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45화
86장. 황금과 종속
공청회 직후의 비밀스러운 만남으로부터 몇 달 후.
‘세상을 바꿀 것’이라 운운하며 출시한 신제품들이 그랬던 것처럼, ‘애플의 아이폰은 처음에만 요란한 허풍선이 될 거’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회의론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모든 매체들, 모든 소비자들이 한목소리로 ‘이건 정말로 새로운 기기’, ‘진정한 혁신가의 탄생’을 외쳤고, 동시에 이제까지의 전자산업 판도가 바뀔 것을 예측한 기존 기업들의 고민은 깊어졌다.
-새로운 기기, 새로운 모바일 운영체제, 새로운 플랫폼이라…… 아이튠즈로 음악도 손대더니 이제 직접 부품 들고 만드는 거 빼고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거의 다 해먹겠다는 거군.
-벌써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주가가 떨어지고 있어. 아이팟으로 한 대 얻어맞고 이제는 운영체제까지……. 게이츠 은퇴한다던데 번복해야 하는 거 아니야?
당연히 이러한 아이폰 쇼크에 놀란 타 기업들,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성삼 전자, 소니 등은 아이폰의 대항마가 될 수 있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제품의 개발에 착수했지만, 북조선의 유니온은 그들의 경계 대상이 아니었다.
북남을 다 합치고, 한반도 외 이용자까지 포함해도 아직 5천만 명 정도의 이용자밖에 확보하지 못한 지역 군소 검색엔진이어서인지, 안드로이드라는 작은 회사가 유니온에 인수합병 되었을 때도, 앤드루 루빈이라는 개발자가 유니온의 부사장 직책을 맡게 되었다는 기사가 났을 때도 이 사실에 관심을 가지는 이는 거의 없었다.
그리고 이는 미국의 애플 본사 역시도 마찬가지였는지, 북조선 시장을 제법 소득도 높은 데다 딱히 눈에 띄는 경쟁자가 없고 결정적으로 진짜 중요한 시장인 중국에 진출하기 전 테스트용으로 쓸 만한 ‘아시아의 쉬운 시장’이라고 판단했다.
그렇게 애플 측에서는 애플의 직영점, 그 유명한(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유명해질) 애플 스토어(Apple Store) 평양 지점의 개점을 결정했다.
* * *
-애플 북한 지사, 애플 스토어 평양점의 개장을 예고! 올해 여름에 보통강 거리에 오픈!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 애플 스토어 개점……! 애플, 대한민국보다 북한을 좋아하나?
“허, 요즘 공화국이 호황은 호황인가 보군. 아직 선 오픈인데도 저렇게 길게 사람들이 줄을 서다니……. 거기다 가격을 생각해 보면 총서기로서 이걸 좋아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런 입에 발린 찬사 싫어하시는 줄은 압네다만, 다 총서기 동지의 노고 덕입네다. 평양에 첫 맥도날드 오픈한다고 인민들이 줄을 서던 게 엊그제 같은데, 참 이런 날이 다 오는군요.”
“하기야 근래는 조금만 사는 집 동무들은 맥도날드 안 가고 버거킹을 간다고 들었네. 사실 나도 요즘은 빅맥보다 버거킹 와퍼가 더 나은 거 같아. 어째 맥도날드는 날이 갈수록 버거 크기도 작아지고 부실해지는 거 같단 말이지. 서기실 명의로 북조선 지사장한테 슬쩍 한소리 해야 되나?”
조선중앙방송에서 애플 스토어 평양 1호점 개장을 앞두고 벌써 길게 줄을 늘어서 있는 평양 공민들을 중계해 주는 방송을 보며 정환과 유혜림의 나눈 대화였다.
하지만 이런 그들의 시시덕거림과는 별개로, 절대 싸지 않은 가격이 책정된 아이폰 1세대 출시에 벌써부터 예약 주문이 쇄도하고, 관영방송인 조선중앙방송에서까지 이 아이폰 쇼크를 보도해 주는 현 북조선의 상황은 누가 봐도 단 한 가지를 암시했다.
