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262화 (262/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62화

사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세력의 행동이란 정치적, 군사적 반란이나 체제에 대한 전면적 저항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파업, 혹은 집단적 항명에 가까웠다.

또한 그 항명의 직접적 대상 역시 총서기 정환이 아닌,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 조선로동당이었으며, 그 범위도 김정환 체제에 대한 불만이나 의문이 아니라, 당 중앙위의 경제 노선에 대한 전문 관료들의 저항, 아니, 읍소(泣訴)에 가까웠다.

‘이대로는 도저히 안 되겠다!’라면서 이의를 제기한 그들도 반동으로 몰릴 것을 가장 우려했는지 제일 처음에 이러한 점을 확실히 했다.

-우리 국장, 부부장들은 절대로, 하늘에 맹세코 공화국을 지금까지 이끌어오신 절세의 령도자이자 조선 민족 최고의 위인 총서기 동지의 령도력에 직접적으로 저항하는 반동 행위를 저지르려는 거이 아니오!

-그저 총서기께서 일부 당내의 간신모리배들, 그리고 시대에 뒤떨어져 공화국의 발전을 저해하는 자들을 아끼시어 그분의 본의 아닌 오류를 범하시고 계시는 거 같아 그걸 바로잡아 드리려 목숨을 걸고 나서려는 거이오!

이러한 ‘읍소’를 기획하고 주동한 것은 당 재정경제부와 내각 자원개발성, 대외경제성, 심지어는 국영펀드인 피오니 홀딩스와 조선석유공사 고위 간부들을 중심으로 한 영국 유학파들, 소위 ‘템즈강 줄기’라고 자타칭으로 불리던 경제 엘리트들이었다.

오래전, 아직 공화국이 계획경제 체제 때를 못 벗어났을 적 (당시 한창 짓는 중이었던) 용강 국제공항의 환영식장에서 총서기 동지와 충격의 선후배 미팅을 한 이후로 20여 년 가까이 총서기의 충실한 손발이 되어왔던 그들이 집단항명을 한 데에는 이유가 다 있었다.

그 항명의 표면적인 계기는 최근 닥친 중국 - 미국발 금융 위기였는데, 2008년을 한창 휩쓸고 마침내 2009년이 된 지금까지도 그 위기의 여파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아니, 보시라이가 시진핑을 사실상의 쿠데타로 몰아내고 집권했다는 충격적 사실이 알려지자 안 그래도 불안했던 주식시장은 다시 요동치면서 오히려 줄어들기는커녕 상수(常數)가 되어 전 세계, 특히나 북조선 경제에 큰 타격을 주었던 것이다.

지난 몇 달간 내내 그 불길을 진화하느라 뛰어다니고 날밤을 새우며 고심했던 경제 관료들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던 끝에 당정을 막론하고 마침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오래도록 외면해 왔고, 이대로라면 줄곧 묻고 살았을지도 모르지만 어느 날부터 가시가 되어 마침내 발을 찌르고 기적같이 이룩한 북조선의 국가 경제를 바닥에 구르게 한 그 요인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다시 솟구친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이거이 요즘 공화국 꼴이 말이 아니야. 중국 수출업 하는 동무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업들까지 일제히 와싹 얼어붙었으니…….

-이 와중에 중국 소식 들었지비? 당내에서 책임론이 일어나서 시진핑 서기가 끌려나 듯 사퇴하고 보시라이 주석이 전권을 잡았다고 하질 않간. 근데 보시라이 주석이 뭐 하던 사람인지 알디?

-알고 말고, 그놈의 일농일가인가 해서 인민들 환심 사겠다고 국영은행 가지고 장난치다가 자국 기업들 다 말아먹게 생기지 않았갔어. 그런 양반이 이제 중국 당 전권을 잡았으니 그 옆에 붙어살아야 하는 우리 조선도 앞날이 참…….

