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애하는 수령동지-261화 (261/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61화

“당했군, 어쩐지 뭔가 이상하더라니.”

“네? 동지, 그거이 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말 그대로야. 직접 눈앞에서 보고도 눈치를 못 채다니 나도 이제 늙기 시작하는 건가?”

주중 대사관과 김용건 총리로부터 전해진 급보로 중국의 소식을 들었을 때 정환이 처음 보인 반응은 5초 동안의 경악, 5초 동안의 불신, 그리고 5초 동안 쓴웃음을 짓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믿기 힘들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아귀가 들어맞았다.

옆을 돌아보니 유혜림 역시도 자신과 비슷하게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두 손으로 가리고 있었다.

“동지,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유 소좌, 생각해 봐. 무경들이 테러를 예방한답시고 베이징 요충지를 다 장악하고 있었지. 그리고 그 무경들은 보시라이가 장악한 인민해방군 소속이고. 인민들의 소요를 진압한답시고 외곽에 기갑 부대까지 대기시켜 놓고 있었으니 큰 소리 안 나게 조용히 거사를 도모하기 딱 좋은 환경이었겠군.”

“하지만 그래도 올림픽 개막식 연설을 시진핑 서기가 했다는 말은 계파 간 양보와 타협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는…….”

“내 추측이지만, 아마 그게 보시라이의 노림수였겠지. 왜 미국 마피아들도 쓰는 수법이잖아. 상대를 암살하기 전에 먼저 안심시키는 수법 말이야. 아마 시진핑은 개막식에서 전 인민들 앞에 얼굴을 내보인 자신을 그렇게 빨리 칠 거라고는 예상을 못 했겠지만…… 듣던 대로 보통 미친놈이 아니군.”

베이징 올림픽이 끝난 지 고작 한 달여 만에 벌어진 이 일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유혜림이 가만히 서 있는 동안에도, 정환은 머릿속으로 이 초유의 사태를 곱씹어보고 있었다.

확실히 근래 중국의 여론은 비록 언론 통제 때문에 밖으로 표출되지는 못해도 미친 듯이 들끓고 있던 상태였다.

빈 라덴을 사형시켰는데도 알 카에다는 더욱 날뛰고, 높아져 가는 빈부 격차와 실업율, 둔화되는 경기 성장률로 인하여 뒷골목에는 아프간산 마약이 흐르며 부동산은 폭락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앉았다.

중국 공산당 관료들이 아무리 사회주의의 탈을 쓴 현대판 탐관오리들이라고 해도, 이쯤에서 점점 거칠어지는 민심을 달래기 위한 희생양이 하나 필요했을 것이다.

그리고 보시라이와 시진핑, 두 최고 권력자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그 책임을 떠밀며 암투를 벌이다 결국 방심한 시진핑이 져서 물러나고야 만 것이다.

정환은 생각을 멈추고 자신도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씹고 있는 김용건에게 물었다.

“……시진핑 총서기는 어떻게 되었나?”

“죽디는 않은 걸로 보이고……. 베이징 친청(秦城) 교도소에 갇혀 있는 걸로 보입네다.”

“정치적으로는 완전히 실각했다는 이야기로군. 그럼 이제 남은 건 미국인데…….”

권력다툼에서 패한 공산당 고위 간부들의 전용 감옥에 갇혀 있다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목숨 보전만 성공했다는 이야기인데, 중국 최고 권력자가 말 그대로 단 하루아침에 뒤바뀐 셈이니 유동성이 최고에 달한 주식 시장은 더더욱 출렁일 것이다.

지금도 중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북조선 주식 시장은 더더욱 그럴 것이고 말이다.

게다가 경제적인 면 외에도 곧 이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 미칠 파장, 특히 눈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 미칠 파장을 생각하면 정환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팠다.

