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285화 (285/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85화

막간. 자본주의 할 거야 안 할 거야

“자, 보시디요. 우선 저희 데이터 베이스에 따르면 우선 회원님 나이가 32세, 키 174, 개인 재산이 현금 2천에, 송림 시에 위치한 4억짜리 전세 살림집. 승용차는…….”

“아, 들으면 슬픔증(우울증) 올 거 같으니까 더 말하실 필요 없소. 근대 소나타 4세대. 공화국 녀성 동무들 넋을 빼놓을 만한 차는 단연코 아닌 거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거기까지만 합시다! 기래서 내 회원 등급이 어떻게 되기요?”

올해로 서른을 2년 넘긴 평양의 평범한 직장인인 권림수는 눈앞의 남성이 자신의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자 슬쩍 짜증을 내며 말을 끊었다.

비싼 회원 가입비와 소개료를 내고 최소한 스트레스는 받지 말아야 할 거 아닌가.

하지만 눈앞의 남성은 지금부터가 중요하다는 듯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헤헤…… 회원님. 사실 저희 기업소를 이용하시는 녀성 회원분들이 재산 관련 정보에서 보는 거이는 사실 승용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디 않습네다.”

“……참말로?”

“참말이고 말고요. 거기다가 회원님 재직하시는 기업소도 얼마 전에 상장하고 난 후 매출액 영업이익 다 쭉쭉 내는 견실한 중견기업소 아닙네까, 설립한 지 안 돼서 직장 안정성이 좀 떨어져서 그렇디…….”

“기럼 대체 뭐 때문에 머뭇거리는 거이요?”

“헤헤…… 역시 살림집 아니갔습네까. 일터 좋고, 인물 훤칠하고, 학력도 훌륭하신데 살림집이 평양에서 이렇게 먼 거이는 조금…… 요새 녀성 동무들 사이에 ‘평양시 밖은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모름지기 신랑감은 전세라도 평양시에 살림집 하나 마련해 올 수완은 있어야’라고 유니온 녀성 전용 사랑방에 말 도는 거이는 아시디요?”

“하아…….”

역시 그거구만 기래.

……하는 생각에 권림수는 눈앞의 남성, 몇 년 전부터 공화국 내에서 빠르게 늘어가고 있는 신종 기업소인 ‘중매기업소’의 주력 일꾼인 속칭 ‘짝짓기꾼’을 심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요즘에는 공화국도 이 분야의 선두주자인 남조선의 영향을 받아, 중매기업소니 짝짓기꾼이니 하는 문화어보다는 ‘결혼 정보회사’ 내지는 ‘커플 매니저’ 같은 용어를 더 자주 쓰기는 했다.

요컨대 권림수는 지금 결혼 정보회사에 자신의 미래 색싯감을 알아보러 소개료를 내고 예정된 상담을 받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

“기래서 결국 내 회원 등급이 어떻게 되는 기요? 나 정도면 대략 몇 등급의 처자를 만날 수 있는 거이고? 가리지 말고 눙토히 말씀해 주시오.”

“흠…… 저희 내부 기준에 따르면 회원님 같은 경우는 중견기업이지만 몸담고 계시는 직결 유희 기업소가 시가총액 등으로 확인 가능한 성장세를 근래 보여주고 있어서…….”

“……그냥 게임 만드는 기업이라 하시오. 직결유희 기업소는 무슨.”

“아, 알갔습네다. 하여간 회원님의 일터인 그 중견 게임 회사, ‘도그 앤 피그(Dog & Pig) 게임즈’에서 현재 4년 차 고정일꾼(정규직)으로 일하고 계시고 본사도 평양 탑제거리에 있는 데다 평양시는 아니지만 괜찮은 평수의 전세 살림집도 가지고 계십네다. 키 괜찮고, 인물 평균에, 몸에 병 없고, 시댁도 문제없으니 그래서 저희 견우직녀 중매기업소가 회원님께 중매해드릴 수 있는 녀성분은…….”

