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77화
“……!!!!”
“……!?!?!!”
정환의 ‘커밍아웃’에 소리 없는 경악이 소프트뱅크 본사 사옥 내의 작은 밀실을 스치고 지나갔다.
에어컨이 시원하게 돌아가고 있었음에도 그들의 이마에 진땀이 흐르는 것이 정환의 눈에도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2초쯤 후, 사태를 가장 먼저 파악한 CIA 국장이 안색을 바꾸며 고개를 홱 돌려 주변 사람들을 이리저리 훑어보다가 최종적으로는 정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얼굴에 떠오른 표정을 본 정환은 그가 입을 벌리기도 전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짐작한다는 듯 그를 안심시켰다.
“안심하십시오. 이 방 안에서는 어떤 도청장치나 그 밖의 어떤 정보 누설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방은 도감청을 하는 방이지 당하는 방이 아니라서요.”
“하지만 저 친구들은…….”
“저기 저 사람들은 우리 대외정찰총국과 군에서 이 소프트뱅크에 파견 나온 친구들입니다. 그리고 이 방안의 다른 모든 사람들도 이미 이 기밀에 대해서 아는 사람들이고…… 사실 이 방의 존재는 저희 공화국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저와 김용건 총리를 비롯해 한 손가락을 넘을까 말까 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 말한 정환은 아까 전부터 불편한 표정을 지은 채로 옆에 서 있는 손정의, 손 마사요시에게 시선을 돌렸다.
정환의 말에 따르면 ‘자발적’ 협력이라고는 했지만, 이 외환유치죄나 다름없는 초유의 스파이 행위가 적발되었을 경우 일본의 감옥에서 몇 년을 살아야 할지 심란할 손정의로서는 지속적인 투자의 대가로 악마와 악수를 한 거나 다름없는 심정일 게 분명했다.
하여간 정환은 그런 손정의를 격려하는 건지 경고하는 건지 모르게 그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말을 이었다.
“……일본에서는 여기 손 사장을 비롯해 아는 사람이 다섯 명도 안 됩니다. 혹시나 저희 공화국이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미국의 적대국가에 붙거나 해킹을 당하거나, 아니면 군사적으로 점령이라도 당해 미국 측의 정보수집능력이 노출될까 우려하신다면…… 글쎄요, 이 일본 소재 출장소 하나만 없애 버리시면 그 염려의 절반 정도는 하루 만에 접어버리셔도 될 겁니다.”
“믿을 수가 없군, 도무지 믿을 수가 없어……. 이 일이 일본 정부에 알려질 경우 외교적으로 어떤 역풍이 불어닥칠지 상상은 해본 겁니까?”
“……잠깐, 그러니까 총서기님 말은, 파이브 아이즈라는 조약에 소속되어 있다면 설령 이 시설의 존재와 이제껏 북조선 정보당국에서 해온 공작이 일본 측에 알려져도 북조선 단독으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외교적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는 보험이군요?”
“뭐,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손정의 사장이 그동안 하도 불안해해서 안심시켜야 하기도 했고, 당신들 말대로 이 일은 들키면 역풍이 너무 감당 불가능하니까 보험을 들어놔야지. 동맹 좋다는 게 뭡니까,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는 거 아닙니까?”
뻔뻔스럽기까지 한 정환의 말에 몇몇 각료들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지만 라이스는 흥미롭다는 표정 반, 궁금하다는 표정 반으로 재차 물었다.
“즉 우리보고 당신들의 방패막이가 되어달라는 의미인데…… 우리가 왜 그 역할을 해줄 거라고 생각하죠?”
“어차피 일본은 전후 평화 헌법을 개정해서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주일미군, 즉 미국의 심기를 일정 수준 이상 거스를 수 없지. 즉 일본이 당신들에게 항의할 수 있는 상한선은 정해져 있다는 말입니다. 더럽고 치사하지만 우리 북조선한테는 그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역풍도 여섯 명이서 나누어 맞으면 좀 덜 아프겠지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정환이 말했지만 그 말에 담겨 있는 뜻을 알아챈 라이스와 각료들의 표정이 일변했다.
“그러니까 결국은 다시 그 문제로군요, 총서기님. 그걸 위해서 이 모든 것을…….”
“그렇습니다. 이 방을 보고 나니 어떻습니까, 이제 저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시아의 그 어느 나라보다 파이브 아이즈의 신규 가맹국으로서 가치가 있다는 게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정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말하자 NSA 국장을 포함한 정보공동체 수장들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흔쾌히 찬성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조금 전까지의 냉담했던 반응과는 천지 차이가 아닐 수 없었다.
