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287화 (287/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87화

100장. 음모자들

겨울인 지나가고 찾아온 2012년은 계절적인 의미에서 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의미로 공화국에 겨울이 지나가기 시작한 해였다.

아직 봄이 온 것은 아니었지만, 2008년 금융위기의 혹독한 한파가 어느 정도 가신 것만으로도, 아니, 가신 것 같다고 느껴진 것만으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들과 전 세계 99%들의 서민들에게는 위안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실제 지표를 보면 기업들은 더더욱 고용과 투자를 줄이고 가계소득은 줄어들었으며, 일자리는 국외로 빠져나가고 정년이 빨라졌으며 최종적으로 중산층들의 지갑이 얇아지기는 했지만, 일단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위기를 극복했다고 떠들고 다니기 시작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일부 의식 있는 위정자들은 지나간 위기를 교훈 삼아, 혹은 미래를 미리 알고 다음번 위기를 대비하기 위한 경쟁력 재고를 위해 여념 없는 시절이기도 했는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총서기 김정환도 이런 위정자 중 하나였다.

“초, 총서기 동지……!! 죄송합네다만 한 번만 더 교시를…… 제, 제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습네까?”

“제대로 들은 것 맞네.”

“기, 기러니까 그 말씀은…….”

“‘신언 그룹’의 태양광 전지 계열사인 ‘신언 썬텍’의 주식을 적당한 매수자를 찾아 팔라고 했네. 몽땅 다. 즉 태양광 사업을 그만 처분하라는 말이지.”

“대체 왜 그래야 합네까?!?!”

상대방, 자기도 모르게 언성을 높인 듯한 중년 남성의 마지막 말에 정환의 옆에 서 있던 유혜림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정작 정환은 침착하기 그지없었는데, 이런 반응을 이미 충분히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지금 정환의 눈앞에 있는 남성들은 현재 공화국의 10대 대기업 중 하나에 속하는 ‘신언 그룹’의 회장 이하 임직원들이었다.

주력 업종은 전자 제어, 통신 시스템, 디스플레이를 대표로 한 저가형 전자제품으로서, 공화국 내에서는 남의 성삼과 쌍벽을 이루는 근대전자에 비해서 좀 뒤처지지만, 가성비 좋은 양산형 가전 이미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98년도 북남 대타협 당시 위기를 맞은 우대 전자 사업부 일부를 인수하여 본격적으로 도약해서 반도체 파운드리에도 뛰어들어 현재 시가총액 15조 원 정도의 대기업이지만…… 지금 문제는 전자제품이나 반도체가 아니라, 함께 병행하고 있는 태양광 전지판 사업이었다.

결국 정환은 이미 몇 번 서면으로, 전화로, 혹은 사내 당 위원회 대리인을 통해 피력했던 자신의 권고(라고 쓰고 명령이라고 읽는다)를 다시 한번 침착하게 설명해 줄 수밖에 없었다.

“이미 여러 번 말해주지 않았나? 전 세계 태양광 전지 생산 시장은 이미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네.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이 시장에 뛰어든 지 벌써 5년이 넘었고 이미 모든 전문가들이 곧 전 산업계에서 이익률이 마이너스, 제 살 깎아 먹기 식 치킨 게임이 일어날 것을 전망하고 있어. 그러니 최대한 빨리 처분하고 그 현금으로 다른 유망 산업에 투자하라는 걸세.”

“그 전문가들이라는 아새끼들이야 항상 걱정하는 게 일이지 않습네까! 태양빛 전지 부문은 우리 그루빠가 지난 10여 년간 지속적으로 중국과 공화국, 미국과 유럽에 이르기까지 쏠쏠한 수익을 내오며 키워왔던 부문입네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와서 사업을 모조리 처분하라고 하시니 저희는 도무지…….”

