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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292화 (292/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92화

“이번 사태에서 조선투자공사, 피오니 홀딩스가 손실한 투자 금액은 대략 7억 달러, 조선 원으로 8000억 원 이상입네다. 카나다 당국과의 공조 아래 사라진 돈의 계좌를 추적해본 결과 카나다 레드 스타 마이닝 계좌에서 싱가포르로 이동, 싱가포르에서 다시 세인트 키츠 네비스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되었습네다.”

“세인트 키츠 네비스라…… 카리브 해에 위치한 전형적인 조세 피난처 국가지. 빠른 시일 내에 회수하기는 어렵다는 말이군.”

김정환 정권 수립 초창기부터 최고 존엄의 돈을 맡아 관리해 온 ‘공화국 1등 금고지기’ 최승일의 배임횡령은 당 중앙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이 초유의 사태에 즉시 조사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사건의 규모와 중대성을 감안해 수사국 국장인 김영일이 직접 나서서 중앙위에 조사 결과를 브리핑하는 희귀한 광경이 펼쳐졌지만, 지금은 회의실의 그 누구도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쓰지 않았다.

반부패수사국장 김영일의 보고를 들은 정환이 당분간 돈을 회수하기 어려울 거라는 냉정한 결론을 내리자마자 테이블에 앉은 중앙위 간부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한 뼘쯤 움츠렸으니까.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자리의 간부들은 전부 현임 총서기와 오랜 세월을 함께 해온 만큼 최고지도자의 분노가 고조되어 있음이 여실히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환이 진정으로 분노한 이유는 국고의 손실보다 믿었던 측근에 배신에 있다는 사실을 안 것은 그들 대부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웬만해서는 무력 동원을 자제하는 정환이라도 당장에라도 처절한 숙청의 피바람을 지시할 것만 같은 상황, 곧 김영일이 헛기침 후 다시 입을 열었다.

“동무들은 최 사장 동무의 이러한 갑작스런 횡령, 해당(害黨) 행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데 단순히 본인도 예측하지 못했던 투자 손실일 가능성은?”

“험…… 일단 본 수사국에서는 고발이 접수되자마자 즉시 최승일 사…… 동지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하고 계좌조회와 관련 증언을 모으는 절차에 돌입했습네다. 그리고 이러한 증거를 다각도로 종합한 결과, 이번 일이 단순한 투자 실수가 아니라 상당히 이전부터 계획된 조직적 횡령이라는 결론에 이르렀습네다.”

“읊어보게. 세부내용까지 내 귀로 직접 듣고 싶군.”

“우선 최승일 동지의 해명 내용의 핵심을 요약하면, 본인이 레드 스타 마이닝에 투자를 결정한 가장 결정적 근거는 HSBC에 있는 개인적인 정보원으로부터 레드 스타 마이닝이 12억 달러의 대출을 받아 사업을 진행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때문이었습네다. 문제는 그러한 검증을 받았다는 사실이 문서로도 어떤 것이든 증명할 방법이 없다는 거이 문제입니다만은…….”

“아니, 다른 투자공사 일꾼들은 그 레드 스타 마이닝인가 하는 기업소에 대해 최소한의 검증도 안 해보고 사장 책상에 올렸다는 건가? 투자공사에 최 사장 동무 혼자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기업이 아니게 된 지는 오래되었을 텐데?”

감추지 못한 신경질이 묻어나와 정환의 목소리가 끝에 가서 높아지자 타 간부들은 사자의 포효를 들은 가젤처럼 몸을 더욱 움츠렸다.

아무래도 오늘 당에서는 풍파가 몰아닥쳐도 단단히 몰아닥칠 게 뻔했다.

그리고 김영일은 그 사자의 으르렁거림에 맞서서 진땀을 흘리며 조사 내용을 하나씩 읊어갔다.

“흠흠, 레드 스타 마이닝이 투자공사 심사부의 엄격한 사전 투자적격 심사를 통과한 데에는 신뢰할 만한 공화국 내 여러 대규모 기업소들과의 다년간에 걸친 거래 실적과 대표 마틴 방, 방일우의 개인적인 명성이 큰 역할을 했습네다. 그런데 본국 소속 수사관들이 온타리오와 토론토의 공화국 교포 사회를 수소문한 결과 마틴 방이라는 인물에 대한 대단히 흥미로운 증언을 수집했디요. 마틴 방의 카나다 내 정착과 성공 원인은 그 자신의 수완과 능력이 아니라 그를 후원하는 뒷배, 큰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데에 모든 증언이 그것입네다.”