이제 그들의 마음속 리스트에서 ‘북조선의 파이브 아이즈 가입’이라는 제안은 ‘고려할 가치도 없음’ 카테고리에서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도?’ 란으로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1억2천3백만의 인구를 가진 아시아 최선진국이자 과거 버블 경제 시기에는 소련을 제외한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했던 미합중국의 지위를 위협할 뻔했던 국가의 모든 신호 정보를 자신들의 감시망 아래 포함시킬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그리고 그런 그들을 정환은 침착하게, 하지만 회유와 협박을 동시에 섞어 그들을 조금씩 설득했다.
“이런 능력을 보유한 저희 북조선 대외정찰총국의 가입이 파이브 아이즈 정보 공유 네트워크를 얼마나 더 향상시킬 수 있는지 고려해 보시는 걸 권합니다. 일본은 아시아에서 다국적 대기업의 아시아 사무소와 국제기구가 가장 밀집해 있는 곳이지요. 그러한 국가의 인터넷 기간망에 언제든지 액세스 할 수 있다는 건 미합중국의 정보 우위에 막대한 도움이 될 겁니다.”
“…….”
“단순히 일본뿐만이 아닙니다. 일본에 주재하는 각국 대사관들, 주일 러시아 대사관, 주일 중국 대사관, 그리고 그 밖에 많은 대사관에서 오가는 정보들을 수집하기 위해 일일이 도청기를 심을 필요가 없어질 겁니다. 프리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NSA로서는 대단히 큰 진전 아닙니까?”
“……하지만 일본은 4만 명이 넘는 주일미군까지 주둔하고 있는 60년에 걸친 명실상부한 미합중국의 우방국이오.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우방국에 대한 대규모 도감청 행위에 가담하는 건 동맹에 대한 심각한 배신행위…….”
NSA 국장은 이렇게 말을 하다 말고 급하게 입을 다물었지만 정환의 입가에 ‘당신이 할 소리인가?’ 하고 묻는 듯한 미소가 피식 떠오르는 걸 보고는 금방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프리즘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던 NSA의 수장이 이런 말을 하는 건 자가당착에 불과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다.
그리고 NSA 국장이 입을 다물자 CIA 국장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나섰다.
“분명히 총서기님의 제안은 매력적인 제안이기는 하지만, 일본이라는 이미 검증된 동맹에 척을 질 것이 확실한 일을 벌여가면서까지…… 음…… 북조선이라는 아직 완전히 신뢰 관계를 입증하지 못한 동맹을 우리 기밀정보 공유체계에 가입시켜야 할지 모르겠군요.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북조선은 우리의 명백한 적대국가였습니다.”
“그건 일본도 그렇지 않았습니까? 저희가 한국전쟁에서 미군에 입힌 피해가 태평양 전쟁 동안 일본군이 죽인 미군 병사들보다 크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국제관계는 항상 변하는 겁니다. 당장 맥케인 현직 대통령님도 베트콩에 잡혀 고문을 당했지만, 지금 미국과 베트남이 적대국가입니까?”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하하. 국장님. 제가 일본과 단교를 하라거나 우리 공화국과 일본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는 식으로 강요하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단지 일본이 ‘좀 부족한 분야’에서의 협력을 우리 북조선과 좀 더 강화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솔직히, 이 2010년에 팩시밀리가 현역인 나라와 90년도부터 광케이블을 설치한 저희 공화국을 비교하는 건 좀 섭섭한데요. 장담하는데 일본 중의원 의원 절반 정도는 보좌관 도움 없이는 이메일 보내는 것도 힘들 겁니다.”
느물느물한 웃음(에 은근히 일본에 대한 비난)까지 흘리며 정환이 CIA 국장까지 술술 넘기자, 그걸 못마땅한 눈으로 보고 있던 안보 수석보좌관 한 명은 약간 도발적인 어투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정보협력은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다른 분야, 이를테면 경제력은 어떻습니까? 당장 북조선은 대미 무역 비중과 GDP부터 일본에 크게 뒤지지 않습니까? 일본이 환태평양 경제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아시아권에서 신규 가맹국 하나를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을 시켜야 한다면 그건 일본, 아무리 잘 봐줘도 한국이지, 경제적으로도 지역강국을 벗어나지 못한 북조선이라기에는…….”
이렇게 우물대는 보좌관을 정환은 조용히 바라보다가 이내 한마디를 툭 던졌다.
