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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250화 (250/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50화

“원래 저 사람이 지금 저기 가 있으면 안 되는 건데…… 젠장, 노윤현이 이렇게 오래 살아남을 줄 몰라서 민주당 쪽만 신경을 쓰다 보니 새나라당 당내 경선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깜박했군.”

“……동지, 저는 선뜻 잘 이해가 안 가는데요, 며칠 전에 노윤현은 그 학총련 잔당들을 송환하라는 공화국의 요구에 따를 수 없다고 하지 않았습네까? 그런데 왜 노윤현을 대통령이 되게 해야 한다고 하시는지 도통…….”

유혜림은 자신이 해준 제육볶음도 먹다 말고 이런 폭발적인(?) 반응으로 중얼거리는 정환의 눈치를 살피며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물었다.

지금 TV 화면 속 박금혜라는 남조선 정치인에 대해 그녀가 아는 것이라고는 ‘남조선 개발 독재자 출신 대통령의 딸로 아버지 시대의 향수에 빠진 중장년층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음’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정환은 이마를 감싸 쥐며 자신이 아는 박금혜라는 인물에 대해 한마디로 정리해 주었다.

“유 소좌, 아까 내가 말한…… 노윤현이라는 정치인 별명이 뭔 줄 알아?”

“……뭐길래 그러십네까?”

“지지자들이 붙여준 별명으로는, ‘바보’라는군. 항상 자청해서 지는 싸움에 들어간다고 말이야. 하긴 진짜로 심각한 바보를 현실에서 못 만나본 사람이라면 그런 소리를 할 수도 있기는 하지.”

“그 말씀은…… 저 박금혜라는 동무가 진짜 바보라는 말씀입네까? 하지만 그렇다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데?’라고 생각하며 TV 화면과 정환을 번갈아 바라보던 유혜림은 여전히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정환에게 급히 물었다.

그녀는 이미 ‘퇴근 후 모드’에서 ‘업무 모드’로 돌아와 있었다.

“……그럼 오히려 좋은 거 아닌가요? 남조선 대통령 자리에 바보를 앉혀놓으면, 당신이, 아니, 총서기 동지가 모든 일을 뜻대로 수월하게 조종할 수 있지 않겠습네까? 외교 전투에서도 쉽게 리용해서 쥐락펴락할 수 있고…….”

“……유 소좌, 유 소좌는 바보와 헛똑똑이 중에 누가 더 이용하기 쉬운 줄 알아?”

“그거야 바보…… 이지 않갔습네까?”

“정답은 헛똑똑이야. 적당히 이기적인데 적당히 똑똑하면, 다음에 무슨 행동을 할지 훤히 읽히거든. 어떤 동기에서 행동을 결정하는지 빤하니까. 하지만 완전히 무식한, 백지상태의 바보는 이용하기 쉽기는커녕 반대로 대단히 두려운 존재지.”

“……그럴까요?”

그 대단한 총서기가 ‘천재’도 아닌 고작 ‘바보’를 두려워한다는 게 쉽게 납득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유혜림을 옆에 세워두고, 정환은 처소에 설치되어 있던 24시간 가동되는 서기실 직통 긴급 전화로 즉시 각 부서의 장을 소집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밤중이기는 했지만, 감히 총서기의 긴급 전화에 업무 시간 외 운운하며 부름을 거부할 정신 나간 간부는 없을 테니 늦어도 1시간 안에 회의를 소집하고 대응 방침을 정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이 시간적으로 얼마 안 남았으니 빨리 움직여야만 했다.

“두렵고 말고, 나쁜 놈보다 미친놈이 더 위험한 이유하고 같아. 무슨 짓을 할지, 머릿속이 어떤 구조로 움직이는지 귀신도 모르니까 말이야! 하아, 이렇게 되면 이번 남조선 대선은 진짜 바보 대 가짜 바보의 대결이 되는 건가?”

* * *

‘가장 확실한 방법은 박금혜의……그 비밀을 폭로해 버리는 거기는 한데, 그건 일단 유보해야겠군. 특히나 현 선거판에서는 오히려 지지자만 결집시킬 우려도 있고.’

어차피 이전부터 ‘그 비밀’ 자체는 대중에게 이런저런 경로로 알려져 있었다.

‘대통령은 사실 전직 사이비 무당의 꼭두각시’라는 그 비밀의 실체가 지나치게 받아들이기 힘들다 보니 대중들에게 헛소리라고 치부 당해서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지.

원래 현실에는 개연성이 없는 법 아닌가.

