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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264화 (264/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64화

“5년……!!! 아니, 5년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이 조금 어려운 목표가 아닐까…….”

“잠깐,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뭐지? 근거를 들어 설명해 주게.”

옆에서 듣고 있던 장성택이 터무니없다는 듯 입을 열기 전, 정환이 먼저 물었다.

그리고 이내 이영박 역시 눈을 빛내면서 자신 있게 설명을 해나가려던 찰나, 정환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미리 경고했다.

“아, 미리 말해두는데 당연하지만 공사를 부실로 진행한다든가 안전 진단을 생략한다든가 하는 건 애초에 논외일세.”

“아…… 아. 물론입니다, 총서기님. 이 이영박이를 뭘로 보시고 그런 말씀을…….”

“아니라면 다행이고. 이 사업의 규모와 중요성을 감안할 때 차후에라도 안전 문제가 생기거나 붕괴, 균열 사고가 일어난다거나 하면 그 책임자는 공화국의 핵심 이익에 해를 끼친 책임을 져야 할걸세. 목을 날려 버릴 거란 말일세. 자네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이 사장?”

여기까지 말한 정환은 진땀을 흘리는 이영박에게 ‘무슨 뜻인지 알지?’ 하는 친근한 표정으로 눈을 찡긋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무시무시했다.

“물론, 여기서 목이 날아간다는 뜻은 직을 내놔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물리적인 의미지. 남조선은 얼마 전부터 사형을 실질적으로 폐지하는 수순에 들어갔다던데 공화국에서는 아직도 반부패수사국 주도로 활발하게 시행 중이라는 건 잘 알 거라 믿네.”

“네, 하하하…… 아, 압니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고 말고요.”

내심 5년이란 기간을 제시했을 때부터 ‘안전 진단이나 감리를 좀 생략하면 4년 반 안에도 가능할지도?’라고 주판알을 굴리던 이영박은 이 순간 그런 생각을 깔끔하게 접었다.

시공 후에 건물 벽에 금이라도 갔다가는 자신이 20여 년 가까이 북에서 쌓아온 모든 기반이 단 한 순간에 바람에 날아가는 모래성처럼 날아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알겠지만 이 4대 건설 과업은 단순히 경기 부양뿐만 아니라 조선로동당의, 아니, 나 총서기 김정환의 이름을 걸고 평양을 중심으로 공화국의 경쟁력 전반을 향상시키는 대사업이야. 대외적으로는 비밀이지만 과거 김정일의 체제도 류경호텔이 무너진 것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망조를 보이기 시작했지. 그러니…….”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정환은 여기까지 말하고 이영박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그런 일이 또 일어나서 공화국을 불안하게 체제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네. 만에 하나라도 일어나면 그 책임이 있는 사람은 지난 김영룡 보위부장의 전철을 따를 것이고, 무슨 말인지 알 거라 믿네.”

“하하…… 하하!! 걱정 마십시오, 총서기님. 이 이영박, 이래 봬도 젊은 시절 근대건설에서부터 떼도적들한테서 회사 금고를 몸을 던져 지키고 이 나이에 이르도록 사업하면서 단 한 번도 공사를 허투루 진행한다거나 하는 삶을 살아온 적이 없습니다. 일설에 저보고 뭐, 근대 건설 시절 경력이 어떻다! 경영인으로서 어떻다! 새애애빨간 거짓말이…….”

“알았네. 알았어. 그럼 다시 아까의 그 가정으로 돌아가서…… 공기를 그렇게 단축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는 이유가 뭔지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게.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근거가 확실해야 할 걸세.”

자기 자랑 듣기 싫다는 듯 정환이 호언장담하는 이영박의 말을 손을 들어 막자 그는 이내 헛기침을 몇 번 하고는 본격적인 자신의 ‘전법’에 대해 털어놓기 시작했다.

“흠. 자자…… 생각해 보십시오, 총서기님. 일반적으로 재개발이라는 게, 사실 부지 닦고 기초 공사 하고 골조 올리고 하는 건 3교대 돌려서 야간에도 작업하고 하면 공기를 얼마든지 단축할 수 있습니다. 제가 워낙 그 방면에 도가 텄기도 하고요.”

