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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하는 수령동지-246화 (246/350)

경애하는 수령동지 246화

87장. 숨은 의도?

“이런, 저 빌딩은 지난번에 왔을 때만 해도 없던 거이였는데…… 공화국이 발전하니 인근 연변자치주도 따라서 바뀌는군요. 빌딩뿐만 아니라 거리도 많이 바뀌었습네다.”

“그런가? 나는 동무와 달리 연변이 초행길이라서…… 어떻게 차이가 나길래 그러나?”

“간판입네다, 김용건 외무부장 동지. 지난번에 외무성 과업으로 왔을 때만 해도 간판에 중국말을 크게, 조선말을 작게 병기한 간판이 많았는데, 지금은…….”

자신에게 거리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설명하는 수행원과 비서들의 말을 경청하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 외무상 겸 총리, 김용건은 그들의 손끝이 가리키는 광경을 보며, 그들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제는 조선말을 더 크게 병기한 곳이 절대다수군. 아니, 아예 조선말만 표기한 곳도 아주 많고 말이야.”

“공화국 자본이, 특히 가까운 라선에서 들어오는 돈맥이 여기까지 닿으면서 생긴 일입네다, 동지. 여기 연길 동무들 절반은 공화국 기업소에서 일하거나, 그 기업소와 어떤 식으로든 거래를 트며 살아간다고들 하디 않습네까.”

“차후에 라선을 지나는 시베리아 철도가 뚫린다면 그 속도가 더욱 가속하여 이곳 연변은 영토상으로만 중국이디 아예 우리 공화국 앞마당이나 다름없어진다고 벌써부터 떠드는 자들도 있디 않갔습…….”

신이 나서 떠벌여 대는 수행원의 말에 김용건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입가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안 그래도 이 민감한 시기에 외무성의 성원이라는 자가 저리 눈치가 없어서야.

“쉿, 경망하게 그런 소리들 말게. 지금 와 계신 우리 ‘혈맹’ 측 인원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나? 괜히 중대사를 앞두고 꼬투리들 잡히고 싶은 거인가?”

“죄, 죄송합네다! 동지!”

“헛나발 불지들 말고 이제 역으로들 가지. 다시 말하지만, 입단속들 잘하고.”

‘아니, 어쩌면 이거이 정말로 총서기의 복심(腹心)일지도 모르지.’

솔직히 말하자면, 무슨 대륙진출이라도 한 듯 신이 난 외무성 성원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는 김용건 자신부터도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그가 있는 곳,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가장 큰 도시인 연길(延吉) 시의 전경은 민족주의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마침내 삼국시대 고구려가 부활해서 고토(古土) 회복에 나섰다고 좋아서 날뛸 정도였다.

‘지나다니는 처자들이 입은 옷은 전부 현재 평양에서 유행하는 차림새고, 시내에는 조선풍 음식점이 가득하고, 거리에서 들리는 말도 반절 이상이 조선말이고…… 가장 중요한 건 이곳 연길 경제 자체가 공화국 사람 아니면 공화국에 가서 돈 벌어오는 조선족들이 굴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니…….’

당장 김용건을 비롯한 수행인단이 시내 현지시찰을 마치고 관용차에 탑승해 지나가는 와중에 창밖으로 보이는 오늘의 목적지, 연길 기차역으로 가는 광경은 이곳이 중국인지 아니면 북조선의 어느 번화한 도시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延边朝鲜族自治州), 줄여서 연변.

중국의 30개 자치주 중 큰 편에 속하는 인구 200만의 이 자치주는, 사실 전 중국 대륙이 ‘먼저 부자가 되고, 그들이 나머지 인민을 이끌어 다 같이 부자가 되자’라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 선부론(先富論)에 들떠 있었을 때도 발전에서 소외당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내륙에 위치해 있어서 인근에 항구가 전무했다는 점이었는데, 덩샤오핑이나 그 후 장쩌민, 그리고 지금 보시라이 - 시진핑 시절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발전의 중심이 되어왔던 1선급 도시들이 상하이, 홍콩, 광저우 같은 동부 해안가 도시들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는 치명적이었다.