“신 회장 동무. 중국 내 태양광 회사만 500개가 넘고 이미 중국이 뛰어든 다른 모든 산업에서 그랬던 것처럼 국제 무역 원칙을 무시하는 각종 지원금과 보조금, 그걸 기반으로 한 저가 공세가 쏟아지고 있네. 이미 소재인 폴리 실리콘 가격과 신언 썬텍의 이익률이 동시에 곤두박질치고 있지.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손 털고 나오는 게 현명하지 않겠나?”

“하, 하지만 총서기 동지! 기래도 그동안 기술 개발과 투자에 들인 돈과 시간이라는 거이 있는데…… 게다가 태양빛은 이 공화국이 못 먹고 못 살던 시절부터 인민들의 살림집에 전깃불을 밝혀준 산업 일등 일꾼입네다! 저희 신언 그룹이 반드시 살려내갔습네다! 제발 다시 한번 재고를!”

‘하아, 내 이럴 줄 알았지.’

정환은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상식적으로 비즈니스맨에게 자식 이상으로 소중할 사업 분야를 갑자기 팔아치우라는데 반발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게다가 밑바닥에서 자수성가하여 자신의 사업을 일군 이런 이들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나 통계보다는 자신의 감을 믿는 경향이 다분하고, 또 지금까지 그렇게 해서 성공해 왔기에 그런 자신의 신념을 거의 죽을 때까지 유지한다.

하지만 지금 이들에게 곧 중국발 태양광 공급 과잉으로 인한 대규모 연쇄도산 사태가 닥쳐올 거라고 설득해봐야 믿지 않을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정환은 국가 지도자로서 머지않아 레드 오션, 아니 시뻘건 블러드 오션으로 변해서 다 같이 피 볼 게 뻔한 산업에 국가 10대 기업 중 하나가 피 같은 시간과 자금을 꼬라박는 꼴을 앉아서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앨 고어 시절부터 불어닥친 태양광 붐으로 지금의 신언 그룹을 일구는 데 큰 자금줄 역할을 해서 신 회장 동지가 해당 사업 부문에 애착이 큰 건 알겠지만, 안 그래도 국내 태양광 산업에 대한 투자와 개발 중복 현상이 묵과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네. 태양광 산업 전체를 정리하겠다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비효율성을 극복하자는 것이니 이해해 주기를 바라네.”

“……전체를 정리하지 않겠다는 말씀은…… 솔라원 같은 다른 기업소들은 태양빛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시겠다는 말씀입네까?”

“과잉생산이 지속되고 있을 뿐이지 해당 산업을 완전히 버리겠다는 뜻은 아니니까 말일세.”

“……도대체 왜 저희 신언이 총서기 동지의 눈 밖에 났는지 참말로 모르갔습네다. 저희가 뭐 당의 심기를 건드린 일이라도…….”

아무리 말해도 신언 그룹 임원진이 납득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꾸물거리자, 정환은 좀 더 강경하게 나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약간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그런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이렇게 말했는데도 만약 신언 그룹 측에서 자체적으로 당의 권고에 따르지 않는다면…….”

“않는다면…….”

“그때는 신언 그룹의 핵심인 신언 전자의 대주주, 피오니 홀딩스의 이사회 의장으로서 주주총회에서 발언권을 행사하는 수밖에. 따지고 보면 사업 초창기 당의 투자와 배려 끝에 지금까지 덩치를 불릴 수 있었던 거 아닌가? 그러니 지금 와서 그걸 돌려받는다고 해도 억울할 거는 없겠지?”

“……!!!! ……동지의 뜻이 그렇게 확고하시다면…….”

결국 굴복한 신언 그룹 회장과 임원진은 허탈한 표정으로 정환 앞에 고개를 숙였다.

정환도 그들이 마음에서 납득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지만 일단은 이렇게 문제를 마무리 지었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하지만 그래서 그는 고개를 숙인 그들의 눈에서 의미심장한 빛이 번뜩이는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 * *

“태양빛 사업을 정리하라니! 10년을 넘게 키워와서 내 품 안의 자식처럼 길러온 사업을! 대체 이거이 말이 되는지…….”

