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애하는 수령동지 243화
갑자기 뜬금없는 인문학 강의에 리경수는 입으로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고개를 돌려 방 안을 서성거리는 정환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하지만 리경수의 얼굴 한복판에 박힌 눈동자 안에 타오르던 불꽃은 이제 어딘가로 사라지고, 그저 텅 빈 공허만이 가득했다.
그러나 정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할 말만을 계속했다.
“일제 강점기 당시의 독립투사들, 체 게바라, 베니그노 아키노, 그리고 유민중까지. 이런 사람들은 물질이나 지위로 회유할 수 없는 종류의 인간들일세. 극한의 고문에도, 설령 자기 한목숨은 물론이고 가족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해도 절대로 신념을 꺾지 않아. 이런 비유를 들으면 길길이 날뛸 사람들이 많겠지만 따지고 보면 오사마 빈 라덴도 그런 부류지. 막대한 유산과 약속된 미래를 버리고 종교적인 대의와 자칭 성전에 몸을 던지는 건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네.”
“…….”
리경수는 계속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정환이 하는 말을 듣고만 있었다.
사실 정환도 리경수에게 말한다기보다는 자기 자신, 혹은 여기 없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눈 역시도 눈앞의 리경수를 떠나 저 멀리, 이 방안이 아닌 다른 시공간의 어딘가를 보고 있는 듯했다.
“나 같은 독재자들에게는 참으로 까다로운 대적들이지. 그렇다면 이런 사람들을 무너지거나 전향하는 경우는 어떤 경우라고 생각하나? 참고로 물리적인 방법, 흔히들 생각하는 고문이나 암살에 죽는 경우는 오히려 역효과야. 애초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이 아닐뿐더러, 그런 사람들을 순교자로 만들어주니까.”
“……그거이 뭐요?”
“바로 신념이 무너지는 경우일세. 특히 믿었던 동지나 측근의 배신이 가장 일반적이지.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투사들을 가장 열심히 괴롭혔던 주적도 일본 제국이 아니라 그 밑에 붙었던 기회주의자, 혹은 변절자들이고. 내가 보기에는 지금의 동무가…… 바로 그런 경우로 보이는군.”
“……?”
“지난번에도, 그리고 지금도 다시 한번 말하는 거네만, 물질적 이득이나 자기 목숨 보전을 위해서 언제고 편을 바꾸는 기회주의자들과는 달리 동무처럼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느 조직이건 대단히 희소한 인적자원이야. 진영에 상관없이 말이지. 가려내기 힘들다는 점, 그리고 전향시키기 힘들다는 점이 문제기는 하지만, 또 불가능한 건 아니란 말이지.”
그 말에 담긴 뜻을 알아챈 리경수는 잠시 멍하게 그를 바라보다 다시 물었다.
“결국 나보고 전향하라는 거군. 결국은 말이오.”
“요약하면 그렇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로동당의 문은 누구에게나 항상 활짝 열려 있다네. 특히나 동무처럼 잘 배우고 반체제분자에 대해서 증오할 동기가 충분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
리경수는 이번에도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정환도 이제는 입을 다물고 그저 리경수를 주시하면서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피딱지가 내려앉은 리경수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23호 관리소에서 전향한 동지들을 보면서 대체 왜 저렇게 투쟁 일로에 몸을 던져온 동지들이 저렇게 쉽게 정반대 편으로 전향을 할까, 하고 날밤을 새우며 끝도 없이 고민했었소. 기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더군.”
“……그게 뭐지?”
“자존심…… 이랄까. 좀 더 어려운 말로 하자면 선민의식, 미제 말로는 에고(Ego)지. 자신들처럼 여타 인민들보다 똑똑하고 격이 다른 존재가 고작 먼지만 한 보상에 신념을 굽혔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아니, 인정할 수 없어서 자신이 처음부터 체제에 충성하는 사람이었다고 스스로를 세뇌시킨 거요.”
“…….”
“자기 자존심을 바꿀 수 없어서 결국은 자기 자신 전체를 바꿔 버린 거이지……. 참으로 우습지 않소? 기렇게 보면 그 동무들을 전향시킨 건 관리소나 총서기가 아닌 거요. 그들 자신이지.”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리경수는 시선을 움직여 정환과 눈을 맞추었다.