조금 전보다는 가라앉은, 하지만 그래서 대단히 희미하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약간의 냉기가 섞인 말이었다.
“……오히려 그편이 여러분들에게는 좋지 않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총서기님.”
“얼마 전 맥케인 대통령님이 저와의 전화통화에서 그러더군요. 국제관계에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설령 우방이라고 해도 100% 신뢰할 수 있는 우방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도 말해주셨지요. 그렇다면, 먼 미래에 돌아설 생각을 할 가능성이 대단히 적거나 만에 하나라도 돌아섰을 때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나 좀 더 제어하기 쉬운 우방의 편을 들어주는 게 견제와 균형 면에서 현명한 선택 아니겠습니까?”
“……음……!!!”
“당신 말대로 우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성장의 한도가 정해져 있는 나라입니다. GDP는 일본의 4분의 1 수준이고, 인구도 비슷한 사정에 태생적으로 해양 진출을 하기 힘든 위치에 위치해 있습니다. 지도자로서 이런 현실을 인정하는 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더 이상 정환의 말에 아무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저 듣고만 있었다.
방금 전 호기롭게 정환을 도발했던 보좌관도 이제까지 줄곧 호의적으로 자신들을 대하던 정환의 뭐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냉기에 살짝 질려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들 중 특히나 라이스는 흥미로운 얼굴로 정환을 뚫어지게 주시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즉, 먼 미래에라도 미국이 장악한 태평양 제해권에 엄두를 내기 힘든 나라라는 겁니다. 일본은 이미 한 번 시도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했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파이브 아이즈에 가입한다면, 조약 내 미국의 주도권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상대적으로 만만한 국가라는 겁니다. 당신들이 주도하는 파이브 아이즈의 다른 동맹국들과 비슷하게 말입니다. 그런데 일본도 과연 그럴까요?”
“하지만 일본은…….”
“저는 80년대 일본에 유학한 시절이 있습니다. 한창 일본이 미국을 넘는다, 도쿄를 팔아서 미국 땅을 다 사겠다, 뭐다 하고 떠들고 다니던 시절이죠. 물론 그런 시절은 이제 두 번 다시 안 오겠지만, 혹시라도 다시 그런 날이 올 경우 일본의 미국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는 시절 아니었습니까? 우리 북조선은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의도 이전에 불가능에 가깝기도 하고.”
“…….”
다시 작은 밀실 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정환은 여전히 입을 다물고 그들을 조용히 주시하고 있었고, 다른 각료들은 그 눈길을 마주 노려보는 자, 피하는 자가 섞여 있었으며, 콘돌리자 라이스는…… 뭔가 깊은 인상을 받은 눈길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라이스가 먼저 침묵을 깨고 질문을 던졌다.
“잠시 분위기를 식히는 차원에서 다른 질문을 하자면, 거기 총서기님 옆에 서 계시는 분은 그쪽 정보 당국자인가요? 손 마사요시 사장님과 함께 이 이야기를 들을 정도면 저도 얼굴을 알 만한 북조선 요인일 텐데…… 제 기억에는 없어서요.”
“좋은 질문입니다.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는데 사실 이분도 우리 대외정찰총국의 대아시아 정보수집 공작에서 지대한 협력을 하고 있는 분이시죠 주 사장. 나와서 소개해 드리게.”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저는 유니온 주식회사 사장 주성환이라고 합니다.”
처음 들어보는 사명(社名)에 몇몇 각료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라이스 부통령, 그리고 NSA 국장은 눈을 빛내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아시아에서 빠른 속도로 그 가입자를 확장하고 있는 북한산 검색엔진 운영회사이자, 안드로이드라고 불리는 혁신적인 모바일 운영체제를 보유하고 있는 거대 유니콘 기업이라는 정보가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이런 NSA 국장의 반응에 호응하듯 정환이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하나 꺼내 들어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미 정보공동체 수장 여러분, 그리고 무엇보다 국장님. 손 사장의 소프트뱅크는 일본을 넘어 전 세계 800여 개 인터넷 회사에 인터넷 백본망을 제공합니다. 전자 상거래에 야후 재팬 같은 포털 사이트까지…… 하지만 아시다시피 네트워크는 넓으면 넓을수록, 데이터의 볼륨(Volume)은 크면 클수록 좋은 거죠.”
“저희 업계에서는 진리죠, 총서기님. 특히나 이런 정보화 시대에서는.”