“등급은……?”

“대략 3.5등급입네다.”

“3.5등급?”

어떤 등급이 나오든 실망하지 않을 거라고 나름 마음을 먹었지만 권림수는 실망의 목소리가 목구멍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중매기업소는 보통 해당 등급의 상하 1등급에서 1.5등급 내외로밖에 짝을 안 지어주니 자기가 만날 수 있는 녀성도 대략 그 정도란 이야기 아닌가?

고객의 실망을 감지했는지 눈앞의 직원은 다 이유가 있다는 듯이 얄미운 목소리로 추가설명을 해주었다.

“3등급은 대, 국영기업 사무직, 4등급은 중견 기업소 사무직 및 소학교 선생 정도인데 고객님의 일터는 분류상 중견기업이지만 최근 빠른 성장세를 감안하여 0.5등급 올려 드렸습네다.”

“제에기, 등급을 어떻게 올릴 방법은 없갔소? 내래 나이 더 먹기 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글쎄요, 키나 얼굴 같은 채점 요소는 물론이고 일터 같은 거이도 근시일 내에 바꿀 방법이 드무니……. 역시 평수를 좀 줄이시더라도 평양 시 내로 이사 오시는 거이 어떻갔습네까? 평양 끝자락에 두 칸짜리 방이라도 일단 평양은 평양이니 그러시면 녀성 회원 동무들에게 제가 기름칠을 좀 해볼 여지가…….”

“……지금 누가 평양 좋은 줄 몰라서 이러오? 소개료로 그만큼 받아 처먹었으면 돈값을 하란 말이오!! 평양 살림집 값이 요즘 미친년 널뛰듯 하는 거 빤히 알면서 누구 우롱하는 거이얏!!! 이 씹어먹을 놈의 돈! 이 공화국에서는 결국 그놈의 돈이 있어야 총각 귀신 되기 전에 처자 손이라도 잡아보갔구만!”

권림수는 자기도 모르게 화를 더럭 내면서 찔끔한 매니저를 놔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견우 직녀 중매기업소 - 자타 공인 공화국 1위 업체!’라고 쓰인 문을 홱 열고 나가 버렸다.

오늘 중매(요즘은 이 역시도 ‘매칭’이라는 미제 말을 더 자주 썼다)를 위해 내기도 힘든 연차를 냈는데 괜히 기분만 잡쳤다는 생각에 권림수는 더더욱 화가 치솟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 교화소 전기 울타리도 잘 찾아보면 개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그로부터 일주일 후 권림수는 뜻밖에 제법 큰 돈푼을 만질 기회를 잡게 되었다.

* * *

-수고 많았소, 권 동무. 이전까지는 김책 공대 콤퓨타 공학 학생 동무들 중에 급전 필요한 동무들 골라서 시켰는데…… 역시 현직에 있는 전문일꾼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만, 기래.

“기래, 기래…… 아무튼 들키지 않게 골통 잘 수그리고들 계시오. 그쪽이 잡히면 나까지 공안에 엮이는 거이니까…… 알았소. 알았어. 아무튼 다음부터 또 건수 있으면 연락 주시오. 오늘처럼 넉넉하게만 주면 언제든 환영이디. 기래. 이만 끊갔소.”

손전화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남성의 굵고 낮은 목소리가 끊어지자 권림수는 가슴을 쓸어내리면서도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직 점심시간(고작 30분이었다) 초반이라 그런지 평소 같으면 사람이 붐빌 흡연소 인근인데도 동료 일꾼들 종적은 눈을 씻고 봐도 안 보였다.

그리고 들킬 일이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나서야 권림수는 발을 한 번 구르며 내심 쾌재를 질렀다.

“빌어먹을. 다 살아날 구멍이 있구만 기래.”