-보시라이 주석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디! 말이야 바른 말이디, 그 나라 말아먹은 선심성 포퓰리즘 정책, 물러난 시진핑 서기도 정도에 차이만 있었지 본인도 찬성하지 않았갔어? 그러면 이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뭐냐! 나는 알디!

-뭐인데?

-뭐이긴 뭐야! 뭣도 모르는 정치 일꾼들이 경제 일꾼들 전문 영역에 들어와서 난장을 치다 이런 일이 난 거지비! 자네도 나랑 같은 학교 나왔으니 느끼디 않네? 기런데 우리 조선도 그런 점에서는 중국과 하나 다를 바 없으니 내가 당의 녹을 먹는 사람으로서 답답하지 않을 수…….

-이런……!!! 이 동무 좀 보게, 입조심 좀 하라우! 아무리 요즘 공화국이 예전 공화국이 아니라도 여기는 런던이 아니라 평양이야, 평양! 자네 직위를 생각해. 내각 통계국 부국장쯤 되는 동무가 혀 나불대는 거이를 간수를 못 해서…….

-아니, 내 삼수갑산을 갈 때 가더라도 이 말은 중앙위에 진정을 올려야 하갔어! 눙토히 말해 그 정치국 간부 동지들이 경제 실무에 대해서 뭐이를 알아? 자기자본비율(BIS)을 알아? 기업 재무제표를 볼 줄을 알아? 합리적 기대(Rational expectation) 리론이 뭔지를 들어는 봤냐 이 말이야! 지난번 내가 보고 올리다 꾸벅꾸벅 조는 정치국 상임위원 동지에게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이 뭐하는 양반인지 물어봤더니 뭐라 그랬는 줄 알지비?

-……자기는 경제 관련 위인은 마르크스 동지와 위대한 사회주의 경제 리론가 김일성 주석님밖에 모른다고 했디.

-기래! 그 정치국 윗분들, 총서기 동지 모시는 고위 일꾼들 태반은 아직도 저기 김일성 김정일 장군님 만세, 우리식 자력갱생 경제 운운하던 시절 사람들이라우! 자본주의 경제 리론서 한번 펼쳐본 적 없는 동무들이 총서기 동지 권위를 타고 앉아 우리 공화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하고 있는데, 삼천육백만 인민을 먹여 살리고 국가 경제의 정책적 투쟁이 제대로 돌아갈 리 있갔어?

-…….

사실 이들, ‘템즈강 줄기’라고 불리는 당정에 포진한 경제 관료들이 마거릿 대처 수상의 집권기에 영국에서 자본주의 경제학을 수학하고 돌아온 엘리트들임을 고려하면 이런 자아비판은 늦든 빠르든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계획경제 체제를 타파하고 처음으로 공화국에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이들이 영국에서 수학한 시기는 현 신자유주의의 모범답안, 대처리즘(Thatcherism)이 가장 효험을 보던 시기였으며 그 후 이어진 90년대는 쭈욱 세계화와 저비용 고효율이 새로운 성경처럼 전 세계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이러니 이 영국에서 자본주의 물을 흠뻑 마시고 돌아온 학생들, 템즈강 줄기 관료들과 자본주의 도입 초기 북조선 민간기업인들이 저세율, 규제 완화, 작은 정부와 민영화를 지향하는 경제적 자유주의의 신봉자들이 된 것은 당연지사였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낯선 영국에서의 국비 유학 끝에 돌아온 그리운 고향,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경제는 국가자본주의, 관료와 정부가 경제정책을 일일이 결정하는 관치경제였지만 그 당시에는 별 불만이 나오지 않았다.

19세기부터 산업혁명을 이끌어온 영국과 당시 막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 20여 년 전 북조선의 사정이 같을 리도 만무하고 무엇보다 그 당시 그들의 당내 지위는 ‘젊고 똑똑하지만 아직 새파란 풋내기’ 정도였으니 불만이 있어도 일단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흘러 당시 풋내기 당원에 불과했던 이들은 국장급, 부부장급 관료가, 젊음과 패기, 아이디어밖에 없었던 청년 사업가들은 회장과 사장이 되어 조직 내외에서 최소한 중진 내지는 이미 수장급으로 성장해 발언권이 천양지차로 달라졌다.