퉁퉁 부은 데다 여전히 절망과 실패감으로 가득 찬 눈이었지만, 정환만은 그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새로운 삶의 의지가 싹터오는 것을 발견했다.
“비록 여타 인민들이 보기에는 결과적으로 그들과 같은 결정을 내린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최소한 나는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는 않소. 틀린 걸 맞았다고 억지를 쓸 생각도 없고. 인정하갔소, 나는 이제까지 총서기의 체제에 반대했지만, 그동안 내가 틀렸소. 그러니 전향할 거요.”
“옳은 선택이네. 그럼 지금부터 할 일이 많군.”
리경수의 짧은 대답에 정환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자리에서 기운차게 벌떡 일어나 근처에 준비되어 있던 몇 가지 서류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거이 뭐요?”
“미국 하버드 대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 신청서. 몇 년 전에 김일성대학교와 교환학생 협약을 맺었으니 서기실에서 내 이름 넣어서 발급해준 추천서를 들고 가면 어렵지 않게 입학할 수 있을 걸세. 학업성적도 좋던데 더 이상 김대에는 가고 싶지 않을 테니 가서 머리도 식힐 겸 학업을 마치고 오게. 원하면 MBA 코스도 따고, 더 욕심이 나면 맥킨지나 골드만삭스에서 경력도 쌓고 오도록.”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이 모든 경력 쌓기를 다 마치고 오면 당 중앙당교에 동무 자리가 마련되어 있을 걸세. 국내 실무 경험은 조선투자공사나…… 공안부에서 쌓는 걸 추천하지. 모든 비용은 다 당에서 댈 걸세. 하지만 그 전에 조건이 하나 있네. 그 조건이 바로 뒤쪽 종이고.”
총서기의 말에 리경수는 손가락을 놀려 교환학생 신청서 뒤의 종이를 펼쳤다.
‘양심선언’이라는 글자를 보았을 때 리경수의 심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이미 선택을 했을 때부터 각오한 일이었다.
“말했듯이 나도 조직을 이끄는 입장이라서 말일세. 아무리 내가 총서기라도 이 정도 형식은 해줘야 얼마 전까지 반체제분자였던 놈이 뭐 그리 이쁘다고 인민의 혈세를 걷어 먹여 키우냐는 비판이 당내에서 안 나와.”
잠시 리경수는 빈 종이와 자신이 집어 든 연필을 번갈아 쳐다보고만 있었다.
마치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지금 눈앞의 이 상황을 자기 손으로 선택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이내 눈을 빛내며 한 글자 한 글자 빠르게 양심선언문을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관리소에서 쓰지 못했던 ‘반성문’을 지금 한꺼번에 몰아서 쓰듯이 말이다.
그 광경을 내려다보면서 정환은 드물게 히죽 웃었다.
“충실한 로동당원으로서 시작부터 아주 좋은 자세일세.”
* * *
“저…… 리경수 동무가 중앙당교의 내부경쟁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듣기로는 국내의 쟁쟁한 명문가부터 바닥부터 올라온 공화국 최고 엘리트들, 심지어 남조선에서 이민해 온 동무까지 경쟁이 대단히 치열하다고 들었습네다. 그중에는 이미 당무 일선에 뛰어들어 남다른 성과를 내고 있는 간부들도 적지 않은데…….”
“뭐 그거야 본인 하기 나름이지. 나는 그냥 저런 친구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넣어줄 뿐이야. 다 자기 역량에 달려 있는 거지, 나는 최종선택만 할 뿐. 내가 하나부터 열까지 개입하면 그게 세습하고 다른 게 뭔가?”
서기실에서 김일철 교수를 비롯한 23호 관리소 수감자들의 합동 전향선언이 조선중앙방송으로 생중계되는 것을 함께 보던 유혜림의 질문에 대한 정환의 답이었다.
TV 화면 속에는 카메라 플래시가 쏟아지는 가운데, 마침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낸 수감자들이 ‘자신들이 그동안 당과 총서기의 진심을 오해했으며 공화국의 사회 질서를 혼란하고 인민을 기만했다, 앞으로는 당과 국가에 헌신하여 공화국의 발전을 위해 총력 분투하겠다’라는 선언문을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을 각각 마이크와 PDA를 손에 든 채 바라보는 외신기자들의 표정은 경악과 혼돈이 반반씩 섞인,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리경수의 전향선언, 아니, 양심선언이 대중의 눈길을 가장 많이 끌었다.