권림수는 방금 전화를 건 남자로부터 인터넷 뱅킹으로 자신의 계좌에 입금된 액수를 확인하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분명히 자신이 일해서 번 돈이었고, 아무리 그가 재직 중인 도그 앤 피그 게임즈가 일꾼들을 노예 부리듯 부려먹는다지만, 계좌 확인이 사규 위반인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권림수가 전전긍긍하냐 하면, 방금 그의 계좌로 입금된 돈은 비법(불법) 행위로 번 돈이었기 때문이었다.

“크흐흐흐흐. 이제 이걸 종잣돈으로 해서 크게 한탕만 튀기면 평양 보통강 거리에 전셋집…… 아니디, 70평 살림집 입성! 기러고 중매기업소 1등급 신랑 후보로 오르고 북남 가릴 거 없이 온갖 미녀들을 처첩으로 들이는 거이도 꿈이 아니구만.”

벌써부터 상상의 나래에 푹 젖어 있는 권림수의 그 비법 행위가 뭔지 알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현재 직업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는데, 권림수는 도그 앤 피그 게임즈에서 개발 담당 프로그래머, 그러니까 한마디로 게임 개발자였다.

그리고 방금 전화 온 사내는 권림수의 비밀스러운 부업 파트너였는데, 그 부업이란, 결혼 정보회사와 비슷하게 이 분야의 선구자인 남조선 말로는 ‘작업장’, 공화국 문화어로는 그 이름도 참으로 적절하게 ‘탄광’이라고 불리는 사업체를 운영하는 주먹꾼이었다.

(과거에는 나름 인민군에서 방귀 좀 뀌던 군관이었다지만 어차피 공화국 어깨들 중 8할은 전직 인민군이었다.)

그 ‘탄광’에서 하는 일이란 실로 간단했는데, 수십 수백 대의 콤퓨타를 사무실에 들여다 놓고 남북조선에서 유행하는 직결유희, 그러니까 온라인 게임의 가짜 계정과 아이디를 자동으로 돌려 고가의 아이템을 수집해서 온라인 중개 장터에 팔아 현금화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신종 탄광 사업에서 권림수가 하는 역할은 쓰이는 24시간 동안 자동 사냥을 해서 아이템을 수집하는 소프트웨어를 짜주거나 게임 회사 서버의 보안 허점을 알려주거나 해서 돈을 버는 것이었다.

“개돼지 같은 게임 중독자 아새끼들. 그깟 콤퓨타 그래픽 쪼가리에 수억을 꼬라박으니 기래도 너거들 덕분에 내 장갓길도 열렸구만 기래.”

딱 그의 부모님 세대, 그러니까 김정일 인민 세대만 해도 대체 이게 뭔가 싶은 아리송한 사업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난 20년 간 총서기의 령도 아래 공화국은 참 많이도 변했고,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손전화도 보기 힘들었던 이 공화국에는 고급 게임 아이템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기 장기라도 팔아치울 중증 게임 중독자들이 상당수 양산되었다.

단순히 콤퓨타로 하는 온라인 게임뿐 아니라 손전화가 대중화되기 시작한 몇 년 전부터 현재의 지능형 손전화(스마트폰) 붐을 맞아 모바일 게임 시장도 크게 활성화되었다.

사실을 말하자면 현재 권림수가 몸을 담고 있는 도그 앤 피그 게임즈도 미칠 듯한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모바일 게임 개발로 현재의 사세(社勢)를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내에 떠도는 말로는 창업자이자 현재의 사장이 사업 초기에 국영펀드인 피오니 홀딩스의 투자 상담회에서 직접 총서기를 만나 뵙고 수익성은 확실하니 투자해 달라고 간청했다가 퇴짜를 맞고 민간자본을 끌어들여 현재의 회사를 일궜다고들 한다.

하여튼 이렇게 처음에는 서버 업데이트 정보를 유출시켜 주거나 하는 소극적 참여에서 점점 더 돈 씀씀이가 커지고 대담해지자 아예 오토 계정 감지 점검을 피하는 방법을 설계해주고 방금 전처럼 이익을 공유받거나 하는 식으로 동업자 수준까지 와버린 게 권림수의 현 상황이었다.