물론 조선로동당에는 김일성 - 김정일 시절부터 당에 봉사해 온 노(老) 간부들이 아직 상당수 남아 있던 데다 개혁은 원해도 템즈강 줄기에 찬동하지 않는 자들도 또 상당수인지라 그들은 그저 숨을 죽이고 자신이 속한 조직 내에서 지위를 쌓고 세력을 모으는 데 고심한 지 어언 20여 년을 보내왔다.

그리고 이렇게 성장한 그들은 음으로 양으로 비전(내지는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고 뭉쳐서 계파를 이룬 끝에 마침내 세상 바뀌었는데, 자기들은 바뀌지 못한 정치국의 고위 간부들, 자기들끼리 경멸조로 부르는 말로는 ‘김정일이의 화석들’에 대한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작년 중국발 금융 위기가 계기가 되어 이제 더 이상은 이대로 가면 안 된다, 더 이상 관치 경제가 아니라 당은 민간에 경제 권력을 넘겨줘야 한다는 대의명분이 일어섰다.

현 시국에 대한 한탄이자 기성 주류 세력과 체제에 대한 저항이었으며, 신념이었고 동시에 탐욕이었으며, 나름의 애국심과 사심(私心)이 뒤섞인 발로가 바로 정환에게 전해진 읍소의 정체였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뭐냐, 우리 공화국의 경제는 전형적인 관치 경제, 내지는 국가자본주의! 민간 기업의 창의성과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이익 추구, 그로 인한 시장의 자율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입네다!

-옳소! 지금까지야 총서기 동지의 높으신 경제적 령도 덕에 별 눈에 띄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이렇게 계속 가다가는 언젠가 중국 놈들 뒤따라서 경제적으로 골로 갈 거이야! 내 말이 틀리나 어디 두고 보시오!

-총서기 동지! 부디 우리의 이런 절규를 들어주시라요! 이거이 다 궁극적으로 당의 령도와 체제, 나아가 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더욱 빛내게 하기 위한 우리들의 자아비판이고, 투쟁입네다!

이렇게 번진 투쟁의 불길은 처음에는 항명이 되었다가 이내 파업이 되고, 파업은 마침내 서기실에 올리는 진정서가 되어 당, 정, 민까지 고위 경제 간부들 300여 명의 서명과 함께 정환의 책상 앞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겁대가리 없는 탄원을 마주한 정환과 예전 김정일 시절과 현 김정환 체제 시절의 미묘한 간격 사이에 놓여 있는 최고위 간부 장성택은 밀담을 나누었다.

“일단, 이 동무들의 탄원을 받아들이시는 거이, 최소한 응답을 하는 척이라도 하시는 거이 좋지 않갔습네까, 이 동무들이 총서기 동지께 역심을 품어서도 아니고 다 잘되자고 하는 거인데…….”

“동의하네, 장 부부장. 어차피 나도 이번 금융위기가 아니더라도 언제까지나 당에서 경제를 다 틀어쥐고 해나갈 수 없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오고 있었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미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고 있고 내수, 수출, 기업, 가계 어느 쪽이나 경제적 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네. 예나 지금이나 당의 영도에 불만을 가지는 1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이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때야.”

“이 템즈강 줄기 동무들은 동지의 손발이자 체제를 보위하는 당의 신경줄입네다. 이 동무들의 불만을 잠재우면서 현 경제 위기를 타파하고 공화국의 경쟁력을 일신하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없던 과감한 인선이 이루어져야 합네다만, 당 내부 인물이 안 되어서는 자명한 일이디요. 동지께서 이들의 불만을 듣고 반영한다는 액숀이 필요합네다.”

“누구 염두에 둔 인물이라도 있나?”

“이러니저러니 해도 민간의 기업 일꾼이 좋디 않갔습네까. 단지 이 동무에게 어느 정도의 권한을 부여해주실지는 동지께서 영단을 내려주셔야 합네다만…….”

