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95화
-grasd : 내 이랄 줄 알았다, 쯧쯧……. 빨갱이 쉐끼들 근성 어디로 가? 7억 달러라니 거 많이도 해 쳐드셨구만!
-MN : 하기야 30년 가까이 혼자 해 먹었는데 나라도 욕심 날 듯. 북한 국민들만 불쌍하지. 아니, 남이나 북이나 어딜 가든 높으신 분들은 걍 많든 적든 조금씩 해 먹는 게 속성인 건가?
-HevilH : 어디서 되도 않는 헛소문 퍼뜨리고 수작질이디? 우리 총서기 동지께서는 너거 남조선 대통령 따라지들과는 다르게 백두산 천지수처럼 청렴결백하신 분이라우! 애초에 고려일보 그렇게 싫어하던 너거들이 고려일보가 주도해서 총서기 동지 유언비어 나불대자마자 바로 믿는 거 보니 팔랑귀도 이런 팔랑귀가 없구만 기래, 쯧쯧…….
-ghkd0306 : 위에 놈 보소. 세뇌라는 게 진짜 무섭네. 자기네 당 내부 문건에 대외비 문서까지 다 유출돼서 나랏돈 펀드에서 수억 달러 비었다는 게 다~~ 결론이 나왔는데 아직도 그러고 싶냐? 하긴 이놈의 대한민국도 대통령이 조선시대 왕인 줄 아는 광신도들 많으니까…….
-페퍼맙 : 근데 진짜 저거만 해 먹었을까? 위에 위에 MN 님 말대로 30년을 저 혼자 권력 잡고 있었는데……. 막말로 김정환이는 북한 땅 전체가 자기 꺼나 다름없는 거 아님? 얼마 전에 개국한 TV 고려 같은 종편 특집 방송 보니까 김정환이가 주석궁 지하에 금괴 200톤 숨겨놨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기사의 여파는 빠르게 번졌다.
물론 이전에도 철저히 베일에 싸인 북한의 지도자, 김정환이라는 인물에 대한 가십성 보도들이 안 나왔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남북 관계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게 우호적이고 상호개방적인 관계로 바뀌었다고 해도 권위주의적인 북한의 체제 특성상 그 ‘최고존엄’은 여전히 한국 국민들에게는 어딘가 미스테리하면서도 신비스러운, 한마디로 여러 삼류 잡지나 매체에서 써먹기에 딱 좋은 인물이었으니까.
불과 스물여섯에 북한 정권을 전복시키고 정권을 잡아 은둔의 사회주의 국가였던 북한의 정치 경제를 홀로 이끌어오다시피 한 정체불명의 천재적 지도자.
이 얼마나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정이란 말인가.
덕분에 ‘김정환은 사실 미국에서 북한을 장악하고 중국에 대항하는 지렛대로 삼기 위한 CIA의 복제인간이다’라는 설에서부터 중동 왕족들처럼 오일 머니로 한국 여성 연예인들을 다 섭렵하며 그 사이에서 둔 자식 열다섯 명이 은밀하게 한국에 거주 중이다 등 별 헛소문이 난무했지만, 이번만큼은 경우가 많이 틀렸다.
(김정일 시대부터 그 역사가 유구한) 소위 기쁨조 관련 소문들처럼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자극하는 찌라시도 아니었고, 명백하게 복수의 당 내부 문건, 그것도 고위 간부들 사이에서만 오가는 대외비 문서라는 실체적인 증거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증거를 제시한 기사와 사설의 논조는 대단히 비판적이었다.