“흐흐흐…… 어차피 이 공화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돈이디, 돈! 인민과 김일성 주석의 위대한 사회주의 이념 투쟁은 얼어 죽을……. 요즘 공화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녀성이고 뭐고 다 사버릴 수 있는 거디 않갔어? 아니디. 아예 이 남자를 돈으로만 보는 조선 간나 년들을 버리고 외국에 나가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로씨야 녀성이랑 플로리다 해변가에서…….”

이제 이 돈을 종잣돈으로 해서 잘만 불리면 이제 중매기업소 3.5등급짜리 인생도, 이 지긋지긋한 공화국도, 경애하는 총서기 동지도 영영 안녕이다.

그렇게 권림수는 점심시간이 다 지나가도록 밥도 안 먹고 주문 외우듯이 그 말만 중얼거리다가 점심시간이 끝나서도 그 주 내내 주말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에게 여자와 탈조선행 티켓을 동시에 안겨줄 대망의 ‘한탕’을 하러 갈 주말이 오자마자, 권림수는 자신의 근대 소나타를 몰고 평양을 벗어나 저 멀리 함경남도로 향했다.

권림수가 그렇게 공화국을 동서로 가로지른 끝에 도착한 곳은 산투성이인 함경남도에서도 가장 촌동네인 홍원군(洪原郡)이었다.

“어이! 주차 동무!”

“아, 알겠습네다, 동무! 부디 많이 따시라요! 많이 따시면 부디 저한테 싸래깃돈이라도…….”

제 할 일은 않고 떡고물만 바라는 주차 담당에게 권림수는 눈도 안 마주치고 제일 먼저 ATM으로 향했다.

자신의 소중한 (탄광)노동의 대가인 돈을 현금으로 전부 인출한 그는 이내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자신의 눈앞에 웅장하게 서 있는 ‘게임방’을 바라보았다.

밥 먹듯이라는 표현도 모자라 물 마시듯이 야근을 시키는 기업을 다니느라 연애놀음도 못 하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송두리째 갖다 바친 결과, 현재 권림수는 ‘온라인 콤퓨타 게임’의 ㅇ 자만 들어도 몸서리가 쳐지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게임을 좋아하던 권림수가 ‘게임’ 그 자체에 완전히 흥미를 잃은 것은 아니었다.

무슨 뜻이냐 하면, 그는 보통중학교 다니는 어린 아새끼들이나 열을 올리는 온라인 게임보다 훨씬 짜릿한 ‘어른의 게임’을 발견했다는 뜻이었다.

사실 격무에 시달리기는 해도 이 불황에 나름 괜찮은 직장인 도그 앤 피그 게임즈를 잘 다니던 권림수가 해고는 물론 감옥살이까지 할 수도 있는 비법 행위에까지 손을 댄 데에는 몇 년 전부터 이 ‘게임방’에 드나들게 되어서였다.

당내 경제성장 우선주의자들인 대동강 줄기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건설되고 마침내 공화국 인민의 출입도 허가된 이 웅장한 어른들의 게임방은, 리조트 한 개, 호텔 하나, 그리고 다른 건물 하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사실 매출의 80%는 바로 마지막 건물에서 나온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몇 년 전 닥친 중국발 부동산 위기의 여파로 폐촌이 되어버릴 뻔한 이 함경남도 홍원군의 랜드마크이자 거의 유일하게 남은 성장 동력, 그리고 권림수로 하여금 비법행위에 손대게 하고 중매기업소에는 감췄지만 몰래 사채까지 끌어다 쓰게 만든 그 게임방으로 향하는 표지판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공화국의 건전한 놀이 문화를 선도하는 함경남도의 참일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표 쉼터 홍원랜드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네다.

(카지노와 호텔, 리조트 내의 상점에서는 남조선말 번개탄, 착화탄은 불미스러운 사고의 연발로 인하여 판매가 금지되어 있으니 넓은 리해를 바랍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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