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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307화 (307/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307화

느닷없이 후진타오가 치고 나오자 보시라이는 잠시 얼굴이 굳어졌지만 이내 언성을 높이며 반박했다.

“후 주석 동지, 그 조선이 지금 딴마음을 먹었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지 않았소!”

“나도 김정환 총서기의 이러한 도발 행위에 대해서 결코 좌시하자는 뜻은 아니오. 하지만 생각해보시오. 지금 세계열강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경제 상황이오. 지난번 아프간 때처럼 명분과 이유가 확실했던 전쟁에도 아프간을 평정하느라 막대한 전비를 소모하고 수많은 인민해방군 장병들의 목숨을 날렸는데, 이런 경제 상황에서 전선을 둘로 늘리면 좋아할 것은 미국과 서방뿐이오!”

“……흐음……!!”

“게다가 아무리 조선이 우리 중국에 비해 소국(小國)이라 하나, 양이나 치는 아프간 탈레반들과는 차원이 다른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데, 자칫 잘못해서 버릇을 고쳐주는 정도가 아니라 전면전으로 비화하기라도 하면 베이징에 미사일이 떨어질 수도 있소. 게다가, 그런 지경까지 가면 한국이나 일본은 몰라도 최소한 미국 놈들은 옳다구나 하고 조선 편을 들 텐데, 그럼 그때는 체면을 지키면서 빠져나오려고 해도 쉽지 않을 거요.”

“그, 그건 후 주석 동지 말씀이 옳습니다.”

“보 주석님. 역시 무력 대응은 자제하시고 경제 제재를 가해 고통을 주시는 편이…….”

‘이 늙어빠진 영감탱이가!!!’

보시라이는 다혈질의 성격대로 주변의 동요하는 상무위원들을 도끼눈으로 쳐다봤지만, 지금은 그의 매서운 눈빛보다 후진타오의 이성적인 설득이 더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비록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래 수십여 년간 경제발전을 국시로 세우고 개발독재 일로를 걸어왔다고 해도, 아직 중국은 개발도상국에 가까웠다.

14억의 인구수라는 강대한 역량을 발휘하여 얼마 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에서 두 번째로 거대한 경제로 발돋움했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하이와 광저우 등 해안가 1선 도시들을 중심으로 일구어낸 성과일 뿐, 여전히 중국 내륙에는 6억 명에 달하는 극빈층이 상존하며 이들은 중국의 시한폭탄이자 중국 공산당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게다가 21세기 초반에 아프간 전쟁, 뒤이은 테러와의 전쟁 등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전쟁을 치르며 아직까지도 그 부작용에 신음하고 있지 않은가.

실제로 이 자리의 다른 상무위원들도 전부 북조선과의 충돌이 현명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단지 군권을 꽉 쥐고 있는 보시라이의 눈 밖에 나는 것이 무서워서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을 뿐.

하지만 복마전, 아수라장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하기 힘든 중국 공산당 정계를 헤쳐온 사람답게, 보시라이도 보통은 아니었다.

이미 그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상무위원들을 설득시킬 정보를 회의석상에 가지고 왔던 것이다.

“사실 안 그래도 조미관계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후 주석 동지가 먼저 말을 꺼내주시는군. 동지들. 조선이 우리 조중혈맹을 배신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정보 공동체에 가입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소. 조선의 고위인사로부터 들은 소식이니 신뢰해도 좋소.”

“아니……!!! 그런 말도 안 되는……!! 정보 공동체라면 캐나다나 영국이 일원으로 있는 파이브 아이즈를 말하는 거요?”

“도대체 미국이 어째서 조선에 그런 특혜를 베푼 거요? 하다못해 한국이면 이해를 하겠는데……!!!”

보시라이가 여봐란 듯이 말을 꺼내자 상무회의 석상에는 경악이 쓸고 지나갔고 후진타오의 얼굴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처음 몇 초간은 하나같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 간다는 경악이 주를 이루었지만, 이윽고 그들의 표정에 다른 감정이 떠오르는 것을 보시라이는 놓치지 않았다.

바로 대적(大敵)이 어느새 대문 앞에까지 쳐들어왔음을 절감하는 위기감과 불안이었다.

