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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251화 (251/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51화

어떻게 말해야 정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경제를 생각하라는) 읍소를 올릴까, 고민되어 말이 꼬이는 장성택에게 정환은 한마디로 정리를 해주었다.

“그야 이산가족 비자 발급 취소 같은 조치는 찬물이 아니라 미지근한 물이니 그렇네.”

“……?”

“지금 남조선 인민들은 지난 20년간, 미지근한 우리 공화국에 익숙해져 있네. 논리적이고, 대화가 통하고, 이성과 논리로 상대할 수 있는 동등한 국제사회의 일원 말이야. 그러니 다른 곳도 아니고 무려 보수 여당인 새나라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북에서 망명해온 사람들을 도로 송환해야 한다느니 하는 말을, 그것도 선거를 앞둔 지금 할 수 있는 걸세.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나?”

서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쳐다보는 백승철과 장성택에게 여기까지 말한 정환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한 마디로 결론을 내려주었다.

“……찬물을 뒤집어씌워 줘야지. 과거의 공화국이 어떤 상대였는지 잠시나마 깨닫게 해줘야 한다고나 할까. 혹시 아나 모르겠는데, 이런 걸 미치광이 전략이라고 부른다네. 미친놈도 바보만큼이나 위험하거든.”

‘그나마 최소한의 명분은 저쪽에서 이미 줬으니 외교적인 파장 수습하는 건 생각보다 힘이 덜 들겠군. 이거 하나는 그 학총련 헛똑똑이들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며 정환은 백승철에게 손짓해서 정확한 발사 시기와 장소에 대해 지시를 내렸다.

* * *

평양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서울의 정세로 돌아가 보면 민주당 총재 노윤현에게는 좋은 일 하나와 나쁜 일 두 가지가 벌어지고 있었다.

좋은 일은 지난번 성명이라는 이름으로 망명자들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힌 후, 다행스럽게 대선 전 1차 관문인 민주당 내 경선을 통과하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지명받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당시 한국 민심에 대해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망명자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그들을 도로 송환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진심으로 북한이나 김정환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당연하게도 거의 전무했기 때문이었다.

-힛히힛힛하 님 : 세상 참 많이 바뀌었네. 그 차떼기 새나라당이 북한 비위 맞춰주자고 하는 날이 오다니. 하기야 이산가족들 수 생각하면 저쪽에서 그거 건드렸다가는 표 다 날아가니까…… 게다가 고속철도 있고. 솔직히 나도 고속철 타고 백두산 천지 한번 가보고 싶음.

-A Tempes 님 : ㅇㅇㅇ 나 그 이야기 듣자마자 포항 제철 주식 사놓고 지금까지 묻어놓고 있음ㅋ! 남북 고속철 파탄 나서 주가 폭락하면 그때는 진짜로 한강 가야 하니까 박금혜 지지. 아니, 사실 나 잘 먹고 잘살게 해주는 당이면 박금혜든 노윤현이든 오케이임.

-Dksehdtn 님 : 그래도 박금혜 되면 저 학총련인가 뭔가 하는 애들 다 북으로 도로 보내 버리는 거잖아. 너네들은 자존심도 없음? 다 김정환이 똥꼬 빨아주느라 정신들이 없구만, 쯧쯧…… 노짱 만세!

-백적타도 님 : 위엣 분 제정신임? 저분이 대통령 되면 나라 망하겠구만. 그 학총련인가 뭐시깽인가 하는 몇 놈들 위해서 북한 인민군이랑 6.25 시즌 2 찍자고? 그럼 최전선에는 너님이 나가셈. 나는 전혀 생각 없음. 원래 외교란 냉정한 장사 같은 거란 거 모름? 노윤현이 같은 양반이 대통령 안 되는 이유가 바로 그거임.

-f3391_kdsmart609 님 : 22222. 그리고 나도 한때 운동 좀 하고 화염병 좀 던졌던 사람인데 얘네들은 진짜 아님. 자기 나라 문제에 남의 나라 끌어들여서 해결 보려는 놈치고 자기 나라 국민들 지지받는 놈들을 본 적이 없음.

