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278화 (278/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78화

97장. 행운과 불운

2011년 3월 11일 일어난 도후쿠 대지진은 일본과 일본인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선사해 준 날이었지만, 동시에 아시아 전체와 나아가 전 세계 질서의 판도에도 작지 않은 충격을 가져다줬다는 점에서, 3년 전 일어났던 2008년 쓰촨성 대지진과 비슷했다.

3월 11일 오후 2시에 일본 동북부 미야기 현 센다이에 닥쳐온 리히터 규모 8.9의 지진은 일본 근대지진 관측 역사상 가장 거대한 규모의 지진이었지만, 정작 진짜 큰 피해를 입힌 쪽은 지진으로 발생한 쓰나미에 의한 피해였다.

오랫동안 거의 9할의 건물에 내진 설계가 적용된 센다이의 건축물 대부분은 급작스럽게 닥친 대지진을 견디어 냈지만, 지진 후 바다에서 육지로 닥친 높이 40m짜리 사상 최대 규모 쓰나미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서 시작된 거대한 쓰나미는 이윽고 이번에도 지진을 견뎌냈다고 생각했던 센다이 해변가를 덮쳐서 모든 것을 쓸어갔다.

-맙소사! 집이 파도에 쓸려 내려가고 있습니다! 자동차, 가재도구, 전봇대까지 바닥에서 뽑혀 나와 쓰나미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광경이……!!!

-지금 보시는 것은 일본 센다이 시에서 쓰나미에 쫓기다 높은 빌딩에 고립되어 구조헬기에 SOS 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입니다. 현재 일본 당국은 긴급 재난 사태를 선포하고…….

-믿기 힘든 재앙입니다. 이 재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추산이 불가능할 정도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진 발생 단 열흘여 만에 8,800여 명의 사망자, 12,000여 명이 넘어가는 실종자 집계되었다.

하지만 도호쿠 대지진과 쓰나미가 가져온 진정한 피해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음을, 아니, 오히려 시작이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쓰나미가 해안가의 송전탑을 덮치면서 일대의 전력공급이 모조리 끊겼고, 이어서 발전소와 변전 설비도 함께 쓸려가면서 근처에 위치하고 있던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원자로를 식히던 냉각수의 공급이 중단된 것이다.

그리고, 지진과 공전에 없던 쓰나미의 피해 대응에도 우왕좌왕하던 일본 정부로 하여금 이 사태가 다른 어떤 것보다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본 동북부의 재앙을 시시각각 지켜보고 있던 전 세계 언론들과 북조선과 한국을 비롯한 이웃 국가들, 그리고 미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 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는 좀 다른 의미로, 그러니까 일본이라는 나라를 이전까지와는 좀 다른 시선으로 보도록 만들었다.

첫째는 이 사태를 근본적으로 일으킨 원인인, 하청에 하청에 하청을 겹쳐 비용 절감과 책임 회피를 도모한 민간 전력회사들의 부도덕과 타락, 뻔뻔함이었고, 두 번째는 민영화(와 정경유착)를 통해 그런 전력회사들을 방조한 일본 정부의 심각한 무능과 비효율, 무엇보다 관료주의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던 것이다.

-아니, 지금 이건 구호물자 실은 차량인데 왜 진입 못 하게 막는 거요? 한시가 급한데……!!

-현재 해당 지역은 모든 수송차량의 통행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재해 대응 매뉴얼에 따른 것이니 예외는 없습니다.

-지금 이재민들이 굶고 있습니다! 아이들 중에는 영양실조까지 나타나고 있다고요! 여기 재해용 물자집적소에 비상식량이 그득한데 왜 당장 나눠주지 말라는 거요?

-모든 구호물자는 형평성에 따라 모든 이재민들에게 동량이 배분되어야 합니다. 이재민 전원에게 나눠줄 수 있을 만큼의 양이 준비될 때까지 물자 지급은 없습니다.

