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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260화 (260/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60화

“……!!!!!”

순식간에 분위기가 딱딱하게 굳고 팽팽한 긴장감이 VIP석 전체를 감돌았다.

타국 정상들 모두 아닌 척하면서도 흘끔흘끔 라이스 부통령과 보시라이, 시진핑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얼핏 듣기에는 올림픽 개막식장에서 국가수반이 타국 지도자들에게 흔히 건네는 외교적 덕담 같았지만 같은 말이라도 장소와 시간, 사람에 따라 뜻이 천양지차가 되는 법이다.

이제까지 중국에 비판적이던 콘돌리자 라이스가, 그것도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인권과 타 종교와의 공존 문제를 꺼내는 건 대단히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당사자인 시진핑과 보시라이의 얼굴에서 자신만만한 미소가 씻은 듯이 사라진 건 물론이었다.

“……조언 감사합니다만, 라이스 부통령님. 우리 중국은 이미 충분히 인권을 존중하고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국은 많은 나라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고, 특히 아프간 지방에서 근래 벌어지는 중국군의 무력대응은…… 저희 미합중국 행정부로서는 전부 찬성하기 힘든 면이 있다고밖에는 말씀드릴 수가 없군요.”

“콘돌리자 라이스 부통령, 그들은 테러리스트들이요! 상하이를 공격하고, 이 중국에 아편을 유통하여 인민들을 중독시키고, 반국가 단체를 결성하여 저희 중국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는 국제적 범죄자들 아닙니까? 이 문제는 이 자리에서 언급하기에 좀 불쾌하군! 이제 곧 개막식이 시작할 텐데 슬슬 이런 비생산적인 대화는 그만두고 자리에 앉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제가 괜한 말을 꺼낸 거 같군요. 주석님의 의견을 존중하겠습니다.”

보시라이가 본격적으로 화를 낼 듯하자 콘돌리자 라이스는 순순히 자신의 의견을 굽히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와 함께 잠시 긴장되었던 공기도 풀어지면서 그들에게 집중되었던 장내의 주의는 다시 흩어졌지만, 자타칭 G2 수반들의 갈등을 본 타국 수뇌부들은 목소리를 낮추고 방금 본 광경에 대해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맥케인 대통령의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군. 하기야 지금 상황은 이제까지처럼 아프간과 중동, 나아가 북아프리카까지 중국 손아귀에 넘어갈지 모른다 같은 잠재적 불안요소 정도가 아니라, 당장 미국 금융업계 발등에 불이 떨어지게 생겼으니.”

“이미 미국 연준에서 소규모 양적완화를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답니다. 우리 기재부 관료들 말로는 골드만삭스 같은 월가 은행들은 벌써 부동산 파생상품들을 처분하거나 재검토하고 있다니…… 조만간 미국에서도 한 번 터질 분위기인데 재선이 있는 미국 대통령은 참 힘든 일이에요. 한국에는 재선이 없는 게 참 다행이지, 원…… 그렇지 않습니까? 총서기님?”

정환이 옆을 돌아보자 그곳에는 방금 전까지 그와 함께 라이스와 보시라이 간 설전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사람, 노윤현 한국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서 있었다.

견제인 듯 견제가 아닌 듯한 노윤현의 발언에 북조선 측 인사들 몇 명이 불편하다는 듯 표정을 찌푸렸지만 정작 정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하지만 대범하게 맞받아쳤다.

“글쎄요, 저는 총서기 취임 이후 모든 선거에서 다 압승해서 그런 위기감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뭐 인민 대중들의 지지를 유지하는 법에 대해서 가르쳐달라고 하시면 특별히 시간을 내서 노 대통령님께 전수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하하하…… 이거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총서기님. 노윤현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노 대통령님. 조선로동당 총서기 김정환입니다.”

민주주의 투사이자 아웃사이더 진보 정치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대한민국 17대 대통령과 재직 20년째인 북한 독재자 간 가벼운 견제구가 오갔지만 이내 노윤현의 너털웃음으로 마무리되었다.

인사 후, 서로 악수를 나눈 두 남북 지도자는 이내 나란히 붙어 앉아 이제 (중국어 간체의 한자 획순으로 순서가 정해진) 각국 선수단의 입장으로 시작하는 개막식 공연을 관람하기 시작했다.

개막식 공연은 유학의 총본산이자 자국 소프트파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공자의 고향이라는 걸 강조하듯 논어(論語)의 한 구절로 시작되었다.

