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308화
하지만 그 속내가 어쨌건, 정환은 여전히 침착했다.
“……보아하니 이미 나를 몰아낼 준비가 다 되어 있는 모양이군. 이렇게 대놓고 반기를 든 건 보면 어차피 더는 숨길 생각이 없다는 뜻일 테니, 어디 읊어나 보게. 이런 반역을 저지른 이유가 뭔가?”
“말씀드렸다시피 전적으로 이 공화국과 삼천육백만 조선인민의 안위를 걱정해서입네다. 중국 놈들과 충돌하시면 안 됩네다. 처음에는 이 장성택이도 어떻게든 동지를 설득해 보려 했지만, 그리 총명하시던 동지께서 나이가 들며 그 총명이 쇠하셨는지 제 말을 도무지 들으려 하디 않으시디 않았겠습네까.”
“왜 그런 충돌을 무릅쓰면서까지 지켜야 할 게 뭔지는 저번에 이미 충분히 설명해 준 걸로 아는데…….”
“동지, 옛날 리조(李朝 : 조선왕조)의 창시자 리성계가 왜 위화도 회군을 했는디 정녕 모르십네까? 언제 뒷빡을 칠지 모르는 미국 뒷배만 믿고 공화국보다 30배는 더 큰 대국과 쌈박질을 하는 거이는 미친 짓입네다! 소국이 대국과 겨루는 법이 아니라는 거이를 왜 모르시냔 말입네다!”
“…….”
장성택의 호소에 정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화면 속의 장성택 역시도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닌 듯 울분에 찬 어조로 일장연설을 이어나갔다.
“대체 왜 저 멀리 왜 바다 저 멀리 있는, 70여 년 전에 이 조선의 강토를 짓밟은 미제와는 친해지고 언제든 공화국의 수도에 군홧발을 들이밀 수 있는 지근의 대국과는 원쑤지간이 되지 못해 안달하시냔 말입네다. 총서기 동지께서는 지금 이 공화국과 인민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가고 계십네다!”
“기가 차는군. 그래서 고작 생각해낸 게 나를 배신하고 이 공화국을 저 보시라이 주석과 중국 공산당에 팔아넘기는 것이란 말인가? 동무가 동무 본인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정당화를 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
“저 장성택이는 한평생 공화국과 인민을 위해 이 한 몸 바쳤고, 지금도 그렇습네다. 총서기 동지께서는 분명히 이 조선을 오늘날 이곳까지 올려놓으신 만고 위인이시며, 그 점은 저도 부인하디 않습네다만…… 이번만큼은 틀리셨습네다. 기러니 동지만 사라지면 전 공화국과 인민이 평화롭습네다.”
“노예로서 평화롭다는 말이갔지! 저 썩어빠진 종간나 새끼!”
장성택의 말에 정환 옆에 서 있던 간부들 중 백승철이 침을 탁 뱉었지만 장성택은 움찔조차 하지 않았다.
“이미 보시라이 주석과는 이야기가 다 되어 있습네다. 그분도 쓸데없는 조선 인민의 피를 흘리고 수십 년 혈맹인 조선과 환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고 하셨디요. 그러니 지금 자리를 양보하고 내려오시면 여생 동안 조용히 상왕(上王)으로서 인민들의 추앙과 존경을 받으며 보내실 수 있으실 겁네다.”
“상왕이라…….”
물론 말이 상왕이지 실권이라고 해봐야 쥐뿔도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건 당연지사지만, 지금 정환이 궁금한 건 다른 쪽이었다.
“그러니까 문제의 원인인 나보고 총서기 자리에서 물러나라? 그럼 총서기 자리에는 장성택 동무가 앉겠다는 이야기로군? 보시라이 주석이 그걸로 만족할 것이라 생각하나? 아니, 이미 그렇게 중국과 이야기가 되어 있겠지?”
그런데, 장성택은 의외로 그 답이 뻔해 보이는 질문에 고개를 저었다.
“아닙네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제 개인적인 평가와는 다르게, 총서기 동지께서는 여전히 전 조선 인민의 경애를 한 몸에 받는 분이시디요. 뭐니 뭐니 해도, 총서기 동지께서는 김일성 전 주석 시절부터 오늘의 공화국을 이끌어 오신 분 아닙네까. 그런 분을 억지로 끌어내리고 제가 그 자리에 앉는다면 당장 전국 삼천 육백만 인민들이 들고일어날 겁네다.”
“잘 아는군. ”
“기건 중국에서도 바라는 바가 아니디요. 그쪽 역시도 외부의 말이 나올 여지 없이 협조적인 정권을 최대한 조용히 조선에 세우는 거이 목표네까 말입네다.”
“그럼 왜……?”
처음으로 정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다음 순간 장성택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그의 가슴이 싸늘해졌다.
