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280화 (280/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80화

“……?”

최고지도자의 말에 김용건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이내 정환은 자신도 기우였으면 좋겠다는 듯 고개를 휘휘 젓고 다시 비행장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 그럼 안토노프가 장담한 게 뭔지 슬슬 보러 가볼까. 그 동무 성격상 에어쇼 따위를 보여주겠답시고 나를 여기까지 불렀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그리고 이런 정환의 예측은 사실이었다는 것이 곧 드러났다.

잠시 후, 활주로 옆에 딸린 항공기 정비창에서 본 KA-16의 개발 책임자, 안토노프는 평소와는 다르게 좀처럼 보기 힘든 얼굴, 즉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안토노프 동무, 분명히 지난번 언급한 스텔스 기술 분야에 대해서 진전이 있었던 걸로 보고 받았는데…….”

“오늘 부른 게 바로 그 문제야, 듣자 하니 요즘 양키랑 영국 등등 서방 놈들 이너 서클에 한몫 낑겨보려고 고생한다면서? 성공할지 어떨지는 몰라도 성공하면 그건 총서기 동지 당신의 엄청난 업적이 되겠지. 당신처럼 이번 진전은 당신과 이 국가의 요청을 떠나 내 개인적으로도 업적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성과라고나 할까.”

“……흐음…….”

싱글벙글인 안토노프와는 다르게, 정환은 회의적인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비록 그가 해당 분야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정환은 스텔스 기술이라는 게 항공기를 처음 제작해 본 기술자들이 모여 머리 좀 맞댄다고 결과가 나오는 분야가 결코 아니라는 것쯤은 정환도 잘 알고 있었다.

현존하는 모든 군사기술의 최정점이자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영토 한 토막을 내줄지언정 적국에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기술이 스텔스, 그리고 그 스텔스를 탐지할 레이더 기술 아닌가.

그래서 정환은 그동안 안토노프가 보여준 기적 같은(물론 자신의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지만) 업적에도 불구하고 이런 그의 장담에 쉽사리 기뻐하기 힘들었다.

“동무,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까지 동무가 해준 것만으로도 나는 아주 많이 고마워하고 있어, 그러니 예상외로 그 성과가 좀 빈약해도 나는 충분히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

“아아, 잠시만, 나도 쉽게 믿기 어려운 일인 거 알아, 하지만 일단 끝까지 들어보라고. 혹시 세미(Semi) 스텔스라고 들어봤나. 총서기 동지?

“이름으로만 해석해 보면 절반만 스텔스가 된다는 거 아닌가? 그런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틀린 말은 아니군. 물론 진짜로 전투기 총면적의 절반만 레이더를 반사시킨다는 건 아니고, 세미라는 말 그대로 ‘제한적인’ 스텔스지. 하지만 제한적이라도 어쨌든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건 두말할 나위 없지만.”

“……정말 그런 게 가능한가?”

“뭐 분명히 세미 스텔스 같은 건 업그레이드 몇 개 더 올려놓고 구형 전투기 팔아먹으려는 제작사들 마케팅이자 사기라고 주장하는 의견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총서기 동지. 나도 내 자식 같은 이 녀석이 중국산 전투기한테 맥없이 격추당해서 추락하는 모습은 꿈에서도 안 보고 싶어서 체질에 안 맞는 인맥질, 전화질까지 해가며 여기저기 기술자들을 끌어들이고 해서 최대한 방법을 찾아본 거야. 그러니 일단 들어보라고.”

이윽고 정비창 한가운데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KA 16 한기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안토노프가 시작한 설명의 요지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스텔스란 RCS(Radar cross section), 그러니까 레이더 탐지 면적을 최대한 줄여서 레이더의 탐지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주는 기술을 말한다.

보통 현용 5세대, 그러니까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전투기라고 불리는 기체들은 형상 설계에서부터 이 RCS 값을 줄일 수 있도록 전파 산란이 가능한 형상을 띄며 그 위에 속칭 ‘스텔스 도료’라고 불리는 전파흡수물질(RAM, Rader Absorbing Material)을 덧바른다.

하지만 이런 최첨단 전파흡수물질 도료 제작기술은 완전한 스텔스와 그렇지 않은 것을 가른다고 해도 좋을 만큼 핵심 중의 핵심 기술이라, 현재 북조선의 차기 주력 전투기가 될 KA 16에는 미국과 서방 선진국의 그것보다 몇 세대 뒤떨어지는 기초적인 전파흡수물질만 만들 수 있는 게 현 상황이었다.