“뒷배라…….”

정환의 의미심장한 중얼거림에 회의실 내에는 침 삼키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모두 얼굴을 굳힌 채 수사국장의 브리핑과 프로젝터가 보여주는 슬라이드 화면에 눈과 귀를 기울이고만 있었다.

“처음 마틴 방이 고려 케미컬에서 독립해서 온타리오에 자기 기업소를 차렸을 때, 초기에는 현지인들의 텃세나 자본금 부족으로 인하여 사업이 막히기 일쑤였다고 합네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공화국 기업으로부터의 거래가 그가 운영하는 레드스타 마이닝에 쏟아지더니, 몇 년 전, 대략 3년 전 금융위기 직후부터는 카나다에서 진행하는 공화국 사업은 간단한 수출입 업무라도 마틴 방과 레드스타 마이닝의 손을 거치지 않는 거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고 합네다.”

“즉 공화국 내 누군가가 마틴 방과 레드스타 마이닝을 자기 국외 자산을 고일 우물로 선정했다는 거군. 계속하게.”

“레드 스타 마이닝과의 가장 거래가 활발했던 곳은 여기, 쌍우 케미컬이었는데 동지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쌍우 그룹의 모체, 쌍우 자동차는 98년 북남 대타협 당시 자금난으로 인하여 남에서 공화국으로 뿌리를 옮긴 기업이고, 그 후에도 사업이 정상화되기까지 투자공사 측으로부터 끊임없는 자금 수혈과 심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투자공사 사장인 최 동지의 실질적인 영향력 하에 있었습네다.”

“…….”

”실제로 동지께서 내리신 공화국 토종 자동차 산업을 키우라는 교시에 최 동지는 보고서에서 확인하실 수 있듯이 쌍우의 경영진과 일주일에 거의 몇 번씩 독대를 할 정도로 관계가 돈독했지요. 즉 그 동무들은 최 동지가 어떤 부탁을 하면 그거이를 거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던 거이지요. 게다가 마틴 방도 가까운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자신이 공화국에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유력자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고 떠벌린 적이 있다는 증언을 수집했습네다.”

“그러니까 최승일 동무가 쌍우의 경영진에게 수년간 레드 스타 마이닝의 뒤를 봐달라 부탁했고, 나중에 투자공사 돈을 그쪽으로 고이게 했다 이 말인가? 하지만 그건 물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정황증거일 텐데?”

정환은 마지막까지 믿고 싶지 않다는 듯 그렇게 되물었지만 그 질문에 김영일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젓더니 슬라이드 화면을 전환해서 사진 몇 장을 띄웠다.

앳되어 보이는 20대 초반 여성의 사진과 최승일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설명에 지금까지 침착을 지키던 정환도 이번에야말로 진심으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저희도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최 동무에게 당에 신고하지 않은 재산 내역이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네다. 저희 수사국에서도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입네다만, 수양딸 명의로 땅을 매입한 사실이 있더군요.”

“……수양딸이라고? 금시초문인데. 거기다 땅을 사?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수사국 권한이면 일정 수준 이상의 고위 간부들과 일가친척들 계좌와 재산 내역을 거의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었을 텐데? 왜 나는 지금까지 이런 사실을 보고 받지 못한 거지?”

“그 점에 관해서는 드릴 말씀이 참으로 없습네다만…… 아시다시피 최 동지는 거의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지만 몇 년 전쯤 열대여섯 살짜리 에미나이(여자아이)를 입양했는데, 그 녀성은 성인이 되자마자 해외로 나가, 정확히는 현재 토론토 의대에 재학 중인데 그 탓에 수사국의 계좌 조회가 좀 늦어진 것으로 보입네다. 그리고 최승일 동지 계좌로부터 대학 등록금 및 해외 체류비치고는 좀 많이 과해 보이는 돈이 지속적으로 해당 녀성의 계좌로 출금된 내역이 있더군요. 사장으로서 받는 본인 급료와 상여금의 거의 반 이상을 매달 그쪽에 투자한 것으로 보이더군요.”

“……그 정도면 고저 늘그막에 딸 사랑이 좀 지극했다고 볼 수도 있지 않나? 당에서 고액 연봉 타 먹는 고위 간부로서 별로 칭찬받을 처신이야 아니지만, 자기 급료 가지고 물 낯선 곳에서 자기 피붙이 좀 호강하게 해주갔다는데 고거이 가지고 부패했다고 보기에는…….”

