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266화 (266/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66화

고려항공의 전 이름은 조선민항(朝鮮民航 CAAK)이다.

88년 김정환 체제 수립, 개혁 개방 후 가장 먼저 민영화된 국영회사 중 하나로서 이름을 바꾼 후 현재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대표하는 용강 국제공항을 허브 공항으로 삼는 국적 항공사로서 15년 넘게 운영을 해오고 있다.

민영화 후 15년간 고려항공은 북조선이 경제성장을 일구어내면서 한국과 중국, 나아가 동북아시아의 물류 거점 중 하나로 발돋움함과 동시에 폭증하는 항공 수요를 독점하다시피 하며 빠르게 아시아의 메이저 항공사로 성장해갔다.

하지만 이러한 뒷 사정상 현재까지도 결코 적지 않은 양의 지분을 당에서, 정확히는 국영펀드 피오니 홀딩스에서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주기적으로 경영에 대한 간섭과 감사를 받아야 하는 고려항공의 오너, 림씨 일가 입장에서는 그것이 못내 불만이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현 고려항공의 창업주이자 현 회장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출신 군관으로, 군 시절 인맥으로 현재의 고려항공을 일구었기에 당과 총서기에 대한 충성심이 누구보다도 돈독한 사람이었지만 고생을 모르고 자란 2세들은 이야기가 달랐다.

예를 들어, 고려항공 회장인 아버지 밑에서 현재 부사장직을 맡고 있는 딸, 고려항공 부사장 림현아가 바로 그런 2세들 중 하나였다.

-우리한테 맡겨놓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저 아래 남조선의 재벌 2세들과 비슷하게, 국가와 당 정책의 수혜를 듬뿍 받아 성장한 기업이 고려항공임에도 불구하고 그녀, 그들은 사사건건 경영에 간섭하는 당과 정부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체 상이 군인이나 유자녀에게 좌석 예매 시 할인 혜택은 왜 주라고 강요한단 말인가.

어째서 돈 안 되는 기체 안전 점검이나 승무원 훈련에 들어가는 예산을 절감하거나 외주를 주면 안 되느냐는 말이다, 그게 21세기에 다 경비 절감과 경쟁력 상승을 위해서인데 말이다.

이 회사는 그들, 림씨 일가의 것이고 사유물이며 그러므로 사익 추구의 자유가 있지 않은가?

지금이 아직도 김정일 시대인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고려항공 대주주 피오니 홀딩스 사장 최승일, 그리고 그 위에서 군림하는 총서기 귀에 이런 불만이 들어가는 날에는 그들의 목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므로, 이러한 불만은 항상 수면 아래에서 맴돌 뿐, 밖으로 표출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나날들도 지나갔다.

드디어 그들 민간 기업들에 햇살이 드는 날이 온 것이다.

“호호, 글쎄 살다 보니 이런 날이 다 오네. 중국 뙤놈들 덕분에 우리 집안이 기 펴고 살게 되었어.”

“림 부사장님. 혹시 뭐 좋은 일이라도 있으시기요? 표정이 참 고우십네다.”

“네깟 것들이 신경 쓸 일 아니니까 아가리 다물고 써비스나 잘해. 어딜 기내 일꾼 따라지가 임원들 과업에…….”

자기도 모르게 좋아서 웃는 림현아에게 일등석 비행안내원(스튜어디스)이 조심스럽게 묻자 림현아는 웃다 말고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엄연히 경영진인 자신의 속내를 부하 일꾼에게 들킨 것 같아서 신경질이 났던 것이다.

림현아의 면박을 들은 비행안내원은 급히 표정이 굳어지며 입을 다물었다.