이미 일주일쯤 전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의 뒤를 따라 부동산 시장이 붕괴하기 시작한 미국의 이번 대선은 현 집권세력인 공화당과 현직 맥케인 대통령에게 그야말로 역대급 악재였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 맥케인은 리먼 브라더스에 이어 파산 위기에 직면한 AIG 보험사에 구제금융을 줄 것임을 선언했고 상대인 민주당은 그걸로는 부족하다며 전면적인 금융개혁을 들고나와 맥케인과 공화당을 강렬히 비난하는 게 현 상황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얼마 전 당내 경선에서 이변을 일으키고 민주당의 후보로 지명된 일리노이 주 초선 상원의원, 버락 오바마의 이런 공세가 미국 유권자들에게 상당 부분 먹혀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현 상황을 보십시오! 월 스트리트의 거대 은행들! CDO 같은 위험한 파생금융 상품을 팔아 열심히 일한 정직한 미국인들의 퇴직금과 연금을 날려 버린 금융가의 위선자들! 공화당은 바로 이런 자들과 한 몸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의 선거 자금, 캠페인 펀드가 어디서 나오는지 한 번 보십시오! 현 맥케인 대통령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러분! 이제 변화의 시기가 도래했습니다! 우리는 바꿔야 하고, 바뀌어야 합니다! 저 버락 오바마가 바꿀 것입니다!

‘아니, 이 양반은 절대 안 돼. 지금 중국에 보시라이 같은 권력욕에 미친 확장주의자가 정권을 잡게 생긴 판에 전략적 무시니 뭐니 하면서 미국까지 아시아에서 손을 떼기 시작하면 이 공화국과 남조선은 거의 맨몸으로 중국의 압력에 맞서야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맥케인 정부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운 사상 첫 유색인종 대통령에 도전자 버락 오바마는 당내 경선을 일찌감치 이겨 버리고 벌써부터 무서운 기세를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자신과 대처가 끼어들어 어떻게 결과에 영향을 끼쳐보기 힘들 정도로 예측 불허하게 돌아가서 정환조차도 이번에는 승리를 낙관하기 힘들 정도로.

‘이렇게 불리할 때 방법은 하나지. 양비론으로 몰고 가야 돼. 흑인 표는 콘돌리자 라이스가 여전히 부통령 후보니까 어떻게 분산이 될 거고…… 동수만 맞춰도 맥케인은 현직 대통령이니 프리미엄이 붙거든.’

“지금 피오니 홀딩스 미국지사 연락 가능하지?”

“네, 홀딩스뿐만 아니라 재단 쪽에서도 동지의 연락을 기다리고 계십네다.”

“뉴욕 사무소 명의로 지금 즉시 PAC(Political Action Committee)를 결성하라고 이르게. 대처 소장에게는 월 스트리트를 돌면서 대형 은행들이 우리가 결성한 팩(PAC)과 함께해 달라고 설득을 하도록 연락하고. 다 설득할 필요는 없네, JP 모건, 골드만삭스, 모건 스탠리 등 지금 최고로 욕먹고 있는 은행들 중에서 네임밸류 있는 곳 하나만 끌어들여도 성공이야.”

“받들갔습네다. 맥케인 대통령 캠프 측이 요즘 자금난으로 선거 TV 광고가 줄어들고 있다던데, 그쪽에 자금을 지원하실 계획이신지…….”

“아니, 반대편. 오바마한테 지원할 거야.”

“……네?”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잘 들어보게.”

* * *

팩(PAC)이란 무엇인가?

팩, PAC(Political Action Committee : 정치활동위원회)은 미국만의 독특한 선거 제도 중의 하나로서, 특정 개인 혹은 단체가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기 위하여 결성된 집단을 총칭한다.

당연히 정치의 꽃이라는 선거판에서도 정치적 의사 표명(주로 TV 광고를 통해)을 하는 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A 후보가 팩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찬성, B 후보가 해당 정책을 반대한다면, 당연히 팩은 A 후보에게 유리하고 B 후보를 비방하는 광고를 내보낸다.

‘그럼 후보랑 한통속이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 미국의 법률은 ‘정치활동위원회는 해당 후보와 직접 연계되는 것을 금한다’라고 규정한다.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법률상 그렇다는 말에 불과할 뿐이지만.

