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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282화 (282/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82화

“좋습니다, 우선 이게…… 그리고 현 상황이 말이 되는지부터 한번 점검해 봅시다. 아니, 아니, 그 전에 먼저 내가 정말로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그게 뭐냐 하면…… 대체 우리 정보기관이라는 사람들은 이걸 왜 몰랐습니까? 이렇게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아니, 끼칠 게 확실한 정보를 왜 제가 북한 지도자 입을 통해 들어야 합니까? 특히 외교부, 당신들은 대체 뭐 하는 사람들입니까? 주미 대사관 직원들은 다 눈뜬장님들이에요?”

“대통령님. 말씀드리기 송구스럽지만 이런 걸 예측하는 건 세상 어떤 정보기관이라도 불가능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까지도 북한 총서기 말의 진실 여부가 의심스럽습니다. 혹시 이건 저희 대한민국과 미국 간의 관계를 이간질하기 위한 고도의 기만 공작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조심스럽게 드는 게 솔직한 심정…….”

“아, 시끄럽습니다! 이미 미국 측에서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해 준 사실 아닙니까! 그럼 사실로 받아들이고 우리 대응과 입장을 논의해야 할 시점 아니에요!”

노윤현의 버럭하는 말에 비서관들과 국방부와 외교부 장관, 국정원장, 수석들 전원의 어깨가 순식간에 움츠러들었다.

하지만 그들로서도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게, 불과 이틀 전 한밤중 노윤현 대통령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서 긴급 국무회의를 소집한 후 털어놓은 지금 이 정보가 사실이라면, 그들 전원이 견책 정도가 아니라 당장 자리에서 경질되어도 모자란 것이다.

그리고 다혈질적인 성격대로 그들을 더 다그치려던 노윤현도 뭐라 더 말하려다 여러 감정이 다분히 섞인 한숨만 내쉬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왜 그라고 모르겠는가.

북한이 미국과 영연방 국가들로 이루어진 전 세계적 첩보망,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을 시도했고 그 시도가 이미 상당 부분 진척됐다는 이 기절초풍할 사실을 사전에 예측할 수 있었다면, 그건 이미 분석에 기반한 예측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능력의 예지라 불려야 마땅할 것이다.

당장 노윤현 자신도 이틀 전에 걸려온 북한 김정환 총서기의 전화를 듣자마자 주한 미국 대사와 주한미군 사령관을 청와대로 직접 불러서 캐묻다시피 해서 해당 사실을 교차검증하지 않았다면 터무니없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나마 그 사실확인조차도 오프 더 레코드에, 극비로 유지한다는 전제를 붙여서 그런 논의가 백악관 내에서 오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겠다’ 수준의 간접 확인만 받은 것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청와대와 한국 정부 각료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도대체 북한 측에서 뭘 내걸었기에 백악관, 맥케인 대통령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 미국의 70년 우방이라는 우리 대한민국조차 대중(對中) 첩보 분야에 한정해서만 파이브 아이즈의 준가맹국 지위 이상을 못 넘보고 있는데…….’

여전히 고개도 못 들고 있는 각료들을 앞에 두고 노윤현은 이런 생각에 몰두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광대한 네트워크를 보유했지만, 동시에 가장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이너서클이라는 상반된 평을 동시에 듣고 있는 이 정보공동체의 가입은 신호 정보, 군 정찰능력 자산을 거의 미국에 의존한다는 평을 듣고 있는 대한민국으로서는 감히 언감생심인 경지의 무엇이었다.

‘동북아 균형자로서의 대한민국의 역할’을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정치적 소신으로 세우고, 또 그 소신이 제한적인 국력과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대표되는 기존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라는 벽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뼈저리게 느꼈던 노윤현으로서는 현 상황이 분노 이전에 아리송하기 그지없었다.

주권을 가진 국가의 수장으로서 독자적인 정보 수집 능력이 떨어져서 군사위성 같은 미국의 정찰 자산을 빌리느라, 그리고 서방 정보기관들 이너서클에 어떻게 한 자리 끼워달라고 애걸하는 현 대한민국의 꼴이 답답하지 않은 건 아니다.