그리고 그런 표정을 관찰하면서 보시라이는 의기양양하게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 로동당 내부의 우리 동지에게 들은 말이니 확실하오. 자, 그럼 이걸로 후 주석동지를 포함해 모든 동지들이 조선에 회초리를 때려야 할 필요성을 인식할 것 같은데…… 지금이야 연변의 몇 개 향군현에서 그칠지 몰라도, 계속 김정환이 그 여우 새끼를 방치했다가는 언젠가는 미군이 조선인민군의 안내를 받아 연변을 교두보로 삼아 베이징으로 진격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으음……!!!”

“정말 그게 사실이라면, 이 기회에 조선을 때려잡아 미국의 앞마당이 되는 것을 저지해야…….”

‘위험하다. 이대로라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무력 투입을 망설이던 상무위원들이 설득당하는 것을 느낀 후진타오는 마지막으로 발버둥 치듯 보시라이에게 물었다.

“잠깐, 그 동지는 대체 누구요? 조선의 미국 정보 공동체 가입이라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인데, 그 정보를 제공해 준 사람이 누구인지 확실해지기 전까지는 신뢰할 수 없소.”

“후 주석도 아는 동무요. 장성택 동지라고. 이전부터 조선 내에서 우리와 긴밀히 소통하며 자국이 우매한 지도자에 의해서 잘못 인도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왔소.”

“……보 주석 동지의 말은 이전부터 이런 사태에 대비해서 조선의 내정에 개입해 오고 있었다는 이야기 같구려.”

“자, 동지들…… 나 역시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이 새로운 적을 만들기에 녹록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내가 제의하고 싶은 것은…… 이 기회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오히려 조선을 우리의 앞마당으로,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로 삼을 수 있단 말이오.”

상무위원들이 흔들리는 것을 눈치챈 보시라이는 이내 목소리를 낮추며 은근한 어조로 설득에 박차를 가했다.

“나라고 강경한 수단을 굳이 선택할 리 있겠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우리에게 우호적인 인사, 장성택 동지를 지원하여 그가 김정환 총서기를 밀어내고 조선의 1인자 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뿐이오. 그럼 이제까지 자주 우리 불협화음을 빚어왔던 불안한 동맹, 조선은 완전히 우리 중국의 날개 아래 편입되는 것이고, 그다음에는…….”

“조선을 거점으로 한국과 일본, 나아가 태평양으로 진출하는 발판을 확보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게만 된다면 미국 놈들과 콘돌리자 라이스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기획한 포위망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되는 겁니다.”

“바로 그거요. 자, 이제 내 말뜻을 좀 아시겠소?”

“…….”

보시라이가 말을 끝마치자 상무위원들은 일제히 고개를 끄덕거리며 귓속말을 나눴다.

방금 전 보시라이가 연변과 그 뒤에 있는 조선에 대한 무력대응을 천명했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후진타오는 다른 위원들이 이미 회유당했음을 깨닫고 내심 한숨을 내쉬다가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 보시라이에게 물었다.

“보 주석 동지. 한 가지 질문할 것이 있소만…….”

“물어보시오, 내 무엇이든 대답해 줄 테니.”

“그 장성택이라는 동지는 조선 내부에서 김정환이를 몰아내고 자신이 당권을 장악할 자신은 확실히 있는 거요? 보 주석도 잘 알다시피, 김정환이는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오. 무엇보다 김정환이는 지난 25년여간 조선 인민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아왔는데, 아무리 우리가 밀어준다고 해도 장성택이가 조선의 통제권을 완벽히 장악할 수 있겠소?”

아무리 외부에서 밀어준다고 해도 내부의 동조가 없으면 말짱 황이라는 것은 역사상 모든 쿠데타에서 지적된 사실이다.

그 점을 지적하는 후진타오에게 보시라이는 걱정 말라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 점은 걱정 마시오. 이미 그 해답을 가지고 장성택 동지가 연변으로 오고 있으니. 아마 지금쯤이면 국경 근처까지 왔을 거요.”

“해답이라면……?”

“나도 상세히는 못 들었지만, 과연 김일성이, 김정일이의 조선다운 해법이랄까. 뭐 대국에는 대국에 맞는 후계계획이, 소국에는 소국에 맞는 후계계획이 있는 법 아니겠소. 그럼 이제 표결이나 합시다. 연변에 무경과 인민해방군 특수군의 정예들을 파견해 이 말 같잖은 사태를 빠르고 조용하게 진압한 후 조선을 우리 손아귀에 넣는 데 찬성하는 동지는 손을 들어주기 바라오.”