-한때 학총련의 대의원이자 초대 간부로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학총련의 거짓과 위선에 대해서 폭로하고자 합네다…….
-지난 몇 달 전 학총련 측에서 외신을 상대로 퍼뜨린 공안 당국에 의한 ‘학총련 대의원 리경수 폭행 치사 사건’은 사실이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이 자리에 멀쩡하게 살아 있으며 결코 누군가의 억압이나 강요에 의하여 이러한 선언을 하는 것이 아님을 엄숙하게 선언하는 바입네다.
-제가 수감된 교정시설 역시도 외부에 알려진 유언비어와는 달리 비인간적 폭행이나 고문 등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내부에서의 수감자 대우도 외신을 중심으로 호도되는 것과는 달리 인권 침해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네다. 오히려 당과 국가, 무엇보다 인민을 대상으로 선동 목적의 거짓부렁을 하고 있는 것은 학총련 측입네다,
-저는 양심과 상식을 가진 공화국의 지성인으로서 이러한 학총련 및 그와 영합한 세력에 대하여 경고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학총련 측은 기울어져 가는 본인들의 조직을 되살리기 위해 저를 사주하여 정당한 법 집행 절차에 따라 시위를 통제하던 공안 요원들을 공격하고 해외 언론에 이를 과장하여 알리자는 일련의 기만적인 음모를 수립 실행하기에 이르렀습네다.
-저 역시 한때는 그들의 일원으로서 이러한 음모에 적극적으로 찬동했으나 주변 가족들과 내면의 양심의 목소리에 이기지 못하고 이러한 양심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습네다. 저의 한때의 과오와 실수를 당과 총서기에게 고개 숙여 사죄드리는 바이며 앞으로 남은 생을 이 죄를 씻기 위하여 오로지 공화국과 인민에 봉사하는 삶을 살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서하는 바입네다. 또한 학총련 측에 가담한 아직 어리고 순진한 다른 동무들에게도 이 말을 전하고 싶습네다. 아직 돌아올 시기가 그리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당의 품으로…….
“저 말을 몇이나 믿겠습네까? 그냥 우리 당에서 저 동무들을 티 안 나게 고문해서 저런 말을 하도록 강요했다고 보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지 않갔습네까?”
“반 정도? 뭐 저기서 풀려난 동무들이 앞으로 적극적이면서도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전향을 입증하고 지난 행적을 후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중에 저 선언의 거의 전부가 사실이었다는 걸 해외 인민들도 납득하겠지.”
이렇게 걱정스러운 유혜림과는 달리 턱을 괴고 여유롭게 TV를 시청하는 정환은 낙관적이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정환의 예측은 나중에 사실로 드러나서, 23호 관리소에서 전향한 수감자들은 향후에도 적극적으로, 아니, 적극적이라는 말로도 모자랄 정도로 극렬한 체제의 충신이 되었던 것이다.
한때 자신들의 배신 행각을 만회하려는 듯 원래부터 ‘적당히’ 체제에 충성하던 사람보다 더욱 극렬해진 이러한 전향자들, 학계, 언론계, 예술계에 이르기까지 분야를 가리지 않고 포진한 이 일련의 골수 김정환 숭배 세력들을 한국의 비슷한 정치세력에 빗대어 ‘뉴 레프트(New Left)’라고 부르게 되지만, 그건 또 차후의 이야기였다.
오늘 합동 전향식에서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단연 공안의 손에 의해서 구속, 혹은 사망했다고 알려진 리경수의 등장과 그의 충격적인 전향선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선언 장소에서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한 한국 기자는 이날 북조선 주민들과 민주주의 요구 세력이 겪은 충격을 이렇게 기사에 묘사했다.
-이날은 그야말로 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근현대사 교과서에 기록될 만한 날이다. 80년대, 한창 시위가 격렬하던 당시 죽은 박종철 열사나 이한열 열사가 멀쩡하게 살아 나타나서 신군부를 옹호하고 민주화 세력을 비난하는 사건이 벌어졌다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한국인들이 오늘 북한인들이 느낀 충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리경수 이 더러운 변절자 종간나 새끼! 체제에 빌붙어 동지들을 배신하고 홀로 일신의 영달을 추구하다니 어디 네놈 새끼가 편히 죽나 어디 한번 지켜보갔다!”