“들어서 잘 알고 있네. 사실 그 이유 때문에 부른 거기도 하고.”

“물론 그러면 평양 도심지에서, 공사 규모가 규모니만큼 소음, 야간 광공해 이런 ‘사소한’ 문제가 ‘아주 약간’ 일어나기는 하겠습니다만, 제가 평양 공민들이라면 날이면 날마다 층수를 높혀가는 공화국 발전의 상징을 보며 그쯤이야 참지 못할 이유가 없을 겝니다. 아닙니까, 장 부부장님?”

“뭐…… 말이야 맞는 말이디. 우리 공화국이 미증유의 경제적 국난을 맞았는데 그쯤이야 해결해 줄 수 있갔지. 그렇지 않갔습네까, 동지?”

“계속하게.”

“……그리고 기본계획 수립 및 사업 타당성 조사, 이건 제가 보기에는 감히 추측해 보건데 이미 서기실이랑 조직지도부에서 내부 연구소, 외부 컨설팅 업체 등에 연구 용역 교차로 줘가면서 거의 시공사만 선정하면 될 수준으로 거진 완성시켜 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계획안 보니 한두 해 구상하신 건 아닌 거 같아서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제 말이 맞습니까?”

“……확실히 골이 잘 굴러가는 수완꾼이군.”

이영박의 날카로운 추측에 정환과 장성택은 동시에 내심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이 맞았던 것이다.

“하하하…… 제가 건설판 밥 한두 해 먹은 게 아니라서 말입니다. 여기까지 최소 1년 반 정도는 거저로 단축되는 거지요. 이미 서기실과 조직지도부 선에서 합의가 끝났으니 인가 따내고 이런 거는 그냥 도장만 찍으면 되는 일사천리 아닙니까. 아니, 감히 총서기님께서 하시겠다는데 감히 공화국에서 반대할 사람이 있기는 하겠습니까?”

“흠, 기것도 뭐 맞는 말이구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책임소재가 분명하니 사업 타당성 평가 가지고 차일피일 미룰 일도 없고 말이지! 최고 존엄께서 지시해서 한 건데 누가 감히 책임을 물을 거야? 뒷배가 뒷배인 만큼 이건 나중에 내가 책잡힐 일이 100% 없는 안전한 판이다, 암 그렇고말고!’

얼굴에는 환한 미소를 띠면서도 이영박의 머릿속에 오간 생각이었다.

사실 방금 한 질문도 이런 점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였다.

하여간에 여기까지 장성택이 고개를 끄덕이고 정환이 짧게나마 긍정적인 의사를 보이자 이영박은 이내 용기백배하여 자신이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해 본 최종 단계로 들어갔다.

“자, 그럼 마지막 남은 하나. 사실 남조선에서나 어디에서나 전체 사업 기간에서 제일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게 여기입니다만…….”

“경청하고 있네.”

“추진위원회 측이 현지 주민 조합들이랑 개발 방식 정하고 분양권 나눠주고, 여기가 시간 제일 많이 잡아먹습니다. 조합원들끼리 서로 머리끄덩이 잡아당기고 머리띠 두르고 시위하고, 각목 날아다니고, 성접대, 상품권 오가고…… 흠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남조선이나 그런 나라에서 그렇다는 이야기고…….”

“공화국은 사정이 다르다……라는 말이군. ……이 사장의 인물됨은 과연 보고 받은 대로야. 그러면 이제 아까 전 했던 가정을 제안으로 돌려서 내가 한 번 맞춰보지.”

이제까지 듣기만 하며 짧게 응답해 오던 정환이 이렇게 나오자 장성택은 물론, 이영박의 몸에도 바짝 힘이 들어갔다.

지금부터가 승부처였다.

“지금 이 사장이 지금 내게 원하는 건 자리, 공식적인 지위겠군? 이 혁명적 사업, 4대 과업의 선봉에 서서 진두지휘를 하고 앞장서서 총폭탄이 되고 조직을 기획하고 지휘할 자리 말이야. 내 말이 틀린가?”