-아이오와 주 유권자 여러분, 현 대통령이 지겹지 않으십니까? 나라를 망하게 할 뻔한 은행에 휘둘리는 워싱턴이 짜증 나신다고요? 월스트리트 돈 놀이꾼들과 친한 백인 노인이 워싱턴을 쥐락펴락하는 것은 올해로 끝입니다, Yes, We can! (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 광고는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First African American President of America)’이라는 단체에 의해서 제작되었습니다. 단, 저희는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거 캠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 팩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왜 저도 모르는 단체가 갑자기 저를 지지하는 광고를 내보내는지 모르겠군요.”

“글쎄요, 팩은 자신들의 자금 출처를 밝히지 않아도 되는 게 법이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후보님은 맥케인이 입법한 팩 제도 자체를 평소에 비난해 오던 입장이시니 이 팩은 저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입장표명을 할까요?”

대선이 가까워져 오는 10월, 미국은 둘로 나뉘어 있었다.

중국과 그 중국에서 날아온 금융위기라는 두 화두를 놓고 민주당 공화당 양 당에서는 각각 상대당의 후보를 비방하는 광고를 TV건 라디오건 고속도로 빌보드건 쏟아붓느라 미친 듯이 돈을 쓰고 있었다.

그야말로 역대급 돈의 선거, 현대에 되살아난 금권정치의 재래였지만 평소에 이를 비방하던 민주당 의원들마저도 지금은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일단 상대는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는 현직 대통령이고, 부통령이 부통령인지라 이쪽의 강점이던 흑인과 여성 표가 분산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렇게 판단한 것은 오바마도 마찬가지였다.

“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거 같습니다.”

“역시 그렇겠지요?”

“이제 대선이 한 달 남았습니다. 저쪽도 지금 미친 듯이 광고에 돈을 쏟아붓고 있어요. 지금부터는 사실상 돈 싸움이란 말입니다.”

오바마의 말은 사실이었다.

실은 오바마를 지지하는 해당 광고가 송출될 때와 비슷한 시기에, 현직 대통령인 맥케인을 지지하는 광고가 훨씬 큰 규모로 전파를 장악했던 것이다.

그 오바마와 민주당을 비난하는 광고의 규모란 원색적인 건 둘째 치더라도 무려 10여 개 주에서 동시에 방송되는 등 그 규모와 범위가 어마어마하기 그지없어서 오바마 측도 그에 맞서는 광고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내용이란 다음과 같았다.

-아이오와 주 유권자 여러분, 이름은 직접 말할 수 없지만 민주당 측 대선 후보의 이름을 보십시오, B. ‘후세인’ 오바마, 그는 미국을 바꾸자고 이야기하지만 출생 증명서를 보기 전까지는 그가 진정한 미국인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는 흑색선전이 아니며, 미국 땅에서 태어난 미국인만이 피선거권을 가진다는 법률에 근거한 이의제기입니다. 진정한 미국인 유권자 여러분, 2008년 11월 8일, 현명한 선택을 합시다!

“젠장, 거참 지저분하게 나오는군요. 어떻게 할까요, 후보님.”

“최근 현 대통령이 돈줄이 마른 줄 알았는데 결국 돈을 따내기는 따낸 모양입니다. 70이 낼모레인 사람이 미친 듯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연설하더니 그 나이에 대단합니다. 뭐 보나마나 그 돈줄은 구제금융에 목이 마른 월스트리트 은행가들이겠지만…… 게다가…… 흠흠.”

“게다가……??”

대책을 논의하는 캠페인 내부 회의에서 오바마는 측근들에게만 들리도록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어차피 현 사태를 초래한 월 스트리트 은행들에 대한 구제금융은 맥케인 측뿐만 아니라 우리 민주당에서도 찬성하는 바 아닙니까. 물론 이후 규제 방안은 우리가 더 세지만, 대다수 월 스트리트에 분노하는 유권자들의 관심은 온통 구제금융에만 가 있어요. 차별화가 안 된단 말입니다.”

“흠흠, 그렇지요?”