그렇다고 고속철 같은 다른 교통 인프라가 충실한 것도 아니고, 물류 인프라가 부실하니 공업도 전무한 데다 타지 나간 조선사람 특유의 자기들끼리만 뭉치는 기질 탓에 중국의 주류인 한족들하고도 사이가 좋지 않고.

결국 믿을 곳은 그래도 한 핏줄인 옆 동네 북조선이었는데, 그 북조선이 더 낙후했을 시절, 연변의 유일한 ‘산업’이란 저 아래 또 다른 핏줄인 남조선으로 가서 가사도우미나 막노동자, 그것도 아니면 양꼬치 장사로 돈을 벌어오는 일이 전부였다.

물론 지금은, 정확히는 수년 전부터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도착했습네다. 총리 동지! 중국 측에서는 이미 와 계십네다.”

“알갔네.”

북조선의 개혁개방과 도약의 분기점이 된 98년 북남 대타협, 그리고 그 후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괄목할 만한 성장세의 수혜를 직접적으로 받은 연변 자치주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처음에는 남조선으로 가던 조선족 인력들이 고향에서 가까운 북조선으로 직장을 옮긴 것도 한 이유였지만, 점점 북조선의 사정이 나아지고 요즘 들어서는 임금도 빠르게 오르자, 저임금을 보고 북조선에 들어왔던 남조선, 외국 기업인들은 그 대안으로 연변을 선택하기 시작하는 중인 게 요즘은 다른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어차피 연변이나 북조선이나 거리는 엎어치나 메치나고, 법인을 북조선에 두고 공장만 옮기면 대중(對中) 무역에서 제도적 특혜는 그대로이다.

거기에 이제는 북조선 기업인들까지 고임금 국가로 진입하고 있는 자국이 아닌, 말 통하고 가까운 연변으로 자사 공장을 옮기고 있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북조선으로 이동하던 하청 러쉬가 이제는 북한에서 연변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이 경우 외국 자본의 단물만 빼먹기로 유명한 중국의 제도에서 피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기는 했지만, 이미 90년도 후반 장쩌민 집권 말기에 연변은 단둥에 이어 중-조 특혜무역지대로 선정된 지 몇 년이 지나 있었다.

-이제 저희 공화국도 개혁개방을 했으니 소 등에 파리가 얹어가듯 가까운 대국과 더욱 가까워져야겠습니다. 흠, 지리적으로 보면 우선 이곳 연변과 철도부터 연결해야겠군요?

외국 자본의 자국 잠식에 경기를 일으키는 중국인들이 그렇게 쉽게 조약을 맺었던 것에는 아마 ‘이제 막 개방한 너희들이 무슨 자본이 있다고 우리 영토를 집어먹겠나? 그래도 혈맹이니 먹고 살게는 해줘야겠지?’라는 경시의 시선이 큰 몫을 했다고 김용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들로서는 아무리 낙후했다고는 해도, 설마 북조선이 이렇게 빠르게 기어올라 자국 영토 일부에 강대한 경제적 영향력을 끼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물론 연변 자치주가 예전부터 자본도 공업도 없는 중국 내에서 발전 소외지역, 말하자면 경제적 무주공산이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기러고 보면 총서기 동지께서는 그 조약 체결 당시 이런 오늘날까지 내다보신 거 같군.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 나를 보내셨갔지.‘

하여간 그렇게 생각하며 김용건이 차에서 내리자 오늘의 행사, 회령 - 연길 직통 기차역 개통 행사와 시승식을 위해 단상에 도열한 악단과 환영인파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 자치주가 속한 길림성의 성장(城長)과 중국 외무부 관계자들도.