-이건 구호 헬기에 공급할 연료 차량이야! 왜 못 지나가게 하는 거야!

-에 또…… 절차를 밟아야 하니 어디 봅시다. 우선 차량이 등록된 지역의 관할 경찰서를 통해 재해 지역 접근 신청 서류를 내십시오. 신청의 승인이 나왔다고요? 그럼 해당 지역의 톨게이트에서 다시 서류 확인과 차량 검수를 받으십시오. 그런 후에 지나가실 수 있습니다. 톨게이트가 통행제한 상황인데 어떻게 검수를 받냐고요? 글쎄요, 그쪽은 제 책임이 아니라 그 후는 모르겠네요.

-여기는 동맹국의 재해 지역 구난을 하러 온 미 해병대 항공대와 파라레스큐 팀이다! 이재민 구출과 물자 보급 작전을 실시하려 하는데 어디부터 어떻게 도와주면 되나? 그 밖에도 주일미군에서는 물자를 적재할 함정을 급파해 도와줄 계획이…….

-여기 총리관저입니다. 주일 미군 사령관 좀 바꿔주십시오. 아, 사령관 님. 현재 센다이의 재해 지역에서 미군의 무허가 비행과 제 멋대로인 물자 배분이 저희 측의 총체적인 재난 구호 계획에 지장을 일으키고 있는데 이에 대해 항의 드리려고 전화 드렸습니다. 네? 지금 같은 상황에는 초법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요? 아니, 이렇게 규정과 절차를 위반하시다가 나중에 언론에서 질타라도 당하면 사령관님이 책임지실 겁니까?

그리고 이러한 재해 지역의 상황, 그리고 일본 정부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은폐와 책임 떠넘기기에만 급급한 실태는 발달된 IT 문물의 수혜에 힘입어 외부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곧 언론들은 일본의 뿌리 깊은 관료주의와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 하는 정치의 특성에 대해 보도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아시아의 가장 강력한 동맹국의 위기를 발 벗고 도와주려던 미국 정가도 의구심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런 미국 정치권과 관료들의 일본에 대한 의심에 결정타를 먹인 것은 정치권의 이전투구와 무관하게 사태 발생 이틀 후부터 빠르게 심각화되고 있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였다.

원자로를 버리느냐 마느냐를 놓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운영했던 하고 있을 무렵이었던 사태 발생 후 이틀, 마침내 예견되었던 폭발이 일어나자, 발전소의 지붕이 날아가면서 연료봉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사태 발생 6일 후, 원자로 주변 80㎞에는 접근 금지 명령과 피난 권고가 떨어졌으며, 각국 대사관은 일본 내 체류 중인 자국민들에게 해당 사태는 역사상 전례가 없었던 심각한 사태라는 경고문이 발송되었다.

그리고 이때 구조 작업에 종사하던 미군을 포함한 상당수의 사람들이 방사능에 노출되었고, 원전 인근 2,200㎞ 지역은 평소의 육천 배가 넘는 방사선량이 검출되었다.

순간적으로 저 멀리 떨어진 도쿄의 방사능 검출량조차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사고지 인근 수돗물에서는 세슘과 요오드가 검출되었다.

그리고 국제 원자력 기구인 IAEA가 앞으로는 일본 정부의 발표가 아닌 독자적으로 방사선량을 측정하겠다는, 사실상 일본 정부에 대한 비난 발표를 공개하자, 그제서야 미국 정부와 각료들, 그리고 의회의 구성원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시 우리가 지금까지 과거의 기억에 젖어서 저팬(Japan)이라는 나라의 역량을 조금 과대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 * *

-미군 합참의장, 무인 정찰기와 U2 정찰기를 후쿠시마에 파견해 재해 지역의 방사능 피해 정보 직접 수집할 것을 선언. 미 해병대 소속 화생방 부대 파견도 검토 중. 전문가들은 이를 미 서부지역에까지 방사능 피해가 닥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서 미국이 일본 측 정보 제공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다는 증거로 판단.