물론 안토노프를 대표로 한 김정환 항공기 연구소 기술자들은 이런 한계를 초기부터 염두에 두고 일체형 캐노피, 통짜 수직미익 설계 등을 도입해 형상 스텔스 분야에서나마 최대한 RCS 값을 낮춰보려고 시도했고, 순전히 안토노프를 비롯한 설계진의 경험과 천재성 덕분에 항공역학적 효율성과 스텔스 성능의 조화를 맞추는 데 성공한 기체가 바로 KA - 16이었다.

그러나 안토노프는 이제까지 배우고 만들었던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자신만의 독자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신기술을 적용했는데, 그게 바로 지금 그가 공기흡입구의 팬 블레이드 앞에 달아놓은 물체였다.

“바로 이거지. 내가 설계한 가변식 레이더 블로커(Lader Blocker). 내가 여기 일하고 있지 않고 여전히 러시아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특허 낼 수도 있는 녀석인데 아쉽군.”

“그래서 이게 어떤 방식으로 스텔스, 아니, 그쪽 말에 따르면 세미 스텔스가 된다는…….”

“아, 그 점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말이야, 우선 의자를 먼저 가지고 오라고 해야 하는데.”

“……어째서?”

“서서 들으면 다리가 많이 아플 분량이라서.”

이후로도 한참 안토노프는 정환으로서는 알아듣기 힘든 최신 항공역학계의 트렌드를 주워섬겨 가며 설명에 열을 올렸다.

정환은 안토노프를 존중해서 중간에 말을 끊지 않고 끝까지 들었지만, 하여간에 그 긴 설명을 짧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았다.

원래 전투기에서 RCS 값이 가장 많이 올라가는 곳, 그러니까 적국의 레이더에 가장 많이 반사되는 곳은 중 하나는 기체의 공기흡입구 부위이고, 그 점은 KA 16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자신과 다른 기술자들이 얼마 전에 개발한 독자적인 레이더 블로커를 공기흡입구 바로 앞에 붙이는 방식의 개조를 가하면, RCS 값을 크게 낮춰서 완전한 스텔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제한적인 상황에서의 스텔스는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라는 게 안토노프의 설명이었다.

“제한적인 상황이라면 예를 들어……?”

“영공방어 및 적기 구축(驅逐)을 목표로 한 방어적 제공 작전. 저쪽이 어떤 밴드의 레이더를 사용하는지 피할 수 있도록 전자전 정보를 충실하게 수집 분석해 놨다는 전제지만. 하지만 그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하면 미국 놈들이 열심히 해놨을 게 뻔한 레이더 주파수 분석도 어느 정도 공유받을 테고, 또 그 앨런 머시기 친구 덕분에 최근 군사위성을 싼값에 착실히 쏘아 올리고 있다니 뭐 그거야…… 하지만 한 가지 경고는 해둬야겠군.”

“무슨 경고?”

“방어적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겠지만 전투기의 무기, 그러니까 외부무장 같은 게 상당히 제한될 거야. 미사일 같은 외부무장을 추가하면 이렇게 간신히 줄여놓은 RCS가 다시 올라가 버리니까. 장거리 타격 임무를 위한 외부 연료탱크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즉 제한적인 상황에서의 제한적인 스텔스 작전기란 말이군.”

“그래, 결국 첨단 전투기에서 사람을 태울 캐노피부터 무장, 심지어는 조종사 헬멧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는 레이더 반사 면적을 늘리고 연료를 잡아먹는 짐 덩어리, 내지는 한계라고 볼 수도 있거든.”

“……사실 그 점에 대해서라면 나도 오늘 동무에게 말할 게 있어서 말인데…….”

안토노프의 기나긴 설명이 끝나자 이제 나도 말 좀 하자는 투로 정환이 헛기침을 하며 그에게 몇 장의 서류 뭉치를 내밀었다.

그리고 안토노프가 정환이 내민 손 들린 서류 뭉치를 펼치자 그 안에는 조선인민군 항공군의 인장과 몇몇 북조선 민간 회사의 이름이 적힌 제안서가 들어 있었다.

그 회사의 이름을 알아본 안토노프의 눈썹이 살짝 찌푸려졌다.

분명히 이 회사는 그러니까 몇 년 전에 저 총서기가 주도해서 투자했고 군이 요즘 관심 가진다는 그…….

“타 분야의 기술자들과 협력했다고 하니 반가워서 하는 말인데…… 혹시 사람을 안 태운 전투기, 그러니까 무인기(無人機)의 개발, 내지는 개조에도 도전해 볼 의향이 있나?”

* * *

정환이 이렇게 미국의 반응을 기다리며 홍콩 우산 시위와 자국의 내정에 집중하고 있을 때, 미국, 정확히 말하면 백악관과 의회 상임위는 은밀하지만 그만큼 치열한 난상토론을 거듭하고 있었다.