바로 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경제적 전성기, 한국에 비유하자면 90년대 초중반 수준의 황금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남조선에 몇 년 전 그 뭐냐, 웰빙 붐 불어서 유기농 식품이니 뭐니 잔뜩 나왔는데, 잠깐 시들해졌다가 요즘은 그게 공화국으로 판로를 잡고 수입된다고 하더군. 더 신기한 건 그게 또 남조선보다 엄청 잘 팔린다니…….”
“요즘 초등학교 어린 동무들 둔 학부모들은 이밥에 고깃국 어쩌고가 아니라 식품에 MSG 들어갔는지 아닌지부터 먼저 본답네다. 저 어릴 때는 MSG라고 하면 미제 따발총 이름인 줄 알았을 텐데 참…….”
학총련이라는 조직이 분쇄되고 잔당들이 지하로 숨어든 후, 유일하게 남은 노동계에게 정환과 공안부는 애국전선이라는 이름으로 편입된 주체계에 이어 관대함을 보여주기로 결정했다.
애초에 노동계 대다수는 체제를 직접적으로 어떻게 바꿔보겠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차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 숨을 죽이고 조용히 지켜보는 민심을 감안해 정환은 이제 슬슬 복지에 신경을 쓸 때도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동안 준비해 왔지만, 지금이 정식으로 국민보험을 출범시킬 때인 거 같군. 일단 노동계가 협상의 주체니 산재보험, 의료보험을 중심으로 공화국은 4대 보험이 아니라 3대 보험으로 가야겠어. 고용보험은 좀 유보해야겠지만 산재보험은 남조선보다 넓고 넉넉하게 잡아주도록.”
곧 ‘우리 조선로동당의 근본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로동자가 중심인 당이다’로 시작되는 당-로총맹 간 합의문 서문과 함께 3대 보험, 기초생활 수급제도가 조금씩 바뀐 이름으로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름이 바뀌어도 4대, 아니, 3대 보험의 상당 부분을 고용주 측에서 부담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동시에 새해가 밝아오며 선심성으로나마 법정 최저임금도 상당히 오르면서 북조선 인민들 생활의 전반에는 급작스러운 활기가 돌았다.
물론 이제는 가장 하류층의 인민이라도 세 끼 중 한 끼라도 밥을 굶거나 하는 일은 옛날 옛적 이야기가 되었다고는 해도, 그동안 국가 경제 발전에서 소외된 계층에게도 제도의 햇살이 내리쬐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하류층이 아닌, 몇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형성된 중산층들에게 지금은 그야말로 황금시대였다.
취업만 봐도 싼 임금에 혹해 온 외국 기업들부터, 외환위기 이후 북조선에 안착한 구(舊) 한국 기업들, 중국 시장을 노리고 온 신(新) 한국 기업들, 경제성장률 바람을 타고 나날이 자라나는 북조선 토종 기업들까지.
본인이 특별히 출세 욕심이 없다면 취업도 전혀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
게다가 최근 조금씩 둔화되고 있다고는 해도 여전히 연평균 6%대를 오락가락하는 경제성장률, 느리지만 조금씩 오르다가 얼마 전 노총맹과의 대타협으로 다시 크게 오른 임금, 체제에 직접적으로 위협이 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이전보다 비할 바 없이 널널해진 사회자유도까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조짐이 보이던 북조선의 호황은 2007년 현재 절정기를 맞고 있었다.
김일성 주석이 입이 부르트게 공언(公言)했지만 단 한 번도 지키지 못하고 결국 공언(空言)이 되어버린 ‘이밥에 고깃국’ 시절이 마침내 현실이 되어 이 공화국에 도래한 것이다.
막상 그 시절이 오자 정작 이밥과 고깃국을 찾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햄버거에 아이폰을 찾게 되었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했지만.
-세상 참 좋아졌디, 참 좋아졌어.
