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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306화 (306/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306화

정환과 장내에 있던 모든 간부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로 쏠렸다.

그 사람은 바로 조선인민군 차수 백승철이었다.

“진심인가, 백 차수? 무력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은 인민해방군과 우리 조선인민군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사태를 말하는 걸세. 인민해방군이 얼마나 강대한 군대인지는 본인이 제일 잘 알 거라 믿는데, 만약 이 시국에 충성심을 과시하려는 차원에서 그런 대답을 한 거라면…….”

“20여 년 전부터 총서기 동지께 앞으로 우리 인민군의 가장 큰 적은 남조선이나 미제가 아니라 중국 놈들이 될 거라는 들어왔던 접네다. 그리고 다시 20여 년에 걸쳐 동지의 그 예언이 참말이 되어가는 것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디 않았습네까. 무엇보다…….”

여기까지 말한 백승철은 한 번 심호흡을 한 후 자신감과 투지가 결합된 표정으로 눈을 반짝였다.

어느새 패기가 넘치다 못해 경솔하기 그지없었던 젊은 날은 지나가고,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세어 반백이 되어가는 그였지만, 지금 만큼은 다시 야심만만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었다.

“지난 20여 년간 절치부심의 칼날을 갈아온 결과, 이 조선인민군은 더 이상 예전처럼 하전사들이 밭을 매고 군관들이 입으로 총 쏘는 소리를 내며 훈련하던 군대가 아닙네다. 35만 조선인민군은 동지께서 명을 내리시면 언제라도 이 공화국의 이익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 한 몸 던질 각오가 되어 있습네다.”

“……고맙군.”

정환의 대답은 짧았지만, 의외라는 감상부터 고마움, 신뢰 등등 말로 표현 못 할 여러 복잡한 감정들이 잔뜩 담겨 있었다.

백승철의 이러한 다짐에 이어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인 다음 사람은 김용건이었다.

“예로부터 외교가에 유명한 말이 있지요. ‘전쟁을 좋아하는 나라는 일찍 망하지만, 전쟁을 두려워하는 나라는 더욱 일찍 망한다’. 중국 같은 대국과의 충돌은 가급적 피해야 하갔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공화국의 핵심 리해(이해)를 침범하려 드는 행동은 민족의 자주 존엄을 위해서라도 두고 볼 수 없디 않갔습네까.”

“저 역시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전술이나 외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승산이 있을 때 싸우는 게 맞겠지요.”

현영숙까지도 고개를 끄덕이자, 이제 남은 자리한 중앙위 위원들 중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리고 그 남은 한 명, 장성택에게로 향하는 좌중의 시선에는 한 줄기 말 못 할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이내 정환의 입이 열리며 문제의 질문이 나왔다.

“……장 부부장 동지의 생각은 어떤가? 사실 장 부부장이야말로 이번 일에 대해서 가장 의견을 들어보고 싶은 사람이었는데…….”

“……동지. 참말로 중국놈들과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장담하십네까? 지금이라면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릅네다. 저쪽에서도 아직 확증이 없을지도…….”

“어리석은 질문이로군.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장 부부장. 만약 이번 사안에서 중국 측에 일방적인 양보를 한다고 해도, 그 후 조중관계가 이전처럼 복원될 수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생각하는가?”

“…….”

정환의 질문에 장성택은 입을 다물고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누가 보아도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부정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정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장성택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깨진 도자기에 풀을 발라 다시 이어 붙여놓는다고 해도 금은 여전히 남지. 중국과의 관계도 그렇네. 이미 우리가 연변에 욕심을 내고 있다는 것을 한 번 중국 측에서 알아버린 이상, 아니, 그럴 의심만 들었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과 영영 이전과 같은 우방 관계로 돌아갈 수 없네. 그동안 이 사태를 수습하고 우리 입장을 설명하기 위해서 김 총리만큼이나 베이징에 자주 들락날락했으니 이미 공기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장 부부장이 제일 잘 알 거 아닌가?”