“……아니오, 꼭 맞습니다. 총서기님 말씀대로입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순수 공화국 사람도 아니고 남조선 사람을 우리 중앙당 조직에, 그것도 이런 대사업을 앞장서서 이끌어 나갈 지도적 일꾼 지위에 들이는 건 나로서도 부담이 큰데 말이지……. 하여간 그래, 어느 정도의 지위를 원하나?”

정환의 조용한 물음에 서기실 안이 고요해졌다.

사실 정환의 이러한 말은 그야말로 이영박이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내심, 정곡을 찌른 것이었다.

이 서기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아니, 들어서기 훨씬 전부터 이영박이 염두에 두고 정환에게 말을 빙빙 돌려가며 암시한 메시지는 이런 것이었다.

-나에게 당신의 권위를 내세워 일을 처리할 권한과 직위를 달라, 그럼 그 직위를 가지고 불도저처럼 앞장서서 당신의 장애물들을 치우고 원하는 일들을 이루어내 주겠다.

아무리 다스 중공업이 대기업이라도, 뒤에 뒷배가 있느냐 없느냐, 있다면 그 뒷배가 어느 정도 선이냐 하는 것은 사업 진행 속도에 엄청난 차이가 난다.

물론 이영박은 지금도 조선로동당 당원이기는 하지만 그래 봐야 평양시 도당 위원회의 부서 중 하나에, 그것도 중앙당원이 아닌 민간 기업인 자격으로 가입되어 있는 것이다.

민간 기업소 사장으로서는 행사할 수 없는 권한들을 행사하며,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을 무시하게 해주고, 원래는 생략할 수 없는 과정들을 생략하게 해주는 자리.

그것이야말로 이영박이 줄곧 오매불망 바라왔던 힘이자, 진정한 부(富)에 도달하고 그렇게 일군 부를 지킬 열쇠였다.

그리고 지금, 그 열쇠를 자신에게 줄까 말까 시험하는 듯한 정환을 앞에 두고, 이영박은 아무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서기실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앞의 두 사람에게, 물론 정확히는 정환에게 큰절을 올렸다.

“……과연 앉아서 천 리를 내다보시고 사람의 심중을 손바닥 들여다보시듯 하는 백두 절세 위인 총서기님의 혜안에 저 이영박이는 탄복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후진국에 불과했던 이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을 오늘날 여기까지 끌어올린 총서기님의 영도력을 오늘 눈앞에서 직접 보니 북남, 아니, 인류 역사상 어느 지도자에 비교해도 가히 비할 바 없이 탁월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인가?”

“비록 태어난 장소는 남조선이었지만, 총서기님의 영도력에 항상 존경과 경애의 마음을 품어왔던 일개 인민이 감히 한 말씀 올리고자 해서입니다. 저 이영박, 남조선에서 정문영 회장님을 따라와 20년 넘게 북에서 살아오며 마음속에서나마 항상 총서기님과 총서기님의 업적을 충심으로 경애하며 살아왔습니다.”

바로 지금이다.

지금이 중요한 순간이다.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

자신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최고지도자의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땅바닥에 머리를 박은 이영박은 그렇게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이영박은 어린 시절부터 그를 이 자리까지 올려주었던 동물적인 본능, 부와 권력의 심기를 살피고 감지하며 자신 쪽으로 끌어오는 제 육감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지금 눈앞의 자신의 조카뻘 되는 최고 존엄이 그를 시험하고 있으며, 이 시험을 통과하면 이제까지 그가 애타게 바래 왔던 보상, 경제 왕조 성립을 위한 기회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북한 태생도, 조선로동당 성골도 아닌 자신이 이 정도 이권이 돌아오는 자리에 앉기 위해서는 오로지 총서기의 눈에 드는 수밖에는 없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오다 노부나가의 마음에 들기 위해 그의 신발을 품어서 데우며 몸을 낮추고 기회를 기다리지 않았던가.