“그리고 여기 주성환 사장의 유니온이 개발한 신규 서비스는, 저희 대외정찰총국의 정보전사들과 북조선 민간 IT 일꾼들이 신호 정보 데이터의 양적인 수집을 넘어 질적이고 다변화된 차원의, 좀 더 진보된 데이터 마이닝(Data Mining)에 도전하는 여정의 산물이라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말과 함께 정환이 작동시킨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은 거창한 소개와는 다르게 대단히 간단했다.
초록색 바탕화면에, 여러 창에서 여러 명의 사용자와 동시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 어플리케이션에 대한 소개는 정환이 아닌 주성환이라고 불린 남자가 설명을 시작했다.
“……이건 그냥 인스턴트 메신저 어플리케이션 아니오?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건지…….”
“정확한 서비스명은 차선, 주행용 트랙이라는 뜻의 레인(Lane)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사람과 사람 간의 정보를 빠르게 전달해 주는 고속도로 같은 어플리케이션이 되겠다는 뜻이죠. 올해 중순부터 늦어도 내년 초반에는 저희 유니온에서 일본을 시작으로 아시아 전체에 서비스할 계획입니다.”
* * *
“어디까지나 논의를 해보겠다는 의미에요, 총서기님. 상원 정보위원회의 인준을 받지 못하면 아무리 맥케인 대통령님과 저희 행정부의 지지를 얻어도 북조선의 파이브 아이즈 가입은 무망한 일이라는 걸 잘 아실 거라고 믿어요.”
“하지만 진전은 진전이죠. 안 그렇습니까?”
“……뭐…… 그건…… 확실히 부인할 수 없겠네요. 아무튼 평양까지 편안한 귀국길이 되시기를……? 잠깐, 생각해 보니 그걸 총서기님이 몰랐을 리는 없고…… 처음부터 대통령님이 아니라 상원과 소통하는 저를 노리고……?”
“미국 상원의 의장직은 현직 미국 부통령의 겸직이니까 말입니다. 여기서 보고 들은 게 미국의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회에 잘 설명해 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럼 부통령님도 워싱턴까지 편안한 귀국길이 되시기를.”
그렇게 콘돌리자 라이스는 정환에게 작별인사를 남기고, 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투에 몸을 싣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정환은 속으로 최소한 행정부는 이 아이디어를 지지하는 데 성공하는 거 같다고 내심 한숨을 쉬었다.
아직 의회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하기는 하지만, 마지막에 콘돌리자 라이스가 보여준 반응을 보아하니 맥케인도 그녀가 설득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예감 아닌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대처를 통한 사적 인연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로 정환에게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는 몰라도, 귀국 즉시 맥케인에게 이 사실을 알린 라이스는 자신이 일본에서 알아낸 이 충격적인 공작 사실을 맥케인에게 대단히 호의적으로 전달해 주었다.
-대통령님. 제가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정말 몰랐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보니 그렇게 정신 나간 아이디어는 아닌 거 같습니다. 이걸 들어주는 척이라도 하면 저쪽은 스노든의 입도 알아서 막아줄 테고…….
-하기야 한반도 북쪽에 레이더 기지가 들어서면 러시아에서 미사일이 날아와도 일본이나 알래스카에서 보다 훨씬 빨리 감지할 수 있겠군.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든 건 마찬가지일세.
-상원 정보위원회 말씀이시죠?
-그래, 최근 중국 놈들 하는 짓거리를 감안하면 파이브 아이즈 동맹국을 아시아에 하나 늘린다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게 설득할 수 있어도, 그 국가가 일본이 아닌 다른 국가여야 한다고 설득시키는 게 대단히 힘들다는 건 자네도 잘 알 거 아닌가.
-……역시 그렇군요.
-캐피톨 힐(Capitol Hill : 미국 국회의사당이 위치한 장소)에 돌아다니는 막대한 일본계 자금은 둘째치고서라도, 나를 포함한 그 상임위 노인네들의 젊은 시절은 소니 워크맨이 전 세계를 다 정복하던 시절이야. 아무리 요즘 국운이 많이 기울었다 하더라도 일본은 여전히 일본일세. 도쿄에 갑자기 외계인들의 침공이라도 벌어지지 않고서야…….
그러나, 이런 맥케인의 예언 아닌 예언은 불과 반년 후 대단히 의외의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바로 그다음 해인 2011년 3월, 일본 센다이에서 사상 유례가 없었던 대규모 지진이 일어나고 그 과정에 파괴된 후쿠시마의 원자력 발전소 하나가 동북부 일본을 완전히 초토화시켜 버렸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