또한 우방국들 사이에 무슨 소고기 등급 매기듯 등급을 매겨 ‘너는 2등급, 너는 1등급’ 하는 식으로 철저히 차별대우하는 ‘70년 혈맹’ 미합중국의 전략적이지만, 냉정하기 그지없는 태도에 내심 분기(憤氣)가 불뚝 솟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노윤현은 반미주의자 이전에 현실주의자였고, 다른 모든 문제 이전에 궁금한 건 궁금한 거 아닌가.

‘북한이 90년대부터 전자전 분야에 국가적으로 힘을 기울여오고 있다는 보고는 이미 들은 바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영미권 백인 국가들 전용 멤버쉽 같은 동맹에 어떻게 북한이…… 하다못해 일본도 아니고…… 아니, 잠깐, 그래도 지금 이렇게 우리에게 연락을 해왔다는 건 분명히 그 중간에 뭔가 자기 뜻대로 안 돌아가는 파투가 났다는 이야기다. 그 말인즉슨…….’

“얼마 전에 그, 에드워드 스노든인가 하는 친구가 북한 평양에 망명해서 성명을 발표했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아마도 북한 측에서 그걸 레버리지로 이용해서 뭔가 한 게 아닐까요?”

“화, 확실히 그거라면……!!! 하, 하지만 대통령님, 미국 같은 나라에게, 특히나 지금 병상에 누워 있는 맥케인 같은 골수 보수주의자에게 그 정도의 협박은 오히려 사자의 콧털을 뽑는 역효과입니다. 세상에 협박해서 맺어지는 동맹이라는 건 듣도 보도 못했는데…….”

“그렇지요. 분명히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뭔지는 몰라도, 얼마 전 맥케인이 심장 발작으로 병상에 누워버리는 바람에 저쪽 총서기 플랜에 지장이 생긴 게 분명합니다.”

“그, 그렇겠지요.”

“……그러니 그게 지금 당장 북측에서 제의해 온 긴급 정상회담에 응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으로서는 그것밖에 답이 없다, 이게 노윤현의 결론이었다.

이틀 전, 정환이 이런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한국 측에 알려주면서 또 한 가지 제의했던 것은 북남 공동대응을 위한 긴급 정상회담이었다.

일단 그 자리에서는 국무회의를 거치고(그러니까 미국에 따지고) 난 후에 답을 주겠다고 했지만, 사실 노윤현은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지금은 국가 원수가 와병 중인 미국에 찾아가 봐야 말을 얼버무리기만 할 뿐이라고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을 때는, 문제에 직접 부딪혀서, 사람의 경우에는 핫라인 같은 게 아닌 면대면으로 직접 만나 그 사람의 눈빛과 표정에서 알아내는 게 가장 확실하다 라는 게 노윤현의 오랜 지론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노윤현의 결론에 수석들과 장관들은 일제히 난색을 표했다.

“지금 당장 말씀이십니까? 대통령님? 북측이 무슨 꿍꿍이고 뭘 계획한 건지, 우리 쪽에 뭘 원하는지 전혀 모르는데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정상회담에 임하시는 건 자칫하다가는 휘둘린다는 인상을 언론에 줄 가능성이……. 게다가 국민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할지도 난감합니다. 일단 미국 정보 라인을 뒤집어서라도 뭐든지 알아내고 나서 가부간에 대답을 주시는 것이…….”

“아니, 지금이 언론 걱정할 때입니까? 확실한 건 이렇게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으로 우리들끼리 머리 싸매고 의논해 봐야 나오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이거 아닙니까? 표면적인 이유야 아무거나 저쪽과 협의해서 만드세요! 요즘 한류가 일본에서 그렇게 인기라니 겨울연가 2부 남북 합동 제작 이런 거 따위라도 좋고!”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 박이삼 총재님 말씀이었지, 그러고 보니.’

자신을 정계에 영입했지만, 후에 삼당 합당을 계기로 갈라선 박이삼 전 대통령이 갑자기 생각나는 노윤현이었다.

이렇게 해서 2002년 월드컵 당시 유민중 대통령에 이은 2차 남북 정상회담이, 준비 기간 불과 일주일 만에 급격하게 성사되게 된 것이다.