“정치면에서는 물론이고 경제인의 한 사람으로서도 총서기님의 업적은 감히 저 같은 일개 장사치가 따를 수 없을 정도로 경모(傾慕)했던 바였습니다. 대체 그 누가 오늘날 아마존, 애플의 미래 성장을 예견하고 국부를 들여 투자를 결정할 수 있었겠습니까? 오직 총서기님밖에는 없을 것입니다. 이런 ‘경애하는 수령’을 만난 공화국 인민들이 부럽지 않을 수, 그리고 동시에 노윤현이 같은 근시안적 대기업 혐오자를 대통령으로 앉혀놓은 남조선 인민들이 애달프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부디 이 제게 생애 마지막으로 세계 최고의 투자자이자 영도자 밑에서 봉사할 기회를 주십시오. 이 과업에서 날아올 돌은 저 이영박이가 전부 맞겠습니다. 오물도 제가 뒤집어쓰겠습니다. 어차피 잠시 미미한 피해를 본 우매한 인민들도 시간이 지나면 봉황새의 뜻을 알고 수령과 당에 대한 찬양을 외칠 것입니다. 부디 소용이 다할 때까지 저를 쓰시고, 버려주십시오. 제가 바라는 것은 그것뿐입니다.”

“……일어나게.”

넙죽 엎드려서 읍소하는 이영박을 잠시 내려다보던 정환은(장성택은 대단히 불편한 표정이었지만 자리가 자리인지라 말은 못 꺼내고 있었다) 이내 직접 손을 뻗어 그를 일으켜 세웠다.

황공하다는 듯 조심스레 일어난 이영박의 어깨에 묻은 먼지까지 손수 털어준 정환은 조용히 물었다.

“……4대 과업 중 나머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 공통적 목표인 공화국 전반의 경쟁력 제고에 대해서 얼마나 아나?”

“이미 장성택 부부장님께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경쟁력 제고라 하심은 산업적 측면에서 뿐만이 아니라, 고용, 교육, 의료 같은 사회 인프라 부문의 혁신에서부터 항공이나 지하철 같은 공공기반 시설을 재개발, 확장하여 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21세기에 걸맞은, 효율적이고 스마트한 나라로 리뉴얼 하신다고…….”

“뭐, 일단 명목은 그런 거이고, 그 템즈강 아새끼들이 워낙 소리 소리를 질러대니 당에서도 뭔가, 미제 말로 액숀을 해야 한다 이거디 않갔어. 말이 좋아 혁신, 재개발, 확장이디 지금 남조선도 기렇고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 하는 거이처럼 당에서 쓸데없이 손대는 거 더 잘할 수 있는 민간 기업소들에게 일감으로 넘기고 고용은 유연화, 기러니까 잘 잘라서 붙이고…….”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고용을 창출하고 국가 전반의 경쟁력을 이끌어낼 사업을 당 차원에서 해야 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네. 그리고 4대 과업 중에는 서평양 역세권 개발 사업뿐만 아니라 이번 평양 지하철 3기 확장 공사, 그리고 밑에 세부계획으로 딸린 것까지 합치면 4대 과업 총액 중 절반 가까이가 평양에 관련된 것들이야.”

자신이 천거했지만(가히 대단하다 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영박이 하는 꼴에 은근히 심통을 내며 끼어든 장성택이 하던 말을 정환이 중간에 끊자 장성택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최고지도자가 이미 결정을 내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 결정이란 분명히…….

“말하자면 이 혁명의 수도, 평양을 뉴욕이나 홍콩, 도쿄 물론 남조선 서울에도 못지않은 글로벌 시티, 공화국의 격을 드높이고 기업 하기 좋은 도시, 고부가가치가 창출되는 동북아의 허브로 키워내는 것이 이번 과업의 중요 목표라는 말일세. 그렇다면 그 과업의 선봉이 될 자네가 맡아야 할 직위도 분명하지.”

“……!!!”

“평양직할시 당 위원회 책임비서직이 좋겠군. 남조선식으로 따지면 서울 시장인데, 그 위상이나 권한도 컸으면 컸지 더 작지는 않을 걸세. 받아들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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