[유붕자원방래 불역낙호(有朋自遠芳來 不亦樂乎)]

“……‘멀리서 벗이 찾아오니 어찌 반갑지 아니한가’. 참 아이러니합니다, 문화대혁명 때 자신들 손으로 묘를 파괴해 버렸던 공자님 말씀을 현대에 다시 되살리다니.”

“뭐 올림픽이라는 게 냉소적으로 보면 국가적 프로파간다의 가장 큰 공연장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요즘 들어 다시 문혁 시절로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조금 걱정됩니다. 특히 노 대통령님의 남조선보다 중국과 가까운 우리 공화국은 그 변화의 유탄을 맞을 것 같아 벌써부터 걱정이 들지 않을 수 없군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조금 있으면 곧 아시게 될 겁니다. 특히 개막식 연설을 누가 하게 되나 잘 보시라고 충고해 드리고 싶군요. 사실 저도 그걸 직접 눈앞에서 확인하는 게 1순위 과제라 이 와중에 평양을 지키지 않고 이곳 베이징까지 날아온 겁니다. 참고로 3순위는 노윤현 대통령님을 직접 뵙는 거였고요.”

“……그럼 2순위는 뭔지 알 수 있겠습니까?”

“방금 전에 같이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설명 안 드려도 이미 아실 겁니다.”

조금 묘한 정환의 말에 노윤현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돌연 뭔가 알 것 같다는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정환은 여전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거창하게 전개되는 개막식 공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중국 대륙의 문명과 역사를 시간순으로 보여주는 테마로 기획된 개막식은 그야말로 보는 사람의 입을 딱 벌어지게 할 정도로 거대하면서도 정교했다.

베이징 올림픽이 개최된 올해를 상징하는 2,008개의 고대 북소리로 시작된 본 공연은 화약, 나침반, 인쇄술, 종이를 뜻하는 중국의 4대 발명품을 연출하다가 실크로드와 정화의 대원정으로, 대원정은 중국의 국민적 무술인 태극권을 시연하는 2,008명의 시범단으로 바뀌어 갔다.

그리고 이내 경기장 바닥이 열리며 거대한 지구본 모형이 중앙으로 떠오를 때쯤, 일반석의 관중은 물론 이런 행사에는 이골이 났을 VIP석의 국가 수반들까지도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할 정도라, 덕분에 정환과 노윤현이 나누는 대화를 아무도 듣지 못했다.

사실 그 두 명이 개막식 공연을 진짜로 눈여겨보던 순간은 공연의 규모나 중국의 역사적 자부심 부분이 아니라 다른 파트였는데, 바로 ‘중국인‘으로 취급되는 56개의 소수민족들을 상징하는 전통 예술이 공연되는 순간이었다.

정확히는, 그 소수민족들 중 전통 한복을 입고 장구를 멘 조선족들이 나온 순간을 말이다.

“연변 가무단들이군요. 이거 기분이 많이 찝찝한데요, 총서기님과 둘 뿐이니 드리는 말씀이지만, 아마 대다수의 중국인들에게는 우리 한반도와 한민족도 저기서 공연하는 조선족들처럼 자신들이 수복 중인 새로운 대(大) 중화제국의 하위분류쯤으로 보이겠지요?”

“희망사항은 틀림없이 그럴 겁니다. 그리고 그 희망사항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지금도 열심히 노력 중이구요. 근래에 있었던 몇 가지 만만찮은 악재로 그 확장주의적 욕구에 약간의 제동이 걸리기는 했지만, 그 야욕을 포기하거나 하는 일은 웬만해서는 없을 겁니다. 제가 접한 바로 판단하자면 오히려 그 악재들이 그러한 야욕을 더욱 북돋아 주었으면 모를까요.”

담담하지만 냉정한 정환의 말에 노윤현은 자신도 모르게 가벼운 한숨을 쉬었다.

웬만해서는 좌절하거나 약한 소리 하는 걸 싫어하는 싸움꾼 타입의 정치인이 바로 그였지만, 14억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제국이 자신들 바로 옆에 버티고서 언제라도 날름 집어삼킬 궁리를 눈앞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내니 눈앞이 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과 나름 사이가 좋다고 알려졌던 이 북한 지도자가 자신에게 이런 직접적인 암시를 보내는지 궁금한 감도 없지 않아서, 노윤현은 자신도 직구로 치고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 악재들에 대해서 말입니다만, 그러한 악재들로 인해서 위구르, 티베트 같은 소수민족들이 봉기하거나, 지방끼리 분열해서 저기 북양군벌 시절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의혹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당장 외부에는 알 카에다에 미국에, 내부적으로는 마약 문제에 최근의 부동산 시장 붕괴까지…… 이러한 중국 붕괴론에 대해서 총서기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가능성이 있다고 보십니까?”

