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70화
정환의 간결하지만 많은 뜻을 담고 있는 말에 장성택은 입을 다물다가 멈춘 것인지 벌리다가 멈춘 것인지 애매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당황은 방금 정환이 선언한 완충국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기러니까 총서기의 이 말은…….’
완충국(Buffer state).
적대적인 관계의 강대국들 사이에서 중간지대 역할을 하는 국가 혹은 지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제정치학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로 대표적인 사례는, 대영제국과 프랑스 식민제국 사이의 완충국이었던 태국,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 사이의 유럽 완충국 역할을 했던 동서독일이 있지만 다른 곳도 아닌 북조선, 자국 지도자의 입에서 타국을 완충국이라고 부르는 사례는 장성택에게도 자못 새롭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제까지 북한, 정확히는 남북한이야말로 지금까지 미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해양세력과 중국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대륙 세력의 분쟁에 끼인 전형적인 완충국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환의 머릿속에서, 중국의 반발을 무릅쓰더라도 연변을 종속시켜야 한다고 처음 생각한 20여 년 전부터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포지션은, 인근 강대국인 중국의 직접적 영향력 투사 역할을 해줄 완충지대였다.
이전에는 북조선이 주한미군으로부터 중국 본토를 보호해 줄 완충국 역할을 했지만, 이제 정환은 그 역할을 떠넘겨야 한다고 방금 장성택에게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존재해야만 한다.
그건 바로…….
“총서기 동지께서는 중국 놈들이 진지하게 우리 공화국을 침공할 수 있다고 믿으시는 게로군요. 기러니까 가능성 정도가 아니라 당장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날 수 있는 현실적인 우려로서 말입네다.”
“그렇게 판단하지 말아야 할 근거라도 있나? 우리 공화국의 혈맹이자 친절한 이웃, 중국 동무들은 근 10년 전부터,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내 취임 직후부터 하루가 다르게 나날이 과격해지고 예측 불허해지고 있네. 그렇다면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그 위험을 공화국 본토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트려 놓을 궁리를 미리 해놓는 게 상식 아니겠나?”
사실을 말하자면 이러한 정환의 생각은 자오쯔양 총서기가 죽고 탱크맨이 그대로 짓밟힌 천안문 사태 때부터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자신이라는 변수가 생기고, 그 변수가 북한이라는 동아시아의 화약고를 정상국가화 시키면서 역사의 흐름이 자신이 아는 방향에서 점차 이탈해 갈 것이라는 점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고작 집권 1년 만에 그러한 변수가 발생하는 것을 보며 정환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덩샤오핑의 어이없는 실각, 미국 뉴욕이 아닌 상하이에서 벌어진 테러, 이어진 아프간 전쟁과 근래의 보시라이 집권에 이르기까지 그 모든 변화를 보면서 정환은 스스로의 그러한 결정에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중국은, 그러니까 현재의 중국은 정환 본인이 알아왔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예측불허하고 위험했다.
중국 공산당이라는, 13억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대륙에서 엄격히 선별된 엘리트들의 집단은 비록 부분적으로는 부패하고 무능해도, 대승적인 흐름에서 보면 중국의 발전을 이끌며 자신들의 국력이 미국과 어느 정도라도 겨룰 수 있는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할 때까지는 인내하는 판단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재는, 끝없이 길어지는 전쟁과 집단지도체제의 실질적 붕괴, 경제적 추락과 포퓰리즘에 물들어 원 역사에서라면 안 했을 결정들을 내리고, 피했을 무리수들을 피하지 않고, 뛰어들지 않았을 전쟁들에 뛰어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광경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정환은 생각했다.
이 중국이라는 용과 우리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장기적인 우방으로 남아 있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이다.