“……싱가포르에 따님이 있다는 거이를 알고 있습네다. 존함이…… 유혜인이시디요? 아니, 김혜인이라고 불러드려야 맞겠군요.”
“어떻게……?”
“기걸 알아내는 데 참으로 오랜 세월이 걸렸습네다. 하도 철저히 숨기셔서 이 장성택이가 20여 년도 넘게 납작 엎드려 한숨도 조용히 쉬면서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다가간 결과 알아낸 겁네다.”
순식간에 서기실 안이 조용한 경악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 순간 정환이 느낀 것은, 자신의 오른손을 부서져라 꽉 붙잡는 유혜림의 떨리는 손이었다.
이윽고 장성택은 정환을 안심시키려는 듯 협상조건을 제시했다.
“도대체 왜 기런 분을 끝까지 숨기셨는지 그 심중은 제가 알 길이 없어도, 안심하시디요. 아직 중국 측에서는 그분의 행방을 모르고 있습네다. 그런 분이 존재한다는 거이만을 알 뿐. 제가 최후의 협상 패로 남겨두었습네다. 그래야 중국 측에 제 가치가 끝까지 유지될 테고. 뿐만 아니라 총서기 동지를 설득할 수 있을 테니 말입네다.”
“……!!!”
“그분을 이 공화국으로 모시고 오신 후, 중앙당교, 나아가 당 중앙에 들이십시오, 차기 총서기 보위에 오르실 수 있도록 말입네다. 설마 녀성이라는 점 따위가 문제가 될 정도로 총서기 동지께서는 사상이 꽉 막히신 분이 아니라는 거이를 잘 알고 있습네다. 하지만 그분, 김혜인 동지께서는 아무래도 외국에 죽 나가 계셨던 분이고, 공화국 사정을 잘 모르니만큼 옆에서 그분을 보필해 줄 집사 하나가 필요하갔지요.”
이제 누구라도 장성택이 무엇을 의도하는지 뻔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장성택은 그 생각을 자기 입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기러고 그전 과정을, 이 공화국의 4대 수령이자 다음 대 총서기로서 커가시는 전 과정을 바로 옆에서 이 장성택이가 보필하갔습네다. ……물론 보시라이 주석 님도 그편이 가장 자연스럽고 순리에 맞겠다고 찬동의 의지를 보이셨디요.”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줄 아는가?”
“아, 물론 지난번 김영일이의 역모 이후로 혹시나 해서 언제든 따님을 다른 곳으로 옮길 준비를 하셨다는 거이는 압네다. 이 장성택이를 너무 얼빤이로 보디 마시기요. 이미 싱가폴의 제 심복들이 24시간 한시도 쉬지 않고 감시를 하고 있으네까 말입네다. 어디로 옮기시건, 싱가폴 밖으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는 그 즉시 저는 알 수 있습네다. 그리고…….”
장성택은 잠시 창문 밖을 보더니 이내 살짝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정환과 유혜림은 물론 이제까지 옆에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백승철의 얼굴이 휴짓조각처럼 구겨졌다.
“……저는 방금 전 조중 국경선을 넘었습네다. 즉, 중국 영토에 있다는 말이디요. 총서기 동지께서 저에게 어떤 식으로든 손을 대실 경우, 자발적으로 자리를 내려놓으실 기회도 영영 사라지실 겁네다. 기럼 모쪼록 현명한 판단을 기다리갔습네다.”
그 말과 함께 통화는 끊어졌다.
침묵에 잠긴 서기실에서, 정환은 잠시 허공을 올려다보고 눈을 감았다.
방금 전 본의 아니게 듣게 된 경악할 사실에 주위의 다른 간부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웅성거렸지만, 정환의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정환은 눈을 떴다.
“백 차수.”
“네? 네! 총서기 동지! 교시하십시오!”
“지난번 안토노프가 내게 시험 성공 보고서를 올렸던 것 말일세.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겠나?”
“지난번 시험에 성공한 것이라면…… ‘쇠매 - 1’을 말씀하시는 겁네까?”
“그렇네.”
“물론 얼마 전 편제까지 완료되었으니 명령만 내리시면 지금 당장 출격이 가능합네다만…….”
정환의 물음에 백승철은 ‘진심이십니까?’ 하는 곤혹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무기가 문제가 아니라, 위치가 문제다.
위성을 동원한 위치추적 결과, 장성택은 현재 중국 영토에 있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 위해를 가하는 일은, 방금 전 그 자신이 언급했듯이 사실상 다리를 불사르는 일, 중국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정환은 확고했다.
“총서기로서 명령하겠네. 지금 당장 저 썩어빠진 인민과 당의 배반자의 머리 위에 불벼락을 떨궈주게.”
“……!! 받들갔습네다!”
황급하게 경례를 붙인 백승철이 서기실 밖으로 뛰어나간 후, 잠시 책상에 몸을 기댄 정환의 손을 잡는 이가 있었다.
