의 정신을 뿌리부터 뒤흔들었다.

“어디긴 어디야, 대한민국 시위의 핫 플레이스, 시위단길 서울 광화문이지. 그리고 죽자고 하는 게 아니라 다 살자고 하는 거야. 다 같이 좀 먹고살자고! 그리고…….”

“……?”

“……그리고 이 21세기 법 좋은 자유 대한민국에서 시위도 못 해? 좌고 우고 생각이 다르다고 틀린 게 아닌데, 그것도 못 하게 하면 그게 민주주의 국가냐? 무슨 주체사상도 아니고 원…….”

“어어어……!!!”

친구의 말에 ‘이정환’은 그저 입을 헤 벌리고 이런 의미 모를 신음만 흘렸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밤의 어둠을 걷어낸 아침의 햇살은 창문 안으로 스며들어 그들의 어깨를 비추고 나무 위의 새들은 자유롭고 한가하게 지저겼다.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갈 새로운 인생의 새로운 앞길을 축복해주는 것만 같았다.

경애하는 수령동지 외전 후일담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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