-……본지가 근래 피오니 홀딩스와 조선로동당 재정경제부 내부에서 있었던 일련의 파란 사태에 대해 입수한 문서를 기반해 추측하자면, 하나의 신빙성 높은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김정환 총서기의 자금 관리인이라 할 수 있는 최승일이 최근 사라졌다 다시 돌아온 것은, 그동안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던 김정환의 내부 부정 축재에 대해서 반발하는 여론이 북조선 내부에서 일어났고, 이 최초의 반란 시도라 부를 수 있는 행위가 처절하게 진압당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들이 상기해야 할 것은, 몇 년 전 북한 김정환 정권은 2008년 금융위기에 대한 극복이라는 명분으로 서평양 역세권 개발 사업을 대표로 하는 4대 개발과업이라는 국가적 과제에 착공했고, 근래 거의 완성에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김정환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이 같은 대규모 착복이 드러난 점, 그리고 건설업이 그 특성상 (국내 재벌 대기업에서와 마찬가지로) 비자금 조성에 용이하게 이용된다는 점 등을 고려해 본다면, ‘청렴결백하고 유능한 철인 독재자’라는 남북한 국내외에 널리 퍼진 김정환 총서기의 이미지도 결국은 일장춘몽에 불과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지나치게 섣부른 결론일까?
물론, 이와 같은 ‘공화국의 체제를 교란하고 당 중앙의 권위와 신뢰를 훼손하려는 역적패당의 시도’에 대해서 선전선동부와 로동신문 같은 관영매체는 간접적인 반박 논설 게재 및 북조선에서의 해외 언론사 사이트 접속 차단 강화로 대응했다.
하지만 사람의 속성이라는 게 묘해서, 어떤 이의 제기에 대해서 무작정 은폐로만 일관하면 이의의 존재가 은폐되기는커녕 오히려 대중의 호기심만 자극하는 법이다.
그리고 심하면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 이의가 진실이라는 걸 반증해 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애초에 현재는 2013년, 공화국이 이전처럼 폐쇄된 국가도 아니고 (여러 말은 많아도)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는 민주주의국가, 사용 언어와 문자까지 동일한데다 물리적 거리도 가까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터져 나온 정보의 국내 유입을 완전히 막는다는 것은 아무리 검열위가 유능해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리고 선전선동부의 다급한 차단 조치는 오히려 이러한 의혹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힘만 실어주게 되었는데, 이 사태를 꾸민 주모자들이 의도했던 효과 그대로였다.
-이봐, 그 소문 들었디? 그 피오니 홀딩스에서 중앙위 간부들이 한탕 크게 해 먹었다지 않간! 제길, 우리 없는 인민들은 70달러도 큰돈인데 70억 달러라니 그야말로 꿈에서나 볼 수 있는 돈…….
-쉿! 이봐! 어디서 그런 남조선 간나들의 헛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나! 기러고 그거이 총서기 동지 모시는 부화방탕한 일부 간부들이 잘못한 거이지 총서기 동지의 령도력이 의심된다는 둥 어디서 그런 불경스런……!!
-기, 기거야 맞는 말이네만……!! 기래도 그거이 참말이 아니면 어찌 검열위에서 저리 민감하게 반응해? 그거이 저 남조선 아새끼들 떠들어대는 말이 참이라는, 최소한 일부는 참이라는 반증이 아이야?
-기러니까 일부는 거짓 선동이라 그 이야기디. 아니 기러고 총서기 동지께서 뒷주머니 좀 차신다고 한들 그거이 뭔 문제야? 눙토히 말해 지금 공화국 인민들 이만큼 먹고사는 거이 다 누구 덕인데……. 그분도 사람인데 뒤로 용돈 좀 챙기실 수 있는 거이 아닌가. 이전 수령들처럼 나라 말아먹어 가며 축재하는 거이도 아니고……. 물론 그 밑에 놀아난 부패 간부들이야 엄중 처벌해야 한다는 거이에는 나도 동의하네만.
제일 처음에는 북한 내 VPN 사용자들로부터 시작한 이 소문은 곧 한국을 드나드는 사업가들로부터, 유학생들로부터, 제주도 여행을 다녀온 인민들로부터 등등 입에서 입으로 옮겨가며 조용히 북한 사회 내에 퍼져갔다.
그리고 이 소문을 퍼뜨린 당사자들 중 한 명인 이영박 평양시 책임 서기는 자신과 자신의 조력자가 힘쓴 이 공작의 효과에 흡족해하면서도, 마지막 남긴 꼬리를 자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용환아, 너 캐나다 가서 일 하나만 하고 와라.”
