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310화
2014년 조-중 연변 분쟁, 후세에 조선어로는 ‘북간도 전쟁’, 보통화로는 ‘만주 내란’이라고 알려진 이 전쟁의 첫 총성이 언제, 어느 진영에 의해서 울렸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역사가들 중 북조선 편을 들어주는 자들과 서방 주류 미디어들은 영사를 끌어내려는 데 항의해서 시위를 벌이는 시위대에 영사관을 포위하고 있던 공안(이라고 쓰고 무경 내지 인민해방군이라고 읽는다)들이 실탄 사격을 개시했다고 기록한다.
중국 쪽에 좀 더 치우친 기록들은 이 전쟁의 배후에 있던 김정환 조선로동당 총서기가 시위대 일부를 사주해서 먼저 발포를 유도했고, 이에 공안들이 대응 사격을 하면서 첫 유혈 충돌이 벌어졌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대다수, 그리고 중립적이라고 평가받는 사가(史家)들의 결론은 ‘그 시점에서 어차피 누가 먼저 쐈든 무력 충돌은 시간문제였다’라는 게 중론이다.
당장 연변에 파견된 인민해방군 특수부대들에는 아프간 산악을 넘나들며 실전 경험을 두루 쌓은 베테랑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고, 탈레반들과의 전투에 이골이 난 이들에게 ‘현지인’이란 ‘언제라도 게릴라로 돌변해 아군에게 총구를 겨눌 수 있음’과 동의어나 다름없었다.
언제라도 공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자들과 언제라도 반격할 준비가 있는 자들이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마주쳤으니, 그 결과는 어찌 보면 뻔한 것이었다.
타타타타탕!!!
타타탕……!!!!
“총을 쐈다! 저 간나 새끼들이 총을 쐈다우!”
“아아악!! 도망가! 도망가라! 저 새끼들이 인민에게 총을 쏜다!”
한 인민해방군 장병이 겁을 먹어 손가락이 느슨해졌던 건지 아니면 공안 현장지휘관 하나가 지나치게 예민했던 건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일단 첫 총성이 울려 퍼지고 피가 흐르자, 사태는 걷잡을 수 없어졌다.
영사관이 위치한 연길 역 인근에서 벌어진 첫 충돌에서 20여 명이 죽고 다치자, 연길 시는 공포와 경악으로 들끓었고 그 공포와 경악은 이내 며칠이 지나지 않아 룽징, 허룽, 둔화, 안도까지 쫙 퍼져 나갔다.
그리고 거리에 돌아다니는 탱크, 인민해방군의 발포, 피와 비명은 베이징에 거주한 적 있었던 ‘유경험자’들로부터 불길한 데자뷰를 연상시켰다.
“천안문이다! 천안문의 재림이다! 모두 도망가서 숨어라!”
“도망가기는 뭐이를 도망가? 조선 사람은 총 못 쏘는 줄 알디?”
“야이 개새끼들아!!! 인민을 해방한다는 인민해방군이 인민에게 총을 쏘니? 인민을 해방시키기는 뭐이로부터 해방시켜? 이승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뜻이냐?”
게다가 연길 시 한복판에 탱크가 굴러다니는 것을 보면서 감히 발설하지 못했던, 하지만 똑똑히 기억은 하고 있었던 악몽을 떠올린 일부 베이징 거주 조선족 중장년층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한 이런 말은 처음에는 공포를 불러일으켰지만, 이번에는 한 가지가 달랐다.
바로 기댈 곳이 없었던 89년의 베이징 시민들과는 달리, 조선족들에게는, 연변시민들에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확실한 뒷배, 투쟁의 지원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후원자의 존재는 영사관 앞에서 흐른 피, 이전부터 차별대우를 가하는 한족들에게 가지고 있었던 불만들, 경제적 어려움 등과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원래 사람이라는 동물은 기댈 곳이 전무하면 모를까, 손에 막대기라도 하나 쥐고 있으면 절망 앞에서도 한번 싸워볼 용기를 내는 법이다.
-가만히 있으면 베이징 때처럼 당한다! 앉아서 죽지 말고 찍소리라도 하고 죽자!
이제 베이징 중앙당은 연변을 버렸다, 연길에서 수천 명이 죽었다더라, 하는 괴담 아닌 괴담들은 절망감이 아니라, 연변 인민들의 저항심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원인, 자신들이 수립한 연변 자치공화국의 소식을 전하러 영사관 앞에 찾아갔다가 첫 발포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이섭기는 재빨리 규탄 성명서를 발표하고 연변 자치주 모든 인민의 궐기를 촉구했다.
영사관 앞에서 있었던 무차별 발포는 시위 참여에 소극적이던 중립파 인민들까지 완전하게 돌아서게 만들어, 이제는 시위대, 아니, 민병대의 구호부터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고 전투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천멸중공(天滅中共 : 하늘이 공산당을 멸하리라)!
-중국필사 반공필승(中國必死 反共必勝)!
바야흐로 인민 봉기, 친 조선파 민병대의 결성이었다.
처음 이 민병대의 출현 소식을 들은 공안, 중국군 측은 코웃음을 쳤다.