“제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릴까요? 사실 그것 또한 대부분 희망사항입니다.”

“……그 말씀은?”

“정확히는 적어도 30년 내에는 불가능한, 중국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반반씩 섞인 의도적 과소평가지요. 물론 현재 중국이 미국과 맞먹는 G2라는 자화자찬은 중국인들의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반대로 가는 것 역시 안 되겠지요. 아마 2000년대 초반부터 아프간 전쟁 같은 악재가 없었다면 저는 영원히 불가능하다고 자신했을 겁니다.”

“……!!!”

정환의 담담하지만 확신이 담긴 말에 노윤현은 눈을 크게 떴다.

주변의 모든 시선이 개막식 공연에 쏠려 있어서 그들의 이런 밀담(密談)을 아무도 보고 듣지 못하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중국이 빠른 시일 내에 소수민족이 봉기해서 분열한다거나 하는 것은 중국 공산당의 통제능력, 정확히는 안정과 통일되고 강력한 조국을 바라는 중국 한족들의 집착에 가까운 소망을 몰라서 하는 이야기입니다. 공산당이 선정을 베풀어서라기보다는 달리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랄까요?”

“하지만 분명히 공산당은 내부적으로 많은 불화가 있지 않습니까? 김 총서기님이 저보다 더 잘 아시겠지만, 당장 제가 아는 것만 해도 보시라이 주석과 시진핑 서기 간에…….”

“물론 현재의 중국 집권세력, 공산당은 아프간 전부터 수많은 대내외적 시험을 겪고 있고, 또 분명히 심각한 수준의 부패와 무능, 정쟁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현 중국 내에 그들을 대체해서 인민들에게 최소한의 질서와 안정을 보장할 만한 대안 세력이 없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민주주의를 원하는 중국 인민들이 분명히…….”

“노 대통령님과 중국의 민주화를 바라는 이상주의자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정권의 연속성에 있어서 민주주의 체제는 필수적인 요소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민중들이 바라는 건 내일의 자유가 아니라 오늘의 풍족한 식사입니다. 저도 대통령님과 둘뿐이니 하는 이야기인데, 당장 저희 공화국 사례를 보시면 아시지 않습니까?”

“어…… 음…… 그렇지요.”

정환이 씨익 웃으면서 노윤현에게 말하자 일시지간 당황한 노윤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시선을 이리저리 돌렸다.

속으로 ‘흥, 이제 좀 기분이 풀리네’ 하고 중얼거리던 정환은 이내 절정을 향해 치달아가는 개막식 공연장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중국 공산당은 분명 폭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인 독재 정당이지만, 그래도 인민의 눈치를 보는 능력과 그것을 위해 최소한의 내부 자정작용을 할 역량을 갖춘 집단이라서요. 게다가 그들에 맞서는 알 카에다나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저항세력도 따지고 보면 문제가 많은 집단 아닙니까. 이슬람 극단주의라니. 초기에는 반중 세력과 서방의 동정을 좀 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머지않아 말라죽을 게 뻔합니다.”

“이거 참…… 중국 인민들이 안타까울 뿐이군요. 몇 달 전 사천성 대지진 때도 공산당의 중앙 관료들이 사망자 수부터 은폐하고 있다던데, 총서기님 말씀대로라면 중국 공산당이 멸망할 일은 영원히 없다는 뜻 아닙니까.”

“……다만, 그건 중국 공산당의 집단 지도체제가 1인 독재 체제로 변질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의 이야기지요. 그럴 경우에는 전 아시아에 무시무시한 폭풍이 불겠지만, 감수할 가치가 있는 폭풍일지도 모릅니다.”

“……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자조하는 그에게 정환이 속단은 금물이라는 듯 고개를 젓자 노윤현은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정환의 눈은 이미 개막식 공연이 끝나고 개회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올라오는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입니다. 권력은 반드시 타락하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타락한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잠시만, 잠깐만 기다려 보십쇼. 그렇다면 김 총서기님이 보시는 그 중국 공산당의 일당 지도체제라는 게 언제든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젠장, 제가 틀렸군요. 설마 내부 책임 떠밀기 다툼에서 시진핑이 이긴 건가? 이해가 안 가는데, 이건.”

“네?”