지금 당장 박금혜의 가장 치명적인 비밀을 폭로한다면 흔한 선거판의 마타도어로 치부되어 정작 중요한 노윤현의 지지율만 떨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정환은 이 비상사태의 해결책으로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방책을 접어버렸다.

박금혜가 실각한 이유는 그 이전부터 누적된 실정이 쌓이고 쌓이다가 그 기절초풍할 폭로를 계기로 국민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는데…… 젠장, 도대체 내가 왜 나랑 코드도 안 맞는 노윤현 선거운동을 대신 해줘야 하는 거야? 생각할수록 화나는군.’

정환이 한국 대통령으로 노윤현을 별로 선호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외교적 성향이었다.

노윤현의 원래 행적에 비추어보면, 그의 정적들이 주장하듯 반미(反美)주의자라는 평은 좀 부당하다고 해도 미국의 패권주의적 행태, 그러니까 공화당 극보수 네오콘 등등과는 분명하게 거리를 두는 인사라는 건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어서, 북조선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름 한국 대선판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미국 외교가에서는 ‘노윤현이 다음 대통령이 될 경우, 지난 5년간 이현창이 다져놓은 한미관계가 시험에 처할 것’이라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는 게 현재 형국이었다.

그런데 그게 왜 정환한테는 특별히 더 문제인고 하니, 몇 년 전부터 정환이 마음속으로 그리고 있는 어떤 거대한 ‘계획’에서 반공화당, 정확히는 친미가 아닌 한국 대통령은 불협화음이자 오류, 큰 그림을 망치는 잡선이 될 가능성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 구도란 이현창 취임 직전 즈음, 정확히는 중국의 폭주가 본격화할 때부터 정환이 기획하고 준비해 온 어떤 하나의 목표이자, 최종적인 도달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향후 30년간의 정치외교 향방을 결정할 만한 쐐기라 할 만한 것이었다.

공적인 차원을 떠나 사적으로도, 개인숭배를 혐오하는 정환 자신이 후일(이라고는 해도 벌써부터 조금씩 쓰고 있는) 자신의 자서전 한 단락을 할애해 당당히 내세울 만한 업적.

그러니 정환으로서는 그 업적의 달성을 망칠만한 어떠한 변수도 용납하지 않는 게 이상적이었다.

‘원래 역사대로라면 지금 이현창의 후임으로 대통령이 되었어야 할 사람은 극 친미주의자인 그 사람인데…….’

문제는 그 사람, 그러니까 올해 2007년 12월에 치러질 17대 대선에서 원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어야 할 그 사람은 이미 한국이 아니라 현재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이 변수를 처음 접했을 때는 정환도 당황했지만, 충분히 수습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계획을 진행시켰다.

어차피 한미군사동맹이라는 쐐기가 있는 만큼, 북한 변수가 상당 부분 해소되었다고 해도, 경제적인 면에서나 소프트파워 적인 면에서나 한국 대통령은 일정 수준 이상 반미 노선을 타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니만큼, 그런 자신의 판단이 크게 무모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위험 요소, 예측 불가능한 변수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정환은 충분히 컨트롤할 자신이 있었다.

지금은 그 자신감이 헛된 자신감이었다는 게 드러나 버렸지만.

‘그놈의 고려일보가 삽질만 안 했어도 지난 고속철 연결 사업쯤에서 정치 인생을 접었어야 했는데, 대체 그 멍청한 유신 타령은 왜 한 거야? 자기들 최대 정적만 살려준 셈이니 이런 걸 공교롭다고 해야 하나?’

원래 정환의 예상하고 기대했던 노윤현의 정치 인생은 북남 고속철 반대로 인하여 정치적 은퇴를 하거나 최소한 그 동력을 상당 부분 소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문제의 박금혜를 새나라당 경선 즈음에서 떨어뜨리고, 여러 가지 공작을 동원해 친미적이고 자유 시장 경제에 찬성하는 중도 진보 혹은 중도 보수, 그러니까 이임제 정도의 후보가 이현창 후임이 되는 게 가장 이상적이었는데…….

당내 경선에서 박금혜를 눌러 버렸어야 할 문제의 그 사람이 진작에 딴 길로 새어버리고, 노윤현은 고려일보의 과유불급 등으로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연이은 정치적 위기를 돌파해내고 여기까지 살아남아 버린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돌파력 하나는 인정해 줘야겠군. 아니면 그냥 운이 좋던가. 뭐가 어찌 되었든 이제는 차악(遮惡)에 적응해야지.’