* * *

“들어오라고 하게. 그동안 이 동무에 대해서 여러 좋은 말을 많이 들었는데 이제 직접 면을 보고 싶군.”

“받들갔습네다, ……들어오라우, 동무. 공화국의 최고 존엄께서 기다리고 계시네.”

2009년 초, 아직 겨울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어느 날 정환은 서기실에서 한 사람을 만나기로 했다.

그의 하명이 떨어지자 장성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열고 나가 서기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추천 후보’를 불렀다.

하지만 그렇게 밖으로 종종걸음을 치는 장성택을 지켜보는 정환의 눈빛은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밖에서 그와의 접견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 장성택에게는 말만 들었다고 둘러댔지만 정환은 장성택이 추천한 ‘후보’가 누구인지 이미 상세하게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아니, 보고서로 접해서 이름과 경력을 대강 알고 있다 정도가 아니라 그를 천거한 장성택보다도 그가 누구이며,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인생 항로를 걸어왔으며 그 와중에 삶의 가치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까지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는 그가 이곳, 200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이 아닌 전혀 다른 곳에서 인생을 보냈을 때 무엇을 했고 그 일이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또한 어떤 파국을 맞았는지까지도 말이다.

이내 문이 열리며 말끔하게 잘 차려입은 수트가 인상적인, 쥐눈에 반 대머리를 한 중년 남성이 서기실로 조심스레 걸어들어왔다.

그리고 자신을 담담하게 주시하는 정환을 보자마자 그는 돌아가신 부모님이 살아 돌아온 양 머리를 땅에 닿도록 깊게 숙이면서 공손하게 스스로를 소개했다.

“만나 뵙게 돼서 참으로 영광입니다, 경애하는 최고 지도자, 총서기 동…….”

“그냥 총서기님이라고 하게, 요즘은 다들 동지, 동무라는 말이 당내에서조차 사라져가는 추세라서 말이야. 특히 동무 같은 기업인들은 그런 호칭을 더더욱 안 좋아한다고 들었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지요?”

초면에 나름대로 최대한 예우를 갖추는 자신에게 정작 공화국의 최고 지도자인 정환이 초면에 심드렁한 태클을 걸자 들어온 사람은 인사를 하다 말고 급격하게 당황한 듯했다.

사실 정환 입장에서 솔직히 이유를 말하자면, 자신도 어울리지도 않는 동지 운운하는 말이 ‘이 사람’에게 입에서 나오는 걸 듣고 앉아 있다가는 두드러기가 날 거 같아서였다.

하지만 정작 들어온 문제의 남성은 하늘 같은 총서기가 초면부터 자신을 안 좋게 봤다고 생각했는지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부인했다.

“제가 젊었을 때부터 건설판 밥을 먹은 사람이라 동무, 동지, 이런 호칭을 굉~장히 친근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제가 고 정문영 회장님을 따라 남조선에서 올라온 사람이라 당성(黨性)이 투철하지 못하다는 둥 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사회주의 리념을 이해 못 하고 돈만 좋아하는 가짜 당원이라는 둥 온갖 음해에 시달렸는데 동지께서는 그런 오해가 없으시기를…….”

“그게 아니라 내가 불편해서 그렇지. 이 자리는 사석이니 그냥 편하게 터놓고 님이라고 하게. 나도 동무를 그냥 이(李) 사장이라 부르지.”

“아! 그러셨군요, 제가 그런 것도 모르고…… 그럼 말씀하신 대로 감히 총서기님이라 불러도 된다고 허락하신 줄로 알겠습니다. 이거 그야말로 금생에 다시 없을 영광입니다, 하하…….”

정환이 그렇게 부정하며 주문하자 중년 남성은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바로 안색을 바꿔 능수능란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신을 소개했다.

“다스(DAS) 중공업 사장 이영박이라고 합니다. 총서기님을 이렇게 뵙게 되어 참으로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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