총기가 엄격하게 통제되는 이 중국에서 급조된 민병대라고 해봐야 무장 수준은 뻔하고, 반면에 이쪽은 아프간에서 실전을 수없이 겪은 베테랑들이 장갑차까지 보유하고 있다.
-길어야 1주일이면 민병대라는 어스레기들을 분쇄한 후, 연변 전체를 제압하고 자칭 자치정부 수반이라는 그 이섭기라는 놈을 잡아 사형을 집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당연히 그 괘씸한 김정환이를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것이고 말이지!
……라는 중국군 지휘관들의 처음 생각이 전술적 오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디선가 갑자기 군용이 명백해 보이는 AK 계열 돌격소총과 수류탄이 나타나 조선족 민병대들 손에 들려졌다.
방탄복에 탄약은 물론이고 돌격소총에는 광학 조준경까지 장착되어 있었다.
연길 건물 옥상에는 휴대용 맨패즈(MANPADS : 보병용 대공무기)를 든 민병대가 배치되고 저격수들이 고지대란 고지대를 다 점령하면서 중국군 장교와 하사관들을 눈에 보이는 대로 쏘아 맞히기 시작했다.
자신 있게 진행한 첫 시가전, 연길 지하철역과 시청을 점령하는 진입작전이 이런 예기치 못한 저항에 부딪혀 보기 좋게 실패하자, 중국군 지휘관들은 이를 바득바득 갈 수밖에 없었다.
저놈들이 대체 군사훈련 한 번 해본 적 없는 연변 인민들이 맞는가?
아니, 그 이전에 저 많은 무기들이 다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물어보나 마나 그 답은 뻔했지만, 그럼 대체 국경수비대는 다 어디서 뭘 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조중 국경지대가 하도 넓고 길어 다 방비가 어려운 거야 사실이지만, 그래도 설마 무기가 이만큼이나 흘러들어 올 때까지 검문소 놈들은 다 처자고 있었단 뜻인가.
그리고 그 지휘관들이 조중 국경 부근에 위치한 검문소가 영사관에서 유혈 사태가 일어난 직후 민병대의 전광석화 같은 습격을 받아 점거되고 기능을 상실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은 딱 그때쯤이었다.
* * *
치이이익……!!!
-여기는 본부, 조선 측으로 불법 월경자 없나 잘 감시해라. 인원 없다고 농땡이 피우지 말고.
“여기는 제4 초소, 염려 말고 폭도들 진압에 신경 쓰라, 肏(cào : 씨X), 저 고려봉자(高丽棒子) 새끼들 많이도 모였구만. 오늘도 저 지랄인가?”
“그래, 당 중앙 무서운 줄 모르니 저 난리들이디. 듣자 하니 내일쯤 중앙에서 병력이 도착해서 저놈들 때려잡을 거라는데…… 기분 같아서는 실탄 써서 싹 밟아 죽이라고 하고 싶네, 기래!”
주연변 북조선 영사관 앞에서의 총격 사태가 일어나기 12시간여 전.
연변 자치주 투먼시(图们市)의 조중도문변경(朝中图们邊境)에 위치한 국경 검문 초소에서는 두 명의 공안들이 투먼시 중심가를 행진하는 시위대를 보며 그렇게 욕설을 내뱉고 있었다.
연변의 중심부 연길 시도 아니고 변경 중의 변경, 이곳 투먼 시까지도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지금 연변 자치주 전체를 뒤덮은 반역의 불길이 얼마나 거세고 격렬한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거였다.
당장 원래라면 10명 가까이 지키고 있어야 할 이 검문 초소에 그들 단둘만 남아 있는 것도, 대부분의 다른 인력들이 저 겁대가리 없는 놈들을 진압 혹은 감시하기 위해 이곳 투먼 시내 아니면 연길로 지원을 나갔기 때문 아닌가.
하지만 두 공안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당장 국경초소의 검문을 대폭 강화하라는 지시가 이미 중앙에서 내려왔고 보안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병력들이 내일부터 증원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외부 지원도 없고 맨손인 시위대가 완전 무장한 그들 공안, 그리고 인민해방군과 어떻게 맞서겠는가.
폭도들은 어차피 곧 진압될 것이다,
25년 전 천안문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고 보니 동무, 동무도 어릴 때 이 연변에서 조선계 학교 다녔다고 하지 않았나? 왜 저놈들하고 안 붙었어?”
“아이고, 연변에 조선족만 200만인데 그놈들이 다 저 폭도들 농간에 놀아날 리 있갔어? 친중파, 친조파 끼리끼리디…… 기러고 모름지기 조국이란 힘세고 큰 곳, 무엇보다 나 하나 먹고 사는 거 문제없이 해주는 곳이 제일이디. 애국심이라는 거이 별거 간?”
“하기야…… 어? 저기 트럭이다! 조선 쪽에서 온다!”
서로 손사래를 치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공안들 중 한 명의 눈에 저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대형 트럭들 무리가 보였다.
트럭 겉면에는 ‘장안(長安) 물류’라고 쓰여 있었다.