“리 국장, 대외정찰총국 501 출장소 동무들…… 현재 서울에서 활동 중인 우리 정보전사들이 내가 지정하는 몇몇 남조선 인사들의 이메일을 포함한 정보들을 가져올 수 있겠나?”

한밤중에 급히 서기실로 불려온 간부 중 한 명, 대외정찰총국장 리종수는 느닷없는 총서기의 교시에 자세를 바로 하고 빠릿하게 대답했다.

“넷, 현재 서울 잠실과 분당, 성남 지사에서 명령 대기 중이고 언제라도 교시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네다. 다만…….”

“다만?”

“말씀하신 인사들이 남조선 정부의 요인들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난이도도 높고 성공해도 언젠가 들킬 확률이 높습네다. 물론 총서기 동지께서 화급히 교시하신바, 총폭탄 정신으로 사력을 다하갔지만, 아시다시피 아직 남조선에서는 사용율이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닌지라……. ”

“공식 직책상에 있는 인물들은 아니고 그저 여당 총재의 민간인 지인에 불과하니 그리 보안 수준이 높지는 않을 걸세. 최근 사업보고서를 보니 북조선 사업정보에 접근하고 싶은 남조선 고위급 인사들도 하나둘씩 이용하기 시작한다니 근처 인물들의 이메일을 매개로 이용하는 방식으로 하나씩 접근하게.”

“받들겠습네다!”

“내가 알기로는 해당 인사들은 땅 투기에 관심이 많다고 하니 평양에 좋은 부동산 입지가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접근을 시도해 봐도 좋겠군. 하여간 모든 권한을 줄 테니 해당 인사들과 박금혜 후보의 연관을 증명할 증거물을 가져오게.”

“저기…… 총서기 동지, 한 말씀 드려도 되갔습네까?”

정환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장성택, 그리고 백승철이 ‘한밤중에 이게 웬 홍두깨냐’하는 표정으로 그의 심기를 살피고 있었다.

조심스럽기는 해도 무슨 말을 할지 충분히 다 짐작되는 표정이었기에 정환은 그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먼저 차단했다.

“무슨 말 할지 알아. 왜 갑자기 이렇게 남조선 대선에 못 끼어들어 안달이냐고? 심지어 박금혜도 아니고 공화국에 적대적인 노윤현 좋은 일 해주려 이렇게 안달인지 묻고 싶은 거 다 아네. 하지만 다 곡절이 있으니 나중에 좀 물어보게. 나중에는 다 이해할 테니까 말일세.”

“흠흠…… 저희야 총서기 동지께서 교시하시면 그저 한 점 의심도 없이 따를 테지만…… 제가, 그리고 백 차수 동지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그거이…….”

“…….너무 초기 대응 강도가 높은 거이는 아니갔습네까? 물론 언젠가는 공개해야 할 놈이기도 하고, 그 학총련 놈들 놀아대는 짓거리가 괘씸한 거이는 백번 천번 이해합네다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인민군 서열 1위 백승철과 당 서열 1위 장성택의 생각이 일치하는 것은 좀처럼 드문 일이다.

그말인즉슨 방금 전 정환이 남조선 특정 민간인들의 이메일을 해킹하라는 것 외에도, 내린 또 하나의 지시가 그만큼 뜬금없고 과격해 보이기까지 했다는 방증이었다.

백승철의 말대로 학총련 애송이들의 저지른 짓거리는 분명히 웬만한 독재자들의 화를 돋우기에 충분했지만, 이제까지 그들이 아는 총서기는 감정을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물론 최고 존엄께서 남조선에 망명한 학총련 아새끼들에 진노하신 거이는 백번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저희 간부들의 불찰입네다만…… 감히 목을 걸고 말씀드리면 방금 지시하신 것보다는 여러 가지 외교적인 압박수단이 현재의 공화국에는 많은 줄로 압네다.”

“백 차수 동지가 간만에 옳은 말을 올렸습네다. 당장 공화국 상주 남조선 기업들의 문을 닫아버려도 되고, 더 강경하게 이산가족 비자 발급만 취소해도 남조선 괴뢰도당들은 즉시 굴복하여 학총련 반동들을 잡아 올릴 텐데, 초장부터 이리 강경, 아니, 과격한 조치로 나오시는지…… 물론 남조선 이현창이 미적거리는 거이 괘씸하기는 하지만, 기래도 북남 경제가 어느 때보다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만큼 경제적 여파를 조금은 생각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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