곧 예정되어 있던 식순대로 김용건이 그들과 악수를 나눈 후, 리본을 자르자 축포와 함께 색종이가 연길 하늘에 휘날렸다.

퍼퍼퍼퍼펑!!!!!

“자, 그럼 이것으로 조- 중 합작에 의한 회령 - 연길 도시 간 철도가 개통되었습니다!”

짝짝짝……!!!

연변의 다른 절반을 차지하는 한족들도 좋아하고 있었지만, 식장에서 가장 눈에 띄게 좋아하는 사람들은 절대다수가 공화국에서 사업을 벌이는 조선족 출신 사업가들이나 공화국에서 투자를 받아 연변에서 사업을 하는 자들이었다.

그것만 보아도 오늘 열차의 개통에 직접적인 수혜를 입을 계층이 어디인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와는 달리, 중국 국무원 외교부장이 어딘가 불편해 보인다는 걸 눈치챈 김용건은 지체 없이 (요즘 인터넷을 통해 공화국에도 퍼지기 시작한 남조선식 표현으로) ‘영업 멘트’를 입에 담았다.

“앞으로 회령 - 연길을 출퇴근하는 연길의 인민들은 단 40분 안에 간소화된 입국 절차, 무비자의 혜택을 누리며 더욱 편하게 양국 모두에서 경제활동에 종사할 수 있갔습네다. 날이 갈수록 조중관계가 이웃에서 함께 개혁개방과 공영의 길을 걷는 형제로 발전해가는 것을 보니 제 가슴이 다 벅차오르는군요.”

“……그건 그렇고, 김 총리께서는 고작 이런 3선(线)급 도시 단일 노선 개통 행사에 직접 래왕하시기에는 조선에서 너무 지위가 높은 분 아니시오? 우리 측도 혈맹에 대한 예우를 고려하여 내가 직접 이 깡촌까지 오기는 했소만, 그래도 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소.”

“……흐음, 기건 말입네다…….”

김용건은 턱을 쓰다듬으며 말을 길게 빼면서도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외교부장의 지적대로, 중국의 유일한 ‘혈맹’인 북조선의 내각 총리라는 김용건의 지위를 고려하면 그는 이런 변두리 3선 도시, 연길의 국경 철도 개통식 정도에 직접 내방하기에 ‘급수’가 지나치게 높은 사람이었다.

부부장급 간부 정도만 보내도 될 행사에 무려 총리가 직접 나왔으니, 중국으로서는 북조선은 이 행사에 중국보다도 뭔가 훨씬 더 큰 의미 부여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용건은 이미 중국의 기분을 세워주면서도 적당히 둘러댈 만한 핑계를 찾아왔다.

“설명을 드리자면 저 철도 때문 아니갔습네까.”

“철도라?”

“근래 10여 년간 대국에서 순수 중국 기술로 만든 고속철 개발을 국가적 과제로 삼고 계시지 않습네까. 기런데 지난번 저희 조선이 공화국의 고속철, KRX 발주 대상을 대국의 고속철이 아니라 남조선 KTX로 정한 것에 대국 내에서 서운해하는 말들이 많이 나왔다고 들었습네다.”

“뭐…… 그건 사실이기는 하오. 분명히 우리 당 운수부와 철로 공사 내부에서도 ‘조선이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다면 자국 고속철 사업 대상을 세계 최고에 도전하는 우리 중국산 고속철로 선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이 나오기는 했지.”

‘세계 최고? 예전부터 느꼈던 거이지만 이 뙤놈들 참 낯짝도 뻔뻔하구만,’

90년도 후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일본 신칸센과 프랑스 TGV를 포함한 해외 고속철과 협력하여 국토 대개발에 나섰지만, 그 궁극적 목적은 대량 수주를 미끼로 기술이전을 받아 자국산 고속철을 개발하는 데에 있었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지난한 과정의 연구를 거쳐 개발한 기술의 실증 및 축적을 위해 실제로 하나 만들어보기는 해야 하는데, 북조선을 실험장으로 쓸 속셈이었다는 것이 몇 년 전 공사 대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북조선 측이 내린 결론이었다.