“쯧쯧, 결국 이렇게 되는군. 불난 집 불구경하는 꼴이지만 궁극적으로 자기들 잘못이니 뭐 어쩌겠어.”

“기럼 이걸 미국이 일본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판단해도 될까요? 듣자 하니 주일미군까지 방사능 피해를 입었고 수입한 미제 전투기도 침수되어 피해가 컸다고 하는데…….”

유혜림이 ‘미국, 후쿠시마 제1원전 관리 권한 이양을 일본 정부 측에 압박, 일본 총리 관저, 묵묵부답’이라는 제목의 인터넷 신문기사를 읽던 정환에게 혹시나 하는 표정으로 물었지만 정환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이건 어디까지나 이번 원자력 발전소 사건의 대응에 한정한 이야기야. 아직 미국에 있어서 일본이라는 국가의 전략적 가치는 근본적으로는 그대로라고 봐야지.”

“기럼…….”

“……하지만 이걸로 최소한 파이브 아이즈 가입 아시아 후보국 목록에서 일본은 우리 공화국보다도 훨씬 멀어졌다고 봐야겠군. 이 꼴을 봐, 비상사태에 결단을 내려줘야 할 국가적 리더십이 모양이니. 서로에게 책임 떠넘기기만 급급하잖아.”

“기러고 보니 그렇군요. 이번 일이 재해 사태였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전쟁이었다면…….”

“게다가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발 벗고 도와주려 했던 미국 측에 지속적으로 관련 정보를 은폐했다는 신빙성 높은 정황까지 나오고 있으니…… 그 의심 많은 미 정보 당국과 의회에 신뢰를 사기는 글렀지. ‘비상 상황에 미 - 일 공동 대응 체제가 어떻게 기능할지’ 테스트에서 처참하게 탈락한 셈이니까 말이야.”

“하기야 사태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한심하기는 했디요. 쏘련의 체르노빌 때도 기렇고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민주주의 체제보다는 우리 공화국 같은 체제가 이럴 때에는 더 나은 점이 있는 거 같기도 합네다.”

“지도자가 정신 차리고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지.”

정환은 고개를 주억거리는 유혜림에게 그렇게 말하며 서기실 소파에 걸어가 털썩 주저앉았다.

자신이 예상하고 벌인 일이었지만, 일단 ‘파이브 아이즈 면접 아시아 1차 예선’은 통과했다는 씁쓸하기도 하고 다행스럽기도 한 기묘한 안도감이 들어서였다.

도쿄 G20 회담과 라이스와의 비밀 회동 이후, 정환은 더 아무 설득이나 소식을 보내지 않고 그저 파이브 아이즈(라고 쓰고 미국이라고 읽는다) 측의 반응을 기다렸다.

자신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은 ‘일본 전역 인터넷 백본망에 대한 무제한 접근’이라는 카드를 저쪽에서 어떻게 평가할지 전적으로 기다려야 할 시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겉으로는 그러면서도 NSA의 ‘감정 평가’, 자신들의 국제적 첩보 이너 서클인 파이브 아이즈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들여놓을지 말지에 대한 판단 결과를 촉각을 곤두세우며 주시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동시에 올해 3월에 예정된 이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를 기다렸기 때문이기도 했다.

파이브 아이즈는 앵글로 색슨 - 기독교 영미권 국가들끼리 뭉친 극히 배타적인 첩보 네트워크였지만, 망(網), 네트워크, 거미줄은 뭐든 넓을수록 좋은 법이라 이전부터 파이브 아이즈 + n 하는 식으로 약간의 예외를 허용해 오고 있었다.