“생각해 보십시오, 시티그룹이나 AIG 같은 대형 보험사를 그냥 망하게 뒀다가는 미국 금융 시스템 전체가 다 같이 망할 겁니다. 나 아니라 어떤 후보라도 같은 결론을 낼 거에요. 내 말은 괜히 이 주제를 대선판에 올려서 ‘민주당이나 공화당이나 그놈이 그놈이다’라는 소리 들을 필요 없다 이 말입니다.”

“후보님 말씀이 옳습니다.”

결국 오바마 선거 캠프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광고를 내보내는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FAAPA) 팩에 대해서 긍정도 부인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미국 헌법상 팩의 정치 활동은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자신들이 나서서 ‘당신들은 누군데 우리를 지지하겠다고 나서나, 하지 마라’라고 하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FAAPA 팩은 미 전국 수많은 곳에서 모여든 자원봉사 단체와 흑인 권리 단체 등 오바마의 지지단체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게 되었는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바로 FAAPA 팩의 내부 직원 중 한 명이 팩의 자금 출처를 폭로한 것이다.

-오바마를 지지하는 FAAPA 팩의 자금은 월 스트리트 은행들에서 나옵니다. 그 이유는 당연히 당선 후 있을 추가적 구제금융과 금융 규제를 완화시키기 위해서고요. 저는 오바마가 월 스트리트를 개혁하겠다고 나서는 위선을 도저히 두고 볼 수 없어서 이렇게 양심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그가 공개한 것은 FAAPA 팩의 자금 내역서, JP 모건, 시티 그룹부터 HSBC, UBS, 피오니 홀딩스 같은 수많은 월가의 국내외 대형은행들이 오바마를 지지하는 팩에 거액을 기부했음을 알려주는 자료들이었다.

당연히 이제까지 맥케인 정권과 공화당이 월스트리트와 유착했다고 비판하던 오바마는 지지율에 큰 타격을 입지 않을 수 없었다.

-오바마는 거짓말쟁이다!

-본인은 팩을 ‘민주주의의 적’이라며 혐오한다고 하더니, 정작 자기도 팩에서 돈을 받아먹고 있었다!

물론 맥케인도 은행들에서 돈을 받기는 했지만 사람 심리라는 게 묘해서, 당연히 돈 받을 줄 알았던 정치인이 예상대로 돈을 받으면 욕을 덜 먹지만, 이제까지 깨끗한 척하던 정치인이 돈을 받았다는 게 드러나면 욕을 두 배, 아니, 몇 배로 먹는 법이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인 맥케인은 반대로 공화당 내에서도 좌측 성향인 데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이전까지 기업들의 정치 자금 기부 및 로비가 아무런 제한이 없던 상황에서 PAC이라는, 그나마 없는 것보다는 나은 정도의 규제라도 만든 주도자가 바로 다름 아닌…….

“누구길래요?”

“맥케인 본인, 기업들이 정치인들을 돈으로 사버리지 못하게 기업의 정치 자금 기부에 제한을 두도록 2002년에 입법한 사람이 바로 존 맥케인 본인이야. 정식명칭은 ‘정치자금 개혁법’이지만 ‘맥케인 - 파인골드 법’으로 더 자주 불리거든. 어찌 보면 지금의 PAC이라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우회적인 형태가 나타나게 한 장본인이지.”

“잠깐만요, 그럼 그전에는…….”

“그야 거의 무제한 기부가 가능했지. 미국 유권자들도 그걸 잘 아니까 똑같이 PAC에서 돈을 받아도 오바마가 훨씬 더 지저분해 보이는 이유야.”

“……정말이지 미국이라는 나라는 돈으로 거의 모든 게 해결되는군요.”

오바마가 앞서던 지지율이 거의 백중세로 접어든다는 CNN의 출구조사를 보는 정환의 옆에서 유혜림이 탄식하는 말이었다.

요즘 들어 공화국이 경제위기를 맞아 황금만능주의적 풍토가 짙어져 간다고 내심 씁쓸해하고 있던 그녀였는데, 지금 미국을 보니 북조선은 그야말로 상대도 안 될 거 같았다.

그런데, 잠시 몇 달 동안의 이 복잡한 판세를 돌이켜보던 그녀의 머리에 뭔가가 떠올랐다.