“우리는 중국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친미 성향 국가 중 하나일세. 중국 서쪽의 중동 국가들은 아프간에 주둔한 중국군으로 견제되고, 남쪽의 인도는 친미라기보다는 제3노선에 가까우며, 러시아는 몽골이라는 완충지대를 끼고 있지. 그들이 우리에게 직접 압력을 넣기까지 얼마나 걸릴 거라고 생각하나?”
“……중국의 제1 합병 목표는 우리 공화국이 아니라 저거들과 같은 동포인 바다 건너 대만입네다! 감히 실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리자면, 이 장성택이는…… 총서기 동지께서 지나친 걱정에 사로잡혀 오히려 혈맹의 심기를 건드리고 공화국을 지대한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될 뿐입네다!”
다시 한번 최고존엄에 대한 총살당하고도 남을 불경죄가 저질러졌지만, 장성택은 여기까지 온 이상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했는지 이런 말을 내뱉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리고 정환 역시도 이러한 장성택의 말에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동지, 우리 공화국에게 가장 이상적인 외교 로선은 미국과도 교류하되 친중(親中)이라는 태도를 언제나 견지하는 것입네다! 자국 영토와 소수민족의 분리 독립은 중국 놈들이 가장 경계하는 일인데, 괜히 그들의 역린을 건드리셨다가 화를 초래하기라도 하시면…….”
“물론 중국과 전쟁을 하게 되는 그런 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 가장 좋지. 하지만 그 경우에 우리 공화국은 남조선의 주한미군으로부터 중국 본토를 지키는 완충국, 방파제 역할에서 언제까지나 벗어나지 못하네. 언젠가, 지금은 아니더라도 미국과 중국은 늦건 빠르건 반드시 충돌할 텐데, 그 전장이 우리 공화국이 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하네.”
“그 말씀은…… 설마 미국 놈들에게 완전히 붙으시려는 거이는 아니시갔지요!?! 혹시 주조(駐朝) 미군 같은 거이를 생각하시는 거라면…….”
“아닐세. 하지만 그에 버금가는 걸 마음에 두고는 있지. 완충국이 있건 없건 공화국 혼자서 중국에 맞서는 건 결국 미친 짓이니까 말이야.”
“……!!!!!”
정환이 담담하게, 하지만 동시에 거의 뻔뻔스러울 정도로 태연하게 답하자 장성택은 이제는 기가 차다는 듯 아예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러니까 정환이 그렇듯이 원 역사와 현재 중국의 차이점과 변화를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왜 쓸데없이 북조선보다 수십 배는 거대하고 강한 국가와 결정적 불화를 자초할 일을 벌이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환 역시도 이런 장성택의 입장을 이해한 듯 자신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 대한 보충설명을 해주었다.
“제국 주변의 소국들은 늦든 빠르든 결국 언젠가 운명을 걸고 선택을 해야 하네. 반쯤 종속 수준으로 영구적인 동맹을 맺던가, 아니면 그 제국과 반목하는 다른 제국의 지원을 받아 독립성을 유지하던가.”
“……미제와 캐나다처럼 인접해 있어도 대등한 대우를 받으며 동맹을 존속하는 경우도 있습네다. 이제 우리 공화국도 과거처럼 중국에 벌거지 같은 존재는 결코 아니고, 이 조선과 중국이 그렇게 대등하면서도 탄탄한 관계가 되는 가정은 총서기 동지께서는 한 번도 생각해 보신 적이…….”
“그야 그 두 국가가 같은 앵글로색슨계가 주류 민족을 차지하며, 기독교권에 영어를 주 언어로 쓰는 국가니까 그나마 가능한 거지. 우리와 중국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던가? 게다가 겉으로는 그렇게 보여도 미국과 캐나다는 결코 동등한 관계가 아닐세. GDP의 25%를 미국에 의존하는데 그게 어떻게 대등한 관계인가? 게다가…….”
여기까지 말한 정환은 여전히 납득을 하지 못한 채 불신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성택에게 쐐기를 박듯 결론을 내려주었다.
