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309화 (309/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309화

106장.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수(撒水)! 저 폭도들을 분쇄해라!”

“진압대다! 모두 방어구 잘 챙겨입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라우!”

고함과 비명이 모든 골목마다 메아리치고 눈에 잘 띄는 글씨로 각종 구호들이 쓰인 깃발과 플래카드가 급조되어 바람에 휘날렸다.

연길시 중심가에는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으며 마스크에 헬멧을 쓴 시위대들이 시위진압용 살수차와 진압대원들의 진압봉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이미 연변 자치주 공안들만으로는 진압할 수 있는 시점은 옛적에 지나갔고, 타 지역이나 중앙으로부터 충원되어온 병력들이 주로 동원되고 있었는데 이들의 가차 없음과 무자비함은 그야말로 그 무섭다는 공안 뺨 후려치는 수준이라, 그때마다 시위대는 흩어졌다 모이고 흩어졌다 모이고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연변이여, 힘을 내라(延边, 加油)!

-주장은 인민대표 선거 결과를 공개하고 연변에 더 높은 수준의 자치를 허락하라!

지난 인민대표 선거의 납득할 수 없는 결과 이후 요즈음의 연변에서는 매일의 일상같이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게다가 이 연변의 대규모 반 중공 시위는 이제까지 중국 내에서 일어났던 산발적인 시위와는 다르게, 벌써부터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초기부터 각종 SNS와 국제적 커뮤니티에 시위 라이브 영상과 진압 병력들에게 맞아서 다친 영상과 사진들이 수두룩하게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비록 중국 당국에서는 시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인터넷 회선을 최대한 끊고 자국 온라인상에 ‘연변’ 관련 검색어만 올라와도 모든 게시물을 차단하는 등 갖은 수를 다 썼지만 이미 연변 주민들의 8할 정도가 스마트폰을 보유한 시대에는 아무리 막아도 한계가 있었다.

진작부터 연변의 IT 환경 등 인프라 개선에 국비를 써가며 신장 위구르, 티베트화 방지에 공을 들인 조선로동당과 정환의 투자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지만 중국 공산당에게는 이 사태의 배후에 북조선이, 그것도 이날을 위해 수십 년간의 치밀한 준비를 해왔다는 또 하나의 명백한 증거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기에 더해 연변 인근, 조중 국경선 부근에서 일어난 장성택의 암살 사태도 조중 관계를 전에 없이 냉각하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중국 체제의 특성상, 그리고 장성택을 이용해 괴뢰정부 수립을 시도한 것에 제 발이 저린 탓에 암살 사건은 외부로 공표되지도 않았지만 중국 영토 내에서 군사행동을 한 탓에 조중관계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봐왔다면 눈치챘겠지만, 그렇다.

당 간부들을 모아놓고 비장한 다짐을 받았던 얼마 전 회의가 무색하게, 연변에서 공안(정말 공안인지는 하늘만 알겠지만) 병력과 시위대의 충돌이 나날이 격화되는 이 와중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그리고 조선로동당 총서기 김정환의 공식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현재 연변에서 벌어지는 소요 사태의 배후에 우리 공화국 정보당국이 있다는 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측의 혐의 제기를 강력히 부인함.

‘이건 말하자면 전쟁! ……이라고 먼저 선포하는 쪽이 불리해지는 게임이거든.’

약육강식의 법칙이 널리 통용되는 국제관계에서 명분이란 가끔 보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 같아 보여도, 때로는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다.

일단 이러니저러니 해도 연변은 아직까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중국 영토이며, 아무리 오래 물밑 작업을 해왔다고 해도 북조선이 이를 대놓고 집어삼키려 들었다가는 역풍을 면치 못한다.

설령 강대국이 주변 소국의 영토를 합병하려 작업을 한다 해도 일단 겉으로는 직접 개입을 극렬히 부정하는 게 국제정치의 생리인데, 하물며 그 주체가 중국보다 국력이 크게 부족한 북조선인 다음에야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그동안 미영을 중심으로 뭉친 서방 열강들이, 정확히는 미국이 중국 - 아프간 전쟁부터 시작해서 언제 중국을 한번 단단히 손봐주려고 벼르고 있었다고 해도, 현재 미국 대통령이 군사력 대외 투사를 망설이지 않는 콘돌리자 라이스라고 해도 지금 섣불리 나서는 건 현명한 일이 아니라는 게 정환의 판단이었다.

비록 국제사회의 시선이 갑자기 연변에 쏠렸다고 해도 아직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들의 태도는 관망세, 자칫 내정간섭 이야기를 들을까 봐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 중인 상태다.

그나마 직접적 이해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한국 정도만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고 날마다 신문 헤드라인을 ‘북중 밀월관계, 마침내 파탄, 미국의 대응에 시선이 쏠리다’라는 제목이 장식하고 있는 것이지, 최대한 국제 여론을 자기편으로 만들어야 승산이라도 보이는 정환과 북조선 입장에서 현재 연변 상황은 아직 물이 덜 끓어도 한참 덜 끓은 상황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 있을 생각은 전혀 없지만 말이야.’