“잠시만요, 저 오바마를 지지하는…… FAAPA팩은 피오니 홀딩스 미국지사뿐만 아니라…… 월가의 대형은행들도 함께 후원한 거 아닙네까?”

“그래, 물론 맥케인 측을 지지하는 팩도 내가 재단 명의로 후원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그렇다 치고, 다른 월 스트리트 은행들은 왜 오바마를 후원한 겁네까? 강력한 금융 규제를 지지하는 그가 당선되면 자기들 사업에 막대한 지장이 올 텐데…….”

유혜림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자 정환은 담담하게 그녀의 의문을 해소시켜 주었다.

“딱히 이번만 특별한 게 아니야. 원래 그랬어.”

“……네?”

”원래 월 스트리트 금융업계는 대부분 민주당 공화당 양측 모두에 정치후원금을 기부한다고. 둘 중 어느 쪽이 당선되어도 자기들 말을 무시할 수 없도록 말이야. 이번에 재단 측에서 한 건 여기저기로 분산될 기부금을 우리가 결성한 FAAPA 팩으로 모으는 작업 하나뿐이었어.”

“…….”

“금융인들다운 리스크 관리 차원이랄까. 파생상품 팔 때도 진작에 이렇게 좀 리스크 분석을 철저히 했으면 이런 사태가 일어날 일 자체가 없었겠지만 말이야.”

한편 오바마 측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즉시 FAAPA 팩 측과 관계 단절을 선언했지만,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원래 PAC 법률 자체가 PAC과 후보자 간의 직접적 연계를 실질적으로 가로막는 방안이 부실했던지라, 지금 와서 자신과 해당 팩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도 유권자들 눈에는 다 변명으로밖에 보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을 원하는 미국의 움직임은 강력했던지라, 정환은 마지막까지 선거 판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마침내 대망의 선거일, 승자는 불과 20인 정도의 선거인단을 더 확보한 현직 대통령 존 맥케인이었다.

‘젠장, 10년 감수했군.’

환호하는 맥케인과 공화당 지지자들, 믿기 힘든 현실에 실망해서 눈물을 흘리는 민주당 지지자들을 보내주는 CNN 중계를 보며 정환은 내심 식은땀을 흘렸다.

그나마 역대급 공화당 트롤러인 부시(와 사라 페일린)이 없다는 점, 부통령이 흑인 여성인 콘돌리자 라이스라서 민주당 표가 분산된다는 점, 벌써부터 전문가들에게 이 금융위기의 원인으로 지목받고 있는 글래스 - 스티걸 법이 민주당 시절에 폐지되어서 양비론 전법이 먹혔다는 점이 맥케인의 재선을 가능케 한 것이었다.

하여간에 이걸로 당분간은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그 역할을 일본 같은 (한국과 북조선 입장에서는 최악의) 동맹국에게 위임할 일이 없어졌다는 점, 그로 인해 정환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계획이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점 등은 정환으로서는 가슴을 쓸어내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러한 국외의 변화에 온 신경을 쏟느라 정작 정환이 놓친 게 하나 있었는데, 바로 국내, 정확히는 조선로동당과 정부 안에서 벌어지는 움직임이었다.

이제껏 유례없었던 금융위기, 북조선 경제 역사상 처음이라 더욱 혹독하게 다가왔던 중국발 경제 위기를 맞아 사실상 처음으로 ‘조선로동당 내에서’ 정환의 영도에 소극적이나마 의문을 제기하는 세력이 준동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작가의 말

오늘 묘사된 미국 대선과 슈퍼팩의 활동에는 현실과 다른 점이 많습니다.

원래는 그러한 점을 독자님들에게 납득가게 설명드릴 수 있도록 미셸 오바마나 힐러리 클린턴 등 다른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개연성을 보강하려고 했는데, 그럴 경우 불가피하게 해당 내용이 대단히 길어지고 북한 내부 일도 아닌 미국 대선 이야기를 길게 끌어봐야 재미를 창출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하에 이번 에피소드를 빠르게 마무리 짓기로 결정했습니다.

역량이 부족한 작가의 변명에 독자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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