-잉조동물 님 : 다 필요 없고 여자 대통령 나오면 야동 p2p 다 막는 거 아님? 망아지, 붉으나에서 돌아다니는 내 여친들…… 하앜 쎆X!

이렇게 대부분 현재 북한과의 외교 관계에서 실익이 없다는 생각에서, 고속철 연결이 파투날까 봐, 북에서 펼치는 사업에서 정치적 제약을 받을까 봐, 그것도 아니면 남이나 북이나 운동권 놈들은 전부 싫다는 거부감에서였다.

뜻밖에도 이현창의 추측대로 ‘망명자들의 요구는 터무니없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북한에 보내서 죽게 만드는 것도 못 할 짓이다’라는 생각을 가진 당 내외 중도층이 노윤현의 소신에 움직인 것이다.

하지만 나쁜 소식으로, 첫 번째로는 이런 노윤현의 ‘이도 저도 아닌’ 태도를 핑계 삼은 당내 반대층이 대선을 코앞에 두고 비토 움직임을 본격화했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박금혜 역시 경선을 통과하고 새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지명됐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박금혜의 경우, 본격적인 대선 레이스를 시작하기도 전부터 파열음이 끊이지 않는 노윤현 측과는 정반대로 당내외에서 지지층이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단결해 있었다.

-박금혜! 박금혜! 선거의 여왕! 기호 1번!

-아이고 영애님! 아이고 공주마마! 제발 한 번 만 더 이 나라를 구해주십시오! 제발 우리 백성들을 이끌어 통일의 길로 이끌어주십시오!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저 박금혜! 이제부터 여러분들의 지지를 등에 업어 그 고속철이라던가 준비라던가 그런 북한과의 협력을 잘, 상전벽해(桑田碧海)처럼 준비하여 새나라당의 안이나 밖이나 공약과 지지층과 이렇게, 그동안 당원 여러분들의 희생은 참 잊을 수 없는 거지만 그것을 평형대 삼아 도약하여 ‘통일로 나아가는 단계는 이것이다’ 하는 자세로 지금보다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 나아가 한반도 전체를 잘 단결하고 이끌 수 있도록 더욱 발전하고 업그레이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한 단계 더 높이 올리는 여정을, 소위 명품 국가를 만든다고 저처럼 어린 시절부터 준비된 지도자인 김정환 총서기와 한 쌍, 파트너가 되어 남북을 함께 이끌라, 이렇게 계시를 받은 기분입니다.

위와 같은 대선 출정사의 문장 자체는 조금(사실 많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17대 대선을 준비하는 박금혜 캠프의 메인 캐치프레이즈가 남북의 협력, 아니, 이참에 아예 한 단계 더 나아가, ‘통일’이라는 것은 명백해 보였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광경이었지만, 몇 년간 남북의 경제적 교류와 그 이득이 친 대기업 성향의 경제 신문들, 경제 신문들 이상으로 친 대기업적인 여당 의원들을 바꿔놓은 결과였다.

캠프의 경제정책, 자타칭 ‘통일경제’도 이러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과연 북한과 김정환 총서기가 이제 와서 통일을 하겠느냐, 그 근거는 뭐냐, 하는 회의적인 질문에 박금혜는 이렇게 질문했다.

-저는 통일은 대박이라고 생각합니다. 북남, 아니, 남북 고속철을 보면 그런 기운, 예감이 다 오지 않나요?

그리고 그 박금혜와 새나라당이 꿈꾸는 통일에 있어서, 학총련의 망명자들은 거추장스러운 방해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게 분명했다.

단지 뭔가 이상한 점이라면 진작에 망명자들을 송환했어야 할 이현창,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직 대통령이 계속해서 북측 송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공식 입장표명도 안 한 채로 미적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박금혜 캠프 측은 이것도 낙관적으로 해석했다.

