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276화 (276/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76화

쉬이이이잉……!!!

-동지. 저희 참매 1호는 방금 전 일본 동경 하네다 공항에 내려섰습네다. 오늘 날씨는 맑음, 바깥 기온은 25도로 쾌적한 가을 날씨입네다. 부디 편안하고 힘찬 과업 수행 길이 되시기를 바랍네다.

“……기분이 어때?”

“뭐가 말씀이세요, 동지?”

“무려 20여 년 만의 일본 도쿄잖아. 나도 그렇지만 유 소좌도 감회가 참 새로울 거 같은데 말이야.”

제트 터빈이 조금씩 감속하는 소리와 함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1호기, 참매 1호(물론 신형으로 교체되기는 했지만)가 G20 정상회의 개최장소인 일본, 도쿄에 내려서자마자 정환이 유혜림에게 묻는 소리였다.

정상회의 장소가 도쿄라는 건 꽤 전부터 머리로 알고 있었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하자 약 20여 년 전, 아직 김정일 밑에서 김일성의 사생아라는 불안한 지위로 고군분투하던 자신의 과거가 바로 어제처럼 떠올랐던 것이다.

비록 당시에는 유학이라는 이름을 빌린 반쯤 망명이었고, 또 한 치 앞이 불안한 최고존엄 후계자 후보 중 한 명으로 일본에 체류 중이던 자신이 지금 북조선의 유일한 절대권력자, 총서기가 되어 다시 돌아왔으니 감회가 새롭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작 질문을 받은 당사자인 유혜림은 비행기에서 경호원들에 둘러싸여 의전용 리무진에 탑승한 후, 도쿄 시내로 나갈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마침내 개최장소인 도쿄 국제 전시장에 가까워져서야 입을 열었다.

“분명히 20년 전에 왔을 때에는 많이 달라졌군요. 공항에서는 몰랐는데 지금 도시에서 보니 확연히 보입네다.”

“어떻게 많이 달라졌는데?”

“공민들이…… 아니, 시민들이 많이 힘이 없어 보인다고 해야 할까요? 예전에 왔을 때에는 기운이 넘치는 정도가 아니라 흥청망청의 도가 지나쳐 넘쳐 흐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는데…….”

“그럴 만도 하지. 그 이후로 20여 년간 불황 아닌 불황이었으니 말이야. 공화국과 남조선이 같은 시간 동안 엄청나게 발전한 것과는 반대지. 이번 회의도 그런 답답한 자국 상황을 타파하려는 노력 중의 하나겠지만…….”

‘최소 10년 이내에는 아무래도 무리’일 거라는 예언 아닌 예언을 정환이 말해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던 찰나, 그들이 탄 의전차량은 이윽고 경호원들과 환영단이 섞인 전시장으로 진입하여 멈추어 섰다.

예상대로, 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언론사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쏟아지고 기자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이 정환에게 집중되었다.

일본에 방문해 주어 참으로 감사하다느니, 총서기께서는 젊은 시절 일본에 유학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일본에서 보고 배운 것이 취임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놀라운 발전과 변화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수 있겠냐느니 하는 일본 언론사들의 인터뷰를 다른 차에 동행한 김용건에게 맡기고 정환은 바로 국제 전시장 안으로 향했다.

일단 오늘은 환영식 및 각국 주요 경제인들과 장관급들이 참석하는 예비행사가 있을 예정이고, 각국 정상들이 주재하는 본 회의는 내일 시작이니 그, 아니, ‘그녀’에게 자신이 장담한 것을 직접 보여줄 시간은 오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전에 양국 외교당국이 비밀리에 약속한 대로 전시장 내 작은 비공개 회의실에 도착하자, 이미 그녀는 도착해 안에서 정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나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콘돌리자 라이스 부통령님.”

“저 역시 만나 뵙게 돼서 반가워요, 김 총서기님. 개인적으로 대처 이사장님께 총서기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재단 설립 직후부터 들어왔답니다. 총서기님이 미합중국과의 관계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개혁 개방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지역 내의 번영과 안정에 기여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에요.”

사무실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여성, 사상 최초의 흑인 여성 부통령인 콘돌리자 라이스는 정환에게 먼저 악수를 건네며 그렇게 말했다.