“……중국 공산당이 이제까지 티베트와 위구르, 그리고 아프간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보게. 어느 날 그들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할 걸세. 합병은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위성국가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든가, 아니면 적대관계로 돌아서든가.”
“…….”
“그래서 우리가 그 역할을 떠넘길 완충지대가 필요하다는 걸세. 완충국, 완충지대라는 건 평화 시에는 몰라도 두 세력 간 균형이 틀어지면 ‘결국 언제든 전쟁터가 될 수 있는 땅’을 돌려 말한 거니까. 그리고 나는 언제가 되었든 우리 공화국을 그런 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최고지도자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하네.”
여기까지 말했음에도 장성택의 표정은 여전히 풀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불만스러워 보이는 그에게, 정환은 자신도 이해한다는 듯 약간 어조를 바꿔 그를 설득했다.
이제까지 장성택이 제기한 의문점은 친중파에, 현실주의자인 그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충분히 할만한 우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장 부부장이 걱정하는 건 충분히 이해하지만, 나 역시 중국 쪽에서 우리에게 양보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지 않는 이상 굳이 싸울 생각은 없네. 이건 어디까지나 보험의 의미일세. 우리 공화국 본토에서 인민해방군과 싸웠다가는, 혹은 미군과의 대리전이 펼쳐졌다가는 그동안 우리가 개혁개방으로 이루어놓은 경제발전의 성과가 싸그리 날아갈 테니 말이야. 그리고 천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면 사실상 우리는 진 거나 다름없네.”
“……교시하시는바 이해하갔습네다.”
“이해했다니 고맙군. 그럼 물러가 보게.”
마지막에는 정환이 장성택을 달래듯이 말했지만, 장성택의 표정에는 여전히 불만의 기미가 남아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개를 숙이며 정환에게 예를 표하고는 몸을 돌려 서기실을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정환은 설득하기 어려울 줄 알았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당장 나부터도 중국과 무력 분쟁을 치르는 최악의 사태는 최대한 피하고 싶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정환의 생각에 이 연변의 완충지대화는 언제고 자신의 임기 안에 반드시 끝내야 하는 일이었다.
이미 미국은 중국을 서서히 주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역대급 금융위기를 겪은 지금도 일본과 한국 같은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장차 태평양의 패권을 놓을 생각은 절대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중국 보시라이 정권의 호전성도 나날이 그 강도를 더해가는 지금, 자칫하다가는 한반도 남부의 주한미군과 인민해방군이 북조선을 대리전의 무대로 삼아 3차 세계대전을 벌일 가능성은 날로 높아져 간다는 것이 정환의 판단이었다.
20년 넘게 노력한 끝에 올라선 신흥국의 리더라지만, 신구(新舊) 두 제국의 세계패권분쟁을 막기에는 너무나 힘이 부족한 북조선의 지도자인 정환으로서는 가급적 그 전장을 북조선 영토에서 다른 곳으로 이격(離隔)시키는 것만이 가장 현실적인 대처법이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런 미중 간 분쟁이 발발했을 경우, 북조선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 물음에 답해야만 했다.
첫째, 미국과 중국 중 어느 편에 설 것이냐.
이건 이미 오래전부터 답이 명확했다.
하지만 두 번째 의문인, ‘미군이 주둔해 있는 것도 아닌데 중국과의 분쟁에서 미국의 도움을 받아낼 수 있는 보장이 어디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정환도 현재로써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모험을 해봐야지. 아니…… 어쩌면 모험이 아니라 미친 도박일지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정환은 서기실 전화기를 들어 대외정찰총국을 연결하고, 이미 오래전부터 최대한 주의를 기울여 감시만 하라고 명령해 놓은 사람에게 접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 계획은 오래전부터, 무려 그의 총서기 취임 직후부터 조금씩이나마 준비해 온 것이지만 드디어 본격적으로 실행할 순간이 되었다고 판단했다.