-나이 어린 동무들은 총서기와 당에 고마운 줄 알아야 하디. 우리가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요즘 청년들은 너무 당연하게들 누리는 것 같다.
옛 주석과 장군의 시절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제는 50줄로 접어드는 공화국의 중장년층들이 근래 버릇처럼 하는 말들이었다.
그들의 말처럼 특히 개혁개방의 수혜를 가장 직접적으로 입은 계층은 청년들, 정확히는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생들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기억에도 희미한 이 젊은이들이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정환이 권력을 잡았고, 곧바로 시장경제체제가 들어와 이전의 공화국을 송두리째 없애 버렸다.
어려서 밥을 굶어본 기억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그들 중 일부는 대학에 들어가 학총련 같은 사회변혁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지만, 대다수는 취업과 연애, 아르바이트, 무엇보다 공화국 안과 밖에서 급격하게 발달한 정보통신 기술의 혜택에 몰두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그걸 방증하듯 지금 개장을 앞둔 애플 스토어 앞에 길게 줄을 늘어선 인파의 구성인원 대부분은 머리를 물들이고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애플 스토어를 배경으로 셀카를 찍기 바쁜 평양의 젊은이들이었다.
하도 인파가 몰려 줄을 통제하기 위해 얼마 전 공안부 산하로 편입된 애꿎은 인민보안성 보안원들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광경은, 현재의 북조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한 전경이라고 할 수 있었다.
“미제 손전화 사기 위해 도열한 인민들을 보살피는 인민보안성 성원들이라. 이거이 말로만 듣던 태평성대로군요.”
“공적으로는, ‘위기란 이럴 때 찾아오는 법이며 국민 소득이 오를수록 중진국 함정과 산업 공동화를 경계해야 한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면 분위기를 깰 게 분명하고, 일단 여기에 나랑 유 소좌밖에 없으니까 일단 그렇다고 하지. 그래. 참 멋진 시기군. 지금은.”
-자! 평양 시민 여러분!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앞줄부터 천천히 한 명씩 들어오십시오! 개장 기념 티셔츠는 저쪽에서 나눠 드립…… 어어어어!!! 밀지 마세요!
하여간 이러한 과정을 거쳐 높으신 분들의 계산과 잇속과는 별개로, 아이폰의 출시와 애플 스토어 평양점 개점은 그해 여름, 전 세계 대중들과 공화국 인민들의 가장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인터넷 커뮤니티들과 블로그에서는 먼저 구매한 이들의 구매 인증과 자랑, 그리고 이를 부러워하는 이들의 댓글로 뜨겁게 달구어졌다.
그리고 이는 재미있게도, 이현창 정권 들어 KTX 도입을 시작으로 경제적으로 밀착하게 된 남북관계의 훈풍을 타 작년쯤 한국에서도 막 서비스를 시작한 북한산 검색엔진, 유니온에서 북남 네티즌들 간 사이버 대전, 앞으로도 길이 이어질 키보드 배틀의 시발점이 되었다.
ghkd0305 님 : 아이폰 구매 성공! 과연 감성 충만한 미래 기기의 느낌이 벌써부터 물씬……!! 남조선 동무들에게도 언젠가 이런 진짜 문. 명. 의. 혜. 택. 이 닿았으면 합네다^^
김정환 대가리에 렌치! 님 : 야 빨갱이. 한국에서도 아이폰 살 수 있거든? 곧 성삼전자에서 저런 가격만 더럽게 비싼 단말기 발라 버릴 신제품 내놓을 테니까 너무 좋아하지는 마라? 근데 북에서 블로그는 할 수 있으쎄요? 잘못해서 조선로동당 욕 썼다가 3대가 아오지로 끌려가는 거 아님? ㅋㅋㅋ 우왕ㅋ굳ㅋ
너의적은너 님 : 쯧쯧…… 언제 적 이야기하는지 모를 가엾고 딱한 남조선 인민이 여기도 하나 있구만. 그리고 원조 직영점 애플 스토어에서 사야 진짜 아이폰이지 너희 남조선 통신 기업소 대리점에서 사면 그거이 아이폰이냐? 저리 현실을 모르는 인민들이 나라를 끌어갈 간부를 정하니 외환위기 때 우리 공화국에서 돈이나 빌려가지…….