오늘 이 G20 정상회의 자리에 참석한 존 맥케인 대통령을 따라, 하지만 단순히 통상의 부통령 직무가 아닌 좀 더 은밀하고 비공개적인 사안에서 대통령의 대리인으로 참석한 사람이 바로 그녀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주변에는 NSA와 CIA 국장, 백악관 안보수석 보좌관에 사이버 보안 책임자 등의 주요 각료들이 도끼눈을 뜨고 굳은 표정으로 정환과 그 뒤에 서 있는 몇 안 되는 수행원들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라이스 부통령은 곧바로 사적인 주제를 치워버리고 오늘 이 비공개 회담의 목적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 이전에, 최근 김 총서기님이 보여주신 행동은 이러한…… 미-조 관계에 심각한 악영향을 끼쳤다는 걸 아시겠지요. 자, 그럼 대체 우리를 여기 불러서 보여주시려는 게 뭔지 이제 말씀해 주실 차례가 된 거 같군요.”

“……그리고, 뭔지는 몰라도 어지간히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할 겁니다. 총서기님. 대통령 각하께 총서기님이 파이브 아이즈 가입 운운했던 난센스를 듣고 나서 한참 동안 저희 청력과 총서기님의 판단 능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 심각하게 의심했으니까.”

“먼저, 여기 맥케인 대통령님은 안 계십니까?”

상황이 상황인지라 NSA 국장을 비롯한 각료들이 이렇게 엄포를 놓았지만 정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은 일본 총리와 자유무역협정 체결에 관련한 예비 회담을 하고 계세요. 사안이 사안이기도 하고, 움직이는 곳마다 카메라가 따라다니는 분이니 이 자리에서는 저희가 각하를 대리한다고 보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어차피 제가 정말로 보여드리려고 한 건 이곳에 있는 게 아니라 좀 더 이동해야 하니 눈에 안 띄는 쪽이 좋겠지요. 자, 그럼 부통령님. 그리고 미합중국과 파이브 아이즈 정보 공동체의 수장 여러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런 소개와 함께 정환이 한 발짝 옆으로 물러나자 그의 뒤에 서 있던 일행 중 한 명이 앞으로 나와 콘돌리자 라이스와 각료들에게 살짝 머리를 숙였다.

그리고 그 사람의 얼굴을 본 순간 콘돌리자 라이스의 눈썹이 살짝 위로 치켜 올라갔는데, 그녀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금방 알아봐서였다.

일본에서 가장 거대한 이동통신사 회장이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부호니 이번 G20 회의와 함께 주최된 비즈니스맨 미팅에 따라온 거 같기는 한데, 대체 그가 여기서 왜 튀어나온단 말인가?

그리고 이런 라이스의 의문을 풀어주려는 듯, 그 문제의 반 대머리의 중년 남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입을 열며 나지막하게 그들을 안내했다.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일본에서는 손 마사요시라고 불리지만, 여기 총서기님과 함께 있을 때에는 손정의라는 이름을 선호합니다. 저를 따라오시겠습니까? 제 회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 *

“……지금 우리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요? 대체 이게 무슨 장난놀음…….”

“알렉산더 NSA 국장님. 조급하신 건 이해하겠습니다만 국장님이라면 어떤 가치가 있는지 한눈에 알아보실 만한 것이니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제 다 왔습니다.”

지금 도대체 뭐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는 투로 불평을 늘어놓는 NSA 국장을 달래는 정환의 말대로, 그들은 곧 타고 있는 차량이 멈추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곧 차에서 내리자 그들은 자신들이 도착한 곳은 전시장이 위치한 도쿄만에서 10여㎞ 정도 떨어진 도쿄의 부촌이자 비즈니스 중심지인 미나토 구(港区)의 어느 빌딩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여전히 정환이 자신들을 왜 이곳까지 데려왔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는데, 그가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하자마자 그들은 전시장 밖에 대기하고 있던 선팅이 칠해진 검은 SUV를 타고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 채 이곳까지 15분 정도 이동했던 것이다.

시크릿 서비스 소속 경호원들과 경호차량이 동행하는 것을 정환이 흔쾌히 허용해 주지 않았다면 정신이 나간 북한 지도자가 정상회의를 틈타 미 행정부 요인들을 납치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미스터 손, 손 마사요시 씨의 회사인 소프트뱅크 본사가 있는 곳이로군요. 보여줄 것이 있다는 게 이곳인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도쿄도를 좀 벗어난 곳에 위치한 인근의 중앙 데이터센터입니다만…… 거기서 볼 수 있는 것은 여기서도 볼 수 있으니 다를 건 없지요.”