정환의 이러한 개입 부정 의지 천명은 비단 한국과 서방, 국제사회를 향한 것만이 아니었다.

바로 중화인민공화국 내부, 정확히는 중국 공산당 중앙위 내부를 겨냥한 것이기도 했다.

“아프간 전선, 홍콩 시위, 그리고 연변까지. 저쪽이 양면 전쟁도 아니고 삼면(三面) 전쟁을 벌이는 게 미친 짓이라는 걸 모를 리 없는 이상, 우리가 할 일은 단 하나일세 동무들. 아마 지금도 중공 중앙위 내부에서는 의견이 둘로 나뉘어서 격론이 오가고 있을 걸세.”

“……격론이라 하시면……?”

“시위대, 이섭기 동무. 연변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전위세력,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지만 이번 사태의 정의에 대해서 말일세. 그리고 그 정의에 따라 중공의 대응방법도 달라질 테고…… 즉 우리는 저쪽이 공안 같은 게 아니라 명백한 군사력을 먼저 사용해서 우리 공화국의 국익을 직접적으로 침범하도록 유도해야 하는 거지.”

“음…… 어떻게 말입네까?”

“살살 긁어야지. 직접 때리기에는 뭣하고, 하지만 분리독립 사태, 아니, 시도에조차 노이로제 수준의 위기감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중공 내부의 여론을 돌릴 수 있을 만큼 살살.”

그리고, 이런 정환의 예측은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 * *

“이것 좀 보시오, 동무들! 이래도 북조선과 김정환이가 연변의 폭도들 뒤에 있지 않다는 거요?”

거세게 소리치며 보시라이가 탁상 위에 내려놓은 것은 북조선 외무성에서 발표한 추가 성명이었다.

바로 그날 ‘우리는 연변 시위대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이라는 성명과 함께 덧붙여서 다른 성명도 발표했는데, 그 내용이란 다음과 같았다.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연변의 시위 주동 세력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다만, 이번 사태로 인하여 연변에서 치안 악화, 경제적 어려움 등을 이유로 망명해 오는 동포들은 인도주의적인 입장에서 국경을 개방하고 입국 심사를 크게 완화해 줄 것이며 북조선 국적 취득에도 절차를 간소화할 것임을 밝힌다.

“이건 대놓고 폭도들을 지원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 아니오! 장성택 동무를 우리 국내에서 암살한 일도 일이지만, 이런 김정환이의 수작을 분쇄하려면 지금이라도 연변에 군사력을 투입해서…….”

“보 주석 동지. 말뜻은 잘 알겠지만 그건 우리가 직접 그 폭도들을 ‘범죄자’가 아니라 ‘반란군’으로 간주해 주는 꼴 아니오? 정보 공동체 일도 있고 때려잡아야 한다는 데에는 나도 십분 동의하지만 지금은 무경들이나 특작군에게 공안 제복을 입혀서 진압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

“이놈의 뒤에 미국이 있다는 증거가 이렇게 명백한데도 후 주석 동지는 우리가 참아야 한다고 말씀하실 생각이시오?”

“미국이 뒤에 있다는 증거가 명백하니까 침착하게 행동해야 하는 거요!”

한편, 베이징의 중앙위에서는 끝까지 군대 투입을 자제하려는 후진타오의 온건파와 보시라이의 주전파가 팽팽하게 격돌하고 있었다.

지난번 북조선의 태평양 정보 공동체 가입이 밝혀진 직후, 온건파도 북조선이 연변 사태의 배후에 있으며 그들을 최대한 압박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인민해방군을 비롯한 군사력을 직접 동원하는 것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했던 것이다.

지금도 광동성 일대를 시끄럽게 하는 홍콩 우산 시위처럼 국제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지만, 보시라이를 비롯한 주전파의 주장 역시 충분히 일리가 있어서 상무위원들 사이에는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상황이었다.

-지금 국제사회의 시선이 연변에 집중되고 미국도 언제든지 끼어들 기회를 벼르고 있는 상황에서 폭도들에게 실탄을 사용하거나 탱크로 깔아뭉개는 건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다. 끝까지 연변의 분리독립 시도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면서 북조선에 경제 제재 등 간접적인 방식으로 압박을 가해야 한다.

-아니, 홍콩과 연변은 명백하게 다르다. 외따로 떨어져서 그나마 도와줄 외부 세력이 국가 인정도 제대로 못 받는 대만뿐인 홍콩과는 다르게 연변에는 주권국가의 지위를 누리고 경제력이 풍부한 북조선이라는 후원국을 바로 지근 거리에 두고 있다. 이미 연변 조선족들의 불만이 팽배한 상황에서 지금 확실하게 불씨를 잡지 않으면 나중에 이 불은 산불이 되어서 절대로 잡게 될 수 없을 것이 뻔하다.