“네? 사장…… 아니, 서기님? 그러니까 그 말씀은…….”
평양시, 당 위원회 서기실에서 이영박은 자신의 급작스러운 지시에 당황하는 용환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새삼스레 주위를 돌아보았다.
도청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집무실과 차는 이미 그 사람이 믿는 수하들이 전부 검색을 완료해서 어떤 수작도 없다는 것이 드러났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이런 일은 이렇게 직접 사무실로 불러 놓고 면대면으로 이야기하는 편이 확실했다.
도청 이전의 이유에서도 말이다.
“네 밑에 믿을 만한 놈들 몇 명 데리고 가서 마틴 방인가 그 친구 입단속 좀 시키고 오라는 이야기다. 왜, 꺼려지냐?”
“……아, 아니 그거이 아니라……. 일단 거기는 외국이고…….”
“용환아, 잘 들어라……. 내가 항상 하는 말 있지? 사람은 기회가 왔을 때 잡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해. 너, 내가 근대 나와서 남조선 국적 버리고 공화국으로 와서 지금 다스 일군 거 잘 알지?”
“……알고 있습네다, 서기 동지.”
“내가 거기, 한국에서 계속 뭉개고 있었으면 거기서 뭐, 대통령이라도 했을 거 같냐? 나는 말이다, 기회를 왔을 때 잡은 거야. 그래서 지금 여기 이 평양시를 책임지는 자리까지 온 거고. 근데 넌 말이다, 계속 머뭇거리면 너는 네 자식, 손자 대까지 평생 그 자리야. 알지?”
“…….”
자신의 말에 심하게 갈등하는 표정의 용환을 보면서 이영박은 속으로 거의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이제 동기부여 차원에서 한 번만 더 밀어주기만 하면…….
“이번 일 끝내고 나면 내가 한 몫 단단히 챙겨주마. 일단 내가 석유공사 사장 자리 가져가고 우리 세상 오고 나면, 그때는 너도 탄탄대로야. 김대 나온 놈들 턱짓으로 부리면서 살 수 있다니까. 내 말이 안 믿어지냐?”
“아닙네다, 서기 동지……. 잘 처리하고 오갔습네다.”
“그래. 흔적 안 남기게 조심하는 거 잊지 말고. 여권은 이거 써서 나갔다 와라.”
“이건……? 외교관 여권을 어째…….”
“알고 지내는 간부한테 부탁해서 얻었다. 나 정도 되는 위치면 여기저기서 이런 거 하나 주워오는 게 뭐 별로 어렵지는 않다만, 너에게 보여주는 내 신뢰의 증표 뭐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어지간한 시추에이션은 이걸로 다 해결이 될 거야.”
“감사합네다! 반드시 잘 처리하고 개선하겠습네다!”
“그래, 잘 다녀와라. 중간에 바로 들어오지 말고 필리핀이나 어디 경유해서 들어오는 거 잊지 말고.”
* * *
“이건 분명히 중앙당 내 고위 간부, 정확히는 선전선동부 내 누군가의 소행이군. 그게 아니고서야 이 정도 수준의 기밀이 이 정도로 상세한 자료와 함께 기사로 유출되는 건 불가능하지.”
“하지만 이영박 서기와 공화국 재계 큰 손들이 연루되었다고 보시는 건 분명하지 않으신가요? 그럼 일단 그 배은망덕한 인간들을 전부 잡아들이시는 편이 후환을 위해서라도…….”
다시 보기만 해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는 듯 유혜림은 ‘특집 보도 - 총서기의 두 얼굴’이라고 쓰인 서기실 책상의 고려일보를 탁탁 두드리며 정환에게 그렇게 말했다.
중앙위 내에서만 논의되던 7억 달러 횡령의 정보가 유출되고 이틀 후, 현재 서기실에는 정환과 그녀 단둘만 있었다.
“아니, 그건 어디까지나 미봉책이야.”