어딘가 불편한 표정으로 여전히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손정의에게 라이스를 포함한 미국 각료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지하주차장의 눈에 띄지 않는 보안 출입문을 지나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를 탄 그들은 이윽고 소프트 뱅크 본사 사옥의 한 작은 사무실 문 앞에 도착했다.

그들이 도착하자 이미 기다리고 있던 것 같던 세 명의 젊은 남성들이 고개를 꾸벅 숙이며 사무실의 문을 열어주었는데 대강 봐도 소프트뱅크에서 일하는 일본인 회사 직원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리고 일행 중 몇 명, 특히 CIA 국장은 그들이 열어준 문에 달려 있는 전자 자물쇠가 극히 민감한 보안 시설에서나 쓰일 목적으로 특수하게 설계된 자물쇠라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콘돌리자 라이스는 허리에 손을 얹고 방 안을 휘휘 둘러보다 다시 물었다.

“그래서 총서기님,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게 대체 뭐죠?”

그들이 문을 열고 들어간 사무실은 가로로 7m, 세로로 15m 정도 되는 작은 밀실이었다.

한쪽 벽에는 작은 워크스테이션 몇 대가 줄지어 놓여있었으며 반대편 벽에는 거대하고 검은 캐비넷들이 줄줄이 서서 붉고 푸른 빛을 뿜으며 전자신호들을 주고받고 있었고, 천장에는 서버 냉각용으로 쓰이는 듯한 에어컨들이 끊임없이 찬바람을 뿜어내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 같으면 이곳이 당최 뭐 하는 곳인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이고, 그건 콘돌리자 라이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NSA 국장만큼은 이 방이 무슨 곳인지, 그리고 이 안에서 뭘 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자신들도 이 방과 똑같은 시설을 미국 전역의 전화국 건물 안에 심어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환은 이런 그의 짐작을 바로 확인해 주었다.

“소프트뱅크가 일본 전역에서 서비스하는 모든 인터넷 백본(Internet Backbone)망에 액세스할 수 있는 곳입니다. 여기만 있는 건 아니지만…… 하여튼 일본의 소프트뱅크 통신망을 지나는 모든 트래픽을 실시간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거르고 분석해 낼 수 있습니다. 물론 특정 트래픽만 걸러내서 따로 취합할 수도 있고 말입니다.”

“김 총서기님. 그 말은 설마…… 그리고 이 방은…….”

“흠, 역시 국장님은 벌써 눈치채신 듯하군요. 여기 이 캐비넷들 보이십니까? 소프트뱅크 기간망을 지나는 모든 광신호 중 저희에게 필요한 것만 분리해내는 ‘분배기(splitter)’ 역할을 하는 라우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현재 소프트뱅크의 일본 내 점유율을 생각해보면, 사실상 일본의 광섬유 케이블을 지나는 거의 모든 신호를 이 방에서 가져올 수 있다고 봐야죠.”

“…….”

“이 방의 이름은 저희 당 내부 자료에서는 ‘741A호실’이라고 부릅니다. NSA 국장님께는 꽤 익숙한 암호명이실 텐데, 사실을 말하자면 거기서 따온 게 맞습니다. 하지만 당이 아닌 조선인민군 내에서는 좀 더 직접적인 이름으로 부르지요. ‘조선인민군 504 출장소’라고 말입니다.”

“잠깐만요, 총서기님. 그러니까 지금 하시는 말씀은…….”

여기까지 오자 비전문가인 콘돌리자 라이스도 지금 정환이 거래 대상으로 보여준 게 뭔지, 그리고 이 방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물어보기 전에 알고 싶은 게 있었다.

“……대체 몇 년 전부터……?”

“이 방이 만들어진 게 2000년도 초반부터니까 이제 1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러니까 그동안 쭈욱…….”

“네, 이 자리에서 공식적으로 알려드리자면, 저희 조선인민군 정보전사령부와 대외정찰총국 사이버 지도국에서는 지난 10여 년간 일본 내에서 오가는 거의 모든 전화통화, 이메일, 문자 메시지에 팩스까지 모든 신호 정보들을 이 방에서 수집해오고 있었습니다. ……여기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사장의 ‘자발적인’ 협력이 대단히 큰 역할을 해줬지요. 오래전부터 물심양면으로 투자한 보람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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