유혜림이었다.
“동지…… 아니, 당신……!!”
“걱정 마, 유 소좌. 굳이 혜인이가 아니더라도 장성택은 죽었어야 하니까. 중국으로 보내주기에 저놈은 너무 알고 있는 게 많거든.”
“……정말인가요?”
“물론, 그것 말고도 개인적인 감정도 있지. 감히 내 딸을 위협해? 살려둬서는 안 되고말고. 마음 같아서는 나도 고사포 한번 쏴보고 싶지만, 요즘 그건 너무 구식이거든. 뭐 시체를 못 남기게 해줄 거라는 점은 변함이 없지만.”
* * *
‘이제 한숨 돌렸군. 비행기를 안 탄 거이는 참 잘한 일이었디. 그 안에 뭔 짓을 했을디 누가 알갔어?’
평양으로부터 약 530여㎞ 밖, 연변의 산길을 달리는 차 안에서 장성택은 한고비 넘겼다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근처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중국 국가안전부의 직승기를 타고 베이징으로 향하는 일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번 평양에 돌아올 때는, 이번처럼 도망가듯 떠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당원들의 우러러보는 시선을 받으며 금의환향하게 될 것이고.
‘기래도 만에 하나…… 아니야, 이 차는 몇 번이나 점검을 했고 이 길도 일부러 인적 없는 산길로 골랐디. 게다가, 아무리 총서기가 강심장이라 해도 설마 중국 영토에서…….’
그렇게 생각하자 장성택에게는 산 비탈길을 자동차가 지나가며 흔들리는 진동도 기분 좋게만 다가왔다.
일부러 영상통화까지 한 것은, 총서기를 설득하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주변의 당 간부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했다.
경애하는 총서기를 따르는 마음에 그가 오판을 내려도 잠시 눈에 보이지 않는 거야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지만, 지금쯤이면 중국의 분노를 사는 일이 이제껏 이루어놓은 공화국의 발전을 송두리째 파괴하는 일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간부들이 나오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베이징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보시라이 주석에게 유혜인, 아니, 김혜인의 행방을 놓고 자신에게 조선의 실권을 맡겨달라는 딜만 성사시키면, 드디어 장성택은 그 오랫동안, 무려 3대에 걸쳐 참고 기다린 보답을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장성택이 이런 단꿈에 젖어 있을 때, 그가 탄 차 저 위의 상공에서는 하나의 금속성 물체가 창공을 가르며 날아오고 있었다.
씨이이이잉……!!!!
뒷꽁무니에 거대한 프로펠러가 달린 그 금속성 물체는 전체적으로 비행기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기존의 비행기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비행기라면 응당 있어야 할 조종석과 그 안에 타고 있을 조종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누군가로부터 조종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한지 하단부에 달린 렌즈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지상을 탐색하더니, 이내 장성택이 타고 달려가는 차량에 고정되고 확대되었다.
지이이이잉…….
렌즈를 통해 전해진 시각정보가 저 멀리 평양 지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지하사령부에 전달되고, 차량에 달린 번호판이 자신들이 찾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사령부의 조종사는 명령권자에게 최종 승인을 요구했다.
“확인했습네다. 목표물이 확실합네다. 공격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백 차수 동지.”
“발사. 공화국과 총서기 동지, 조선 민족을 배신한 늙다리를 불지옥으로 보내주도록!”
피슈우우웅……!!!
나직한 쇳소리와 함께 조선인민군의 첫 정식 편제 드론(Drone, 무인기無人耭), ‘쇠매 - 1’의 파일런에서 미국제 헬파이어 대전차 미사일이 분리되었다.
꽁무니에서 불을 뿜으며 허공을 날기 시작한 미사일은 지정된 표적, 산길을 달리고 있는 관용차량으로 쏜살같이 날아가더니, 곧 엄청난 굉음과 불꽃을 날리며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앙……!!!!
연변의 어느 이름 없는 산길 한가운데에 시커먼 연기를 내뿜는 구덩이가 파헤쳐졌다.
그리고 그 구덩이 한가운데에는 한때 자동차였던 것의 잔해가 불에 그을리고 너덜너덜해진 채 사방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구덩이 주위를 한 바퀴 빙 저공 비행하며 생존자가 없음을 확인한 쇠매는 임무 수행을 종료하고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김일성의 사위, 김정일의 매부로 위세를 떨쳤던 조직지도부 부부장, 한때 공화국의 2인자이자 이제 몇 남지 않은 김정일 인민 시절부터 버텨온 고위 간부였던 장성택의 허망하지만 합당한 최후였다.
그리고 자국 영토에서 벌어진 이러한 도발 행위에 노발대발한 중국 공산당과 보시라이 주석은, 곧 아프간전에서 경험을 쌓은 베테랑 특수전 부대와 장갑차로 편성된 부대를 연변으로 급파하기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