이제 최고지도자로서 정환의 평생 남길 업적이 될 수도 있지만, 아니면 반대로 이제까지 쌓아놓은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 수도 있는 가장 위험한 다리를 건널 순간이 온 것이다.
* * *
그로부터 몇 달 후 겨울, 미국 메릴랜드 주의 한 도시의 바에서는 한 백인 남성이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누가 봐도 과음하고 있는 게 분명했지만, 바텐더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은 그가 술을 마시는 속도와 표정을 한 번 흘낏 보고는 말릴 생각을 포기해 버렸다.
알코올 중독 같은 이유에서가 아니라, 무언가 크나큰 고민을 잊기 위해 술의 힘을 빌리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아마 실연이나 가족의 죽음 같은 게 아닐까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꺼억---!!!! 퍽킹 아메리카(Fucking America)! 존X 위대한 자유의 나라구만! 역시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나라지! God Bless America! 신이여, 미국을 축복하소서! 크크크…… 왜냐하면 자유와 민주주의, 시민의 권리가 보장되니까…….”
마침내 술잔을 잠시 내려놓은 남자는 얌전하게 생긴 얼굴답지 않게 요란하게 트림까지 하며 욕설을 섞어 알아듣지 못할 말을 중얼거렸다.
사실을 말하자면, 바텐더와 다른 손님들의 짐작은 반만 맞았다.
그, 술에 취한 남성은 크나큰 고뇌를 가슴에 품고 있었지만 그 이유는 실연 같은 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훨씬 더 중대하고 파급력이 큰 것이었다.
문제는 그만큼 남들에게 털어놓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었지만.
“자유! Freedom! 그래, 자유. 시민의 자유, 헌법상의 권리, 민주주의, 그렇지. 그게 중요한 거지. 세계에서 제일 자유로운 나라! 미합중국! 러시아나 중국 같은 깡패 국가들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암, 다르고 말고…… 크흐흐흐흐흐……!!! 하하하하…….”
몇 번이고 고뇌에 휩싸여 주정을 부리며 고개를 도리도리 젓던 남자는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서서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자신의 업무 특성상, 정확히는 직장 특성상 이렇게 술에 만취한 모습을 보이는 건 대단히 위험했다.
자신도 그 점을 고려해서 일부러 평소 다니던 곳에서 수십 킬로미터는 떨어진 외딴 바로 차를 몰고 왔지만, 그럼에도 그, 에드워드는 전혀 안심이 되지 않았다.
에드워드의 ‘직장’은 문자 그대로 세상 모든 술집과 골목과 지하실과 심지어는 집 안방 침실에까지 눈을 두고 있는 곳이니까.
다른 사람 같으면 그가 과대망상증에 빠졌거나 피해망상에 시달린다고 생각했지만, 에드워드만큼은 그게 진실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사실은 그게 바로 그가 지금 겪는 고뇌의 근본적 원인이었다.
그렇게 술에 취한 채로 바 출입구로 걸어가던 그는, 열 걸음도 못 가서 휘청거리며 바닥에 엎어질 뻔했다.
“어어어어어……!! 어이쿠!”
“이크, 조심하십시오. 다치신 데는 없습니까?”
하마터면 바닥에 구를 뻔했던 에드워드는 마침 문 근처에 있던 사람 하나가 팔을 잡아준 덕분에 간신히 중심을 잡고 몸을 곧추세울 수 있었다.
무안해진 그는 이내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을 붙잡아준 사람, 동양계 남성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아, 그, 감사합니다. 끄윽, 내가 좀…… 취해서 그만…….”
“괜찮습니다.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능숙한 영어를 구사해서 씨익 사람 좋게 웃으며 말하는 남성에게 에드워드는 어색하게 마주 웃어주려 했다.
그의 입에서 작은 목소리로 자신의 본명이 나올 때까지는 말이다.
“그럼 이왕 취하신 김에 저랑 몇 잔 더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에드워드 스노든(Edward Snowden)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