* * *

“총서기 동지…… 저는 아직도 걱정스럽습네다. 남조선에서 앙심을 품고 미국 측에 우리 공화국의 가입을 훼방 놓으려는 게 사실 가능성이 높지 않갔습네까? 당장 미국 상원 정보위원회에서는 맥케인의 부재를 틈타 꼬투리만 잡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판에…….”

“……김 총리 동무. 내가 뭐 하나 물어보지. 만약 우리 입으로 이 사실을 직접 알려주지 않았다면, 그러니까 우리 공화국이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하려 한다는 사실을 끝까지 감췄다면, 남조선이 정말로 그 사실을 영영 모른 채로 남았을 거라고 생각하나?”

평양, 갑작스러운 정상회담 준비가 성사되고 그 준비에 분주한 와중, 내각 총리 겸 외무상 김용건이 조심스럽게 건넨 질문에 정환이 조용하게 반문했다.

최고지도자의 질문에 김용건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하기야 언제 어떤 식으로든 알기는 알았갔지요. 시기가 늦냐 빠르냐가 문제일 뿐…… 아무리 미국에서 비밀로 했다고 해도 나름 자기들 70년 동맹인 남조선에 끝까지 비밀로 하지는 않았을 겁네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기도 하지. 지금 상원 정보위의 비협조적인 태도로 판단해 보면, 우리 공화국의 가입이 아니꼬운 미국 고위 인사 하나가 슬쩍 남조선 쪽에 정보를 흘려 극렬한 반발을 유도하는 일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그러니 그때 가맹 문턱까지 가서 좌절할 바에야, 차라리 우리가 먼저 알려줘서 파트너쉽으로 반등시키는 게 낫지 않겠나?”

“……과연 선견지명이 돋보이는 말씀입네다만…… 저로서는 동지께서 처음부터 남조선과의 공동 가맹을 염두에 두셨는지 궁금할 뿐입네다.”

“반쯤은. 하지만 원래 계획은 공동체 내 우리 공화국의 위치가 확정되었을 때 우리가 남조선을 끌어주는 방식으로, 그러니까 확실하게 우월적인 위치에서 여러 가지를 얻어내면서 가입하는 거였네. 어차피 남조선 쪽에서 끝까지 훼방 놓으려고 작정하면 미국 입장에서도 그 의견을 끝까지 무시하는 게 불가능하기도 하고…….”

“하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사실상 대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할 수밖에 없지 않갔습네까. 중국 놈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거세게 불어올 바람을 나눠 맞는 효과는 분명히 있갔지만…… 여기까지 왔다가 저쪽에서 ‘역시 우리는 못하겠다’ 식으로 무산이라도 시켜버리면 우리 공화국이 고스란히 모든 역풍을 감당해야 합네다.”

“받아들일 걸세. 분명히.”

정환은 조용하지만 확신이 느껴지는 어투로 그렇게 답했다.

그러한 확신의 배경에는 미국의 패권에 희미한 반감을 느끼면서도 내심으로는 그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서 일정 지분을 한국이 확보하기를 항상 바라왔던 ‘심정적 반미, 현실적 친미주의자’인 노윤현이 현재 한국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큰 영향을 끼쳤지만, 정환은 그 사실을 김용건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이번 일은 정환이 알았던 한 개인의 성향과 사상에 그 성패를 맡기기에는 너무나 리스크가 큰 외교적 도박이었고, 설령 그 개인이 일국의 원수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현재의 노윤현이 정환이 알았던 그 원 역사의 노윤현인지 확신하기도 힘들고 말이다.

그동안 자신이라는 변수로 인해서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데, 한 개인의 사상이나 정치적 소신이 바뀌지 않았을 거라고 확신하는 건 힘들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참 많은 시간이 지났군.’

정환이 이렇게 새삼 그동안 흐른 시간과 그 시간 속에서 늙어가는 자신을 돌이켜보는 와중에도, 정상회담 준비기간(?)인 일주일은 쏜살같이 흘러 어느새 대망의 2차 남북 정상회담의 날이 다가왔다.

정환이 한국의 서울로 내려갔던 지난 2002년과는 달리, 이번에는 한국 대통령 노윤현이 평양으로 올라온다는 차이점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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