영문을 모를 소리만 하는 정환에게 노윤현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리다 자신도 정환이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연단 쪽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서기, 시진핑이 2008년 올림픽의 개막을 알리는 개회사를 하기 위해 8만 관중들의 주목을 한몸에 받으며 연단으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시진핑의 얼굴에는 방금 전 콘돌리자 라이스 부통령과의 대화에서 구긴 인상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승리감에 흠뻑 젖은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정환은 그 의기양양한 모습을 보며 혀를 찼다.

“쯧, 전 분명 보시라이 주석이 개막식 연설을 할 줄 알았는데…… 군권을 틀어쥐고 있는 데다 쇼맨십이 강해서 이런 전 인민에게 눈도장을 찍을 역대급 카메라 찬스를 놓칠 리가 없단 말입니다. 이해는 안 가지만 하여간에 아내와의 내기에서 졌으니 이거 총서기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아, 배우자분이 여기 오셨습니까? 이거 저희 쪽에선 금시초문이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이제 곧 선수단 입장 시간인데, 저희 공화국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정만 소화하고 바로 평양으로 돌아가 봐야 해서 말입니다.”

“……경기는 안 보시는 겁니까?”

“이 국내상황도 어수선한 시국에 중국인들 힘자랑 행사를 오래 두고 봐서 뭐에 쓰겠습니까? 어차피 노윤현 대통령님을 만나고 방금 전 저 개막식 연설을 누가 하는지 제 눈으로 확인한 것만으로도 여기 온 목적 1, 2, 3순위는 전부 달성했습니다. 하여간 호상 간에 친교를 트게 돼서 즐거웠습니다. 노 대통령님.”

그렇게 짧게 작별의 인사를 남긴 정환은 노윤현이 뭐라 말을 할 사이도 없이 몸을 일으켜 북조선 측 수행원들과 함께 바람처럼 VIP석을 떠났다.

뒤에 남은 노윤현은 이제 가셔야 한다는 한국 측 보좌진들의 말에도 방금 정환과 나눈 대화를 곱씹어보면서 잠시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개회사가 끝나고, 선수단 입장이 시작되어 남북 선수단이 나란히 입장하는 그 순간까지도, 노윤현은 그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몰두했다.

* * *

노윤현에게 한 말처럼, 정환은 인구에 회자될 역대급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끝난 지 불과 하루 만에 평양으로 귀환했다.

올림픽에 참가하는 공화국 대표 선수단을 격려하고 주 베이징 평양 대사관에 들러 외무성 인원들을 포함한 몇몇 인물들을 눈에 띄지 않게 만나는 지극히 의례적인 일정을 소화한 후 돌아간 정환에게, 외교관계를 생각해서라도 인사치레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정환은 한마디로 일축했다.

-동무들, 미국 쪽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왜 내가 급하게 평양으로 돌아왔는지 알게 될 걸세.

그리고 이내, 미국 4대 투자은행 중 하나였던 리먼 브라더스가 의회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자 당 간부들은 그제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다가올 파장을 대비하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사천성에서 시작된 지진이 뉴욕 월스트리트의 지각을 흔들며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나마 중국 부동산 시장 붕괴가 조기 경보기 역할을 해준 덕에 연준이 일찍 나선 게 위안이랄까, 비교적 소프트하군.

-동지, ‘보드랍다’라는 뜻의 미제 말 소프트를 의미하시는 거라면 대체…… 이거이 소프트라면 예상하시던 거이는 어느 정도셨길래…….

-이것보다는 많이 거칠었다고만 해두지. 하지만 문제는 다가올 미국 대선인데, 아무리 집권 1기에 진앙지가 미국이 아니었다고 해도 이 위기의 책임론을 맥케인이 잘 넘길 수 있을지가 관건이군.

그리고 이내 북조선도 곧 비상대책위 태세에 들어갔다.

당 중앙위 위원들과 경제 관료들, 피오니 홀딩스 임원들은 기약 없는 야근과 회의, 회사건물에서의 선잠을 시작했고 유니온 주식 갤러리에는 ‘대동강 물 따땃하디?’라는 게시물이 매분, 수십 개씩 올라왔다.

전 세계적인 불확실성과 유동성이 정부 체계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그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확산되어 가던 그때, 온통 미국 소식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서기실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중국 공산당 중앙 총서기 시진핑이 근래 벌어진 부동산 위기를 비롯한 모든 혼란상에 대해 당내에서 탄핵을 당해, 최종적 책임을 지고 중앙군사위 보시라이 주석에게 전권을 이양한 후 당 총서기직을 비롯한 모든 직위에서 사퇴한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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