좋은 소식이라면, 북조선의 파이브 아이즈 가입에 대해서 결사반대의 뜻을 확고히 하고 나섰던 첫 장애물, 영국은 홍콩 우산 시위 발발 이후로 슬그머니 자신들의 뜻을 양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고작해야 체결 후 10여 년이 지난 중영공동선언과 홍콩기본법을 벌써부터 대놓고 무시하다시피 하는 중국은 반드시 견제되어야 하고, 지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영국은 직접 하기 힘드니 가장 최적의 파트너인 북조선을 어느 정도 끌어들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덕이었다.

여기에는 문제의 중영공동선언을 자신의 임기에 발표한 ‘당사자’인 마거릿 대처가 노구를 이끌고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중국 견제 논리를 설파해 준 것도 한몫했다.

-제 자랑스러운 업적인 중영공동선언과 50년간 홍콩의 자치권 보장은 이제 사실상 깨어졌습니다. 폭압적 독재자인 공산당의 손에 무자비하게 짓밟혔죠! 하지만 더더욱 저를 가슴 아프게 하는 것은 이러한 조치가 홍콩 시민들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뿐 아니라, 작지만 그 어느 곳보다 자랑스러운 제 조국, 연합왕국(영국)의 국제적 영향력과 위신을 심각하게 손상시킬 거라는 점입니다.

-벌써부터 중국이 가하는 이러한 무시와 굴욕을 이 영국이 감수해야 한다면, 다음에는 중국인들에게 홍콩이 아니라 다른 영연방의 거점 도시, 맬버른, 토론토, 어쩌면 런던까지 빼앗겨도 그때는 무슨 항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중국 당국이 홍콩의 우산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공개적 암살’ 전술을 사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외신 기자들에 의해서 대서특필 되자, 기존 가맹국 내에서의 반발 여론도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영연방의 정신적 우두머리인 영국이 한 발 뺄 기미를 보이자, 안 그래도 중국 자본의 부동산 시장 잠식 문제와 그로 인한 반중 감정의 고조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캐나다도 반대 전선에서 슬그머니 물러섰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에 의지해도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에 이전부터 견제의 시선을 보내오며 비공식적으로는 대만, 홍콩과도 깊은 관계를 맺어오고 있던 데다 유학생을 가장한 중국 스파이, 중국 자본에의 종속 우려로 시름 하던 호주는 아예 영연방 내 중재인을 자처하며 타협안을 들고나오기까지 했다.

물론, 북조선 같은 독재국가를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시킨다는 건 말도 안 된다는 불만이 일각에서 나오기는 하겠지만, 그 점에 대해서는 타협의 여지가 있다는 게 그들의 의견이었다.

-정식 파이브 아이즈 가맹국은 몰라도 ‘정식 회원국에 한없이 가까운 준회원국’이라는 정도로 공식적인 지위를 신설하고 북조선에 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음…… 확실히 그런 형태라면 다른 동맹국들도 이미 어느 정도 파이브 아이즈 네트워크 내에 발을 들여놓고 있으니 기존 가맹국들의 반발도 무마할 수 있고…….

-북조선이 독재국가인 건 확실하지만 중국도 사실상 독재국가입니다. 싱가포르도 사실상 독재국가지만 저희와 방위협정을 맺고 있지 않습니까? 독재국가 하나를 견제하기 위해 인근의 다른 독재국가를 지원하는 전략은 오래전부터 검증된 데다 합리적입니다. 처음 하는 것도 아니시면서…….

-아니, 뭐 처음 해보는 일이 아닌 건 맞는데…….

그리고 홍콩의 시위가 격렬해지면 격렬해질수록, 그리고 그를 진압하는 중공의 탄압이 도를 넘을수록 이내 이런 가맹국 내 여론이 수렴되고 갈무리되면서, 마침내 하나의 타협안으로 나오게 되었다.

-우리 영국은 ‘파이브 아이즈 플러스 1 (+1)’라는 형식이라면 UKUSA 협정 개정에 대한 반대 의견을 철회하는 바이오.

남은 것은 뜨거운 감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의 신병 인도에 관한 문제였는데 이 점에 있어서는 맥케인의 심경 변화가 주효했다.

처음부터 NSA 등 자국 정보기관이 미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불법적 감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데 내심 불만이 많았던 맥케인이 스노든을 기소하지 않도록 정보기관들과 의회 내 강경파들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맥케인 개인의 심경 변화도 있었겠지만 정환이 은밀히 제시한 일본 인터넷 기간망이라는 당근도 매력적이기 그지없었고, 행정부 내 가입 반대파들의 명분이었던 ‘기존 가맹국들의 반발’의 주축이었던 영국이 은근슬쩍 조건부 찬성파로 돌아서자 맥케인 그 자신도 본격적으로 상원 내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상원에 몸담아오며 정보 - 국방 분야에 몸담아온 그가 의원들을 설득하기 시작하자 그 힘은 막강하기 그지없었다.