그 ‘n’ 국가들은 물론 이전부터의 우방국,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일본, 한국이 주로 꼽혔지만, 중국의 폭주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아시아 국가 하나를 파이브 아이즈 가입 내지는 그에 준하는 지위로 올리자는 일종의 조심스러운 ‘내부 수요’가 어느 정도 없지 않았다는 것을 정환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미국의 최상위 동맹국 카테고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 속에서, 가장 경쟁력 높은 후보였던 일본은 이 사태로 인하여 경쟁이 시작되기도 전에 탈락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지. 아니, 오히려 시작이야. 아무리 미국이 파이브 아이즈를 사실상 주도한다고는 하지만, 애초에 일방적으로 무시할 수 있는 국가들을 동맹국으로 삼은 것도 아니고, 기존 파이브 아이즈 회원국들의 ‘텃세’…… 아니, ‘검증 요구’가 지금부터 시작될 테니까. 가장 처음 총대 메고 나서는 국가는 뭐…… 영국이겠지.”

이런 정환의 예상대로, 미국 NSA 국장이 극비리에 공유한 북조선의 은밀한 ‘딜’ 요구에 가장 먼저 불만을 드러낸 곳은 NSA와 함께 파이브 아이즈의 주축을 이루는 영국의 GCHQ(Government Communications Head Quaters : 정보 통신 본부)였다.

가장 먼저 북조선과 국교를 튼 서방 자유국가 중 하나이자 지금까지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는 유럽 국가인 영국이었지만, 그것과 이번 파이브 아이즈 가입이라는 문제는 완전히 성질이 다르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미끼를 제시해 왔다고 해도, 그리고 최근 중국의 전횡 때문에 파이브 아이즈에 아시아 국가 하나를 들여야 할지도 모른다고 해도, 이제 국교 튼 지 20여 년, 문화도 체제도 기존 가맹국들과는 완전히 다른 북조선을 뭘 믿고 우리 정보 네트워크에 들이나?

……물론 이건 표면상 이유였고 실제로는 파이브 아이즈 내에서 미국 다음가는 2인자이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으로서 목소리를 높이고자 하는 것이었지만, 이러한 영국의 반대 의견은 미 상원 정보위원회만큼이나 큰 장애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빨 빠진 사자’ 운운하는 영국에게 모욕적인 별칭까지 돌아다니는 현시대에도, 타 가맹국들인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그리고 넓게 보면 심지어 미국까지 현재, 혹은 잠재적인 영연방 국가인지라 영국의 의견은 실로 막강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영국이 반대하는 이상 아무리 미국 정보 당국과 백악관이 정환이 제시한 미끼에 상당히 혹했다고 해도 북조선의 파이브 아이즈 가입은 현실에서 크게 멀어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진인사대천명, 호사다마(好事多魔) 등등의 격언에서 알 수 있다시피, 가끔은 어떤 일이 인간의 의사나 능력과는 전혀 무관하게 부정적으로, 혹은 긍정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있다.

유력한 후보국이었던 일본 전역의 데이터를 거래 대상으로 삼아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하려다 기존 가맹국인 영국의 강력한 반대에 직면한 정환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게,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순수한 행운이 따라주었던 것이다.

-97년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약속은 죽었다! 우리 홍콩인들은 중공과, 중공에 찬동하는 홍콩 행정장관 렁춘잉의 폭압적 독재에 저항한다!

-부동산 놀음으로 홍콩 경제를 한번 망쳐놓더니, 보시라이 주석 시대에 들어 홍콩을 본토인들로 염색시키지 못해 안달인가? 뜻 있는 자는 모두 거리로 나오라!

-센트럴(Central : 홍콩의 중심가)을 우리 우산으로 점령해라! 우리 홍콩은 자치권을 보장해주던 영국 치하로 돌아가길 원한다!

홍콩에서의 이변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미국과 전 세계의 시선이 일본 도호쿠 대지진에 쏠린 틈을 타 홍콩의 목줄을 더욱 두껍게 하려는 본토 공산당에 대한 저항이 홍콩 전역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것이다.

원 역사보다 3년이나 빨리 벌어진 홍콩 우산시위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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