이제까지 듣기만 하던 장성택이 최승일을 옹호하듯 한마디 거들었지만, 이번에도 김영일은 고개를 저었다.

“본인도 직분상 해당 사항에 대해 최 동지에게 캐물은 적이 있는데 당시 최 동지의 소명은 딸이 사치를 좋아해서 해외에서 쓰는 돈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고 당시에는 저도 기런 줄 알고 넘어갔습네다. 뭐 현재의 공화국에서 자기 돈 쓰는 거이 비법은 아니니까요. 기런데 이번에 일이 터지고 저희 수사관들이 토론토로 가서 재조사해 본 결과 최 동지의 말과는 영 다르더군요.”

최승일이 딸에게 보낸 돈은 총액으로 상당한 거액이기는 했지만, 개혁 개방 후 고위 간부와 당원들의 부정부패를 막는 근본적인 방법 중 하나는 애초에 생활에 지장을 느끼지 않도록 월급을 넉넉히 주는 것이라는 게 정환의 지론 중 하나였다.

특히 최승일은 그 직급과 중요성, 그리고 청렴성이 가장 담보되어야 하는 투자공사 사장이라는 위치에 20년 넘게 재직한 만큼 재산이 공화국 인민의 평균을 상회하는 것 자체는 이상한 게 아니었다.

”수사관들이 토론토에서 보내온 조사의 결론은, 최 동지의 딸은 온타리오에서 대단히 검소하게 살고 있다는 거이었습네다. 자기 차도 없다가 최근에야 중고차를 사서 타고 다니더라고 현지 교민들의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더군요.”

“그럼 그 돈으로 땅을 샀다는 이야기인가?”

“거의 기렇다고 확신합네다. 아직은 카나다 당국과 수사협조와 계좌 추적이 끝나지 않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부동산 개발업계에서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최근 캐나다에서 온 한 녀성이 공화국 원산시 외곽 해안가의 경치 좋은 빈 땅 7천여 평을 매입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습네다. 해당 녀성의 인상착의와 최 동지 딸의 인상착의가 거의 일치한다는 거이도 이미 확인되었디요.”

“허어……!!!”

“물론 그 정도 토지매입이야 그동안 투자공사 사장으로서 최 동지가 모은 급료를 털면 불가능할 것도 없고, 은퇴 후 말년에 경치 좋은 별장 하나 마련하려 했다고 소명할 수도 있갔지만, 여기에 다른 한 가지 정보를 종합해보니 저도 최 동지가 영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하더군요. 최근 4대 개발과업 하위 과제 중 하나로 관광 인프라 혁신이 있었던 거이 기억하지 않습네까?”

“그렇디. 기런데 그 일과 이번 일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하위 과제 중 하나인 관광복합개발사업 사업자로 리영박 서기에게 선정된 북명 그룹이 몇 달 전 사업 부지를 사전예정보다 크게 넓혀 최 동무의 딸이 매입한 토지에 리조트를 건설하겠다는 사업계획 개정안을 내놓았습네다. 당연히 지가가 왕창 뛰었지요. 저는 최 동지가 내부 정보를 사전 입수해서 리익(이익)을 챙겼다고 의심하고 있습네다.”

김영일의 단언조에 처음에는 공화국과 총서기에게 누구보다도 충성스러웠던 최승일의 혐의 사실에 회의적이던 회의실의 간부들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기둥이 조금씩 좀벌레가 파먹어가면서 기울더니, 마침내는 썩어서 쓰러지기 직전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폭로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기거에 더해서……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증거가 하나 더 있습네다.”

“결정적이라고? 또 있단 말인가?”

“네, 사실 본 사태의 몸통은 마틴 방이 싱가포르와 세인트 키츠 네비스를 거쳐 숨긴 7억 달러의 행방입네다만, 현재 마틴 방은 귀신처럼 잠적해버려서 그가 어디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상태입네다. 기런데 그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보니 그가 이 사태가 있기 몇 달 전 7억 달러가 거쳐 간 중간 기착지였던 곳, 싱가포르로 출국해서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는 정보와 구체적인 증거를 입수했습네다.”

“……그 증거를 보여줄 수 있겠나?”

이제 정환의 목소리는 가라앉다 못해 침울했다.

아무도 감히 입을 열 엄두를 못 내는 가운데, 슬라이드 화면이 다시 한번 바뀌면서 선글라스를 쓴 마틴 방이 한 여성과 싱가포르의 한 카페에 앉아서 대화를 나누는 사진이 나타났다.

바로 방금 전 캐나다 토론토에서 유학 중이라던 최승일의 수양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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