“……기거야 그렇습네다만…….”

“사실 증거 같은 것도 필요 없지. 완전히 굴종하고 연변 쪽으로는 평생 눈길도 안 주면서 사실상의 위성국가가 되든가, 아니면 싸워서 자주를 지키든가 둘 중 하나일세. 특히나 보시라이 정권처럼 본인들 실정을 감추는데 애국심과 확장주의를 단골로 우려먹는 정권이라면 더더욱.”

“…….”

“장담하는데, 만약 이번에 고개를 숙인다면 아마 머지않아서 평양에 인민해방군 기지가 주둔하게 될 걸세. 두 번 다시 딴짓할 엄두를 못 내게끔 말이야. 그리고 저항할 기회 같은 것도 두 번 다시 없을 것이고.”

정환의 단언에 다시 한번 장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좌중 모두 그들이 지금 마주하고 있는 폭풍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깨달은 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마침내 위성국가냐 자주독립 국가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선 것이다.

그리고 문제의 인물, 장성택은…….

“……기러시다면, 저도 받들갔습네다.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싸우는 수밖에요.”

“고맙네.”

“하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설득은 해봐야 하갔습네다. 아직 리섭기 동무와 두만강 줄기들의 인민대표 당선이 확실해진 거이도 아니고…… 중국 놈들 측에도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대표로 공화국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는 온건파는 분명히 있습네다. 아직 아프간 전선부터 인민들 민심, 경제 상황까지 제 놈들 국내 문제가 산더미인데 중국 놈들도 웬만해서는 우리 공화국과도 갈 때까지 가는 거이를 원하지 않을 겁네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것인가?”

“연변에서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저쪽 인사를 만나 물밑 접촉을 시도해 보갔습네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

정환은 눈썹을 찡그리면서 갈등하는 표정으로 장성택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평상시 같으면 ‘국내에서 전화로 회담하게’라고 돌려서 거절했겠지만, 장성택의 말도 분명 일리는 있었다.

게다가 그때 그의 시야에 다른 정치국 위원들의 표정이 들어왔다.

절반 이상은 결전을 각오하고 필사항쟁의 각오로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적지 않은 일부는 ‘우리 공화국이 중국과 무력분쟁을? 대체 왜?’ 하는 겁먹은 표정으로 그와 장성택을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제발 마지막으로 한번 두드려라도 봅시다!’라는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묻어나는 그들의 표정에 정환은 한숨을 내쉬면서 손을 내저었다.

하기야 이 2014년에 인구 14억의 핵무기 보유 대국과 무력충돌이라니, 이번에 싸우지 않으면 영원히 굴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는 정환 자신 입장에서도 아찔하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

“……좋네. 하지만 일정 및 접촉 진행 상황은 반나절 단위로 내게 직접 보고하도록. 내 전용기를 빌려줄 테니 그걸 타고 특별 경호국 요원들과 동행하도록 하게.”

“여부가 있갔습네까.”

장성택은 마지막까지 정환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지만, 혹여나 그런 마음이 들통날까 봐 고개를 깊숙이 숙이면서 자신의 총서기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미 방금 전을 끝으로 그도 자신의 마음을 굳혔으니까.

그렇게 4대 과업이 완수된 그 날, 온통 축제 분위기였던 평양과는 딴판이었던 정치국 회의는 끝이 났다.

그날로부터 몇 주 후, 마침내 연변에서 첫 인민대표를 뽑는 대망의 첫 행정단위 선거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공산당 입맛에 맞는 후보들만 대거 당선된 홍콩 등 중국 내 타 지역과는 딴판으로, 공안 당국과 길림성, 자치주 정부의 사력을 다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결과는 친조선파 후보들이 절반 이상의 향장(鄕長) 자리를 휩쓸면서 압승을 거두고야 말았다.