-내 존경하는 동료 의원 여러분, 특히 상원 정보 위원회의 위원 여러분, 우리는 진정한 애국이 무엇인지, 진정한 보수의, 나아가 미국인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 볼 시점이 온 거 같습니다.

-하지만 파이브 아이즈는 단순히 반중국 동맹이 아니라 이란, 러시아처럼 전 세계의 적성 국가들에서 자유라는 동맹국 공통의 가치관을 지켜내기 위한 최후의 보루인데 여기 어떻게 북한이 가입할…….

-그렇게 자유를 중히 여기시고 그 자유를 위해 가끔은 타협과 양보를 해야 할 줄 안다는 여러분들이 정작 미국 시민의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상황을 스노든 씨가 폭로했을 때 왜 그를 관타나모에 처넣어야 한다고 길길이 날뛰었는지 이해가 안 가는군요. 사실상 자가당착 아닙니까?

-…….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스노든을 계속 국외에 놔두고 추가적인 폭로를 나불대게 한다면, 그리고 우리가 유럽 내 비(非) 파이브 아이즈 가맹국들 정상을 도청한 사실이 폭로된다면 그 타격이 우리 외교 관계에 미칠 영향은 실로 지대할 겁니다. 린든 B 존슨 대통령이 말했듯이, ‘텐트 밖에서 텐트 안으로 오줌을 싸게 하느니 텐트 안에서 텐트 밖으로 오줌을 싸게 하는 것’이 낫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스노든에게 아무런 처벌을 하지 말자는 말씀입니까?

-스노든은 기소하지 않는다고 구슬려서 국내에 들어오게 한 후, 무슨 미국시민자유연맹 이런 자기가 원하는 시민단체 활동이나 하게 내버려 두십시오. 추가적인 폭로를 나불대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요. 대신 우리는 쓸 만한 동맹 하나를 새로 얻는 겁니다.

이와 같은 문답이 오간 상원 정보위 비공개 브리핑에서 맥케인은 그 특유의 다혈질적인 성정을 유감없이 발휘해가며 그야말로 사자를 연상케 하는 일장 연설로 위원들을 구슬렸다.

뿐만 아니라 지치지도 않고 상원 정보위 소속 위원 한 명 한 명을 만나가며 회유하고 강요하고 설득하는 모습은 과연 70이 한참 넘은 노인의 건강이 염려될 정도였다고 후일 비서실장이 털어놨을 정도였다.

하여간 이러한 여러 사람의 노력과 순수한 행운이 좀 따라준 덕에, 정환도 너무 쉽게 파이브 아이즈 가입이 성사되는 건 아닌가, 지도자로서의 자신도 운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라고 잠깐이나마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흠, 아무래도 내 기우였나 보군. 어쩌면 옛날에 류경 호텔 무너뜨릴 때 김정일이 바로 안 죽었던 건 지금의 액땜이었으려나? 무려 24년 후에나 빚을 돌려받는 건데 그렇다면 기분이 나쁘지는 않군.”

하지만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말이 알려주듯이, 세상사란 알게 모르게 대단히 공평한 면이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행운이 따르면 역시 비슷하게 결정적인 순간에 불운이 따르는 경우도 있다.

아주 드문 경우지만 이 두 경우가 동시에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리고 파이브 아이즈 가입에 있어서 영국의 반발에 직면했다가 홍콩의 우산시위라는 행운을 누린 정환에게도 안타깝지만 이런 법칙은 예외가 아니었다.

“동지! 총서기 동지! 대단히 죄송합네다만 일어나 주십시오!”

“……으음…… 뭐지? 지금 새벽 두 시 아닌가?”

“그, 그건 그렇습네다만…… 대단히 긴급한 소식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깨워 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네다!”

“……! 난 일 없으니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말해보도록.”

모든 일이 잘되어가던 어느 날 밤, 드물게 낙관적인 기분으로 일정을 끝낸 정환은 그날은 조금 일찍 자리에 누웠다.

대처를 통해서 상원 정보위가 맥케인에게 거의 설득당했다는 귀띔을 들었고, 일본은 날이 갈수록 삽질만 반복하는 데다 주일미군들이 방사능 피폭을 이유로 일본 측에 소송까지 제기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나날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밤중에 급하게 처소 문을 두드린 서기실 당직 일꾼의 한 마디는 이런 정환의 느긋한 기분을 단 한 순간에 날려 버렸다.

“방금 미 대사관에서 급보가 왔는데, 미국 대통령 맥케인이 심장발작으로 쓰러졌다고 합네다. 현재 의식불명의 중태 상황인데, 백악관 주치의를 포함해 대다수의 의사들이 사상 최초의 대통령 유고(有故)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답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