뿐만 아니라 일등석에서 그녀의 시중을 들던 다른 일꾼들도 전부 사색이 되며 황급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림현아는 사내에서도 그 성격이 독선적이고 지랄 맞은 데다 별의별 트집을 잡아 승무원 지상직 할 것 없이 일꾼들을 못살게 굴기로 ‘고려항공 보위부장’이라는 은밀한 별명까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그녀의 질타에 조금 전보다 한층 더 공손하게 굽실거리는 일꾼들을 눈으로 깔아보는 림현아의 머릿속에는 다른 생각이 가득했다.

‘이제 아바디와 피오니 홀딩스 최승일 사장과의 협상만 잘 성사되면 이제 이 고려항공은 당과의 지분 관계를 완전히 청산하고 완전히 우리 나의, 아니, 림가의 것이 된다. 그러면 당장 필요 없는 인력부터 잘라 버리고 비정규직을 늘려서…….’

림현아가 아까부터 실없이 웃는 원인은 그것이었다.

작년 중국발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당내에서 기업인, 경제 관료 같은 템즈강 줄기들을 중심으로 관치 경제의 탈을 벗고 민간 기업의 자율성을 더 보장해 줘야 한다는 움직임이 대거 일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경애하는 총서기 동지께서도 이러한 일꾼들의 충언에 마음이 움직이셨는지 얼마 전부터 공화국 내 대기업들 대부분의 지분을 일정 정도씩 쥐고 경영에 간섭해 오던 피오니 홀딩스가 기업들과의 지분관계를 청산하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바야흐로 공화국에도 부분적이나마 민영화의 바람이 조금씩 불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림현아가 부사장으로 재직하고 있는 고려항공에도 ‘이제 당은 경영에서 슬슬 손을 떼고 경영진의 자율성을 존중해 줄 테니 써비스 품질과 수익성 올리는 데에나 전념하라’라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아직 최승일 사장이 고집을 부리고 있기는 하지만, 이미 그를 제외한 피오니 홀딩스 임원들은 대부분 배당만 제때 하면 더 신경 쓰고 싶지 않다는 태도라 성사 가능성이 높다는 평양의 소식통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급하게 싱가포르에서 돌아오는 길이 지금이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눙토히 말해 그 정치꾼들이 기업소 경영에 대해서 뭐를 알갔어? 로씨야 같은 인접 국가 노선 덜렁 몇 개 가지고 있던 초가집 고려항공을 오늘의 대궐로 키워낸 것은 우리 림씨 일가야. 기러니 내가, 아니, 우리가 경영에 있어서 전권을 행사하는 게 당연한 일이지! 보자, 이제 당은 구워삶았으니 우리 오라바이(오빠)를 쳐내는 거이 문제인데…… 다른 주주들을 어떻게 구슬리면…….’

“응?”

한창 경영권 분쟁에 머리를 굴리느라 정신이 없던 림현아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앞에 놓인 작은 기내용 트레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트레이 위에는 장거리 비행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승객들에게 제공되는 주전부리, 마카다미아 땅콩 봉지가 놓여 있었다.

봉지가 뜯어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눈썹이 위로 확 솟구쳤다.

“야아! 이리 좀 와봐!”

“네? 네! 아, 알갔습네다, 림 부사장 동…… 아니, 림 부사장님. 무슨 잘못된 거이라도…….”

“잘못된 거??? 너 지금 이거 보고도 뭐이가 잘못된 건지 몰라아아아!!!?!?!?!”

다음 순간, 림현아의 히스테리컬한 하이톤 목소리가 일등석 전체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어찌나 그 목소리가 사납고 날카로웠는지, 이제 막 이륙을 대비해서 눈가리개를 하고 벌써 코를 골고 있던 일부 승객들까지도 화들짝 놀라 단잠에서 깨어날 정도였다.

다른 승객들이 이럴지니, 바로 눈앞에서 림현아의 미친 듯한 질책을 듣는 스튜어디스들은 순식간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부, 부사장님. 무슨 일로 이렇게 열통이 번지셨는지 저희는 도통…… 잘못한 점을 알려주시면 저희가 당장 시정하갔…….”