산간은 많아도 중국보다 국토도 작고, 노선 길이도 짧아 공사 난도가 낮고, 무엇보다 외교적 압력을 넣기 쉬운 위치의 국가가 자국에 고속철을 놔줄 사업자를 찾고 있으니 중국 입장에서 프로토타입 테스트 베드로 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물론 이런 속내를 읽은 북조선 측에서 이러한 요구를 거부하고 한국 KTX를 대상자로 선정하며 한때 양국 관계가 경색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외무상이라는 직위 덕에 이러한 속사정을 다 아는 김용건은 속으로는 그렇게 냉소적으로 비웃으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웃음을 흘렸다.

“하하, 그야 여부가 있갔습네까? 총서기께서도 항상 그 점에 미안해하고 계시다가 저더러 오늘 이 중국의 첫 고속철 해외수출 현장에 직접 나가 대국의 체면을 세우고 혈맹의 정리(情理)를 보이라 교시하셨습네다.”

“흠…… 뭐 그건 고맙다고 해야겠지만, 해외수출이라…….”

중국 외교부장의 표정이 뭔가 ‘트집을 잡고 싶은데 잘도 빠져나가는군’이란 기묘한 표정으로 변했다.

실제로 과거 일에 대한 관계 개선시도의 일환으로 이번 연길 - 회령 간 철도 사업자는 중국철도고속총공사로 선정되었다.

이 회령 - 연길 철도 연결 사업에서 드는 비용은 북조선 KRX가 8할을 부담하기는 했지만, 지난 몇 년간 중국 철도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하기도 했고 어차피 단일 노선이고 겸사겸사 외교 관계를 고려하는 차원의 결정을 당에서 내린 것이다.

노선의 대부분이 자국인 중국 땅에 놓이지만, 어쨌든 북조선 영토인 회령까지 연결되니 김용건의 아부처럼 해외수출이라고 딱히 못 부를 것도 없다.

더불어, 당에서 내부적으로 인민들에게 벌써부터 중국 고속철이 해외수출을 한다고 선전한 관계로 중국 측 관계자들은 긍정도 못 하고 부정도 못 한 채로 표정만 찡그렸다.

그 틈을 타 김용건은 오늘 자신이 여기 온 또 다른 목적,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총서기가 직접 지시를 내린 본 목적에 가까운 제안을 꺼냈다.

“기럼 말씀드린 김에 이 조중 70년 혈맹의 교두보이자 관문, 연변 자치주를 더욱 발전시킬 제안을 또 하나 가져왔다는 말을 드려야 하갔군요.”

“그렇소? 말해보시오.”

“요즘은 대국에서도 한창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지역 보급에 관심이 많다고 들었는데…… 기런데 제가 듣기로는 이곳 연길, 아니, 연변 자치주에는 콤퓨타 보급률이 극히 떨어지는 데다 인터네트 회선도 거의 들어와 있지 않다고 들었습네다.”

“……뭐 다른 발전이 늦어지고 젊은이들은 도시로 일하러 나가니 그럴 수밖에 없기는 하지.”

“기렇다면 타향 사는 동포들에게 정보화 시대의 광명을 쬐게 하는 차원에서 최신식 광통신 인터넷 회선과 개인용 콤퓨타를 싼값으로 보급하고 싶군요. 이미 저희 공화국 민간 기업소 하나가 전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열의를 보이고 있습네다.”

“……그 민간 기업소가 어디요?”

“들어보신 적 있을지 모르갔습네다만, 유니온이라고, 검색엔진 운영하는 곳이지요. 요 근래는 남조선부터 시작해서 조선말 쓰는 모든 지역에 진출하는 중입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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