“자자, 진정하라우, 신 회장 동무. 그쪽 신언뿐만 아니라 우리 북명 그루빠도 근래 당의 처사에 대해서 불만이 많아. 일꾼들 최저임금을 기렇게 올려 버리면 우리 같은 유통 기업소는 대체 이윤을 어디서 내라는 말인지 원…….”

“험. 기건 우리 쌍우 자동차도 마찬가지요. 로동자들 머리에 헛바람 불어넣는 학총련 아새끼들 때려잡았다고 좋아했더니 거기서 떨어져나온 로동계 품어주갔다고 복지니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규제니 뭐니를 하고 있으니…… 이래서야 글로벌 경쟁이 되겠느냐 말이오.”

“맞소. 이거이 공화국에서 기업하기 힘들어서 원…… 내 뒤를 이을 아들딸 놈은 벌써부터 이 코딱지만 한 북조선에서 골 아프게 사업 놀음할 바에야 외국 자본에 주식 다 팔아버리고 플로리다에서 마음 편하게 남은 여생 살자고 꼬시는 중이요.”

그로부터 며칠 후, 평양시 내의 한 회의실에서는 일군의 남성들이 주최한 비밀스러운 회동이 열리고 있었다.

얼마 전 서기실에 불려갔던 신언 그룹과 비슷하게 10대 기업 본사의 한 회의실에 모여 있는 그들의 면면을 누군가 보았다면 깜짝 놀랐을 텐데, 하나같이 개혁개방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를 책임진다고 자부하는 기업의 소유주거나 그에 준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들 중 절반 정도는 경제인들 보다는 덜 유명하지만, 경제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떤 면에서는 기업 수장들보다도 강력한 당내 국장급 이상의 고위 경제 관료들이었다.

실제로 그들 중 하나가 기업 수장들의 우는 소리에 맞장구를 치듯 슬슬 그날 모인 이유에 대해서 운을 뗐다.

“허어, 고저 사실은 요즘 그러한 세태에 대해서 우리 로동신문 편집국 내에서도 말들이 많이 나오지 않습네까. 눙토히 지금 이 공화국의 번영을 완전히 총서기 동지 혼자 이룬 거이도 아닐 텐데…… 흠, 무, 물론 그분의 령도력이 절대적이었기는 하지만…….”

“그러고 보니 소식 들었소? 고려 항공 말이오. 민영화 직전까지 가서 그쪽 집안 딸년 하나가 난장을 피운 것 때문에 민영화가 파탄이 났다지 않소. 그 때문에 림 회장 동무가 앓아눕고 아직까지 자리 보전하고 있다는 거이는 여기 모든 분들이 잘 아실 거라 믿소. 아니 어떻게 그런 처사가 있을 수 있소?”

“……어흠! 엄 사장, 기런데 기건 그 림현아 그 간나년이 좀 선을 심하게 넘은 거이라…….”

“아무튼! 우리래 여기 모여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은 그거이 아니고! 중요한 거는 이 공화국이 지금 이대로 흘러가면 안 된다는 거이 아니갔소! 국가 경제를 기업소에서 하는 거이지 당에서, 나라에서 하는 거이 아니지 않소? 그거이 자본주의 경제요? 여전히 이전 사회주의 경제디!”

“맞소, 기래. 이럴 때일수록 여기 모인 우리 뜻 있는 동지들이 한데 모여 뭔가 행동을 일으켜야 하디 않갔소.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전 김정일이 시대처럼 강냉이도 못 먹는 최빈국 신세로 돌아가는 거인데 인민들 대부분이, 심지어 당 중앙위에서조차 그거를 모르고 있으니…….”

“옳소, 내래 젊은 시절 영국에서 배웠을 때도 한창 망조가 들어가는 영국이 어떻게 살아난 기요? 로동자들을 태만하게 하는 복지를 없애고, 나라에서 기업들 하는 거이 간섭 안 하고 내버려 두고 세금 깎아주니 다시 영국이 이전의 자본주의 열강, 미제의 1등 동맹국이라는 국제적 위상을 회복한 거이 아니오?”