“뭐, 시정? 시정이라고 했어!?!?!?!? 여기! 눈깔 똑바로 뜨고 제대로 봐! 이 땅콩!”

“네, 네에!”

“손님들에게 써비스할 때는 봉지를 뜯어서 드리는 거라고 교육받았어, 안 받았어! 너 뭐이야! 대체! 이딴 썩어빠진 써비스 정신으로 이 자랑스러운 고려항공 일등석 비행안내원 할 수 있겠어, 없갔어!!!!?!!”

“봉, 봉지 말씀입네까? 하지만 분명히 써비스 매뉴얼에는 이렇게 드리는 거이 맞다고…….”

손가락으로 땅콩 트레이를 삿대질하며 느닷없이 화산 폭발하듯 화를 내는 림현아에게 스튜어디스들은 목소리를 떨면서도 또박또박 대답했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는 이성과 합리라는 게 통할 만한 상태가 아니었다.

사실 딱히 이 상태가 아니라 평상시에도 이성과 합리하고는 거리가 먼 사람이 림현아였지만 말이다.

“……!!!?!?! 지금 이게 골을 벌레가 파먹었나, 어디서 말대꾸야, 말대꾸가! 나 부사장이야, 부사장! 일등석 비행안내원들이 지금 손님, 아니 부사장한테 말대꾸를 해? 너! 내려! 이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당장 기장 불러와! 지금 당장!! 이 비행기 멈추라고 해!”

“부, 부사장님. 이미 이 비행기는 이륙 준비에 들어갔시요. 지금 비행기를 멈추는 거이 현지나 조선이나 항공법 위반입네다. 저희가 잘못한 점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자아비판 할테니 일단 부디 고정하시고…….”

“고오오오저어어엉??? 아아아악!!!! 진짜! 내가! 지금! 고정하게 생겼어! 어어어어!!?!?! 야! 너 뭐야? 어? 너 상관 불러와! 당장 너 위에 책임자, 상관 불러오라고!!?!?!”

이제는 일등석의 모든 승객들뿐만 아니라 다른 좌석에서 이륙 준비하던 비행안내원들까지도 달려와 림현아의 이 광란(狂亂)을 얼어붙은 채로 지켜보고 있었다.

제자리에서 방방 날뛰던 림현아는 이제는 제 분을 못 이겼는지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비행안내원들을 손으로 툭툭 치기 시작했다.

“야! 상관, 네 상관 불러오라고! 사람 말 안 들려! 비행기 멈추게 기장이든 뉘기든 불러오라니까! 안 그러면 내가 너이 전부 이 비행기 창문 밖으로 내던져 버릴…….”

“……말씀 중에 죄송합네다만 거기 녀성 동무.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일단 말로 잘 타이르는 거이 좋지 않갔습네까?”

“……!?!?”

느닷없이 등 뒤에서 끼어든 목소리에 림현아는 갈고리 눈을 하고 고개를 홱 돌렸다.

그곳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세고 전통 조선옷(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노년의 여성이 그녀와 스튜어디스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대략 칠순이 넘어 보임에도 어딘지 기품이 묻어나오는 그 할머니의 뒤편에서는 경호원쯤으로 보이는 정장 차림의 남성 두 명이 낭패라는 표정으로 그녀와 림현아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넌 뭐이야!!!!”

“너…… 너……? 휴우…… 이 동무래 참…….”

누가 봐도 어머니뻘인 자신에게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대를 하는 림현아에게 말문이 막혔는지 백발의 여성은 잠시 황망해하다가 이내 다시 침착을 되찾고 그녀를 달래려고 시도했다.

“남의 사정에 끼어들기는 싫지만 여기 보이는 눈이 한둘이 아닌데 지금 꼴이 과히 좋지 못해서 그래요. 듣자 하니 저 동무들의 상관 같은데 지도일꾼이라면 모름지기 그 격에 맞게 진중히 행동해야 하디 않갔습네까?”