“4대 과업의 마무리 때문에 그러시는 거라면, 어차피 내년이면 완성이 눈앞입네다. 막판에 책임자를 바꾸는 건 분명 무리가 많고 뒷말이 오가겠지만, 이 정도로 건방진 짓을 해오는데 계속 참으시는 건…….”
“참는 게 아니라, 이영박도 따지고 보면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거야. 다른 하수인보다 좀 더 격이 높은 하수인 정도. 진짜 몸통은 그 뒤에 숨어서 나오지 않는 누군가지. 아직 그 의도는 잘 짐작이 안 가지만…….”
“…….”
“지금 이영박을 쳐버린다고 해도 그건 그 뒤의 누군가로 하여금 꼭꼭 숨어서 나오지 않게 만드는 효과밖에는 안 돼. 머리를 단칼에 잘라야 하는데, 그 머리가 누군지를 모르겠다는 말이지. ……가슴은 아프지만 이제 유 소좌를 제외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의심해봐야 할 시점인 거 같군. 지금으로써는 유 소좌와 나 자신을 빼면 아무도 전적으로 믿지 않는 게 상책일 테니까.”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아직도 현재 정환 신뢰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이 눈앞의 유혜림 말고도 한 사람 더 있었고, 그 사람은 지금도 밖에 나가서 그를 위해 암약하는 중이었다.
정환이 그에 대해서 알게 된 시간은 그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짧지만, 정환은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 잘 안다고 자신했다.
다른 건 몰라도 최소한 돈이나 권력에 대한 욕심에 쉽게 휘둘릴 인간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이영박 같은 인간을 극히 혐오한다는 점은 확실하니까.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하자, 도대체 이영박 뒤에 있을 누군가가 왜 자신의 영향력 약화를 바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최소한 이제까지 정환 밑에 있는 간부들은 능력은 물론 그 충성심을 지난 25년간 여러 방면으로 검증받아왔다고 나름 자신하고 있었기에, 이런 정환의 충격은 더욱 컸다.
‘아니, 정말로 내 은퇴를 바라는 일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동기인지도 모르는 일이지. 25년이라는 시간은 강산이 몇 번 바뀌고도 남는 시간인데, 사람은 왜 변화시키지 못하겠어?’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 이라는 격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진리였다.
설령 처음에는 진심으로 그에게 충성했다 쳐도, 금전욕, 명예욕, 출세욕, 자식, 애인, 가족, 나이 듦, 가치관의 변화 등 그 충성심이 변할 동기는 지난 25년간 많고도 많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한 정환은 은밀히 작성된 중앙위 간부들 내사 보고서를 다시 한번 펼쳐들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조사 결과에 대해서 정리를 해봐야겠군. 마틴 방을 잡아올 수 없는 현재, 이 모든 사건의 시발점이 된 7억 달러의 행방을 마지막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싱가포르지. 그리고 이 정도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할 정도로 머리가 굴러가는 간부라면, 평양에 앉아서 전화나 이메일로 마틴 방 같은 수족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건 자살행위라는 건 아주 잘 알 거야. 왜냐하면…….”
“……수사국에서 손바닥 보듯 들여다볼 테니 말입네다. 그 말씀은 동지를 배신한 간부가 누구이든, 싱가포르에 자기 발로 직접 한 번 다녀온 간부라는 말씀이군요. 최소한 근시일 내에 한 번은 말입네다.”
“그래, 그런데 문제는, 이 정도 기밀을 유출할 수 있는 지위의 간부들 중에서 최근 10여 개월 내에 무슨 이유에서든 싱가포르에 다녀온 사람들은 총 네 명이야.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들은 전부 내가 가장 신뢰하는 측근들이군.”
그 말과 함께 정환은 내사 보고서에서 지목한 네 사람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가리켰다.
“중앙검열위 위원장 겸 선전선동부장 현영숙, 조선인민군 차수 백승철, 외무상 겸 내각 총리 김용건,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직지도부 부부장 장성택. 이 네 사람 중에 배신자가 있는 게 확실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