물론, 학총련 측에서는 당연히 격분해서 리경수와 김일철을 비롯한 모든 인사들의 선언이 거짓이며 당과 공안부의 압력에 의해서 조작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리경수가 가는 곳마다 난입해서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배신자, 변절자라면서 온갖 욕설을 다 퍼부었지만, 그때마다 리경수는 눈길 한번 안 주고 자기 할 말만을 하고 사라졌다.
학총련에도 이미 때는 늦어 있었던 게, 일반 인민들 입장에서는 실제 23호 관리소가 어떤 곳이냐는 문제와는 별개로, 이미 죽었다고 알려진 사람들이 살아 돌아온 것만으로도 학총련의 모든 언행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충분했다.
당장 리경수만 해도 학총련 창립 당시부터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한 사람이었고, 그가 공안에게 죽은(그랬다고 알려진) 후에도 그의 죽음을 앞세워 김정환 체제의 폭압성에 가장 열심히 돌을 던졌던 게 학총련 본인들 아닌가.
그런데 그랬던 리경수가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이상 학총련의 정치적 원동력도 크게 저하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그리고 이제 정환과 조선로동당에게는 최후의 일격을 날릴 일만 남았다.
그동안 언제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저 최적의 시기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최후의 일격이었다.
“이제 증인에 명분, 인민들의 마음까지 돌아섰으니 더 망설일 필요가 없겠군. 총서기의 권한으로 명령하지. 공권력의 대리인에 대한 폭행 미수 및 공갈로 학총련을 해산시키고 주모자들을 체포하게.”
그리고 학총련은 멸망했다.
안 그래도 지속적인 실수를 연발하며 민주주의에 대하여 공화국 대다수의 인민이 ‘시끄럽게 사회 혼란과 성장률 저하나 일으키는 반동들의 헛소리’ 정도의 인식만 가지게 만든 학총련은 사실 계기만 있으면 언제든 파괴될 수 있을 정도로 내리막길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계기가 주어지자, 마침내 공화국에 민주와 자유를 가져오겠다는 대의명분 아래 들고 일어났던 조선사회주의학생총연맹은 설립 1년여 만에 그대로 해체되고 말았다.
의장과 대의원단 일부는 체포되었고, 잔당 일부는 한국 등 외국으로 망명했으며, 나머지는 이를 갈며 ‘리경수와 기타 전향자들의 말은 고문과 뇌물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부렁 전향’이라는 지하신문 등을 유포하는 활동으로 지하에 숨어 재기의 날을 기다렸다.
실제로 공화국 인민들이 23호 관리소의 악명(?)에 대한 리경수 등등의 증언을 전부 믿은 것은 아니었기에(이전 시대 김정일 김일성 부자가 구축한 교화소의 공포스러운 인상이 아직 생생했던 이유가 컸다) 그나마 그들이 음지에서 명맥을 유지할 정도의 지지자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절망적이게도(그리고 정환이 이미 계산한 대로), 학총련 해체 직후 깨진 이 사금파리들을 완전히 밟아 가루로 만들어 버릴 충격이 바로 다음 해 초,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찾아왔다.
공화국 인민들로 하여금 자유나 인권이 아니라 시장경제체제가 가져다주는 돈을 벌고 쓰는 말초적 행복에 다시금 모든 신경을 집중하게 하는 소비문화의 슈퍼스타, 현대 첨단 기술 문명이 이루어낸 이기(利器)의 새로운 상징이 출현했던 것이었다.
-오늘, 애플은 휴대폰을 ‘재발명’합니다(Today, Apple is going to ‘reinvent’ the phone).
2007년 1월 8일, 검은 터틀넥을 입은 한 백인 남성의 손에 들린 그 회색 플라스틱 판떼기의 이름은, 아이폰(iPhone)이었다.
시대에 뒤처진 퇴물, 거짓말쟁이, 경제 파탄 낼 놈들 등 온갖 오명을 뒤집어쓰고 양지에서 쫓겨난 전(前) 학총련 구성원들이 돌리는 조악하게 인쇄된 지하신문 따위보다, 이 새롭고 놀라운 기기에 절대다수의 공화국 인민들이 훨씬 더 관심을 쏟았음은 불문가지였다.