* * *

“총서기 동지! 긴급히 전해드릴 일이 있습네다.”

“뭔가?”

“자, 장성택 부부장 동지가 사라졌습네다. 전용기가 대기하고 있던 공항에서는 아무 연락을 못 받았고, 현재 당내의 그 누구도 장 부부장 동지의 위치를 모른다고 합네다!”

‘이런, 빌어먹을. 적당히 비행기 사고로 처리해 버리려 그랬더니, 눈치 하나는 더럽게 빠르군.’

정환은 예상하던 사태가 벌어졌음을 깨닫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중국과의 관계가 완전히 파탄이 난 게 명백해진 지금, 더 이상 구차한 눈치 볼 필요 없이 언제나 눈엣가시였던 장성택을 깔끔하게 제거할 타이밍만 노리고 있었는데, 저쪽에서 먼저 눈치를 채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환은 곧 평정을 찾고 지시했다.

“수색하게. 공안부와 대외정찰총국, 군 할 거 없이 전부 동원해서 전국 모든 고속도로와 선박, 비행기의 운항 일정을 조회하도록. 필요하다면 공화국 내 공항의 모든 비행기를 잠시 정지시켜도 좋아.”

“받들갔습네다!”

하지만 곧 장성택이 그렇게 멍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공안부에서 고속도로 톨게이트 카메라를 조회한 결과, 당 하급 간부 번호판이 달린 관용차 한 대가 평양을 빠져나가 조중 국경으로 향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이 밝혀질 때쯤 서기실 전용회선으로 영상통화 하나가 걸려왔다.

발신자 명의를 확인하고 나서 피식 웃은 정환은 줄곧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공안부 감청조 성원들과 인민군 정보 전사들에게 지시했다.

“이건 또 무슨 속셈인가……. 여기, 이 서기실 스크린으로 띄워주게. 무슨 말을 하려나 궁금하니 마지막으로 낯짝 한번 보자고. ……물론 위치 추적하는 것도 빼먹지 말고.”

곧 서기실 스크린에 장성택의 얼굴이 나타났다.

화면이 약간 흔들리는 것을 보아하니 아직 차 안에 있는 듯했지만, 정환을 거슬리게 한 것은 항상 느물느물한 너구리 같은 표정에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이었던 장성택의 늙수그레한 얼굴이 오늘은 뭔가 달라 보인다는 점이었다.

처음에 의기양양하거나 조롱하는 표정을 예상했던 정환은 좀처럼 보기 드물게 결연해 보이는 그의 표정을 보고 나서 잠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장 부부장. 이게 무슨 수작인가? 지금 즉시 현재 위치를 보고하고 잘못을 빌면 현재 엄중한 상황과 그동안 장 부부장이 당과 공화국에 기여한 바를 감안해서 처벌은 없던 것으로 해주겠네.”

“죄송합네다만 총서기 동지. 그 교시에는 따를 수 없을 것 같습네다. 뿐만 아니라, 지난번에 내리신 교시, 연변에서 중국과의 평화로운 해결을 모색하라는 교시에도 따를 수 없을 것 같습네다.”

장성택의 선언에 정환의 눈썹이 위로 휙 치켜 올라갔지만, 그는 여전히 침착한 어조로 다시 물었다.

어느새 유혜림이 그의 곁에 다가와 있었다.

“……방금 뭐라고 했나, 장 부부장?”

“그 교시를 받들 수 없다고 했습네다, 총서기 동지. 왜냐하면, 지금 총서기 동지께서는, 그리고 김용건이, 백승철이, 현영숙이 고 간나년 같은 간신 모리배들과 영합하여 이 공화국을 위험에 빠뜨리고 계시기 때문입네다. 저 장성택이는 그러한 사태를 막으려 하는 것이고요!”

“………!!!!”

서기실에 있던 모든 사람들, 모든 간부들의 입이 딱 벌어지며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눈알을 떼구르르 굴리며 장성택과 정환의 얼굴을 번갈아 훑어보며 눈치를 살폈다.

어쩌면 장성택이 일부러 영상통화를 제의했던 것도 이런 효과를 노려서였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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