-게다가 더 멀리 보면 그 북조선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후원을 받고 있는데 민주주의 국가라면 적당한 경제 제재로도 자국의 불만이 팽배해서 정권이 협상 압박에 시달리겠지만, 북조선은 명백한 김정환 1인 독재체제다. 장성택이 죽어서 북조선 내부의 동조자도 없어진 상황에 언제 성과가 나올 줄 알고 경제 제재만 가한단 말인가. 미국이 아무리 제재해도 러시아나 이란이 무너지던가?

정환은 이러한 중국 공산당 내부의 딜레마를 이미 예측하고 있었으며 당장은 경제 제재가 먼저 가해지리라는 사실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시라이가 아무리 주석이라고 해도 지금 당장은 다른 상무위원들 눈치를 봐서라도 군사력 동원보다 경제 제재를 먼저 실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도.

하지만 동시에 정환은 이 갈등을 오래 끌 생각 역시도 없었다.

아무리 북조선 인민들이 경애하는 총서기에게 충성스러워도, 아무리 얼마 전 반기를 들다 진압당한 북조선 기업들이 당과 총서기에게 당분간은 찍소리 못한다고 해도, 결국 장기전으로 가면 갈수록 불리해지는 건 북조선이고, 정환 그 자신이니까.

그래서 정환은 ‘중국 내 북조선 기업들 불매운동 조장, 북조선 관광 및 무역 제한, 공산품 수입 전면 불허’라는 조치가 내려지자마자 강경 대응으로 맞받아쳤다.

단, 자기 입이 아니라 다른 사람 입을 빌려서.

-오늘, 연변 시위의 중심에 있는 조선 민족 커뮤니티의 리더, 이섭기 대표는 중대선언을 발표했습니다. 마침내 연변과 중국 공산당은 서로 다른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절감했으며, 한 국가라는 틀 안에 있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고 발표한 것인데, 이는 연변 자치주의 분리독립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섭기 대표는 오늘 ‘연변 자치 정부 임시 인민회의’의 결성을 선언하고, 그 수반 자리에 취임했습니다. 가칭 ‘연변 자치 공화국’의 수립을 위한 이 임시조직은 반중, 분리독립이라는 기치 아래 홍콩 우산시위와의 연대를 선언했으며 곧 연변 자치주 전체가 중국으로부터 분리독립하기 위하여 주민 투표를 실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해당 투표에서 가칭 연변 자치 공화국은 독립 헌법을 제정할 것인지 북조선으로의 자발적 합병을 결의할 것인지 결정된다고 합니다.

해당 사실이 뉴스에 발표되자마자, 상무회의 내에서 후진타오를 비롯한 온건파의 목소리는 크게 힘을 잃었다.

보시라이와 주전파의 예언이 1주일도 안 되어 사실로 증명되었으니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중국은 이 모든 사태의 배후에 있다고 확신하는 북조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향해 직접적인 무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 우선순위 1위는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이자, 연변 자치주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북조선발 자본에 대한 철퇴였다.

-오늘 중국 외교부는 얼마 전 경제 제재에 이어, 연변 전체에 투자된 북한 자본 약 400억 달러, 한화 약 48조 원어치 기간 시설 및 산업체에 대하여 전면적이고 일방적인 국유화를 선언했습니다. 이러한 유례없는 초강경 조치에 대하여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의 주권을 지키기 위한 자위적 조치의 일환이라는 말로만 응답했습니다.

-이러한 조치에 뒤이어, 주 연변 북한 영사관이 대규모 공안 병력에 의하여 포위당했습니다. 북한 당국 측의 항의에 대하여 연변 내에서 현재 활동 중인 ‘불온 세력’이 북한 측과 접촉하려는 증거를 확보했으며, 그러한 불미스러운 일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지 북한의 외교 주권을 침해하려는 처사는 아니라고 대응하고 있습니다.

-자동소총과 방탄복으로 무장한 이들 ‘공안’들은 현재 영사관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 중이며 주 연변 북한 영사를 사실상 억류 중이나, 불온 세력이란 얼마 전 있었던 이섭기 자칭 연변 자치 공화국 정부 수반이 주연변 영사 측과 접촉을 시도했던 일을 가리킨다는 것에 모든 추측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태에 직면하여, 보고를 받은 정환은 한숨을 내쉰 후 한마디로 지시했다.

“드디어 싸움의 때가 왔군.”

“동지…….”

“조선인민군 특수전술대대 및 대외정찰총국 공작부에 지시를 하달하게. 연변에 우리 요원들을 급파하여 민병대를 조직하고 게릴라전에 대한 훈련을 시키라고. 그나마 대리전의 무대가 다시 한번 한반도가 되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