-이 이슈를 오래 끌면 끌수록 노윤현이한테 불리하지. 일단 표 수로만 따지면 우리 쪽이나 저쪽이나 털끝 차이지만, 저쪽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이고 우리 박 후보님 쪽은 그 뭐냐, 그 딴딴한…… 콘크리트! 그렇지! 콘크리트 아닌가? 선거 날 되면 우리가 이기게 되어 있어!

-아, 그 이 대통령이랑 공주님이 사이가 안 좋다는 둥 이상한 소문이 많이 들렸는데 드디어 정신 차리고 좀 도와줄 작정인가 보구만. 아무렴, 삼정승이 아무리 높아도 왕손한테 개기면 쓰나?

실제로 대선 정국에 돌입하고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시작된 첫 여론 조사를 분석한 모든 전문가들의 의견도, 편의점에서 막걸리 마시는 동네 촌로들의 이러한 의견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양쪽 지지층 숫자는 박금혜 쪽의 약우세 정도지만, 노윤현 측은 결집도가 낮아 시간이 지날수록 변수에 취약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변수는 대부분 노윤현 지지층의 분산만 일으킬 뿐, 박금혜 측의 표를 뺏어올 수 있는 변수는 눈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었다.

-마(뭐), 이왕 이렇게 된 거, 원 없이 한번 뛰어봅시다. 저는 아직 이 나라에 독재에 굴복하고 망명을 요청한 사람들을 내쫓는 행보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는 거리가 멀다고 믿는 분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최선을 다해주십시오.

이렇게 선거 운동원들과 참모들에게 당부한 노윤현은 실제로 나가서 열심히 연설을 하고, 시장을 돌고 악수를 하며 뛰었지만,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진 여론 조사에서 박금혜와의 실낱같은 4% 정도의 차이를 뒤집을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마침내 대선이 한 달 정도 남은 어느 날 아침.

모든 것을 바꿔 버릴 ‘찬물’이 당혹한 앵커의 목소리가 되어 양쪽 캠프 모두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긴급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7시, 북한이 동해상으로 무려 사거리 2,000㎞짜리 신형 미사일을 발사했습니다. 해상 분계선을 아슬아슬하게 남겨둔 지점에 추락한 북측 미사일은, 몇 달 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북한 학총련 망명자 송환 협상이 지지부진한 것에 대해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환 총서기가 예상을 깨고 이제까지 없던 방식으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읽히고 있습니다.

-잘못 들으신 게 아닙니다. 이천, 2000㎞입니다. 북측 총참모부의 발표와 제원을 전부 신뢰한다고 가정하면 해당 미사일은 현재 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어떤 신형 미사일보다도 더 먼 사정거리를 가진 것으로 밝혀져 여러 국방 관계자들에게 충격을 주고 있는데요, 합동참모본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러한 발표가 사실이거나 심지어 그 이상의 타격 능력을 갖추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정보가 입수되어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또한 북한은 조선중앙방송을 통하여 이제까지와는 매우 다른 어조로 한국 정부와 여당에 대한 불만을 대단히 직접적으로 드러냈는데요, 음…… 제 방송국 선배님들이 은퇴하실 때 이제 더 이상 본인의 후배들이 이 어투는 들어볼 일이 없을 거라고 장담하셨는데 아무래도 그 예상이 빗나간 것 같습니다. 직접 들어보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한국 유권자들의 아침잠을 완전히 날려 버린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한국 전파를 타게 된 익숙한, 하지만 결코 그립지는 않았던 어떤 특정한 어조였다.

-감히 지엄하신 공화국 최고 존엄, 경애하는 최고지도자 총서기 동지께서 자비로이 베풀어주신 아량을 거절하고 학총련이니 하며 역모의 개나발을 불어대는 력사에 다시없을 반동들과 놀아나는 천하의 인간쓰레기, 남조선 괴뢰정부의 수장 이현창, 또한 주제넘게 벌써부터 통일 경제니 뭐니 가소로운 음모책동을 꾸미는 새나라당 쥐새끼들은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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