“뭐, 뭐……!?!?”

“……게다가 이 할머니가 날틀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동무가 지금 하려는 일이 공화국 법에 어긋난다는 거이는 잘 압네다. 게다가 막 움직이려는 날틀을 동무 말 한마디에 멈추면 여기 타고 있는 손님들은 전부 일정에 늦을 거이 뻔하디요. 기러니 뭐에 그리 뿔이 났는지 몰라도 일단…….”

“너 대체 뭐 하는 년이야!!?!?! 어! 너 나 알아? 네가 뭔데 이래라저래라…….”

“내가 이래 봬도 당에서 여성 동맹 위원장으로 쥐꼬리만 한 녹이나마 먹고 내 아들도 당에서 일하는 몸이라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어서 나섰어요. 지금 동무의 행동은 이 고려항공뿐만 아니라 우리 공화국 인민 전체의 수치로 보일 수 있다는 걸 자각하기를 바라는 바에요.”

“이 뭐……? 여맹 위원장? 어디 말 뼈다귀도 아닌 여맹 위원장 따라지가 지금 누구한테…… 이 할망구야, 내가 누군지 알고 지금…….”

“동지! 김 위원장 동지! 여기는 저희가 해결하갔으니 잠시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 주시기요. 저, 저기 림 사장 동무…… 잠깐 저희랑 타협의 시간을 좀…….”

인내심의 한계를 넘은 림현아가 백발의 여성에게 손을 올리려는 찰나 그녀의 뒤에서 사태를 지켜보던 정장의 남성들이 급하게 끼어들었다.

이제까지 낭패를 본 표정으로 이 모든 상황을 관망하고만 있던 그들이었지만, 림현아가 정체불명의 노년 여성에게 신체적 위해를 가할 듯하자 그제서야 한 줄기 바람처럼 움직여 그녀를 막아섰다.

림현아를 편들어야 하나 아니면 계속 그냥 두고 보고 있어야 하나 다른 스튜어디스들이 멈칫거렸고 순식간에 남성들에게 가로막힌 림현아는 눈을 부릅떴지만, 남성들은 대체 무슨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인지 땅에 박힌 기둥처럼 꿈쩍하지 않았다.

머리끝까지 열이 올라 자신들의 정강이를 걷어차려는 림현아의 발길질을 가렵지도 않다는 듯 무시하며 그들은 몸을 낮추고 여전히 공손하지만 나직한 어투로 그녀에게만 들리게 말했다.

“림 부사장 동지…… 저기…… 지금 동무가 삿대질하고 계시는 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계시오?”

“몰라아!!! 뭔데!”

“……언행에 주의하시오. 이거이 다 림 부사장 동지의 후환을 우려해서 하는 말이…….”

“야! 너희 대체 뭐야! 너희야말로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 우리 아바디가 뭐 하는 분이신지 아냐고! 우리 아바디가 고려항공 그룹 창업자야, 창업자! 고려항공 림중천 회장!!!! 너거들 따위 말 한마디로 삼수갑산 보낼 수 있는 분이라고! 기러니까 당장 안 비켜! 어! 죽고 싶어!!?!?!?”

“……아무래도 모르는 거이 확실하구만 기래.”

“……말이 통하지 않을 것도 확실하고. 조용히 모셔야 하는 분인데 이거이 골치 아프게 되었어. 어서 본국에 연락하디.”

두 명의 남성들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여전히 발광하며 날뛰는 림현아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제 분을 못 이겨 얼굴까지 시뻘게져 발을 구르는 그녀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은 저 죽을 줄도 모르고 호랑이 코털을 건드리는 동네 똥강아지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이 기내에서는 그들만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방금 전 림현아가 하마터면 따귀를 날릴 뻔한 칠순 여성은, 바로 공화국의 최고 존엄, 경애하는 최고지도자 김정환 총서기 동지의 생모인 김명애 동지였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