마지막 남자의 말에서 알 수 있다시피, 당정민을 막론하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하나같이 속칭 템즈강 줄기라고 불리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인사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개중에는 당 경제개발실 관료도, 내놓으라 하는 기업의 회장도, 관영 신문 경제란에 단골로 이름을 올리는 주필도, 피오니 홀딩스 고문도 있었지만 그들은 모두 한 가지 대의에 공감하고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기업들에 더 많은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누린 것보다, 지금 누리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그것이 바로 나라가 사는 길이고 인민이 사는 길이라는 것을 그들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비록 자신들의 젊은 시절 자본주의 경제학을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그들이 기업을 일으킬 때 적극적으로 투자와 지원을 해준 것이 바로 그 당과 총서기라는 사실이 그들의 뇌리에 살짝 지워져 있다는 게 아쉬운 점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또한 마치 구국의 논의를 하는 것마냥 심각하게 얼굴을 굳힌 채 토론하는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숨은 것은 궁극적으로 애국심도, 비전도 하다못해 그들이 그렇게 입만 열면 외치는 경제적 자유조차도 아니라, 단순한 탐욕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애써 부인하고 있다는 점도.

하여간 마침내 누군가 했어야 할 말이, 하지만 다들 감히 입에 담을 수 없어 쭈뼛거리기만 했던 말이 누군가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비록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 요즘 공화국 사정 때문에 이 사무실은 현존하는 거의 모든 종류의 도청이 불가능한 구조이기는 해도, 그 말이 입밖에 뱉어지자 좌중들의 표정이 순식간에 조금씩 굳어졌다.

“기렇다면…… 우리 목표는…… 역시 총서기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모든 분들이 뜻을 함께한다고 봐도 되갔소?”

“……음……!!!”

“……흐읍……!!!”

나지막하지만 폭탄처럼 떨어진 그 말에 모든 사람들이 신음을 내뱉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제서야 그들이 지금 무엇을 모의하고 있는지 절감한 탓이었다.

하지만 원래 모든 선, 모든 금기는 처음 넘어설 때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예상외로 쉬운 법이다.

“그렇소. 비록 총서기 동지께서는 지난 24년간 이 공화국의 전성기를 이끌어 오셨지만, 최근 인의 장막에 둘러싸여 간신모리배들의 조언만을 귀담아들으시며 판단력이 흐려지셨소.”

“맞습네다. 그분이 평생 이루어놓은 영광스러운 업적이 쇠퇴하기 전 이쯤에서 은퇴하시어 노후를 즐기시는 거이 그분께도 좋을 겁네다.”

“게다가 이거이 다 궁극적으로 인민과 공화국을 위한 일 아니갔소. 그런 의미에서 언젠가는 역사도 우리 동지들의 이러한 고뇌를 알아줄 거이오.”

그들이 애써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서로 가라앉히며 자기 합리화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개중 좀 눈치 없는 자 하나가 조심스럽게 손을 들며 물었다.

“기, 기럼…… 여기 동지들 말씀은 총서기 동지를 보위에서 끌어내리자는 뜻이시오? 기러면 아무리 그분의 실책과 과오가 알려진다 해도 인민들의 저항이 있지 않갔소?”

“…….”

회의실에 냉랭한 침묵이 감돌았다.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일제히 질문자를 말없이 ‘한심한 놈’이라고 눈치 주는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리고 좌중 중 사회자 역할을 하는 당 간부 한 명이 핀잔을 주는 투로 그의 말을 정정했다.

“동무. 제발 현실을 좀 직시하시오. 총서기 동지를 공개적으로 직접 공격하자니, 정신 빠졌소? 실권을 전부 없애고 죽은 김일성 주석처럼 상징적인 존재로 만드는 거이 가장 우리에게 좋은 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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