벚꽃 피는 날 님 : 뭐라 쳐 씨부리 쌌노. 늬들은 그래 봐야 본질적으로 다 김정환이 노예야 노예! 요 10년 새 잘 먹고 배부르다고 해도 제일 중요한 자유 민주주의가 없는데 그 잘난 아이폰 열심히 쳐보고 있어라, 응?
유뇌드라군 님 : 이 골 썩은 남조선 간나야. 우리 공화국에서는 남조선 국회의원 부스러기들이 하는 차떼기 같은 거이 저지르면 그 즉시 총살이거나 25년 형이야! 기런데 남조선에서는 여전히 그 부스러기들이 떵떵 세도 부리면서 인민의 대표입네 하며 잘 살지 않네? 이거이 꼴이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간? 기럼 이제 가슴에 손을 얹고 어느 조선이 더 나은 조선인지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라우? 응?
발그림자 님: 모두 싸움을 멈춰주세요! 지금 비록 이렇게 분단되어 싸우고 있지만, 우리 모두 궁극적으로는 한 민족 한 동포 아닙니까? 제발 인터넷상에서만이라도 네티켓을 좀 준수하는 게 어떨까요?
MM 님 : 동포? 이놈들이랑 우리가? 이놈들이랑 우리가 동포면 연변 조선족 불체자들도 우리 동포임? 기업 하는 양반들이야 싼값에 부려먹기 좋으니까 조선족들 체류 비자도 더 쉽게 주자고 하고 중국 동포 운운해 대는데, 꼭 제일 자기 잇속 챙기는 놈들이 걸핏하면 애국심 팔아먹더라. 하기야 요즘은 조선족들도 지들 사는 데에서 가까운 윗동네로 많이 가던데 그거 하나는 김정환이한테 고마워. 방파제 수고!
물론 유니온이 한국에서 영업한다고 해도 한국 검색엔진은 공화국 내에서 서비스할 수 없었고, 서버가 평양에 있느니만큼 검열·규정 위반 시 아이디 차단을 포함한 일방적 제재는 당연했지만, 예상외로 유니온의 한국 내 이용자 수는 빠르게 늘어났다.
국제적인 포털사이트에서 국가 간 네티즌들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지는 건 이 21세기에 이미 너무나 흔한 일이었지만, 지난 60년간 세계 기준으로도 너무나 예외적이면서도 굴곡진 과정을 겪어온 두 나라의 국민들, 그리고 인민들이었다.
다른 한국산 포털사이트를 이용한다고 해도 유니온에 아이디를 만들거나, 최소한 다른 사이트와 함께 사용하는 한국인들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단 구글이나 야후, 바이두(Baidu)와는 달리, 일단 같은 언어를 써 말이 통하는 나라의 검색엔진이라는 이유가 가장 컸다.
이런 여러 조건이 겹치다 보니 사이버 세상(주로 유니온이 서비스하는 로동신문 인터넷판 댓글 창)에서는 두 국가의 체급부터 경제 발전사, 1인당 소득, 정치 제도, 현직 지도자부터 드라마와 영화, 예능, 지금 유행하는 패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온갖 떡밥이 식을 줄을 몰랐다.
한 인터넷 신문사는 이를 두고 ‘21세기에 재현된 사이버 한국전쟁의 서막’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지만, 아직은 한국의 그 누구도 유니온과 그 뒤에 숨은 김정환의 미래 야심에 대해 짐작하는 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그 검색엔진을 통한 미래 야심의 1차 목표는 남쪽 대한민국이 아니라 저 멀리 좀 더 북쪽인 중국 연변에서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