평상시 같으면 이 근처에 흔하고 흔한 무역 회사 차량이거니 했겠지만…… 분명히 근래 들어 관계 악화로 인해 조중 무역이 크게 줄어들면서 이 투먼시 국경지대를 통과하는 물동량도 반의반의 반 이하로 뚝 떨어진 상황이다.
그런데 저렇게 많은 트럭이라니?
“정지! 정지하시오! 사전에 월경을 신고하고 오셨소?”
“신고……? 이보시오, 보안원 동무. 여기 투먼 시 왔다 갔다 하는 짐차가 하루에 어디 한 둘이오? 보따리상부터 무역 기업소들까지 하루에만 수백 대씩 넘어가는데 언제부터 기런 걸 일일이 신고했소? 거 무슨 조중 무비자 조약인 거 그런 거이 있디 않았소?”
“그건 어디까지나 얼마 전까지 일이고! 요새는 사정이 달라졌으니 사전 신고해야 월경이 가능한 거요! 뭐요, 대체 뭘 실었길래 저리 많아?”
“허, 그러게 말일세. 뭔가 심상치 않은데 여기는 내가 남아서 보고 있을 테니 후딱 내려갔다 오시기요, 동무.”
두 명의 공안 중 한 명은 초소 아래에서 게이트 열어달라고 소리치는 북조선인들로 추정되는 일꾼들을 당황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혼자 가기 좀 불안하기는 했지만, 원래 초소에는 반드시 한 명은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경계 규칙에 따라 동료를 위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그가 초소 아래에서 도착해서 트럭 운전기사들에게 눈을 부라리자, 서로 뭔가 눈치 섞인 눈빛을 주고받은 그들은 이내 입가에 헤실헤실 미소를 띠며 고개를 숙였다.
“아이고…… 요즘 대국 심기가 안 좋다는 건 들었지만 같은 혈맹끼리 갑갑하게 굴 건 없디 않갔습네까. 여기 저희 사장 동무가 성의를 좀 보여드리라고 챙겨 넣은 거이 있으니 이걸 받으시고 부디…….”
“너희들 뭐 하는 새끼들이냐? 지금 어디서 감히…… 요즘 이런 게 통하는 분위기 같냐, 엉?”
짐차 일꾼들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일이 귀찮아질 것 같다 판단했는지 품속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 공안에게 슬쩍 내밀었지만 그는 오히려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밀쳐 버렸다.
이런 ‘부수입’은 예전이라면 얼씨구나 하면서 챙겼겠지만, 지금 상황은 분위기 파악 못 하고 뒷돈 챙겼다가는 돈 몇 푼 이전에 모가지가 날아갈 수도 있는 시국이었다.
이내 공안은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이는 일꾼들을 을러대며 트럭 뒤로 돌아가 적재화물을 눈으로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삐삐삐삐삑……!!!
“별거 없습네다, 고저, 요즘 연변 날씨가 안 좋아서 우산을 수출하는데…….”
“……뭐야? 요즘은 우산을 탄약상자에 넣어서 운반하냐? 일단 너희들 무릎 꿇고 두 손 머리 위로…… 응?”
철컹…….
공안이 심상치 않다는 표정으로 막 총을 꺼내려던 찰나, 검문소 게이트가 굉음을 내며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공안은 입을 딱 벌린 채로 넋을 놓고만 있었다.
지금 검문소 게이트의 개폐 장치는 초소 위 자신의 동료가 통제하고 있는데, 저게 왜 갑자기 열어젖혀진단 말인가. 그 말뜻은…….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공안은 황급히 무전기를 꺼내 검문소 본부에 연락을 넣으려 했다.
“본부! 본부 나와라! 여기는 제 4초소, 지금……!! 크억!”
“쯧, 기러게 줄 때 받지 왜 까탈스레 굴고 기래. 수고했소 동무.”
파지직 소리와 함께 짐차 일꾼, 아니 대외정찰총국 특수공작부 두만강 7호는 공안을 기절시킨 전기충격기를 집어넣으며 초소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또 한 명의 공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초소의 공안, 방금 게이트를 열어준 그들의 내응자(內應子)도 손을 들어 그에 응답하며 마이크에 대고 안쪽의 상황을 전했다.
“지금 안쪽 공안 놈들은 투먼시 시위대 진압하느라 다 정신이 빠져있을 터이니 나머지는 일사천리요. 날 밝기 전에 연변에 도착해 화물을 공급할 수 있으니 어서 통과하시오들.”
“명심하시오. 사전에 교시받았던 대로 검문소 돌파는 우리 공화국에서 한 거이 아니라 시위대가 월경을 시도하던 중 공안과 옥신각신하다가 부순 거이요. 뭐 그쪽에도 우리 요원들이 섞여 있으니 실제로 곧 그리 되갔지만.”
“동무들 짐차 통과하고 나면 다른 동지들에게도 연락해서 시위대에게 문을 열어줄 예정이오. 서두르시오!”
그 말과 함께 짐차들은 투먼시 국경초소를 지나 아무 제지도 받지 않고 화물을 싣고 연변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화물들이란 앞으로 12시간 후 쓰이게 될 돌격소총, 수류탄, 대전차 지뢰 등등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현재로써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