심지어 연변의 두 개 현 중 하나이자 백두산과 지척에 있는 안도현(安图县)까지도 친조파 후보가 현장을 맡는 결과가 나오기 직전, 자치주 공안이 개표소에 들이닥쳐 투표함을 빼앗아가는 영상이 SNS 라이브로 생중계되는 일까지 일어났다.

비록 광전총국에 의해서 금방 차단되기는 했지만, 이미 해당 영상은 수도 없이 복사되어 유니온 서버를 타고 중국 국경을 넘어 북조선과 한국, 그리고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야 말았다.

하여간 이러한 해프닝 끝에, 가장 작은 행정 단위에서 인민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베이징 중앙당에 지역 민심을 대변할 대표를 선출해야 할 당선 후보들이 발표되어야 할 날, 물 흐르듯 발표가 이루어졌던 다른 중국 내 지역과는 달리 연변 조선족 자치주만은 감감무소식이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 주일이 지나고, 대체 가부간에 결과를 알려줘야 할 거 아니냐고 연변 인민들이 단체로 향 사무소에 몰려가도 돌아온 것은 다음 같은 공안의 엄포뿐이었다.

‘당분간 연변에는 특정범죄 경계령이 떨어졌으니 이유를 불문하고 20인 이상의 집회를 금지하며 저녁 8시가 넘으면 무조건 귀가할 것.’

실망과 좌절, 미래에 대한 절망이 연변 거리에 흘러넘쳤다.

그리고 실망이 분노로, 좌절이 반항심으로 바뀌는 데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변의 친조파 인민들은, 조선족들은 물론이고 북조선인들, 한국인 혼혈, 심지어 한족 혼혈들까지도 삼삼오오 모여 분노에 차서 무리를 짓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연변 자치주 사상 처음으로 대규모 민란(民亂)의 막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 * *

꽝--!!!!

“동지들! 지금 이것 좀 보시오! 지금 연변 상황을 좀 보란 말이오! 그러게 내가 처음부터 그 김정환이와 조선의 배신자들이 딴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군대를 동원해 강하게 후려쳤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하지 않았소!”

베이징, 베이다이허(北戴河)에서는 보시라이 주석이 중앙정치국의 다른 상무위원들에게 노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자들은 분명 한 명 한 명이 중국 공산당의 간부 중 간부라는 상무위원들이었지만 누구 하나 입 뻥긋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오로지 국가 주석 후진타오만이 조금이나마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보시라이에게 충고하는 어투로 말을 건넸다.

“주석 동지. 아무리 그래도 지금처럼 국내 경제 상황이 어렵고 인민들 불만이 높아지는 차에 조선과의 관계를 극단화시키는 것은 조금…….”

“누가 보아도 조선이 오랫동안 연변에 딴마음을 품어왔다는 게 증거가 이리 분명하지 않소! 그럼 설마 김정환이가 우리 동북 3성의 낙후한 경제가 너무 불쌍해서 그토록 오랫동안 달러를 연변에 퍼부어왔다는 말이오? 지금 후 동지가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이 중화 인민의 신성한 영토가 줄어드는 것을 손 놓고 가만히 지켜보자는 뜻인지 의심스럽소 그래!”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보시라이에게 중간에 하던 말이 끊어진 후진타오는 언짢은 표정으로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이내 다른 상무위원들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지금은 보시라이와 자신의 권력 다툼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라는 국가를 위해서라도 막아야만 하는 사태가 닥쳤으니까.

“주석 동지! 예로부터 양면(兩面)전쟁은 나라가 패망하는 지름길이라고 들었소. 저 강대한 나치독일도 유럽을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와중에 소련과 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결국 망하지 않았소? 지금 아프간 전선도 완전히 정리되었다고 볼 수 없고, 홍콩은 여전히 조슈아인가 뭔가 하는 애송이 중심으로 시위가 한창에, 주변에 우리 우방국으로 확실한 국가는 파키스탄과 조선뿐인데, 그 조선마저도 버리자는 말씀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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